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세상에 빛 그림자. 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P12

우리의 모든 지각은 일관된 감각적 경험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서로 별개이면서도 복합적인 여러 감각이 조화를 이룬 것이다. - P14

감각이 진정한 감각이 되려면 전문화된 수용기는 물론이고, 뇌의 감각겉질sensory cortex로 이어지는 정보 고속도로가 있어야 한다. - P16

뇌는 모든 지식과 감정, 성격의 중심지로 가장 내밀한 생각과 삶의모든 경험이 집약된 장소다. - P17

뇌 자체는 감각이 없지만 모든 경험이 일어나는 곳이다. - P17

뇌가 유입되는 정보를 걸러내고 순서대로 정리하고 처리하는 모든 작업의 결과물을 지각perception이라고 한다. 지각은 결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다. 뇌는 데이터를 단순히 수집하고 정돈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데이터를 능동적으로 조정하고 길들인다. 외부에서 들어온 신호는 편견, 기존의 예상, 감정 등을 거쳐 해석되고 층층이 쌓인다. 감각과 감성의 통합은 지각에서 막강한 역할을 한다. - P17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에 있으면 뇌의 시각겉질visual cortex 활성이 증가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더 풍요롭고 선명하다. - P18

우리는 세상을 보며 분명 실재하는 현실이라 확신하지만 사실 이런 지각은 복잡하면서도 기발한 착각에 불과하다. - P18

느낌은 지각에 색을 입히기도 한다. 중동지역 문화권에 있는 사람이라면 차에 우유를 넣는다는 생각에 경악할지도 모른다. 머그컵에 든 차에 대한 반응이 자신의 문화적 판단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각자 자신의 경험을 진짜라고 느끼겠지만 어떤 경험도 객관적으로 옳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지각이 다른 사람의 지각보다 우월하다고 끊임없이 주장한다. - P19

같은 색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우리 뇌 바깥에는 사실 색이 존재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색만 없는 것이 아니라, 소리도, 맛도, 냄새도 없다. 우리가 빨간색으로 지각하는 것은 650나노미터의 파장을 가진 복사에너지일 뿐이다. 본질적으로 빨간색이 있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빨갛게 해석하는 것이다. - P20

시각은 입력되는 데이터가 워낙 풍부해서 다른 감각보다 처리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린다. 21세기에도 단거리 달리기 경주의 시작을 신호등 불빛이 아닌 총소리로 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P20

눈으로 보는 것은 실재가 아니라 뇌가 만들어낸 이야기다. 뇌는 무의식적으로 눈에서 받은 날것의 입력에 의미를 담고, 관찰한 것을 걸러 주관적인 특질과 편견을 부여하면서 공백을 메운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과정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본 것을 확실히 기억한다고 믿는다. - P33

뇌는 시야에 들어온 대상 중에 우리가 집중하는 것 외에는 대략적인 골자만 파악한다. 부주의맹inattention blindness 현상이 나타나는이유다. - P35

흥미롭게도 시각은 우리가 자라면서 사용법을 익혀야만 제대로 쓸 수 있는 감각이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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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에서 나는 보았다. 얼굴이 늘 진실을 말하진 않는다. 안 그런가? 적어도 나에겐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이 쓰는 것을 읽는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증거이자 우리의 확신을 뒷받침해줄 증거이다. 그러나 말과 표정이 정반대일 때, 우리는 그의 얼굴을 낱낱이 살핀다. 눈빛에 감도는 교활함, 번지는 홍조, 안면근육의 불가항력적 경련. 그러면 우리는 알게 된다. 위선이나 거짓 주장이 밝혀지고, 진실이 우리 앞에 명백히 모습을 드러낸다. - P228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를 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흔치 않은 회한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 P236

인간은 생의 종말을 향해 간다. 아니다. 생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 그 생에서 가능한 모든 변화의 닫힘을 향해. 우리는 기나긴 휴지기를 부여받게 된다. 질문을 던질 시간적 여유를. 그 밖에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었나?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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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처량하리만큼 인생의 변수가 줄어드는 때를 맞게 된다. - P203

시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마흔은 아무것도 아니야, 쉰 살은 돼야 인생의 절정을 맛보는 거지, 예순은 새로운 마흔이야...... 시간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이 정도다. 객관적인 시간이 있다. 그리고 주관적인 시간도 있다. - P205

누가 말했던가? 살면 살수록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사라져만 간다고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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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후 나는 에이드리언에 대해 좀 더 생각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는 언제나 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명철한 시각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호강에 받들려 무풍지대나 다름없는 사춘기를 허우적대며 우리의 타성적 불만이 인간조건에 대한 본원적 반응이라 믿는 동안, 에이드리언은 이미 거기에서 벗어나 멀리, 넓게 앞을 조망하고 있었다. 그는 인생에 대해서도-애써 살아봤자 보람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마저도,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남달리 명징하게 받아들였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언제나 흐리멍덩했고, 인생이 내게 던져주는 얼마 되지도 않는 교훈에 대해 크게 깨달을 깜냥도 못 되었다. 내 식으로 말하면, 나는 삶의 현실에 안주했고, 삶의 불가항력에 복속했다. - P169

인성의 깊이와 세월의 흐름은 비례하는 걸까? 소설에선 물론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 인생에선 어떨지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우리의 태도와 견해가 바뀌고, 새로운 습성과 기벽이 생기긴 하지만, 그건 뭔가 다른 것, 이를테면 장식에 가까운 것이다. 어쩌면 인성이란 다소 시간이 지나서, 즉 이십대에서 삼십대 사이에 정점에 이른다는 점만 빼면, 지성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그때까지 쌓은 소양에 여지없이 고착되고 만다. 우리에겐 우리 자신뿐이다. - P175

인생은 단순히 더하고 빼는 문제가 아니다. 상실의, 혹은 실패의 축적과 곱셈이다. - P176

내 판단이지만, 요절하는 것보다는 늙는 것이 언제나 나은 법이다. 아니, 내 말뜻은 이렇다. 이십대에는 자신의 목표와 목적이 혼란스럽고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해도, 인생 자체와, 또 인생에서의 자신의 실존과 장차 가능한 바를 강하게 의식한다. 그후로••• 그후로 기억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하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 P177

나는 인생의 목적이 흔히 말하듯 인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님을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상관없이 기어코 납득시킨 끝에, 고달파진 우리가 최후의 상실까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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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 P138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유순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잘 살았다고 상을 주는 게 인생이란 것의 소관이 아니라고 한다면, 생이 저물어갈 때 우리에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할 의무도 없는 것 아닌가. 생의 진화론적 목적 중에 향수라는 감정이 종사할 만한 부분이 과연 있기나 한걸까. - P141

배우면 배울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학문의 의미가 아니라, 인생을 실질적으로 이해한다는 맥락에서 ‘배우는‘ 것이다. - P141

어느새 나는 내 인생과 에이드리언의 인생을 비교하고 있었다. 윤리적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에 대해, 자살을 감행한 정신적, 육체적 용기에 대해 한 구절로 표현하자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에이드리언은 자신의 삶을 책임졌고, 그것을 지휘했으며, 온전히 포착했다. 그리고 놓아주었다. - P149

그러나 베로니카는 먼저 와 있었다. 나는 멀찍이서 그녀를 알아보았다. 키와 자세만 보고 금세 알아보았다. 누군가에 대한 기억에 자세의 이미지가 늘 따라붙는다는 건 묘한 일 아닌가. - P153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 P158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 P161

그 다음 날, 맑은 정신으로 나는 우리 셋에 대해, 그리고 시간의 수많은 역설에 대해 생각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사람은 가장 젊고 민감한 시절에 상처도 가장 많이 받는다. 반면 끓어오르던 피가 서서히 잦아들고, 감정이 전보다 무뎌지면서 더 든든히 무장을 하고 상처를 견딜 줄 알게 되면, 예전보다 더 신중하게 운신하게 된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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