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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그녀의 소설은 하나의 뫼비우스 띠 같다. 아니, 마그리트 그림을 연상시키는 고리들이 보이는 것처럼 독립된 퍼즐 조각 같으면서도 조각을 하나둘씩 연결하면 더 큰 그림들이 완성된다. 열일곱살,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된 소년 소녀와 열일곱살에 가장 어린 부모를 둔 아름이야기다. 두근두근, 엄마의 뱃속에서 부터 들려오는 하나의 신호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생존확인' 과 동시에 살아있다는 증거의 목소리. 엄마의 배가 둥근 우주로 온 몸을 감싸 나를 보호한 것처럼 세상 밖으로 나와 한걸음씩 걸을 때마다 두근두근, 가슴을 쿵쿵 때리며 불완전한 존재를 온전한 하나의 존재로 키워 나가는 원동력이 되는 소리들.
허락을 받은 소녀들이 하나둘 어머니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러곤 저희들끼리 무슨 내밀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끈끈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어머니의 둥근 배 위로 총 다섯 개의 손이 올려졌다. 모두 희고 고운 게 불가사리처럼 앙증맞은 손이었다. 다섯 개의 손바닥은 일제히 숨죽인 채 내 존재를 느꼈다. 나 역시 내 머리 위에 얹어진 다섯 소녀의 온기를 느끼며 꼼짝 않고 있었다. 아주 짧은 고요가 그들과 나 사이를 지나갔다. 어머니의 배는 둥근 우주가 되어 내 온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 아득한 천구(天球) 위로 각각의 점과 선으로 이어진 별자리 다섯 개가 띄엄띄엄 펼쳐졌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살아 있는 성좌들이었다. -p.40
엄마의 뱃속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는 미온수처럼 따뜻하고, 아늑하다. 철없는 열일곱살의 소년 소녀가 갑작스레 아이를 갖고, 또래의 친구들보다 일찍 어른의 길로 들어서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어린 부모와 이제 열일곱살이 된 소년은 나이와 관계없이 가장 늙은 모습의 청춘을 마주 대하는 아름이의 모습이 대칭처럼 늘어져 있다. 사람을 꽃으로 비유할 때 가장 싱싱하고, 청초한 모습의 열일곱의 나이를 대수, 미라, 아름의 모습은 인생의 테두리 속에서 탄생하고, 소멸하는 것처럼 반짝 거린다.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한 생명을 책임지는 부모의 모습을 그리는 것 또한 작가는 잊지 않는다. 극과 극의 상황을 잘 대치시키면서도 어린부모의 비애와 나이든 모습으로 어린 부모를 바라보는 아이의 슬픔은 가슴을 짓누르듯 아릿하게 다가온다.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비극과 희극사이에서 유머와 비애가 적절하게 섞여져 나와 나도 모르게 바람소리를 내며 웃어 버렸다. 아름이의 가족과 대칭되는 장씨 할아버지 이야기. 자식이 이미 나이가 많은 어른이지만 큰 장씨 할아버지에게는 늘, 아이같은 모습이 베어져 나온다. 아름이의 가족과 비교가 되면서도 또다른 부모와 자식간의 이야기다.
김애란 작가의 첫 장편은 반짝거리는 낱말 카드와 문장들이 한꺼번에 회오리친다. 소설을 볼 때 문장 보다 이야기의 축을 생각하며 책을 읽곤 했는데 그녀의 이야기는 문장 하나하나가 다 보석같다. 얼마나 포스트잇을 많이 붙였는지 페이지가 쉴 곳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다. 운명적인 인생을 이야기를 하면서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해 환한 스포트라이트와 어둡고 습한 그림자에 대해 말한다. 아름다운 낱말을 엮어 문장을 만들고, 문장으로 하나의 인생을 엮어나가는 그녀의 글솜씨는 섬세하고 아름답다. 문장이 아름다운 것에 반해 호흡이 길게 느껴졌지만 통속적이지 않는 결말과 가슴터지듯 느껴지는 두근거림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