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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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문보영 시인님. 이번에 나온 에세이집을 받았다. 좀 이상하지만 난 그녀의 시보다 에세이나 산문이 더 좋다.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은 문보영 시인이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IWP)에 참가하면서 겪고 생각한 것들을 일기처럼 기록한 책이다. 30여 개국에서 온 다양한 작가들과 3개월간 한 호텔에 묵으며 리딩, 강연, 토론 등 여러 문학 행사에 참여하면서 시인은 또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프로그램에서 만난 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모국어로 글을 쓰는 것보다 다른 나라의 언어로 글을 쓰고 있는 것에 놀란다. 마치 줌파 라히리처럼, 이런 작가들을 마주하면서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도망치는 듯한 자유를 엿보게 되고 평생을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어로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에 큰 변화를 준다. 어쩌면 이 책은 그 작은 변화의 기록이자 조금씩 깨어지는 내면의 자유를 보따리에서 끝없이 나오는 작은 이야기들 마냥 풀어놓은 책이다.

여기에 문보영 시인만이 가진 엉뚱함과 마치 장난기 많은 아이가 보여주는 사랑스러움이 곳곳에 묻어있어 피식거리면서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거기에 완전한 사각지대에서 바라보는 듯한 시선들이 주는 깨달음도 곳곳에 숨겨져 있다.

무엇보다 사람을 이해하려고 억지로 애쓴다기 보다 그들이 쓰는 언어로 글로 그 의미를 헤아리려고 시도하는 시인의 접근방식이 따뜻해서 좋다. 빠져나간 자로서 그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유와 글들을 잘 지키고 가꾸면서 지속적으로 써나가기를 언제나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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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가 기록한 참여정부의 결정적 순간들
이정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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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시기에 자꾸 보고 싶어지는 노무현 대통령님.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은 2003년 2월에 출범하여 5년간 노무현 대통령이 이끈 참여정부에 대한 기록이다. 이때 초대 정책실장(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신설된 자리)으로 지냈던 이정우 교수가 당시에 있었던 일을 가감없이 기록하여 역사에 남겨야 할 책무를 느껴 쓴 꼼꼼한 회고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회고록의 내용은 2002년 8월 노무현 대통령과의 첫만남부터 시작해 이후 1000일 동안 벌어진 일들을 날짜 순으로 기록했다. 북핵위기, 화물 연대 파업, 은행과 철도 파업, 카드 대란, 전교조 투쟁, 스크린 쿼터, 부동산 폭등까지 5년간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었고 매일 화면과 지면에서 시끄럽고 뜨겁게 떠들어댔다.

이때의 대통령 지지도도 낮았는데, 신기하게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 정부에 대한 평가는 세월이 흐를수록 높게 평가 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마치 일기장 같은 꼼꼼하고 세밀한 기록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매 사건과 정책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숨은 이야기나 에피소드, 측근에서 바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새로운 모습들이 보여지면서 자연스럽게도 그 의문이 풀린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상적 정책은 장관이나 총리에게 맡기고 그 대신 기존의 정부 부처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장기적 난제를 푸는 것이 대통령의 할일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균형발전 등의 장기 과제를 해결하려면 기존 정부 부처의 틀을 넘어서는 국정 과제 위원회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94p

노무현 대통령은 위원회 출범에 고무된 표정으로 연설했다. "국가 균형발전은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꼭 한번 해 보자. 여러 위원회 안에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있어 성공할 수 있다.

이 다양한 기록들이 단지 마지막에 보여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속에 담긴 참여정부의 신념과 목표의식을 나타낸다. 그 뿌리는 오직 국민과 국익을 생각하는 마음에 있었다.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찾는 참 리더인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에게 그때 보내지 못했던 격려와 지지의 박수를 간절히 보내고 싶어진다.

나라가 점점 손쓸 수 없게 망가져 가고 있는 현재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이어받아야 할 정신적 유산을 온통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남김 없이 자양분으로 삼아 이 어둡고 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가 생존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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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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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진 작가의 여섯편의 단편 작품이 담겨 있는 소설집. 계절마다 고독과 외로움이 묻어있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 끝에는 한계절이 끝나고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작은 희망과 따뜻함이 베여있다.

모두가 비슷하게 사는 세상 같지만 저마다 다른 이야기 속에서 상처받고, 위로 받고, 버텨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혼자여도 괜찮으니 꽃 핀 그 순간만큼은 찬란한 모습처럼 나도 순간을 진심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표제작 <가벼운 점심>.

10년만에 가출한 아버지가 돌아왔다. 조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조부의 기대도 저버리고, 부인과 자식들도 내팽게친 무책임한 아버지는 파란눈을 한 영국계 미국인 여자와 완전 다른 생을 살고 있었다.

왜 떠났어요?

26p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질책보다 이해하려는 아들의 태도가 일반적이지 않다. 그러나 어두운 새벽 16층 아파트에서 서 있던 위태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본 후로 어떤 죄든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이해되면서 괜찮아 보이는 아들의 생각은 내게도 조금 납득이 되는 부분이었다.

하나의 사건이 각각 다른 깊이와 형태의 상처를 만든다. 대상이 가족이라면 평생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된다. 그 중 어떤 상처는 누구에게도 따지거나 죄를 물을 수 없는 딱한 처지에도 이른다.

장례가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아버지를 배웅하러 가는 그 길에서, 공항 안의 패스트 푸드 점에서 부자가 3시간이 넘도록 마주 앉아 밀린 이야기를 하는 그 순간들에서, 구원받기 위해 떠나버린 한 남자의 마음과 그 자리에 남은 사람들의 생이 겹쳐진다. 과연 다시 돌아온 지금의 봄처럼 그들에게 돌아온 아버지는 끝인걸까, 시작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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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더스 오브 힘
콜린 후버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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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러티>보다 먼저 읽게 됐다. <리마인더스 오브 힘> 은 로맨스 소설이지만, 내게는 삶의 치유와 용서를 중심으로 한 힐링 소설이었다.

케나는 사랑하는 남자친구 스코티와 함께 탄 차로 이동 중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순간 그녀는 너무 당황스럽고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혼자 살아서 현장을 빠져나온다. 불행히도 스코티는 살아 있었고 가까스로 차에서 기어나와 구조요청까지 했다. 하지만 6시간을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했다.

과실치사죄로 케나는 5년을 감옥에서 보냈고, 감옥에서 출산한 그녀와 스코티의 딸 디엠은 제대로 품에 안지도 못한채 빼앗겼다. 스코티의 부모님들 곁에서 자라고 있는 딸 디엠을 만나고 싶어 케나는 출소후 모든 비극의 시작점인 마을로 돌아간다.

출소 직후라 돈도 없었고, 일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스코티 가족에게도 딸 디엠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몸과 마음에 난 검은 구멍이 점점 커지고 있을때 마을 안의 바(bar)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렛저라는 남자를 만난다.

렛저는 죽은 남자친구의 절친이었지만, 케나는 점점 그에게 기대게 되고 마음을 주게 된다. 렛저는 처음에 친구를 죽도록 방치한 여자가 케나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알게 된 후에도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케나와 스코티 부모의 화해를 옆에서 돕는다. 죄를 지은 케나는 이기적으로 자기만 생각하고, 배려심도 없고, 가치없는 여자여야 했지만 그녀와 만나면서 그것은 렛저 자신이 만들어낸 선입견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소설은 케나와 렛저가 번갈아 이야기하는 형태지만, 뭔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양쪽입장을 다 이해하게 만든다. 왜 그럴수밖에 없었는지, 너의 상처는 어떤 형태인지, 비극적인 사고로 우리 모두가 얼마나 산산히 부서졌는지,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충분한 과정을 쏟는다. 용서와 화해를 위해 걸어가는 그 과정에서 조금씩 치유가 생기고 위로를 받으며 힐링이 되는 소설이다.

후회는 멈춤 속에 우리를 가두는 거야. 감옥처럼 말이야. 네가 여기서 나가면 재생 버튼을 누르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걸 잊지마.

193p _케나

미안하고 고맙고, 그리고 미안해.

이게 나의 하루야. 매일을 그렇게 반복해.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329p _케나

이제는 스스로를 용서해 주어도 괜찮을 때가 온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 용서하려고 한다.

널 용서해, 케나.

398p _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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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 노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112개 키워드
사토 신이치 지음, 우윤식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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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100세 이상의 고령자 인구는 2020년에 이미 8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70대 인구가 20대 인구를 앞질렀고, 인류는 앞으로 경험한적 없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됐다.

보통 미래는 아이와 젊은이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재로 우리들의 미래에는 노인밖에 없게 됐다. 이렇게 되면 모든 문제 의식이 달라지고, 예측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전체적인 사회 구조 시스템도 고령자의 입장에서 지속적인 연구를 토대로 한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 사토 신이치는 45년이나 고령자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왔다. 하면 할수록 새로운 의문과 과제에 부딪혔고 현재는 치매를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고 한다.

과거엔 60세만 넘어도 노인이라고 했지만, 현재는 75세이상은 되어야 노인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됐다. 10살 이상 젊어졌다는 것인데, 식생활이나 위생상태가 좋고 감염병이 감소하고, 의료가 발달 된 이유도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취향과 스타일이 훨씬 풍요로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이만 먹으면 노인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시야를 가지고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 앞으로 노인들을 돌보거나 관계 맺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될 것이다.

MZ세대를 이해하려고 했듯이 앞으로 변해가는 사회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고령자들의 심리도 알려고 노력해야한다. 고령자라고 그저 쇠약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몇 살이 되어도 성장할 수 있고, 오히려 그들의 풍부한 경험에 근거하여 우리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말과 행동으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봐야한다.

<고령자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노인들의 말과 행동, 노화와 질병에 어떤 식으로 취약해지는지 등을 뇌과학과 심리학으로 풀면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키워드를 만들어 설명하고 있다.

나는 한집에서 살지는 않지만 바로 옆집에 친정 부모님이 살고 계시다. 공간은 확실히 분리되어 있지만, 처음 2년 정도는 아주 작은 문제에도 서로 오해가 쌓였다. 서로의 입장이 달라서라기보다 말투나 사소한 행동에서 문제가 발생됐다. 이 책을 읽으니 그때의 부모님의 말들이 일부분 이해가 되었다.

이 집에 들어올 때 우리 부모님도 처음 겪는 고령자의 이런저런 심리적인 변화로 힘드셨을 텐데 딸과 사위에 맞추며 살려니 나보다 더 힘드셨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그래도 나름으로 부모님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지함이 부끄러워졌다. 작게나마 이 책을 통해 부모님을 이해하게 됐고, 앞으로 언젠간 고령자가 될 나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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