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코브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디 아더스 The Others 1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에 왜곡된 선입견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환타지물이라 하면 상상력의 범주를 한참이나 일탈하여 논리적 연관이 부자연스럽기 일쑤고 서사 전개 과정도 인명이나 유사 생명체에 대한 살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등 비정한 면을 보이기 십상이어서 때론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환타지니까 그럴 수밖에, 하며 넘겨 버리려 해도 이건 좀 심한데 하고 갸웃거린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러기에 환타지물을 읽고선 썩 유쾌했던 기억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내 이런 선입견을 보란 듯이 깨뜨린 작품을 만나고 말았으니 크리스토퍼 무어의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이 바로 그것이다. 한 마디로 착하디착한 환타지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닿을 수 있는, 그래서 공감 가능한 상상력

권태로운 일상에 무기력해진 코브 마을 사람들의 우울증에서 비롯된 갖가지 해프닝이 얽히고설켜드는 서사구조는 특이한 것이긴 하지만 현실성이 전혀 없는 허무맹랑한 얘기만은 아니다. 노령화 사회, 성장이 정체된 지역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울한 감정을 갖고 있는 동물을 먹이로 삼는 방향으로 진화한 스티브라는 파충류가 등장하는 건 좀 비약이다 싶었는데 환타지물의 장르적 특성 상 그 정도 설정은 눈감아줄 만하다 하겠다. 이후에 꿰어지는 스토리는 개연성이 다분히 있는 픽션이어서 별 심리적 저항 없이 술술 잘 읽혔다. 그리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공감할만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태적 재앙의 발생 가능성, 정서적 소통이 단절된 사회에서의 소외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을 잘 포착하여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그간 환타지물에서 늘 보아왔던 뜬금없이 전개되는 밑도 끝도 없는 얘기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이물감을 느끼며 멀찍이서 낯설어하기만 하던 내게 이런 작품도 있구나 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겠다. 독자를 소외시키지 않고 독자의 상상력의 넓이와 깊이를 감안하고 있기에 현실과, 또 지적 역량과 겉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착한 환타지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재기발랄, 깜찍한 문장들

환타지는 대개 기괴한 이야기를 스피디하게 끌고 가는 통에 문장의 유려함, 문체의 독특함 따위는 음미할 겨를이 없다 하겠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무어의 글은 그 자체로도 시종일관 유쾌하게 다가온다. 

그들은 바람막이가 되어줄 움푹 팬 바위를 발견했다. 캣피시는 구두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고 젖은 양말을 벗어 바위에 널었다. 

“갑자기 밀려오다니, 비겁한 파도 같으니.” (68쪽)

들이친 파도에 눈 흘기며 투덜대는 모양이라니. 이처럼 통통 튀는 문장이 글의 생기를 불어넣어 지루해질 틈이 없게 한다. 또 개의 입장에서 주인을 평하는 대목도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스키너는 생각했다. 먹이 주는 남자가 날 질투하는구나. 하긴 몸에서 섬유 유연제랑 비누 냄새만 풍겨대니 암컷이 꼬일 리 없지. 집 밖에 나가 암컷 궁둥이 냄새라도 좀 맡고 다닌다면 저렇게 성격이 까칠해지진 않았을 텐데.(스키너에게 게이브는 언제나 ‘먹이 주는 남자’였다.) (75쪽)

마치 이상한 요정이 갑작스레 그의 인생에 끼어들어 그의 머리통을 고무 닭 장난감을 후려치고 정강이를 걷어찬 뒤 나머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러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189쪽)

경찰관 시오가 마을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대마초 흡연 중단에 따른 금단증상 때문에 떠오른 환상인지 실제 상황인지 헛갈려 하는 대목인데 심각한 장면인데도 쿡쿡 웃음이 났다 할까.

결국 사랑이 모두를 일으켰으니 

결말도 정말 모두에게 괜찮은 것이었다. 물론 스티브에게 먹힌 몇몇 이들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긴 해도 말이다. 우울증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던 마을 사람들의 내면에 깃들어있는 사랑의 감정이 결국 스티브 출현 해프닝을 계기로 표출되고 이로써 마을에 다시 평화가 깃들게 된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이면서도 결코 식상하지만은 않다. 인간의 심리를 파고들어 미묘한 감정의 결을 느낄 수 있게 하면서도 고대 바다괴물과의 한판 승부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활력을 되찾는 모습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어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맛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은 그렇고 그런 환타지물이 아니었다. 독자의 상상력의 한계를 고려해 충분히 있을 법한 얘기를 공감 가능한 톤으로 재미있는 문체에 담아 기발하게 풀어 나갔기 때문이다. 하니 참 착한 환타지물이라 주저없이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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