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크리스토 백작 1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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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5학년 겨울, 진도는 다 나갔고 방학만 기다리는 아이들이 공부를 할 턱이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톱밥을 때는 난로 주위에 아이들을 앉혀놓고 '암굴왕'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암굴왕? 에이 그거 다 읽은 거잖아?'하면서도 수업 대신이라면 뭐든 재밌을것 같아서 첨 듣는 이야기인 척 내숭을 떨었다.

당글라르와 페르낭의 계략에 빠져 점점 지옥의 나락으로 빠져나가는 당테스의 이야기는 똑같았지만 파리아 신부의 보물을 찾은 다음부터의 이야기는 동화책과 달랐다. 선생님은 몬테크리스토백작이 얼마나 대단한 음식들을 먹었는지 얼마나 기가 막힌 보물을 가진 부자였는지 입담 좋게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니들, 세계에서 젤 좋은 요리가 먼지 아냐? 바로 원숭이 골요리야. 원숭이를 식탁 옆에 묶어놓고 약을 먹여서 마취를 시키는 거야. 그리고는 톱으로 살아있는 원숭이의 머리뚜껑을 열고 숟가락으로 그 뇌수를 떠먹는거지. 이게 몬테크리스토백작만 먹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진미였다 이거야....'

나는 이 이야기가 진짠 줄 알았다. 몬테크리스토백작의 완역본이 나오자마자 나는 선생님의 원숭이 골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얼른 사서 봐야지.. 도대체 몇 마리나 따먹은거야? ^^ 아마 선생님은 알베르 남작에게 주었던 하시시를 설명해주는게 멋적어서 원숭이 골요리(?!)를 창안해낸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몬테크리스토백작을 생각하면 어렸을 적 그 추운 교실에서 책상을 밀어놓고 빙둘러앉아 매일 두어시간씩 이야기해주시던 그 선생님이 생각이 난다. 이제 다 자라서 읽어본 몬테크리스토백작은 어렸을 때 입 쩍 벌리고 들었던 그 멋지고 기괴한 선원 신드밧드와는 새삼 다른 느낌으로, 시니컬하고 상처받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다가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 감동이나 재미는 절대로 다르지 않다.

어린 시절 꿈 속에서 순진하게 부러워했던 금은보화(!)나 그 통쾌한 복수들보다는 이제 다른 인물들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걸 보니 나이가 들긴 들었나보다.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좌충우돌 캡 멋지기만한 몬테크리스토백작보다는 중풍으로 누워있으면서도 자존심과 의지를 잃지 않는 누아르티에의 당당함이나 순수한 청년 막시밀리앙의 사랑이 더 즐거웠다.

사실 절대악이 어디있고 절대 선이 어디있겠냐마는 때론 이렇게 이쪽과 저쪽을 확실히 그어놓은 이야기들을 되돌이켜 읽을 때의 즐거움이 있는것 같다. 다른 어떤 영화나 미니시리즈 드라마보다도 강한 플롯의 즐거움이 있는책이 몬테크리스토백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참 그런데 어렸을 때 내 짝궁이 물어봤던 질문이 있다.
백작과 공작, 후작의 차이가 머야?
자작은 알겠는데... 누가 젤 높은건지...
책에서 때려잡은바로는 공작, 백작, 후작 순인것 같던데..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같은건가?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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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5-30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작-후작-백작-남작-준남작 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민음사 번역이 별로라고 해서(구식이라고... ) 안읽었는데, 님 리뷰 보니까 막 읽고 싶어지네요 ^^ 제게도 원숭이 골요리 같은 이야기 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나..
 
환상의 여인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1
윌리엄 아이리시 지음, 최운권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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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는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는데.... 나는 책을 읽을 때 작가의 시대를 고려해주는 독자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책을 읽으며 그 당시에는 정말 획기적인... 혹은 대단한 문학적 쾌거였다... 라는 식으로 책을 소개하곤 하는데 나는 그 당시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시대들에 대한 별다른 지식과 감흥이 없는 사람이기에 내가 속한 이 시대 갑남을녀의 눈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환상의 여인>에 대해 세계 3대 추리소설이라고 하는 평가 역시 194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단한 실망을 할 수 밖에 없다. 추리 소설 많이 안봐서 모르겠지만 이게 세 손가락 안에 들면, 손가락 밖에 꼽히는 작품들은 어쩌란 말인가....

요즘 스릴러 영화들이 얼마나 많냐. 유주얼 서스펙트, LA컨피덴셜, 큐브 등등등등 시작과 끝이 딱 맞아떨어지는, 그리고 한 개의 실타래를 풀어줌으로서 앞의 퍼즐이 다다닥 맞춰지는 그런 영화들을 보아 온 사람들 눈에는 상당히 허술한 점이 많다.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들은 있는데 줄거리가 노출될까 싶어서 말은 못하겠고... 하여튼 조금 서운하다는 거다. 마지막 반전이라는것도 너무나 '규범적'인 결과라고 밖에... --;

어떤 부분은 영화의 점프컷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런 기법의 뒤에는 소설 만이 할 수 있는 '감추기'와 '구라'로 관객을 놀래킨다. 물론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뻥까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플롯이 강하고 '누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추리 소설에서 그런 부분들에 대해 감추고 가는 것은 트릭이 부족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추리소설 형식에 너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만일 이게 영화라면 그런 식의 '감추기'는 관객들에게 순식간에 다 들통날거고 작가와 감독은 다른 방식의 시각적 트릭을 반.드.시 모색해야할테니까.

너무 짠 평가인가? 그렇지만 추리소설의 장점이 뭐냐. 다른 어떤 문학장르보다도 플롯이 세다는거 아닌가? 그런 면에서 마지막에 입으로 줄줄줄 이 놈이 이런 짓을... 저 뇬이 저런 짓을.... 설명해줘야 알 수 있는 내용은 좀 심심하다.

물론 장점은 있다. 내내 욕하고 장점 이야기하려니 좀 부끄럽지만. 초반에 보여지는 작가의 이상한 통찰력들. 이건 플롯만 잘 짜는 추리소설 작가들이 보여줄 수없는 묘한 매력이 분명히 있었다. 이를테면 모자를 벗으면 누구의 눈에도 띌 수없는 평범한 여자가 그 모자를 씀으로서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게 된다.... 사실 이런 관찰력은 굉장히 섬세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된다.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는 단 하나의 설정. 가끔 살다보면 그 모자를 쓴 여인 같은 느낌의 순간들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음식이 그 위에 얹혀진 작은 토핑 하나 때문에 의미가 달라지는 순간들 말이다. 차라리 이 작가가 그 순간을 물고 늘어졌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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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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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섬>을 읽었을 때는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중학생 수준에는 꽤 어려운 책이었다. 섬에서 뭘 어쨌다는거야? 소설도 아닌 것이 고양이나 묻고 음.... 이런 수준으로 이해했었다. 하핫. 그런데 그 어린 마음에도 기억 나는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까뮈가 쓴 서문이었다. 맨 마지막에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도저히 이 문장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어떤 책 한권에 바치는 찬사 중에 이보다 더 아름답게 쓸 수 있을까? 이 헌사를 읽을 무렵의 나는 스무살이 당당 먼 어린 아이였지만 까뮈의 스무살이 무척이나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쟝 그르니에의 다른 책들은 안읽어봐서 모르겠지만 <섬>은 편안하고 게으르며 느슨할 뿐 아니라 따뜻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 까뮈가 쓴 이 아름다운 서문 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누군가의 스무살에 빛나는 기억을 안겨준 책이라면 읽어볼 만 하지 않겠나? 그것도 그 누군가가 까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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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소설전집 1 - 생명연습 외 김승옥 소설전집 5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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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김승옥씨...라고 해야하나? 김승옥 선생님이라고 하자. 하여튼 그 분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다들 아는지 모르겠지만 김승옥 선생님은 소설가로서도 유명하지만 한국영화사에 몇 안되는 전문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 수업에 시나리오를 가르치러 왔었고 솔직히 말해서 수업 엄청 재미없었다. 기독교식의 꽉 막힌 세계관을 가지고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를 하는 그 양반... 정말이지 지겨웠었다.

그런데 다들 나처럼 그 수업을 지겨워하면서도 희한하게 수업시간엔 꼭 들어가는 것이다. 나 참... 왜들 배신을 때리는겨? 물으면 그들은 '김승옥'이니까라고 대답했다. 생명연습도 안읽어봤니? 우씨, 나도 자존심이 있지 그들이 그런 식으로 나오면 쫀심 상해서라도 나는 끝까지 안읽고 만다. 곱게 양복 차려입고 넥타이까지 매시고 춘천인가 꽤 먼곳에서 우리를 가르치러 와주셨던 김승옥 선생님... 그 분과의 한학기는 그렇게 곱게 끝났다. 학점은? 기억이 안나는 걸 보아 보나 안보나 b 아님 c 였겠지?

그리고 나는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불현듯 생각이 났다. 아, 그 양반.... 결국 '자존심' 안 내세워도 될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보고 말았다. 가슴이 쿵 내려앉고 쨍하게 정신을 일으켜세우는 그의 60년대를 말이다. 아, 이게 왠일이란 말인가... 이게 그 교회 목사님처럼 넥타이 단정하게 매던 노인네의 청춘이란 말인가... 나는 울고 말았다.

그의 문장들은 맑고 선명하며 섬세하다. 그리고 시니컬한 듯 통찰력있게 후려치는 카리스마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이 소설들이 수십년 전에 이미 씌여진 것이라는 것을 절대 느낄 수 없게 하는 그 세련된 언어와 삶에 대한 비수같은 통찰력들에 뒤늦게 찬사를 보낸다.

아, 정말이지 나는 바보같았다. 대작가의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가르쳐달라고 애원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ㅠㅠ 후회해봐야 무엇하겠나. 그저 내 수중에 있는 그의 글을 되씹고 그의 시대를 되돌이켜 사랑하며 그의 청춘의 눈으로 나와 내 시대를 바라보는 연습을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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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디아의 비밀 비룡소 걸작선 21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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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까 어렸을 때는 참 비밀도 많았다. 이건 너와 나 만의 비밀이야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마...라고 말하며 새끼 손가락을 걸고 맹세하던 많은 일들. 생각해보면 얼토당토 않은 것들이었다. 친구 한 명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동네로 탐험(!)을 가서 발견한 붉은 황토 마당을 가진 이상한 이층 양옥집. 우린 틀림없이 그 집에 외계인이 산다고 믿었고 그 집을 알고 있는건 그애와 나만의 비밀이었다. 동네에서 맨날 공기놀이(전라도에서는 작자꾸리라고 한다 ^^)를 같이 하던 애와 함께 땅파고 공깃돌을 묻으며 그것도 우리만의 비밀이라며 새끼 손가락을 굳게 걸었었다. 그리고.... 다 잊어버렸었다. 그런데 클로디아 고 맹랑한 계집애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하나둘 다 생각이 난다. 음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비밀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거라고....? 그래서 그땐 그렇게 하루하루가 빨리 갔었나? 매일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애들과 하는 놀이와 똑같은 말다툼에도 그렇게 지루한 줄 몰랐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솔직히 클로디아라는 애는 좀 얄미울 정도로 꼼꼼하고 나의 열두살과 비교해볼 때 너무 똑똑한 경향이 있어서 처음에는 정이 안갔다. 무슨 애가 이렇게 지적이냐....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조금은 안도할 수 있는게 생기더군. 히히.. 그래도 역시 넌 애야. 그렇지만 니가 크면 아주 까탈스럽고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되겠구나.

이 책은 비밀에 관한 책이다. 그러므로 클로디아의 비밀이 뭔지는 불문에 부치겠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났을 때 조금 아련하고 기분좋은 추억에 잠길 것이라는 건 보장하지. ^^ 아마 갑자기 비밀 하나씩 만들고 싶어질 것이라는 것도. 요새 난 비밀이 없었다. 남 뒷다마 깐 후에 서로 입단속하는 비밀 말고 말이다. 그래서 나도 비밀을 만들었다. 뭐냐고? 비밀이다. 하하하핫.

<클로디아의 비밀>은 어른이 된 후 오래간만에 읽은 동화책이다. 나이가 먹을 수록 뭐든 복잡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면에서 어른이 되어서도 동화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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