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사랑과 관련된 에세이 혹은 소설들은 대개, 사람을 설레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심지어 이별후 겪는 에피소드들까지. 헤어진 다음에 떠올리는 추억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예쁘게 윤색되는지. 내가 겪었던 사랑-이별의 추억도. 대개는 좋은 기억들로 덧칠되어 있다. '사랑'의 과정속에 겪었던 수많은 갈등과 굴곡. 이별후 그 기억을 떨쳐내기까지 지내야 했던 숱한 잠 못이루던 밤들의 기억ㅡ 소위,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마음 밑바닥에 꾹꾹 눌러 밀봉된지 오래.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사랑, 에 관한 기억 보다는. '그의 부재'를 견디는 기록. 쪽이 더 적절하다. A를 만나는 기간동안 아니 에르노에게 시간은 'A의 있음과 없음'의 오직 두 종류였으니.

책의 처음과 끝은 이렇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렸을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잇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번도 없고 앞으로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고 있는 아니 에르노는 데뷔이후로 줄곧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써왔다. 물론 다른 소설가들도 스스로를 모델로 한 작품들을 많이 쓰지만, 아니 에르노의 소설은 자서전과 자전적소설,로 분류하기엔 '뭔가 다른'무엇이 있다. 스스로를 객관화 시키기. 감정을 증폭/축소시키거나 미화하지 않고 '감정'그대로 서술하기. 그것도 단소정한하게.  

   
 

 내가 단어들에 부여하는 이미지는, 이미 말했듯 돌과 칼이예요 - 칼 같은 글쓰기 p.116

예를 들어 <탐닉>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나의 내면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 그것이 그 시절 내 모습이었고 어쩌면 많은 측면에서 여전히 내 모습이기도 한 여인의 이야기임을 아는 것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글쓰기가 일종의 육화처럼, 다시 말해 체험에 속하며 '나'에 속하는 어떤 것이 전적으로 나라는 개인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난 글을 쓰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이미, 텍스트 속에 있는 것이 나의 질투심이 아니라 그냥 질투심일 뿐이라는 사실을 느꼈고 또 의식하고 있었어요.즉 그 감정이 추상적이면서도 느껴질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그리고 아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것임을 느꼈던 거죠. 하지만 그러한 질적 변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글쓰기에 의해 생성되죠. 내 거울을 들여다봄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바깥에 있는 어떤 진실을 탐구하는 글쓰기 방식을 통해서 말이죠. 그리고 그 진실은 나 개인보다, 나 개인의 근심보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근심보다 더 중요합니다. - 칼 같은 글쓰기 p.149~150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나눈 불륜의 기록. 르노도 상을 수상했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도 하고 있는 중년 여작가의 이미지와는 별로 어울릴것 같지 않은 열정적 사랑, 질투, 집착, 그리고 A와 나누는 '강도높은' 섹스들. (통상적인 소설이라면 체위에 대한 끈적한 설명이 덧붙겠지만 이 책에는 '그와 ~한 체위로 섹스를 했다'정도에서 끝난다.) A를 기다리는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절한 기다림과 끝없는 불안의 단어들.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내게 준 어떤 것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 p.73  
   

 이 책을 씌여질 당시의 아니 에르노의 일기는, <탐닉>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탐닉> 을 읽다보면. <단순한 열정>이 그저 자기 마음 가는대로 끄적여 놓은 글을 출판한 것이 아니라 짧고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장들로 씌여졌음을 알 수 있다. <탐닉>은 일기이므로ㅡ 집착과 불안의 강도와 빈도가 훨씬 잦고, 훨씬 더 밑바닥까지 내려간다는 느낌이 있지만 <단순한 열정>은 총 74페이지밖에 안되는 짧은 글 (더구나, 곳곳에 여백도 많다. 여백이 말하는. 침묵의 효과!) 임에도 강한 임팩트를 준다. <단순한 열정>을 읽고 아니 에르노에게 편지를 쓰고, 만나서 5년간 그녀의 애인이었던 필립 빌랭이라는 청년(무려 33세 연하!)은 거의 비슷한 글쓰기 방식으로 그간의 일을 <포옹>이라는 소설로 발표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포옹, 은 '솔직하기'만 하고 <단순한 열정>의 단소정한함은 갖추지 못했다. 필립 빌랭은 그 연애기간동안 <단순한 열정>의 주인공 A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혀있었고, (5년의 연애를 끝내게 된 계기도 아니 에르노의 지갑에서 우연히 떨어진 A의 사진이었다.) <포옹>은 그 불같은 질투와 열등감의 흔적, 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지만. 질투심에 대한 묘사는 아니 에르노의 <집착>이 훨씬 뛰어나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수 있지?"에 속하던 행위들이, 어느새 "아 누구나 그럴수 있구나!"로 바뀌는. 남의 일인줄만 알던 행동과 감정들이 어느새 내 것이 되는 과정에 대한 기록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와 <탐닉>. 이렇게 단 두권의 내면일기 만을 출판했어요. 이 일기들은 모두 십 년 전의 씌어졌고, 실제로 그 기간에 살았던 삶은 이미 각각 <어떤 여자>와 <단순한 열정>이라는 자전적 이야기의 대상이 되엇지요. 이 두가지 상황 - 십년이라는 유예기간과 그 기간에 상응하는 책의 존재 - 가운데, 후자가 일기를 출판하도록 부추긴 좀 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유예기간도 중요하겠죠. 그 세월이 내가 나의 일기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볼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이것은 '나'를 다른 존재로, 다른 한 여성으로 생각하고 그 시기의 맥락에서 벗어나 분출되는 감정을 초월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글쓰기가 생산해내는 진실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일기를 출판하는 것은 먼저 나온 텍스트를 '작용하게'하고, 그것에 어떤 다른 조명을 비추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게 열어줍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열정>과 <탐닉>의 경우처럼, 열정의 두 가지 '버전'앞에서 독자를 뒤흔들어놓을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말이죠. 긴 버전은 그날그날 현재의 모호함 속에서 씌어졌고, 다른 버전은 좀더 간략하고 정화된 것으로서, 열정의 리얼리티에 대한 묘사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일기는 그에 상응하는 다른 텍스트보다 더욱 격렬하고 노골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를 감출 권리가 내겐 없다고 느껴요. 루소가 말했던 것처럼 "모든 조각을 제공해야"합니다. 작품의 폐쇄성이 지닌 신화적 성격 또한 깨뜨려야 하고요. - 칼 같은 글쓰기 p.50~51  
   

  

보통 책 뒤 표지에 인용된 언론의 평가들은 과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 뒤표지의 인용문들은 마음에 든다. 

 

   
 

단정하고, 간결하고, 차가운 문장들. 화해도, 양보도, 심리분석도 없다. 정확한 단어들만이 있을 뿐이다. 정확함에 대한 열정, 완전무결한 단호함 속에서, 아니 에르노는 그 어느때보다 훨씬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 - 르 몽드 

아니 에르노의 어조는 보기 드물게 간결하고 꾸밈이 없다. 그녀는 보여주되 설명하지 않는다. - 르 피가로

 
   

 

 심리학에서는, 스스로의 감정, 마음상태를 글로 써보는 것이 치유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들을 읽으며, 어쩌면 나는 내 일기장에조차도 충분히 솔직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는 그녀에게 일종의 해방구였고, 그렇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솔직해 졌을'것이다. 그럴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써 낼 수 있었던 것이고. <단순한 열정>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인데, "노출증 환자"취급이나 "소설이 아니라 외설적인 포르노 수준"이라고 폄훼하는 것부터, 마치 자기 얘기를 보는것 같다며 치유받은 열성팬들까지. 이 짧은 텍스트를 읽고 감동받고 무언가 '치유되는'느낌을 받은 독자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텍스트의 존재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이 글을 쓸때 아니 에르노는 48~50세. A의 나이는 36~38세. 한국에서 40대 후반의 이혼 여성이라면 이런 불같은 사랑을 나눌수 있을까? 물론 작가고 교수라는 아니 에르노의 사회적 지위도 있겠지만 '프랑스'라는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같다. 단순한 열정 이후 사랑을 나눴던 필립 빌랭과는 무려 33살 차이였는데! (한국에서라면 밝혀지는 순간 사회적 매장이 아닐까 싶은 조합이지 않나!) 간간이 그녀에게 수작 걸어보려는 다른 남자들 이야기들도 나오고. 아니 에르노라는 이 작가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열정적이다. 죽을때까지 평생 사랑할 수 있는 건 축복중의 축복인데 말이지. 이 여자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어쩌면 필립 빌랭과 헤어진 후에도 또 다른 사랑에 빠졌을수도.

이 책 덕에 <탐닉>, <집착>, <칼같은 글쓰기>를 내리 읽었다. 보너스로 필립 빌랭의 <포옹>까지. 간만에 정신줄 놓고 마구 빠져드는 독서였고, 읽고나서의 느낌도 좋았다. 소설가 김탁환은 <천년습작>에서 "아니 에르노의 책을 곁에 꽂아두고 간간이 자세를 가다듬으라"고 했다. 대부분의 좋은 책들이 그렇듯. 이 책들 역시 읽을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얻을수 있을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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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9-01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포옹] 보다는 [단순한 열정] 쪽을 좋아했어요.
그리고 [단순한 열정] 보다는 Jade님의 리뷰가 더 좋네요.
저는 이 책 에서의 아니 에르노의 솔직함이 지나쳐서 거부반응이 좀 생기더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친구는 그 지나친 솔직함이 좋다고 했지만 말이지요.

Jade 2010-09-01 23:12   좋아요 0 | URL
히힛 역시 다락방님이 최고! ㅎㅎ

솔직함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여자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ㅎ

Alicia 2010-09-01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라는 배경,하니 프랑스는 행동의 자유가 가능하지만 생각은 남과 같이 해야하고, 독일은 행동은 남들처럼 해야 하지만 생각의 자유는 무한하다고 했던 모옴 아저씨의 말이 생각나네요.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몸 아저씨의 장편도 읽어보세요. 제이드님 마음에도 꼭 드실거에요.^^


Jade 2010-09-01 23:13   좋아요 0 | URL
모옴 아저씨가 서머싯 몸을 가리키는 거겠지요?! 알리샤님 추천이라니 봐야 겠군요 ㅎㅎ

yamoo 2010-09-0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갖고 있는뎅...거의 다 읽고 조금 남은 상태에서 한 켠으로 밀어놨는데, 어디로 사자렸는지 모르겠다는...리뷰보고 막 찾고 있는데..오리무중 이네요..ㅎㅎ

리뷰를 보고 얼른 다 보려고 했는뎅..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