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민음사 모던 클래식 47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레이철 커스크의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은 원제(The Bradshaw Variations) 보다 번역된 제목이 훨씬 더 근사하다. 문학적인 느낌과 더불어 이 소설의 주제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있는 그대로의 제목을 표기 했다면 '브래드쇼 변주들'쯤 되었을까. 제목이 근사해 한참 책을 어루만지다가 작가의 이름을 읊조려보니 웬지 그녀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의 프로필을 읽고나서야 그녀가 쓴 작품중 여섯번째 로 쓴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민음사, 2008) 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가로 판형으로 된 표지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한동안 책장에 표지를 앞으로 보이게 꽂아 두었다.

아이의 책 속 에선 모든 것이 설명되고 있음을 그는 발견한다. 사랑, 생존, 투쟁과 즐거움, 행복과 슬픔, 믿음, 삶 자체의 모양새와 궤적이 모두 설명된다. 절대 설명되지 않는 하나는 현실이다. - p.17

그녀의 작품들은 대부분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현실의 삶 그대로를 그려내고 있다. 필터로 거르지 않는 날 것을 쓰다보니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거울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다른 세계로의 접목이 아닌 환상을 꿈꾸지 않는 지금의 나, 앞으로 살아갈 나의 모습. 혹은 엄마의 삶이, 할머니의 삶, 내가 모르는 타인의 삶도 같을 것이라는 것도. 아이였을 때 느끼지 못한 것도 세상의 나이를 한 살씩 더하다보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삶의 궤적들이 눈앞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마음이 쓸쓸했던 어느날, 집 계단에 걸터앉아 보았던 아파트의 수많은 불빛들을 보며 그들의 삶에 동경을 품은 적이 있었다. '저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몹시도 부러운 눈으로 한참을 환하게 켜진 아파트의 불빛을 내려보다가 많은 상념을 내려놓고 방안에 들어오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현실에 수긍하며 살아가는 구성원 중 한 사람일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시린 모습으로 불빛을 바라봤는지.

처음부터, 토머스는 생각한다, 하워드는 장조였고, 레오는 단조였다. 비록 그들의 삶은 그들 자신의 것이지만, 토머스가 보기에, 그 삶은 늘 화음 안에서 그것이 해야 할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건 아마, 형과 동생에게 비친 사진의 삶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 p.41~42

전작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에서는 여자들의 삶을 조명했다면 이번엔 구체적으로 브래드쇼의 가족들을 실험대에 올려 놓았다. 성역할을 바꿔 생활 하는 것. 아내의 삶을 사는 남자, 남편의 삶을 사는 여자. 살림과 아이를 맡아보는 토머스와 남자들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토니의 생활은 처음에는 순조롭게 풀려간다. 차츰 톱니바퀴는 서서히 움직임을 보이더니 점차 어그러진다. 레이철 커스크는 토머스와 토니의 가족 뿐 아니라 토머스의 형 하워드와 클로디어 부부의 삶, 동생 레오와 수지 부부의 이야기 그리고 그 밖의 집안 구성원들에 대해 심층적이면서도 다각도로 그들의 삶을 파헤친다. 작가는 평범했던 두 사람에게만 포커스를 두지 않고 부와 명예,나이에 관계없이 가족의 구성원의 위치와 고민을 함께 다루고 있다.

토머스와 토니는 자신의 화음 속에서 변주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것은 하나의 일탈에 지나지 않았다. 자리를 바꾸면 우린 행복해질까?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그들이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는 쓸쓸한 결론만을 얻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 쉬워 보일지라도, 그 일을 내가 하면 결코 녹녹치 않음을 온몸으로 느꼈던 두 사람. 쓸쓸한 결론을 남기며 역할 바꾸기에는 실패 했지만 살아가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다만, 그들이 도출한 결론이 작품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존재하기에 분명 역할을 바꿔 아내와 남편의 삶을 선택한 부부 중에서도 잘 해내고 있는 부부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문학 작품에서 인물을 통해 고민하고, 위태로운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렸지만 상황적인 한계 또한 이 작품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레이철 커스크의 작품은 일정한 시선과 온기를 품지 않는 단호함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며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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