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멀리 내다보는 관점이 가장 의문스러워 보일 때가 종종 있지 - P36
그리고 정신 상태는 행위로부터 추론될 수도 있고. 폭군이 적을 제거하라는 서신을 친필로 보내는 법이 거의 없듯이 - P36
그러나 조 헌트 영감이 에이드리언과 논쟁을 벌이면서 한 말은 기억하고 있다. 그는 행위를 근거로 정신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헨리 8세를 비롯한 기타 등등의 역사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에 개인의 삶에서는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현재의 정신 상태를 근거로 과거의 행위를 판단할 수 있다. - P79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완전무결한 부모와 오누이와 이웃과 동료로 이루어진 세상을 사는 것도 아닌데, 상처를 피할 도리가 있을까. - P79
그렇다면 문제는, 수많은 것들이 걸린 그런 문제로 인한 손실에 어떻게 대처할까이다. 상처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억누를 것인가. 또 그 상처는 우리의 대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상처를 받아들여 중압감을 덜어보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상처받은 이들을 돕는 데 한평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부류이자, 가장 조심해야 할 부류다. - P80
관계란 무언가의 증거로서 복잡함을 요하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대체 무엇에 대한 증거인가? 깊이? 진지함? 그럼에도, 깊이나 진지함을 바치지 않고도 관계가 정말로 복잡하고 까다로울 수 있다는 건 맹세코 사실이다. - P83
그 시절 우리는 자살이 모든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임이 철학적으로 자명하다고 여겼다. 불치병에 걸리거나 노망이 났을 때 취할 수 있는 논리적인 행위, 고통에 맞서서, 혹은 다른 이의 죽음을 막기 위해 취하는 영웅적 행위, 실연에 격노해 감행하는 매혹적인 행위(역시나 등장하는 ‘위대한 문학‘). 이 범주 중 어떤 것에도 롭슨의 추레한 이류 행위를 대입한 적은 없었다. - P86
에이드리언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서 그는 검시관에게 자신의 자살 이유를 설명해놓았다.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만약 바란 적이 없는 그 선물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결정대로 행동을 취할 윤리적, 인간적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결론 부분은 실질적으로 자신의 논지가 타당함을 알리고자 하는 내용이었다. - P86
법의 관점에서 정의할 때, 자살한 사람은 실성한 것이다. 최소한 자살을 감행하는 시점에는 그렇다. 법과 사회와 종교 모두 건전하고 건강한 상태에서 사람이 자살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어쩌면 그런 권위의 요체들은 검시관을 부리고 있는 국가의 관할하에 놓인 삶의 본질과 가치가 자살의 논지로 인해 침범당할까 두려워한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일시적으로 실성했다는 선고를 받은 이상, 자살하려는 이유 또한 실성한 것으로 간주될 게 아닌가.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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