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사과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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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신앙의 구도그 끝나지 않는 대결

 

소설이란 무엇이며 소설을 쓴다는 것은 또한 무엇인가텍스트로부터 될 수 있는 한 멀찍이 거리를 두려 했다그러다 보니 서양의 중세까지 가게 되었다참 멀리까지 간 셈이다” _ 작가 후기 

 

  ‘황금사과라는 단어는 아쉽지만 김경욱의 소설이라는 점을 떠올리기보단그리스신화를 떠올렸다파리스의 황금사과 이야기가 그것이다가장 아름다운 자에게 주라는 황금사과지혜의 여신 아테나세계의 주권을 약속한 헤라인간 중 가장 아름다운 아프로디테세 여신이 이 사과를 두고 다투자 제우스는 파리스에게 그 판단을 맡긴다결과적으로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고그 결과 분노한 여신들의 장난으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신화의 내용 때문이었는지김경욱의 <황금사과역시 그리스 신화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했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패러디. <황금사과>의 내용은 <장미의 이름>에서 끔찍한 연쇄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날카로운 직관과 해박한 지식으로 독자들을 감탄시켰던 월리엄 수사의 젊은 시절이다서양 중세경제사에 대해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소설의 화자 는 소르본 대학 도서관 고()문헌 실에서 우연히 바스커빌 출신의 프란체스코 회 수도사 윌리엄이 14세기 초에 쓴 서책의 채록 편집본을 발견한다이 책에 담긴 내용은 수사가 살인흑사병종교재판 등 잔혹한 사건의 배후를 파헤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윌리엄 수도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피에르 주교의 죽음과 진실속권과 교권의 다툼진실과 허구진리와 이단원본과 복사본 등에 대한 물음이기도 한 <황금사과>. <장미의 이름>에서도 등장했던 이성과 신앙심의 대립’, ‘경건주의의 속박은 <황금사과>에서도 여전히 되풀이된다과연 무엇이 진실이고무엇이 거짓이란 말인가?

 

  다시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파리스의 황금사과 이야기를 떠올려보자당신이 파리스였다면 지혜권력(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모든 사람이 파리스와 같이 아프로디테즉 미()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혹자는 지혜를 선택할 것이고누군가는 권력을 선택할 것이다선택의 가능성이 열린 만큼 선택에 대한 결과 역시 모두 달라진다()를 선택한 결과가 권력(헤라)으로 인한 응징이었다그렇다고 우리는 파리스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손가락질 하지는 않는다.

  <황금사과>에 나오는 선택의 구도 역시 그리스 신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이성과 신앙심의 선택이 그것이다이성을 선택한 사람들은 신앙심을 선택한 사람들에 의하여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했고신앙심을 선택한 사람들 역시 이성을 선택한 사람들의 계략을 막기 급급했다.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고민하던 작가는 시대를 거슬러 중세까지 내려갔다반대로 필자는 그 소설을 통해 무엇이 정의(定義)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현대로 돌아왔다중세시대 이성과 신앙의 대결은 현대에도 존재한다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이다파리스가 그랬던 것처럼그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 할 수 없었던 것처럼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택 역시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 할 수 없다다만 자기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옳지 못하다그것이야말로 윌리엄이 보았던 속권과 교권의 싸움중세 암흑기로 되돌아가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황금사과>를 읽어냄으로써 숙제가 생겼다상대의 선택에 대한 관용과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 그것이다황금사과가 주어진다면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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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베다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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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보다 못한 어른들의 세상


  "약한 사람이 빚어내는 공포는 갈수록 줄어들기를 희망하지만 귀신과 요괴들이 등장하는 옛날이야기나 괴담, 동화가 빚어내는 공포만큼은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과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지향을 품은 것이며, 또한 문학과 예술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_ <달빛을 베다> 서문 中


  필명 모옌. 그는 누구인가?


  모옌의 작품을 읽으려면, 우선 모옌이라는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이 중국의 시대적 상황을 많이 반영하고, 숨어있는 의식이 많기 때문이다. 

  모옌은 중국 민중의 삶을 해학적, 직설적으로 그렸다는 평가와 함께 2012년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치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노벨문학상 후보는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도박사들의 예상에 모옌과 하루키 2파전이었다고 한다.) 체제 순응적 작가라는 비판과 중국의 문학작품 검열체제 문제 등으로 수상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도 2012년 노벨문학상은 모옌이다. 

  2007년에는 모옌의 작품이 중국문학평론가가 뽑은 중국 최고작 1위에 선정됐으며 프랑스 루얼 파타이아 문학상, 이탈리아 노니르 문학상,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홍콩 아시아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2011년에는 중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마오둔 문학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우리나라 만해대상 문학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다.

  모옌은 1955년 2월 17일 중국 산둥성 기오미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관모예(管謨業)이며 모옌은 필명이다. 모옌의 뜻은 '작품을 통해서만 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12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면화공장에서 일하다가 1976년 인민해방군에 입대하였다. 해방군 예술학원 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베이징 사범대 루쉰 문학 창작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부터 창작 활동을 시작하여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소속 1급 작가로 일하다가 1997년 사직하고, '검찰일보'에 재직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현실과 환상을 역사적, 사회적 관점에서 절묘하게 융합한 문학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의 고향인 산동성 기오미현 둥베이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대표작으로는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인 <홍까오량 가족>, 중국의 인구제한정책을 다룬 <개구리>가 있다. 이 밖에도 <열세 걸음>,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술의 나라> 등 많은 작품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2006년에 발표된 <달빛을 베다>는 '공포와 희망'이라는 주제로, 열 두편의 이야기를 모은 단편모음집이다. W. 포크너에 견주어 ,<홍까오량 가족>을 비롯하여 향토적 성격이 짙은, 즉 농촌의 짙은 흙내가 배어 있는 작품들 속에서 <달빛을 베다>에서도 역시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단편들 중에는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등장하는데 특히 아이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문둥병 걸린 여인의 애인>에서 어린 아들 서후이와 진주얼, <설날 족자 걸기>의 피쳰, <메기 아가리>의 소년 예샤오창, <목수와 개>에 등장하는 '굴렁쇠' 소년, <엄지수갑>의 어린 효자 아이, <소설 아홉 토막> 일곱번째 '뒤집어 까기'의 왕샤오룽이 그 아이들이다. 모옌은 이들의 순수한 두 눈망울과 동심을 거쳐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잔혹한 본성을 예리하게 풍자, 비판하며 작품을 통한 고발을 행하고 있다. 

  모옌의 어린 시절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것은 '굶주림'과 '외로움'을 빼면 '공포'라고 한다. 그것을 회상하는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투영되어 있는 작품들이 많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는 확실히 굶주림과 외로움, 그리고 공포 속에서 자라난 아이였다. 숱한 고난을 경험하고 참고 견뎌야 했으나, 마지막에 가서는 미치광이가 되지도 않았거니와 타락하지도 않고 어엿한 작가로 성장했다.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토록 길고 지루한 암흑의 세월을 보낼 수 있게 지탱해주었을까? 그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_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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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동양고전 슬기바다 2
맹자 지음, 박경환 옮김 / 홍익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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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왕도정치


  극도로 혼란하고 군웅이 할거하던 전국시대는 가지각색의 사상가들을 등장시켰다.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사상가들은 자기 입장을 강력히 내걸고 다른 입장을 맹렬하게 비판하면서 백가쟁명의 판국을 만들었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천하를 통일해서 절대권력을 장악하여 제왕으로 군림하려던 제후들의 탐욕에 영합했다. 맹자도 이런 사상가들 중 한 명이었으나, 그는 다른 사상가들과 달리 인의(仁義)에 기초한 왕도정치를 주장했기에 제후들의 현실적인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는 없었다. 맹자는 기원전 320년경부터 약 15년 동안 각국을 유세하고 돌아다녔으나, 자기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자 고향에 은거했다. 만년에는 제자 교육에 전념했고, 저술도 했다고 한다. 


  맹자의 독창적 유교사상

  <맹자>는 <논어>, <대학>, <중용>과 함께 송대(宋代)에 주희에 의해 사서로 불리면서 흔들리지 않는 경전의 권위를 차지했다. 고문을 연구한 한유는 "성인의 길을 보고자 하면 반드시 맹자부터 시작하라"고까지 했다. 동양유교사상을 이해하려는 사람이라면 <맹자>는 필독서이다. 

  이 책은 그의 문인들이 스승이 죽은 다음에 정리한 것이라는 견해들도 있으나, 수미일관된 체제 등을 들어 맹자가 직접 저술한 것이라는 견해가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혜왕, 공손추, 등문공, 이루, 만장, 고자, 진심이 그것이다.

  맹자의 사상은 기본적으로는 공자의 사상과 같다. 하지만 공자와 맹자가 활동한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사상에서도 차이가 있다. 맹자는 첫째, '인간의 성품이 착하다'는 성선설을 확실하게 선언했다. 둘째, 공자의 인(仁)의 뜻을 이어서 의(義)를 주장했고, 이를 도덕실천의 규범으로 삼았다. 셋째, '기를 기르라'며 호연지기를 주장했다. 넷째, 인의(仁義)를 근본으로 '왕의 길'을 말해 나라를 다스리는 주요한 방법을 밝혔다. 이런 맹자의 독창적 사상을 통해 유교는 비로소 도덕학으로서 확립되고, 정치론으로서 정비되었다. 그 결과 유교를 '공맹지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성선설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성선설은 고자와의 논쟁에서 밝혀졌다. 고자는 "본성은 웅덩이에 고여 있는 빙빙 도는 물과 같아서,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를 것은 뻔하다. 사람의 성품이 착하고 착하지 아니함에 구분이 없는 것은 마치 물이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맹자는 "물이 진실로 동쪽과 서쪽의 구분은 없지만 위와 아래의 구분도 없는가? 사람의 성품이 착함은 물이 아래로 흐름과 같은 것이다. 물이 아래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없듯이 사람도 착하지 않는 것이 없다. 보라, 지금 물을 손으로 쳐서 튀게 하면 이마를 넘어가게 할 수도 있으며, 아래를 막아서 거꾸로 흐르게 한다면 산 위로 올라가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는가? 그 형세가 그러한 것일 뿐이다. 사람이 때로 나쁘게 되는 것은 그 성품이 또한 이와 같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여기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듯이 맹자는 물의 흐름에 비유하면서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맹자는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것을 본다면, 놀라며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를 맺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동네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한 것도 아니다. 측은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구체적인 경험과 사례를 성선설의 논거로 제시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악하게 됐는가? 이에 대해 맹자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산길에 풀이나 나무가 길을 꽉 메우듯이 선한 본성을 잘 펼쳐 쓰지 않으면 악해진다고 했다. 맹자는 인간이 본래 착하다고 보고, 악을 제거하고 착한 본성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의(義)

  공자의 인(仁)사상은 육친 사이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정을 널리 사회에 미치려 하려는 것이다. 이 경우 소원한 쪽보다 친근한 쪽으로 정이 더 가는 것은 당연하다. 가족제도에 입각한 차별적인 사랑인 것이다. 맹자는 이를 받아들여, 한편으로는 보편적인 인애(仁愛)의 덕을 주장하고, 한편으로는 그 인애를 실천할 때 현실적 차별에 따라 그에 적합한 태도를 결정하는 의(義)의 덕을 주창했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이다. 선한 인간이 마땅히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의'이다. 의는 마음의 지향인 착함을 행하여 쌓는 것이다. 의는 다름 아닌 착함으로 가는 인간의 길인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착하고 마땅한 행동을 할 때 세상이 밝아진다. 그리고 이런 의로운 행위들이 모여 인간의 올바른 생명력인 기(氣)가 된다. 맹자는 기를 기르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


  호연지기와 대장부

  기를 기르는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호연지기이다. 호연지기는 인간의 마음, 의지 가운데 믿음을 돈독히 하고 행동을 건실하게 하는 상태다. 맹자는 "사람들이 닭과 개가 도망가면 찾을 줄은 알지만, 자기 마음을 잃고서는 찾을 줄을 모른다."며 탄식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착한 본성을 잃어서는 안 되며 착한 본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맹자는 호연지기로 근본을 삼으며 삶을 영위하는 사람을 대장부로 표현했다. 이는 공자가 군자로 대표한 것과 비교된다. 맹자는 대장부를 이렇게 규정했다. "천하라는 넓은 집에 살고, 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고, 천하의 대도를 실천하여, 뜻을 이루면 백성들과 더불어 함께 해나가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혼자서 자기의 도를 실천하여, 부귀도 그의 마음을 혼란시키지 못하고, 빈천도 그의 마음을 변하게 하지 못하고, 무서운 무력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게 되어야 그것을 대장부라고 하는 것이다."


  왕도정치

  왕도정치는 인의에 입각한 정치이다. 양(梁)의 혜왕에게 '이익(利)'을 추구하는 것의 잘못을 지적하고 "왕께서는 오직 인의를 말씀하게 그칠 것이지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라는 어구로 쐐기를 박은 첫 부분이 왕도정치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군주는 백성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진심 하편> 민위귀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백성은 귀중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군주는 대단치 않다." 당시 대다수의 평민들이 전쟁과 학정에 무참히 시달리고 있는 데 반해, 군주를 비롯한 극소수의 특권층이 사치향락을 일삼고 횡포를 부리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맹자의 그 주장은 근대 민주주의정신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맹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인자하지 못한 군주는 물러나야 하며, 포악한 군주는 죽어도 마땅하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양혜왕 하편>에는 다음과 같은 제선왕과 맹자의 문답이 나온다.

  "탕왕이 걸을 쫓아내고 무왕이 주를 정벌했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전해 내려오는 글에 그 일이 실려 있습니다."

  "신하가 자기 임금을 살해하도 괜찮습니까?"

  "인자한 사람을 해치는 자를 흉포하다고 하고, 의로운 사람을 해치는 자는 잔학하다고 합니다. 흉포하고 잔학한 인간은 한 사나이라고 합니다. 한 사나이인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살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민의에 반하는 폭군의 교체를 합리화한 혁명론으로서, 왕의 권력이 막강했던 당시에는 상당히 대담무쌍한 발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맹자사상의 한계

  맹자는 '인간은 본래 착하다'고 했는데 언제 어떻게 착했으며, 어떻게 그리고 왜 악하게 됐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답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또한 맹자는 큰 능력을 가진 인물이 다수를 위해 복무하는 대인의 일과 작은 능력을 가진 인물이 소수를 위해 복무하는 소인의 일이 따로 있다고 했으며, 정신노동자와 다스리는 자의 물질생활에 필요한 것을 육체노동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공급해야 한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법치정신을 아주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요순과 같은 성인에 의한 인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이런 맹자사상의 한계를 감안하면서 그 사상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하는 것이 후세대 인류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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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후 너는 죽는다 밀리언셀러 클럽 9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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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결정론을 믿는가?


  인생의 위기를 미리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한 사건이 발생될 운명이라면, 당사자의 행동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 있는 것인가? 잔혹한 운명에 좌절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삶의 의미를 알기 위해, 잃어버린 꿈을 찾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적인 변화가 시간과 운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평상시와 같은 마음으로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다 지금까지 만난적이 없는 한 남자가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여섯 시간 뒤에, 당신은 죽어."

  

  길을 가다가 나에게 저주를 퍼붓는 이런 남자를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눈꼬리는 날카로워지고, 눈매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격과녁을 보듯 찡그릴 것이다. '어서 그 저주를 나에게 거두어!'라는 표정으로.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맹목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정신병자처럼 취급되어왔다. 두 달 정도는 안감은 것 같은 떡진 머리에, 눈은 반쯤 풀려있는 그런 이미지가 같이 연상된다. 하지만 그렇게 연상되던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외모가 너무나 멀쩡하고, 진지하게 말하는 태도로 보아선, 신뢰성을 잃기는 힘들어보인다. 그래도 믿기 싫은 말을 던지는 이 남자, 뭘까?

  남자는 이야기한다. 자신은 미래를 볼 수 있으며 당신의 미래, 즉 나의 미래가 6시간 후에 죽는다는 것을 보았다고. <엑스맨>의 주인공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맨인블랙>에 나오는 외계인도 아닌 것 같다. 과연, 이 남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비일상적인 미래를 예언하는 남자


  다카노 가즈아키의 2007년 작품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에 바로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 케이시가 등장한다. 20대 초반의 야마하 케이시. 심리학을 전공하는 케이시는 특정인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물론, 심리학이라는 전공 때문에 이런 능력을 얻은 것은 아니다.(독심술 같은 능력이 아님을 밝힘)

  그렇다고 케이시가 모든 사람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라보는 사람의 비일상적인 일들만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케이시가 보려고 마음먹는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는 무관하게 영상이 떠오른다. 누군가를 보았을 때, 저절로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비일상적인 일들만. 누군가가 칼에 찔려 사망하거나,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다거나, 거대한 폭발사고에 휘말린다는 등의 일상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들의 영상만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숨을 거둘때까지, 한 번 경험할까 말까 한 일들이 케이시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케이시의 예언의 범주는 비일상적인 일들에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예언을 듣는 사람은 당연히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 자신이 칼에 찔린다거나, 폭발사고에 휘말려 죽는다거나, 교통사고를 당한다는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의 미래라니. 하지만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주는 케이시 역시 기분이 좋지 않다. 자신의 의지도 아닐뿐더러,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의 마음이 동하기 때문이다. 바라본 사람이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어찌 그냥 수수방관만 할 수 있을텐가.

  케이시가 태어나면서부터, 즉 선천적으로 이러한 능력을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는 어린시절 고열로 인해 거의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온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예지의 능력이 생긴 것이다.(개인적으로 이러한 설정은 조금 진부했다. 고열로 인한 몸의 이상으로 특수한 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 어릴 때에는 일상적이건, 비일상적이건 모든 일이 다 보였는데, 성인이 되면서 비일상적인 일들만 보이게 되었다. 아마도 뇌의 과부하로 인한 자기방어적 능력하락이 아닐까 싶다.

  케이시의 입장에서 바라보자. 시도때도 없이 상황과 장소를 고려하지 않고, 나타나는 위험한 미래의 영상 때문에 고민을 해야한다. 누군가에게 비일상적인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당사자에게 전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는 이런 케이시의 고민 해결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사자에게 전해야 한다는 결심을 세운 케이시는 길을 걸어가던 처음보는 여성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말해준다. "여섯 시간 뒤에, 당신은 죽어"라는 말을. 오늘 자정에 가슴에 칼을 맞고 죽을 운명인 그녀. 케이시는 용기를 내어 이 사실을 알려주지만, 여성은 케이시가 자신에게 '작업'을 건다고 생각할 뿐이다. 케이시는 과연 그녀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운명 결정론? 


  케이시가 심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자신의 기이한 능력 때문이다. 물론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하더라도 예지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예지력에 대한 단서를 잡을 수도 없다. 미래를 예언하는 초현실적인 힘은 결코 심리학에서 다루는 영역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케이시가 가장 고뇌하는 부분은, 자신의 이런 미래를 보는 능력이 백발백중, 모두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미래가 적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미래가 정해져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운명결정론의 주장처럼 말이다. 사람들의 자유의지나 행동보다는, 그것을 뛰어넘는 정체불명의 힘이 그 사람들에게 작용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힘에 지배당하며 그 굴레를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뭔가 허무하다.

  이런 식의 추론이 과연 옳은 것일까? 사람의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예지라는 능력은 존재할 수 없다. 미래가 가변적이고 선택 가능하다면, 모든 예언은 그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바꿀 수 없는 운명과 예언의 존재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다. 행복한 인간과 불행한 인간은 그 운명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결론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다카노 가즈아키는 초능력과 미스터리를 적절한 배합으로 버무린 작품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에서 이러한 주제를 던지고 있다. 운명은 결정된 것일까?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은 극소수에게 주어진 능력이지만,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 사람 모두는 운명 결정론을 따르기 보다는,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말이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니, 그런 잔혹한 말은 하지 말게"

  

  작품에 등장하는 한 대학교수는 이런 말을 던진다. 인명을 잃어버릴 정도의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했을 때, 남겨진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라고. 그렇더라도 포기는 하지 않는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것조차 자신의 정해진 운명에 포함된 것이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살아있는 한,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인간사회에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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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얀 마텔이 보여주는 풍경


  제34회 부커상 수상작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의 첫 소설집이다. 각 이야기들은 스토리텔러로 손꼽히는 마텔의 작품답게 모두 배경과 상황, 설정이 다르며, 흥미로운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에 수록된 4가지 이야기들의 제제는 죽음, 영감, 음악, 기억 등으로 다양하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들은 깊은 절망 속에서 오롯하게 떠오르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얀 마텔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희망은 죽어가는 친구와의 우정을 통해, 포화가 쏟아지는 베트남전장에서 울려 퍼지는 바이올린 선율을 통해, 영원히 잊지 못할 지난 날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을 통해 그 얼굴을 바꾼다.

_ <책 소개> 中


  캐나다 출신의 소설가 얀 마텔은 2002년 <파이 이야기>로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이다. 얼마전 우리나라에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영화가 유명세를 떨치면서,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라는 점에서 더욱 유명세를 치르게 된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첫 소설집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은 중편소설 한 편과 단편소설 세 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파이 이야기>에서도 보여준 이야기꾼의 실력은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난다는 것에 놀랐다. 중편, 단편 가릴 것 없이 이야기를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작가의 창의력 역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길이에 구애 받지 않는 작가, 그러한 점이 얀 마텔을 이야기꾼이라고 부르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마텔의 작품에서는 찬 공기를 호흡하는 느낌을 맛보게 된다. 삶이 주는 엄연함이랄까, 그런 깊은 감정의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건조한 경험이 아니다. 다양한 삶과 인간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서 풍요로운 정경을 자아낸다.

_ <역자후기> 中

  1991년 '저니 상'을 받은 중편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은 에이즈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대학 후배와 그의 곁을 지키는 '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들은 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20세기에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과 가상의 가족의 이야기들을 교차시키며 써내려가는 작업에 몰두한다. 한 집안의 가족사와 20세기의 사건들 중 은유적으로 맥을 같이하는 사건을 열거한 소설 속의 소설인 액자소설의 형식인 셈이다. 여기에 짧은 생애를 마감하는 후배와 그의 가족을 지켜보는 청년 화자 '나'의 마음이 잘 녹아들어, 인생에 대한 깊은 울림을 느끼게 한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이 아닌,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접근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미국 작곡가 존 모턴의 <도널드 J. 랭킨 일병 불협화음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을 때」는 캐나다인 대학생이 워싱턴 D.C.에서 우연히 재향군인회의 음악 발표회에 참석하게 되면서, 음악을 통해 베트남전쟁의 경험과 그 후의 현실들에 대해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단편소설이지만, '음악', '전쟁' 등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채롭게 버무렸다. 


  「죽는방식」은 사형수들이 사형 집행을 받기까지 목격한 내용을 그들의 어머니에게 전하는 편지글 형식의 글이다. 작가는 같은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풍경들을 단조로우나 섬세하게 그려낸다. 


  「비타 애터나 거울 회사:왕국이 올 때까지 견고할 거울들」은 이십대 청년인 손자가 할머니에게 거울 만드는 법과 거기에 담긴 기억의 가치를 배우는 과정을 그린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과거사를 이야기하면서 거울 만드는 기계로 거울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풍경은 낯설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다. 울룩불룩한 거울에 비치는 현실과 그 저변에 깔린 과거에의 기억들이 뒤엉키면서 또 다른 삶의 모습이 드러난다.

  

  네 편의 중,단편 소설들 모두 얀 마텔의 소설답게 형식의 파괴라고 할 만큼 독특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를 읽는다기보다 '따라간다'라는 표현이 옳을 만치, 그의 이야기는 풍경을 빚어낸다. 작가가 펼친 상상의 나래, 그것을 천천히 음미하는 독자. 작가가 보여주는 삶의 풍경 속에서 관광객의 기분으로 그 풍경을 바라본다. 그것이 얀 마텔의 작품을 접하는 소감이다.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 그 이야기들을 빠르지 않게 혹은 너무 느리지 않게 여행하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작가. 얀 마텔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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