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는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는데.... 나는 책을 읽을 때 작가의 시대를 고려해주는 독자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책을 읽으며 그 당시에는 정말 획기적인... 혹은 대단한 문학적 쾌거였다... 라는 식으로 책을 소개하곤 하는데 나는 그 당시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시대들에 대한 별다른 지식과 감흥이 없는 사람이기에 내가 속한 이 시대 갑남을녀의 눈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환상의 여인>에 대해 세계 3대 추리소설이라고 하는 평가 역시 194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단한 실망을 할 수 밖에 없다. 추리 소설 많이 안봐서 모르겠지만 이게 세 손가락 안에 들면, 손가락 밖에 꼽히는 작품들은 어쩌란 말인가.... 요즘 스릴러 영화들이 얼마나 많냐. 유주얼 서스펙트, LA컨피덴셜, 큐브 등등등등 시작과 끝이 딱 맞아떨어지는, 그리고 한 개의 실타래를 풀어줌으로서 앞의 퍼즐이 다다닥 맞춰지는 그런 영화들을 보아 온 사람들 눈에는 상당히 허술한 점이 많다.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들은 있는데 줄거리가 노출될까 싶어서 말은 못하겠고... 하여튼 조금 서운하다는 거다. 마지막 반전이라는것도 너무나 '규범적'인 결과라고 밖에... --; 어떤 부분은 영화의 점프컷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런 기법의 뒤에는 소설 만이 할 수 있는 '감추기'와 '구라'로 관객을 놀래킨다. 물론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뻥까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플롯이 강하고 '누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추리 소설에서 그런 부분들에 대해 감추고 가는 것은 트릭이 부족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추리소설 형식에 너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만일 이게 영화라면 그런 식의 '감추기'는 관객들에게 순식간에 다 들통날거고 작가와 감독은 다른 방식의 시각적 트릭을 반.드.시 모색해야할테니까. 너무 짠 평가인가? 그렇지만 추리소설의 장점이 뭐냐. 다른 어떤 문학장르보다도 플롯이 세다는거 아닌가? 그런 면에서 마지막에 입으로 줄줄줄 이 놈이 이런 짓을... 저 뇬이 저런 짓을.... 설명해줘야 알 수 있는 내용은 좀 심심하다. 물론 장점은 있다. 내내 욕하고 장점 이야기하려니 좀 부끄럽지만. 초반에 보여지는 작가의 이상한 통찰력들. 이건 플롯만 잘 짜는 추리소설 작가들이 보여줄 수없는 묘한 매력이 분명히 있었다. 이를테면 모자를 벗으면 누구의 눈에도 띌 수없는 평범한 여자가 그 모자를 씀으로서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게 된다.... 사실 이런 관찰력은 굉장히 섬세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된다.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는 단 하나의 설정. 가끔 살다보면 그 모자를 쓴 여인 같은 느낌의 순간들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음식이 그 위에 얹혀진 작은 토핑 하나 때문에 의미가 달라지는 순간들 말이다. 차라리 이 작가가 그 순간을 물고 늘어졌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