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발견 - 작고 나직한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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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없는 소리가 없어서 귀가 즐겁다. 귀가 즐거우니 눈도 즐겁고, 덩달아 입도 마음도 즐겁다. ‘여기’있는 소리가 ‘거기’라고 왜 없겠는가. 귀를 막고 싶은 일들이 많을수록 즐거운 소리를 찾아서 듣는, 또 다른 귀를 열어보자.(122)

 

참 유별납니다. 도무지 보이고 들리지 않는데 무얼 또 찾아서 들어보라는 겁니까. 그리고 즐거운 얘기라뇨? 실은 올 봄 들어 모래 씹은 듯 입안도 까끌까끌하고 마음도 스산한 게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답니다. 앞날을 생각하면 온통 잿빛 일색인데 즐거운 얘기 떠올릴 겨를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넋 놓고 세상 물결에 그냥 휩쓸려 다니는 마당에 참 한가한 소리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솔직히 반감이 일었답니다.

 

그런데 정말 내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시인은 보여주었습니다. ‘기별’과 ‘대밭’을 읽다가 아! 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어요. 나무가 낙엽 한 잎 떨구는 것에서도 내밀하고 변화무쌍한 상황과 장면과 과정을 포착하여 눈에 빤히 보이게 그려내었고 대밭에 깃들어 사는 뭇 생명들의 연쇄까지 쭉 꿰어서 읽어내었으니까요. 정말 발견이란 말을 써도 될 듯했습니다.

 

그래요. 또 시인은 내 얼굴에 겹친 주름 몇 가닥을 당겨주었습니다. 아이들 웃음과 따뜻한 집 밥과 다정한 이웃어른의 잔기침 같은 게 잔뜩 묻어 있는 얘기를 읽다가 입 꼬리가 슬몃 움직이는 게 느껴졌거든요. 최근엔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기분이었달까요. 시인은 배꼽 잡게 만드는 얘기와 맛깔스런 음식, 거기다 절창인 시까지 곁들여 삼락(三樂), 아니 그보다 더한 다락(多樂)의 기쁨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아차! 그래서 그만 너무 빨리 읽어버렸네요. 처음 지녔던 약간의 반감은 감쪽 같이 사라지고 어느새 빨려들고 말다니. 미안해요. 담긴 의미로 치면 하루 한 편씩 곱씹기도 벅찬데 재미에만 홀려 덜컥 다 읽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이를테면 우리를 이루고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한 대목 같은 건 종일토록 음미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돈데 말입니다.

 

혼자 잘나서 출세하고 이름을 얻어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다. 이걸 착각하거나 망각하면 오만해진다. 겉은 멀쩡한데 영혼이 죽은 사람이 된다. ‘너’가 없으면 ‘나’는 없다. ‘나’는 ‘너’로 인해서 지금 여기, 있는 것이다. 나는 너다.(385)

 

시인은 무얼 보고 이런 깨우침을 얻었을까요? 인간 세계의 이치를 생각해서 떠올린 게 아닙니다. 나무를 바라보다 절로 알아낸 것입니다. 자아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복합적 망이 겹쳐 보였던 것입니다.

 

나무가 나무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을 다 갖추었다고 치자. 그런데 만약에, 어느 특정한 나무에 세 들어 사는 벌레와 이끼가 그 나무에 없다면 그 나무를 온전하게 나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세상 모든 나뭇잎을 흔들고 가는 바람이 기이하게 어느 한 나무에만 닿지 않는다면 그것을 우리가 나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무는 자기 혼자서는 어느 한순간도 나무가 될 수 없다. 자기 힘으로는 어떤 공간에서도 나무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자명해진다. 나무에 날아드는 새도 나무라는 것을. 나무 그늘에서 부채를 부치며 쉬는 할머니도 나무라는 것을. 어느 나무의 배경이 되고 있는 무심하기 그지없는 풍경도 사실은 다 나무라는 것을.(384-385)

 

[안도현의 발견]엔 유독 나무에 빗대 세상 이치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많습니다. 읽으면서 자연스레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세상에 순치되지 못하고 아직도 가시를 곧추세우고 있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던 ‘음나무’에선 아픈 생채기가 덧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자라나 줄기가 굵어지고 잎사귀가 허공 높은 곳까지 이르게 되어 생의 정착 단계가 되면 서슬 퍼렀던 가시가 퇴화되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가 된다면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면 사람도 가시를 세우는 것일까? 나이를 먹어도 가시를 거둬들일 줄 모르는 사람은 그럼 뭐지?"(381) 라고 말할 땐 뒷통수가 저릿해졌답니다.

 

시인의 발견을 경탄의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감정이입의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답니다. 딱 내 얘기다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거든요. ‘도끼’에선 문약한 자신을 탓하는 시인의 모습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러나 내 도끼는 나무의 중심을 맞히지 못했다. 두 번 세 번 거듭해도 마찬가지였다. 장작을 패는 일은 번번이 빗나가는 사랑하는 일과 같아서, 정답을 피해가는 답안지와 같아서......독기 없는 도끼는 나처럼 비틀거렸다. 내 가는 손복으로, 이 흰 손으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27)

 

시인의 얘기엔 때론 쓰달픈 세상사가 어려 있기도 합니다. 문정 시인에 대해 착하게 살지 말라고 권하는 대목에선 가슴 속에 싸한 바람이 일었답니다. 시인의 속앓이가 오롯이 전달되는 것 같았거든요.

 

“친구여, 다음 생에는 부디 착한 남편, 착한 선생, 착한 시인으로 오지 마시게. 큰소리 뻥뻥 치고 거들먹거리고 다리라도 건들건들 흔드는 불량한 건달로 오시게.”(290)

 

이렇게 웃픈 이야기, 곱씹을 얘기가 널려 있어 마치 향연에 취한 기분입니다. 남도 한정식을 거하게 한 상 받은 느낌이랄까요. 반찬 한 가지 한 가지가 다 때깔 좋고 깊은 향도 배어 있으며 베어 물고 한참을 씹어도 뒤끝이 깔끔한 것 말입니다. 이런 얘기들을 어디서 다 끌어올렸는지.

 

그래서 시인의 발견, 맞아요! 발견이라 해야 하겠네요. 누가 이런 것을 알아보고 찾아내고 살려내어 우리 앞에 떡 펼쳐보일 수 있단 말입니까. 시인의 각별한 눈, 따스한 눈, 그러면서 연민의 물기 촉촉하게 어려있는 시선이 있었기에 길어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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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모두 달에 있다 - 권대웅 시인의 달 여행
권대웅 지음 / 예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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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모든 감각 세포는 아름다움을 향해 열려있다. 때론 눈물겨워 쩔쩔매다가 더러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자지러지기도 한다. 중국 계림의 이강을 따라 배를 타고 양숴로 가는 도중 주변에 펼쳐지는 선경에 취해선 비를 흠뻑 맞으며 끊었던 담배까지 다시 꺼내 물 정도였다. 그런 시인을 빼닮은 글과 그림은 하나 같이 아름다움의 어떤 지점에 닿아 있다. 웅숭깊은 글에 곁들인 아련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 또한 무장 해제되어 다만 고분고분 그의 마음결을 따라갈 밖에. 시인의 시는 그림과 어우러져야 오롯이 아름답게 피어난다. 왼쪽 장에 인쇄된 글귀로 시가 소개되고 맞은편엔 달 그림 밑에 손글씨로 씌어진 시가 나오는 경우, 시만 읽어선 도무지 맛이 나지 않는다. 그림이 없어서일까? 아니, 그보단 매끄러운 인쇄체가 너무 빨리 읽혀서이다. 도무지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시화 속 글귀는 그림 밑에 꼬불꼬불 기어가고 있다. 그런데 지렁이체로 끼적거린 그 글에서 묘하게 온도가 느껴지고 정감이 꿈틀대는 듯하다. 알아먹기 힘든 글씨를 간신히 읽어내고 나면 아! 뭉클 탄식이 솟구친다. 달이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다.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밀려나온다.

 

시인이 눈여겨보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여리디 여리기만 하다. 그런데도 힘이 있다. 우리네 흐트러지고 상한 마음을 푸근히 감싸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대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자연이다. 그 속에서 시인은 그것들과 교감하며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치마를 펄렁이며 보랏빛 속살을 보여주고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들, 그 속살에서 풍겨오는 연하디 연한 향기 같은 것들. 그동안의 아집과 망집과 뒤틀린 두통 같은 것들을 어루만지고 치유해주는 부드러운 손길 같은 것들...(139)

 

그런데 시인은 자연을 인간과 동떨어진 별개의 존재로 보지 않는다. 인간의 비극과 상관없는 듯 초연하기만 한 자연계의 질서를 보고선 경악한다. 그럴 수는 없다고 말이다.

 

부서진 집들 사이 목련나무 한 그루에서 하얀 목련이 가득 피어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휴! 징그러워.”

인간은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져 있는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파란 하늘, 하얀 목련꽃들은 부조리다. 그래서 징글맞도록 아름다운 것이다. (196)

 

그래서 시인의 시선은 자연스레 가여운 인간으로 옮겨진다. 시인의 눈에 비친 나약하고 힘겨운 우리네 삶의 모습은 눈물겹게 아름다운 것이었으니.

 

골목길이 아름다운 것은 동네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밥 짓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가족이 둘러 모여 저녁 먹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만나면 인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나가기 때문이다.(161)

 

시인은 사람들이 의례적으로 건네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낀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걷다가 추위와 허기에 지친 상태에서 마침 무료급식소를 발견했는데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는 시인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는 이가 있었다. 남루한 행색의 노인이 “한 그릇 먹고 가!” 하며 시인을 불렀던 것이다. 그 말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게 또 있으랴.

 

밥이라는 말만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배고파봤던 사람에게 배가 고픈 사람에게 밥은 꽃보다 아름답다. 사연이 있는 밥을 먹어본 사람은, 밥을 먹으며 목이 메어 울어본 적 있는 사람은 밥의 위대함. 밥알 한 알 한 알의 숭고함을 안다. “밥 먹고 가~” 이 말이 주는 울림, 끌어안음, 쓰다듬음, 배려,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 어렸을 적 어떻게든 밥 챙겨 먹이려는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해준다면 그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다.(144)

 

시인은 얼핏 스치는 향기에서도 아름다움의 한 경지를 느낀다. 라벤더의 좋은 향은 두통을 멈추게 하고 불면증을 없애고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하는데 그런 향기가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던 존재의 까마득한 기억을 열어주는 열쇠 중 하나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시인은 또 아름다운 색깔이 우리를 위무하고 치유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동안 나의 상처는 온전히 보라가 되지 못했다. 내 안에 머금지도 소화시키지도 못하고, 아물지 않은 생채기로 수두룩하게 남은 그 상처를 도리어 남에게 뱉어내기만 했다. 눈이 돌아가고 입이 삐뚤어져서 툴툴거리기만 했다. 내 안에 와서 어떤 색깔로도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떠돌던 상처들...깊이 농익어 오히려 투명해진 연보라의 물결과 향기에 내 영혼과 상처들을 씻고 싶었다.(138)

 

시인이 벌여놓은 여러 가지 아름다운 이야기는 돌고돌아 결국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된다. 둥글고 환한 달, 그리운 것이 모두 들어있는 달로 향하고 있다. 거칠고 버겁기만 한 세상에 상처받고 자신의 모나고 뒤틀어지고 용렬한 모습에 또 질려버린 이들에게 갈망하고 열망하고 갈구하며 간절하게 바라보라고 권한다. 달에게서 힘을 얻으라고, 아름다움을 위안 삼아 어떻게든 버텨내라고 다독거린다. 시인도 어려운 시기에 그쪽을 향해 달리다가 달 그림으로 구원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달, 간절히 원하는 것, 그쪽으로 달려가며 달에게 빌었다. 그 좋은 파동이 왔다. 에너지가 왔다. 그리고 달을 그리게 되었다. 그림을 배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도.(294)

 

그래서 시인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아름다운 달을 놓치지 말라고 강권한다. 과거에 얽매어 있으면서 미래를 걱정하기만 하는 우리에게 아름다움에 눈뜨라고 말이다.

 

우리는 역방향으로 앉아 가는 기차 승객처럼 앞은 보지 못하고 뒤만 보고 산다. 그러면서도 매 순간 앞만 생각하기 때문에 광활하고 아름답고 여유롭게 뒤로 펼쳐지는 겨를을 두지 못하는 것이다.(223)

 

시인이 풀어내는 이야기와 아련한 그림을 듣고 볼수록 묘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시인이 바로 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아름다움에 겨워하며 우리까지 그 대열로 넌지시 이끌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집시이자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어린이였으며 춥고 고달픈 내게 손을 내미는 친구이기도 했으니. 무엇보다 지혜로운 깨우침을 전해주는 현자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시인이 그린 달의 모습과 겹쳐 보일 밖에. 하여 달 시인의 달 그림을 바라보며 한동안 세상 시름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시름을 덜어내고 환하고 둥근 곳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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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칠드런 - 2014 제8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6
장은선 지음 / 비룡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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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인위적인 관념이다. 시대라는 것도 인간의 편의에 의해 거칠게 재단된 시간의 덩어리일 뿐이다. 여기까지 과거이고 이쯤부턴 현재라고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구분은 물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연속적인 흐름을 일시정지시킬 수 없고 상호 연관된 일들을 별개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혼란스런 것은 시간이나 시대는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미 과거에 소멸된 줄 알았던 일이 시간을 되돌린 듯 현실에서 버젓이 자행되는 시대착오적 모습도 종종 발견되니 말이다. 나이브하게 말하자면 우린 모두 시간여행을 경험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미래 사회를 암울하게 진단하는 디스토피아론은 언제나 있어 왔다. 어쩜 예언자적 식견과 안목을 지닌 이들의 경고와 대안 제시 덕분에 인류는 그나마 멸망하지 않고 오늘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디스토피아란 미래에 맞을지도 모를 부정적인 모습이란 데 방점이 찍혀있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밀레니얼 칠드런]의 시점은 미래다. 새벽이 배정된 학교를 무대로 서사가 진행된다. 그런데 하나 같이 기시감이 느껴진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다. 이를테면 하루 열다섯 시간 이상 주입식 교육과 강제 자습에 시달리는 학생들,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패거리를 이뤄 폭력으로 울분을 해소하는 아이들, 지배 이데올로기에 무조건 순응하는 게 미덕이라고 세뇌하는 교사, 너무 낯익은 모습 아닌가? 먼 미래, 디스토피아에서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여기, 우리 사회에서 날마다 자행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작가는 시점을 바꿔 패러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처참한 현실을 대해 발언하고 있었다.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은 실현되지 않고 시대착오적 폐습이 무한반복될 뿐인 뼈아픈 모습을 그린 것이다. 특히 체제의 모순을 절감하면서도, 순응할 때 주어질 달콤한 보상에 눈이 멀어 어떤 의미 있는 실천도 꾀하지 않는 우리의 허위의식을 건드린다.

 

하여 앞부분 몇 쪽만 읽고도 작가의 의도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약간 걱정스런 면도 솔직히 있었다. 자칫 메시지만 강조하다 르포르타주마냥 딱딱하고 지루한 얘기가 지지부진 이어지는 건 아닐까 우려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곧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심각한 얘기만 늘어놓아선 감정이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작가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마음결을 빨아들이기 위한 장치들을 여럿 배치해두었는데 특히 등장인물의 심리적 갈등 묘사에 무척 공을 들이고 있다. 기득권 유지 기구로 작동하는 학교의 비민주적 실상을 파악한 새벽이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악어에게 제시했을 때 악어는 오히려 새벽에게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밑바닥에서 출발하자고 역제안한다. 흠칫하며 번민에 휩싸인 새벽의 모습이라니. 악어와 의기투합하여 사태 해결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방법론의 차이를 두고 갈등하는 모습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인류의 선의에 호소하자는 새벽과 물리적 방법으로 대상을 제압하자는 악어, 그 팽팽한 신경전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며 이야기는 점차 고조된다.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 단호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심리적 흐름도 개연성 있게 그리고 있다. 새벽이 심경을 정리할 수 있었던 계기는 친구들의 따가운 일갈이었다. 새벽을 향해 살인자나 다름없다고 질타하던 악어의 눈빛과 맨발이 삐져나온 이오의 시신이 겹쳐지며 새벽은 결단한다.

 

작가는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추리적 요소도 가미하고 있다. 때론 지적인 게임으로 서사를 몰고 가기도 한다. 주어진 시간 내에 보안 시스템을 뚫고 시스템 접속이 가능한 포스트로 침투하여 암호와 비번으로 차단된 메트릭스에 로그인하는 과정은 스릴 만점이었다. 별별 기기묘묘한 아이디어가 다 동원되어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작가는 비관 일변도로 흐를 것 같은 분위기에 한 줄기 서광을 비추며 절망에만 빠져 있지 않게 이끌기도 한다. 암울한 현실,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벽 앞에 좌절하고 있을 때 가느다란 희망의 동아줄을 슬몃 건네준다. 성사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던 새벽의 시도가 반향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주어 다시 우리를 고무하며 끌어당긴다. 메트릭스를 통해 학교의 실상을 외부로 알리고 국제기구에 고발한 새벽의 목소리에 조금씩 메아리가 울리기 시작하며 기자들이 몰려오고 여론은 술렁거린다.

 

한마디로 어둡고 답답한 얘기였다. 참혹한 미래, 아니 오늘 여기 우리의 뼈아픈 구석을 이보다 더 리얼하게 그릴 순 없달 정도였다. 그래서 읽기가 꺼려지고 때론 멈칫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갈수록 얘기의 결에 자연스레 빨려들게 되었다. 작가는 딱딱한 골격에 살을 붙이고 피가 돌게 하고 맞춤옷을 입혔던 것이다. 때론 추리물인가 싶다가, 더러는 성장소설 냄새도 풍기고, 어떨 땐 아릿한 사랑 얘기를 버무려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맥락이 단절되지 않게끔 끌고 갔다. 서사 속에 녹여낸 메시지가 이물감 없이 스며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바람직한 미래를 꿈꾸기 위해선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이제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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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산장 살인 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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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모험적 시도로 파문을 일으키는 히가시노 게이고. 장르를 넘나들고 파격적인 플롯을 선보이며 소재나 캐릭터 설정에서도 전작의 그림자를 말끔히 지우곤 하는 그의 상상력과 생산성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지 경탄스러울 정도다. 매번 파고가 가팔랐지만 이번 파도는 특히나 쓰나미급이었다. 결말을 접하고 한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단단히 한 방 먹었단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찝찝하지 않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번번이 게이고에게 허를 찔리곤 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는지라 이번엔 정말 제대로 맞붙어 보고 싶었다. 독하게 마음먹고 장면 하나, 사건 전개과정의 사소한 흐름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예의주시했다. 그랬더니 얼핏 윤곽이 잡히는 것 같아 이제 됐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갈수록 눈앞이 흐려지며 여러 갈래 중첩된 그림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영락없어 보이던 인물이 어느새 멀쩡하게 선량한 사람으로 다가오고 의외의 돌발 사건도 터졌다. 이런 상황 변화 과정을 지켜보며 나름의 추리력을 발휘하여 용의선상에 올렸던 인물이 몇 있다.

 

거칠게 예단하는 것 같지만 도모미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니라 피살이었다고 못 박으면 맨 먼저 의심의 눈길이 가는 곳은 시노 유키에이다. 초입에서 아름다움을 감상하고플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지녔다고 할 때부터 비중이 남다를 것 같아 마음이 쓰이더니 갈수록 심증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유키에는 다카유키와 도모미의 연애 시절에 함께 어울렸던 외사촌이다. 그런데 다카유키를 바라보는 눈빛이 뭔가를 갈구하듯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쩜 도모미의 연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면 누구나 선망할 남성성을 듬뿍 지니고 있는 다카유키가 끔찍이도 아껴주는 도모미. 그녀에게 부러움과 더불어 질투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질투가 공격 성향으로 바뀌어 혹 도모미에게 해코지한 건 아니었을까?

 

두 번째로 혐의가 가는 인물은 도모미의 아버지이자 산장 모임에 일행을 초대한 모리사키 노부히코였다. 그는 처음부터 의외의 발언으로 분위기를 다운시킨다. 뜬금없이 딸이 살해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단순 사고가 아니었다고 단정하며 말이다. 일련의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그는 너무 담담했고 사태를 의연하게 헤져나가는 모습에서 오히려 작위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산장으로 불러 모은 사람들 모두 도모미 사건 관계자라는 것도 의심스런 대목이었다. 뭔가 의도한 게 있었던 건 아닐까? 혹 딸을 살해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아님 딸 살해범을 색출하기 위해 거짓 설정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극한 상황을 조성하여 모인 사람들의 밑바닥 속마음을 꿰뚫어보려고 말이다. 여러 모로 묘한 냄새가 났다.

 

또 억측이 지나친 건 아닐까 우려하면서도 인질범 진에게도 코를 벌름거리고 싶었다. 뭔가 구린 게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유키에가 안전하게 방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안심하는 모습에서 혹 둘이 연인관계는 아닐지, 그러면 도모미와 모종의 관계로 얽혀있는 건 아닐지 슬쩍 연결고리가 느껴지기도 했다. 연인이 다른 남자에게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면 간접적으로 충격을 주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추리가 중반부로 접어들며 벽에 부딪쳐 버렸다. 마당 흙바닥에 발로 썼던 구조 신호가 감쪽같이 지워지고 인질범 다구가 누군가가 건네준 수면제를 먹고 잠에 곯아떨어지는 등 의외의 돌발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니. 그리고 범인이 누군지 돌아가며 지목하게 된 상황도 명료한 추리를 방해했다. 해결의 실마리를 잡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욱 꼬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특히 노부히코의 비서인 시모조 게이코의 치밀한 조사와 논리적 추리는 오히려 독이었다.

 

더더구나 혼란스러웠던 것은 인질 사건이 길어지는 와중에 의외의 변수가 발생하여 묘한 기류가 형성된 때문이다. 잡힌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갈수록 인질 상태의 위험과 불편함보단 도모미 살해범과 산장 살인범 쪽으로 관심이 급격하게 옮겨졌다. 자신들의 처지를 까맣게 잊은 채.

 

뭔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함정이 있는 것 같다고 되뇌며 곱씹어 봐도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더 쥐어짜며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고 달라 붙었다. 그러다 본래 범인의 캐릭터는 냉혈한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누가 가장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는지 짚어보았다. 끝까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시크하게 군 놈이 진범 일테니.

 

또 게이고의 작품 속 설정은 하나도 허투루 넘길 게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뭔가 암시하는 상징물은 없었을까 따져 보았다. 얼핏 다카유키가 산장으로 들어서려할 때 출입문 위에 걸려있던 장식용 가면이 떠올랐다. 그 가면이 묘하게 위엄을 띈 얼굴로 다카유키를 내려다보는 듯했다는 대목에 뭔가 의미가 실려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제야 책 제목을 [가면산장 살인사건]으로 붙인 게 예사 일이 아님을 느꼈다.

 

문득 페르소나가 떠올랐다. 연극배우가 쓰는 가면을 이르는 말인데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사회적 자아로 위장한 배역을 뜻한다. 어쩜 산장에 초대받은 이들 가운데 사회적 페르소나로 자신의 에고를 은폐하고 연기를 하고 있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의 결이 어지럽게 이어지다 미처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결말을 맞고 말았다. 아, 이럴 수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속았다 싶기도 하면서 이번엔 어느 정도 짚은 게 아닌가 하고 자위도 해 보았다.

 

역시 게이고는 게이고구나 하는 말이 자연스레 새나왔다. 이런 스케일의 반전을 다 기획하다니. 그 도저한 필력에 고개가 숙여졌다. 거대한 쓰나미를 정면에서 바라본 자의 외경심 같은 것이 일어나 전율이 확 끼쳤다. 해서 깨달았다. 아무리 해도 나는 시모조 게이코 수준을 못 넘어설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도 게이고에게 번번이 당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부득이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점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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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놀랍다. 어쩜 사적 고백 같이 두런두런 들려주는 필자들의 사랑 얘기가 이렇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줄이야. 이미 유명세를 탄 소설에 대한 방담 형식의 글이어서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빨려들어 저릿저릿해질 줄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준비 없이 황홀경을 맛본 기분이랄까? 울렁거리게 만든 연유 몇 가지를 짚어보면,

 

1. 입글이 이 정도일 줄이야

 

애초부터 글로 씌어진 문장과 구술된 텍스트를 정리한 입글은 여러 측면에서 구별이 된다. 수용하는 대상이 다름은 물론, 발화자에게 요구되는 컨텐츠의 성격과 수준도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대개 후자가 거칠고 성글어 덜 정제된 것이기 십상이다. 자연스레 오간 대화 내용이 작심하고 치밀하게 구성한 논리적 문장에 폭이나 깊이가 못 미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은 이동진과 김중혁이 진행한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 방송 내용을 녹취 정리한 것이다. 방송 중에 진행자, 더블 캐스터 간 나눈 대담을 약간 손 본 것이니 설렁설렁 즐기듯 읽어도 되지 않을까 지레짐작했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예단이 크게 빗나갔다 해야겠다. 한 방 제대로 얻어맞은 기분이다. 물론 청취자들이 클릭하도록 이끌어야 하는 방송매체의 특성과 순발력과 즉흥성이 가미될 수밖에 없는 입글의 성격 상 약간의 선정성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글로 씌어진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세련되고 정선된 논리와 문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라 할까? 입글 특유의 활기와 생동감으로 친근하게 다가오면서 질 높은 담론으로 의식을 고양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두런두런 늘어놓는 얘기를 듣다 어느새 진리의 한 문턱을 넘은 듯도 하다.

 

2. 호흡이 이렇게 잘 맞을 수가

 

진행자, 필자가 둘이라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자칫 일을 그르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산만하게 겉도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둘의 궁합이 척척 잘도 어울려 보기 좋았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 환상의 조합이었달까. 꺼꾸리와 장다리처럼 둘은 다른 캐릭터를 지니고 있지만 케미가 장난 아니었다. 상호보완적으로 아귀가 딱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둘의 역할 분담은 이야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지게 한다. 김중혁은 소설 내적 분석에 초점을 맞춰 얘기를 풀어나가는데 글쓰기 전략이나 작가적 감성, 삶과 창작물의 관계 등에서 내공을 십분 발휘한다.

 

저는 그것이 단 3일 동안의 일이고 주인공에게는 급박한 어떤 순간들이기 때문에 그런 문체를 선택했고 그것이 전략적으로 아주 훌륭했다는 생각이 들어요.(177쪽)

 

직접 소설을 써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심경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김중혁은 또 작품을 읽다 울컥했단 이야기까지 가감 없이 드러낸다. 폼 잡기 좋아하는 작가들이 금기시하는 일인데도 거침이 없다.

 

로비가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은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그때 브리오니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거든요.(32쪽)

이동진의 담론은 김중혁의 그것과 결이 약간 다르다. 좀 더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며 차분한 톤으로 발언한다. 다양한 배경지식에다 미학적 안목을 곁들여 작품을 분석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풀어내어 독자를 빨아들인다. 때론 삶의 지혜가 듬뿍 배어 있는 혜안도 내비쳐 아득하게 만들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스피노자의 말이 있어요. “모든 한정은 부정이다.”라는 말인데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런 거죠. “나는 네가 짜증만 자주 부리지 않는다면 너를 정말 사랑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사랑을 한정하지 않아야 부정하지 않는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믿음의 속성이 그래요. 우리가 어떤 종교에 대해서 이러이러한 부분만 없다면 그 종교를 믿을 거라고 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거죠.(230-231)

둘이 선호하는 작품과 좋아하는 대목도 달라서 얘기가 한층 다양하게 전개된다. 하루키 작품만 해도 이동진은 장편인 [태엽 감는 새]를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 반면, 김중혁은 [땅속 그녀의 작은 개] 같이 아릿한 단편을 더 높이 사고 있다. 다자키 쓰쿠루 얘기를 하면서 기차역의 이미지에 대해 김중혁은 못마땅하다고 여기는데 반해 이동진은 그 대목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선호와 해석이 다른 것은 이동진이 논리적인 구조를 중시하는 반면 직접 소설을 쓰는 입장인 김중혁은 스타일과 감성에 더 굵은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더욱 풍성하게 여러 층위로 뻗어나간다.

 

3. 이런 깊이까지 건드릴 줄이야

 

평론가와 작가의 대담이니 기본적으로 담론의 수준이 보장된다 하겠지만 그들이 다루는 이야기의 범위와 질은 상상 이상이었다. 몇 번이나 저릿했다 할까. 캐릭터, 페르소나 및 에고 같은 주인공의 성격 분석은 물론 작품의 미학적 측면에 대한 정교한 해석까지 그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소설 구조를 분석하며 플롯의 정교함에 경탄하는 필자들을 얘기를 들다 덩달아 울렁거리기도 했다.

 

결국 상상력의 죄를 상상력의 힘으로 속죄하는 이야기라고 정리해보면 정말 재미있어요. 특히 뒤의 상상력은 소설 짓기와 관련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속죄]는 메타 소설의 측면도 가지고 있구요. 참 대단한 것은요, 1부에서는 장황하게 보일 정도로 길게 이야기하다가 2부는 박진감 넘치고 3부는 또 매우 애절해요. 그러다가 에필로그 마지막 두 페이지에서 이 소설의 주제를 보여주죠. 아주 무겁게요. 정말 마지막 두 페이지의 무거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잖아요. 여기에서 저는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묵직한 책임감을 새삼 느꼈습니다. (53쪽)

이렇게 다소 복잡하게 인물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캐릭터의 작법도 소설의 핵심과 닿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소설에서 쓰쿠루가 역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지 않나요? 소설의 마지막 챕터에서 일부러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다고 할 만한 신주쿠 역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도 그게 사실 쓰쿠루이자 쓰쿠루의 확장된 자아로서의 세계이기 때문일 테니까요.(318)

한 수 단단히 배운 기분이다. 어쩜 계몽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을 읽고 스토리만 즐기던 애송이 독자가 작품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틀과 방법론을 초보적이나마 맛보고 느꼈으니 말이다. 작가들의 얘기를 듣고 내용을 따라가다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행간의 숨은 의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4. 경탄뿐 아니라 부족한 부분까지 짚어 내다니

 

다들 [그리스인 조르바], [다자키 쓰쿠루]하면 껌뻑 넘어가곤 한다.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애정 고백을 진하게 하고 있다. 한편 사랑이 깊으면 안타까움도 큰 법, 그들은 사랑하는 작가들의 빼어난 작품에서 아쉬운 대목을 짚고 있다. 조르바의 마초적 특성과 주인공의 문약한 면모를 지나치게 대비한 점이 오히려 작위적인 감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든지, 다자키 쓰쿠루가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음에도 내러티브를 들려주며 다시 한 번 내용을 상기시키는 방식이 너무 지루한 것 아니냐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마무리된 이야기에 굳이 첨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앞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1인칭 시점이었다면 그런 감정적인 부분을 극대화해도 독자로서 동화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주인공에게 작가가 계속 이야기를 하는 느낌인 거죠.(324-325)

하루키에게 애증이 짙게 교차되는지 다자키 쓰쿠루의 음악적 취향과 화법에 대해서도 딴지를 건다. 그런데 하나 같이 딱 맞는 얘기다.

또 다자키 쓰쿠루는 특별히 클래식에 조예가 깊거나 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데 처음 프란츠 리스트 음악을 듣고는 그 음악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요. 사실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악장 같은 개념을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정확하게 설명하죠.(298)

하루키를 읽을 때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필자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과연 그렇구나 하고 인정할 밖에. 정말 꼼꼼하게 읽었구나, 작가와 작품을 이렇게나 깊이 사랑하는구나 하고 절감했다.

 

5. 놀라움이 다짐으로

 

놀라운 경험은 마음을 움직이는 법. 김중혁과 이동진의 얘기를 들으며 그동안 놓친 게 너무 많구나 하는 자탄이 밀려왔다. 필자들이 든 작품 대부분은 이미 읽어보았고 내용도 빤히 알고 있다 자부했는데 그만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문득 읽기나 했나 싶기도 했다. 그런 얘기도 있었구나, 그 대목은 복선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맘마미아! 작자가 이런 상징을 행간에 배치해 두었구나 경탄하기도 했고. 작품의 결이 전과는 완전 다르게 읽혔다. 좀 과장하자면 한 꺼풀 눈을 덮고 있던 비늘이 걷히며 신세계가 환히 열린 듯했다. 그래서 다시 그 책들을 잡아야 겠다고 마음결이 울렁거렸다. 특히 [속죄]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곱씹고 곱씹으며 정독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필자가 사랑한 소설들이 앞으로 내가 더욱 사랑하게 될 작품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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