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난 내 존재의 가치에 관해 꽤 자주 고민했었다. 당장의쓸모없음도 문제였지만, 앞으로의 삶도 딱히 쓸모 있을 거 같지 않았다. 감캄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나 자신에게 증명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영영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그러자니 역시, 글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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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쉐끼 이거, 글 쓰는 재주라도 있으니까 사람 구실 하면서 살지, 그거 없었으면 영락없는 동네 양아치인데. 푸하하하. 아무튼대단해! 네가 기자라니!"
대책 없이 살 것 같던 놈이 기자랍시고 아등바등 사는 게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웃으며 호응했지만 속으로뜨끔했던 기억이 난다.
정확한 분석이었다. 동네 양아치, 후하게 쳐줘야 예술가 흉내나내는 한량이었을 게 분명했다.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친구의 말을 들은 뒤로, 나는 나의 별거 아닌 재주를 더 소중하게 여겼다. 곱씹을수록 그러했다.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으로 증명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글을 쓰는 거였다. 그런 심정으로 부단히 썼던 것 같다. 노가다 판에 오기 전까지 말이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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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고 싸야만 하는 개개인의 일상에 울타리를 둘러주는 것,
서로가 서로의 손을 맞잡을 수 있도록 줄 세워주는 것, 그리하여 하나의 덩어리로 적을 부수어내는 것, 그게 전쟁이겠구나 싶었다.
그날 나는 휴게소 주차장에 주저앉아 도시락을 까먹으며, 이쑤시개로 이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를 쑤셔내며, 교과서에서 배웠던 전쟁 속 군사들 일상을 생각했다. 그들의 일상과 그날 하루 내가 겪은 일상의 차이에 관해 생각했다. 그 차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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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의 정서(혹은 온도)가 함께 담겨 있다고 믿는다. 그 예로 내가 자주 드는 단어가 ‘오뎅‘ 이다. 나는 여전히 ‘어묵탕‘ 보단 오뎅탕‘이 맛있게 느껴진다. ‘닭볶음탕‘ 보단 ‘닭도리탕‘을 떠올릴 때 침이 고인다. 심지어 난 쓰레빠‘와 ‘슬리퍼‘, ‘난닝구‘와 ‘러닝셔츠‘는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몇이나 동의해줄지 모르겠으나, 예의 낱말들에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차이가 나는 정서의 차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일본어 투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게 옳은지 모르겠다는 거다.
초등학교 때 학교 앞 분식점에 1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꼭 쥐고 가서 사 먹던 오뎅, 주인아줌마 눈치 봐가며 몇 번이고 떠먹던 짭조름한 그 국물…. 그 시절 추억까지 사라지는 것 같아, 난 좀 속상하다.
함바집 얘기한다더니 또 딴소리다. 어쨌거나 난 ‘현장 식당 보단 함바집‘이 더 좋다. 현장 식당이란 말은 어쩐지 사무적이고 행정적이다. 먼지가 풀썩 풀썩하고 진하게 밴 땀 냄새 때문에 코끝이 시큼해지는 느낌이 현장 식당에서는 안 느껴진다.
함바집은 그런 곳이다. 풀썩풀썩하고, 시끌벅적하고, 시큼시큼한 곳. 말하자면, 그 공간에 있는 누구에게든 ‘야생‘ 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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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다. 대장 녀석의 불끈 솟은 엄지손가락을 쫓아 발을 동동거리는 우리 모습이 말이다. 특별하게 영악해서도 특별히 정치적이어서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가장으로서의 발버둥인 거다. 엄지손가락 잡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래야만 먹고살 수 있으니까.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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