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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가제 독고다이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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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의 잔상이 남아있어서인지 [가미가제 독고다이]를 읽는 내내 이건 영락없는 드라마 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여 이 장면에선 이런 캐릭터의 인물을 캐스팅하여 살짝 비틀면 되겠구나, 더러는 자못 진지하기만 한 우스꽝스런 원리주의자의 모습을 부각시키면 딱이겠구나 하며 나름대로 콘티를 짜보기도 하였다. 그런 구상이 꼬리를 물고 막 떠오른 건 김별아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더도 덜도 아닌 우리네 삶의 진솔한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뻔하디 뻔한 천편일률적 스토리가 아니라 전인미답의 새로운 틈새를 파고든 신선한 얘기여서 신세대들의 감성에도 톡톡히 어필이 될 듯 보이니 말이다. 시대 배경이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하던 태평양전쟁 말기이고 가미가제 특공대를 소재로 한 것이며 계층과 신분이 충돌하는 가문의, 취향이 극과 극인 형제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이기에 자칫 비분강개형으로 흐르기 십상이고 심각한 의미 지향적 경향을 보이게 마련이라고 누구나 넘겨짚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김별아는 이런 예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투적인 선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박제된 스테레오타입이 아닌 생기발랄하고 인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갖은 군상들이 부딪히고 넘어지며 겨우겨우 살아내는 진짜 이야기를 생중계하듯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드라마로 만들면 누구라도 맞아 맞아 하며 공감할밖에.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장편소설은 캐릭터가 인상적이고 스토리 라인이 재미있어야하며 문체도 매력적이어야 독자를 끝까지 붙박아둘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가미가제 독고다이]는 흡인력이 매우 강한 작품이라 하겠다. 우선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작위적인 설정 같으면서도 자연스럽고 친화력 있게 다가온다. 지지부진하게 삶을 낭비하고 있지만 사랑을 알고 순정을 이해하는 윤식과 어두침침한 면회실 안에서도 등불처럼 빛나던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경식 형, 그리고 형의 연인이었다가 윤식의 마음에 홈빡 들어와 버린 현옥, 그녀는 너무도 화-안하여 퀭한 모습까지 눈부실 정도로 태양인 형의 광선을 반사하는 빛나는 달과 같았다. 주인공 윤식이 그녀를 본 순간 심장으로부터 뻗친 불덩이가 쏜살같이 머리끝까지 치솟는 묘한 감정으로 떨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쇠날이 할아버지와 올미 할머니까지 다들 선이 굵고 색깔이 뚜렷한 이들이었으니 이야기의 폭과 깊이가 어떨지 절로 그려지게 된다 하겠다. 특히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진면목을 오롯이 보여준 윤식의 내면은 정말 인간미가 철철 흘러넘쳤다.

피할 수 있다면 끝까지 피하려 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리 둘러대고 저리 꿰맞추어 궤변으로나마 이유를 댈 수 있지만 현옥에게는 뭐라고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차라리 비난을 들을지언정 감사나 보답의 말 같은 걸 듣고 싶지는 않았다. 형의 행복과 현옥의 행복을 바라는 건 사실이지만 형과 현옥이 함께 나눠 갖는 행복에 대해서는 여전히 상상하는 일조차 버거웠다. 그렇다고 내 마음을 고백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죽음의 문전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삶터에서 뿌리내려야 할 사람의 발목을 잡챌 수 있겠는가? 죽음과 삶은 잇닿아 있으면서도 가장 먼 둘이자 하나였다. (267쪽)

이야기 전개도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지며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게 한눈 팔 겨를을 주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설화 같은 결혼 얘기에서 시작하여 갑자기 서울로 상경한 아버지가 부를 축적하더니만 신여성 어머니를 맞은 거 하며, 형제가 하나는 강고한 주의자로 다른 놈은 완전 놈팽이로 빠지는가 싶더니 삼각관계 러브 라인으로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는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우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의 어처구니없고 생뚱맞고 기막힌 필연이 자주 언급될 정도로 기기묘묘한 일들의 연쇄가 작가의 철저한 구성 속에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급기야 형을 대신해 가미가제 독고다이에 지원한 윤식의 일본 병영 얘기에서 화룡점정을 찍게 된다. 빠르면서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 구조를 정밀하게 교직해낸 작가의 내공이 도대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작가의 독특한 칼라가 녹아있는 문체도 압권이었다. 별별 희한한 표현이 등장하고 구어체의 질퍽한 말들이 생뚱맞은 것 같으면서도 착착 달라붙게 다가온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말해요! 말해! 어떤 년에게 홀라당 넋을 뺏겼냐고? 젖통 큰 양년? 발에 환장한 김에 전족한 뙤년에게라도 꽂혔나? 아니면 냄새나고 촌스러운 조선년인 거야?” 

(중략)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는 것 같은 통증에 나는 소금 세계를 받은 미꾸라지처럼 용틀임했다. (204쪽)  

게이샤 요네하치의 왁살스러운 손길이 윤식의 중요 부위를 콱 움켜잡은 순간을 리얼하게 그린 대목인데 너무 실감이 나서 나까지 통증으로 징해지는 것 같았다. 다양한 우리말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작가의 어휘력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평소의 좌우명이 ‘남의 일에 신경 끄자’인 내가 어쩌자고 남의 신념과 사랑에 흥야항야하는가. 더구나 상대는 소고집으로 앙버티는 허름한 계집애에 불과하지 않은가. (151쪽)

그렇게 열지 말라고 열지 말라고 제우스가 입다짐을 했는데도 뇌를 쏘삭쏘삭 간질이는 호기심에 결국 홀라당 상자를 열고 만 판도라도 치마를 두른 여자였겠다! 나는 오랜만에 선수다운 능력이 발휘된 데 대해 회심의 미소를 지을 뻔했으나, 웬일인지 그마저도 현옥 앞에서는 백치같이 헤벌쭉한 웃음으로 삐져나오고 말았다. (중략) 그 간질간질한 행복의 순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좋았으련만. (192쪽) 

그러다가 급기야 하나님까지 불러내고 만다.

그런데 하나님, 오랜만에 갑자기 불러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어렸을 적 마리아 선생에게 혼나가며 열심히 성경을 외운 덕에 하늘이 아직 날 보우하시는지 어쨌는지,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꽃잎처럼 하얀 무언가가 날아와 현옥의 이마에 사뿐히 내려앉은 것이었다. (226쪽)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부르고선 간만에 불러서 죄송하다니? 이 무슨 불경스런 짓. 심각한 순간을 살짝 비트는 이 절묘한 위트라니. 또 적나라한 성애 장면은 없지만 묘한 상황 설정에 절로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목도 허다했다. 하여간 서너 쪽마다 한 번씩이랄 정도로 빵빵 터지며 배꼽 잡게 만드는 통에 몰입률 백 퍼센트였다 하겠다.

하여 김별아의 [가미가제 독고다이]는 잘 읽히는 소설, 그러면서도 삶의 의미와 인간의 심원한 내면을 오롯이 살려낼 수 있는 작품이 되려면 어떤 미덕을 갖춰야 할지 잘 보여준 전범이라 하겠다. 독자의 열화와 같은 사랑을 받으면서 문학적 생명력도 긴 그런 작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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