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내와 채윤이를 데리가 처가에 왔다. 신년에 첫 출근일에 휴가까지 써가며 처가에서 4일을 지내기로 한 건 이제 만 16개월이 넘은 우리딸 채윤이로부터 엄마젖을 떼기 위함이다.
태어나서 엄마젖이 잘 안나오는 생후 일주일 정도까지만 분유를 먹고 그 외는 줄곧 엄마젖만 먹어온 채윤.
하루에도 열두번도 더 엄마젖을 먹고 새벽에도 자다깨서 젖을 물고 잠이드는 일이 서너번 있어왔다.
보통 돌이 좀 지나면 젖을 뗀다고 하는데, 우리는 16개월이 되어도 엄두도 못 내었다.
채윤이에게 엄마젖은 필수불가결의 관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가 밤에도 젖을 못 잊어 밤잠을 푹 못자고 아기 엄마는 더더욱 잠을 못 이뤄 매달 체중이 줄어 이제는 처녀 때 보다 살이 더 빠진 정도다.
시어머니(울엄마)는 벌써 전부터 젖을 떼라고 심각하고 충고를 하셨으나, 내가 '자연스럽게 해보자'는 핑계로 차일피일 젖떼는 시기를 미루고 있었다. 몸이 많이 약해진 아기엄마가 "신년에 하루 휴가 내어 4일 연휴동안 친정 가서 같이 젖을 떼보자"고 했다. 젖을 떼는 건 아기만 힘든 게 아니라 아기엄마도 힘들다. 젖을 주지않고 우는 아기를 달래기 얼마나 어려운가. 밤에는 물론이고 낮에도 엄마젖을 잊을 수 있도록 열심히 놀아주고 달래줄 사람이 필요하다.
또 아기엄마 입장에서는 젖을 말리는 몸살을 겪어야한다고 한다.
포털에서 젖떼기를 검색해보니, 다들 전쟁을 치룬 것 같다. 첫날밤은 너무 힘들어 결국 새벽녁에 아기가 너무 불쌍해보여 젖을 물렸다는 이야기, 결국엔 보통 사나흘 만에 젖을 그럭저럭 떼는 것 같다. 모두들 처절하고 비장하게 젖떼기를 하였고, 엄마의 독한 마음 없이는 젖을 떼기가 어렵다고 되어있었다.
아내는 처가에 와서 압박붕대와 빨간약(아까징끼?)을 샀다. 처음에는 레몬즙을 젖꼭지에 발라 젖을 찾는 채윤이에게 들이미니, 채윤이는 기겁을 한다. 얼마나 맛이 신지 채윤이 표정이 정말...
두번째는 젖꼭지와 가슴에 빨간약을 발랗다. 요즘 나오는 빨간액은 옛날 것 보다 빨갛지가 않고 불그래한 정도라 장모님이 옆집에서 옛날 아까징끼를 구해오셔서 다시 발랐다. 그리고 그 위에 대일밴드를 바르고, 압박붕대로 가슴을 동여맺다. 2차로 채윤이가 젖을 보채니 "엄마 아야해"하면서 붕대를 조금 까서 젖을 보여주자, 뻘건 가슴에 대일밴드가 붙여진 것을 보고는 채윤이 무척 놀란 모양이다. "우!"하면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엄마의 아픔을 두렵고 놀랐다는 시늉을 보였다.
그렇게 해서 오후와 저녁을 보냈다.
채윤이는 밤 10시경이면 잠이 와서 보채기 시작하고 이때 젖을 먹고 나면 다시 생기를 찾아 조금 놀다가 다시 잠이 와서 보채고 다시 젖을 먹고를 반복해 12시가 가까이 되야 제대로 잠을 자기 시작하는데, 나는 오늘 밤이 정말 두려웠다.
어제만 해도 "채윤아, 내일 1월1이부터는 젖을 못 먹어요. 이제 채윤이도 젖먹는 아기가 아니에요"라고 설명을 해줬지만, 채윤이로서는 상상도 못했단 청천날벼락이었으리라...
오늘 처가로 오는 차안에서 엄마젖을 먹고 있는 채윤이를 보니 내가 다 가슴이 떨렸다. '아... 이것이 일생에서 마지막으로 먹는 엄마의 젖이라니...'
예상대로 밤 10시가 넘어가자 채윤이는 졸려서 잠투정을 한다. 전에 같았으면 엄마 품에 덮석 안겨서 젖을 달라고 웃옷을 지가 알아서 올려댔는데, 아까전의 쇼를 잊지않고 있어서인지, 젖을 달라는 액션을 아예 안하면서 괴로운 듯.. 얼굴에 손을 가리고 운다. 정말 괴로운 사람처럼 표정을 짖는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이 작은 아기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젖을 강제로 떼도록 해야한단 말인가?! 내 생각엔 이건 순전히 조물주의 잘못이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엄마젖을 조금씩 덜 찾게 되어 자연스럽게 애가 엄마젖을 안 찾을 수 있게 해주는게 조물주로서의 도리인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채윤이는 정말로 괴로워서 우는 성인처럼 울먹이면서 버티다가 드디어 11시 좀 넘어 울다 잠이 들었다. 이제 새벽 녁이 문제다. 잠에 취해서 잠깐 취한 아기에게 엄마찌찌가 아프다고 설명을 하면 이해를 할까?
사람의 인생은 참으로 힘든 일이 많다. 이제 16개월된 아기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인생의 한 지점이다.
우리는 누구나다 이렇게 엄마젖을 떼왔다. 나도 그랳고 아내도 그랬다.
그런데 아빠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아니냐고? 아내가 물었다. 그래, 난 우리 딸이라면 죽고 못사는 극성 아빠다.
하지만, 딸에게는 나름 엄하고도 따뜻한 아빠, 일관적이고 합리적인 역할의 아빠가 필요하다.
아빠라는 사람이 한 순간 순간의 작은 고통에 대해서 안달하고, 하고 넘어가야할 일에 대해서 잠시의 극복심도 없이 피하려고 하면 안될 것이다.
아기를 위해서도 아내를 위해서도 언젠가는, 아니 가능한한 빨리 젖을 떼는 게 좋다.
잠깐의 괴로움이 있는 것이라면 아빠가 잘 보듬어 줄 뿐이다.
그런면에서 이번에 과감히 젖 떼기를 시도하는 아내가 나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는 셈이다.
우리 아기, 오늘은 아침까지 그냥 풀스트레이트로 잠을 곤히 잘 자거라~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언제 젖을 먹은 아기였냐는 식으로 젖을 잊고 빠빠를 잘 먹어주길 바란다.
아빠의 역할에 대해서 난 좀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자성해야할 것 같다.
나는 아기를 위해서, 아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지,
내 만족감을 위해 딸을 키우지는 않도록 해야한다.
잘 자라 우리 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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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의 글을 쓰고 나서 나는 바로 노트북을 베게 삼아 엎드려 잠이 들었다.
새벽 2시경 채윤이 우는 소리에 깨어 옆방으로 갔다.
채윤이는 거의 1시간 동안 서럽게 울었다.
16개월을 먹던 젖이, 하루 밤 사이에 이제 영영 못 먹게 되었는데,
안서럽게 울까...
잠깐 울음을 멈췄다가 다시 엄마품만 확인하고는 다시 서럽게 울기를 반복한다.
장모님이... 멍멍이가 온다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해서 억지로 울음을 그치게 하여 잠들게 하셨다.
다행히 지금은 잔다.
채윤아... 아침까지 어떻게든 푸욱 잘 자라.
아침에 아빠가 재미있게 놀아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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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채윤이는 8시반에 일어났다. 다행히 어제 2시대에 1시간 운 이후에는 아침까지 계속 잤다는 것이다.
원래 밤사이 젖을 찾느라 서너번을 깼는데, 하루만에 나아진 셈이다.
아침에 일어나자 말자 <뽀로로>를 틀어달라고 해서 틀어줬다. 원래 아침부터는 안 보여주는데, 어젯밤에 힘들었을텐데 그에 대한 보상으로 뽀로로 정도야 얼마든지 틀어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아침까지 먹였다. 배가 고팠던지 잘 먹었다.
우리 아기... 아기들이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뒤끝이 없다.
간밤에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데도, "엄마 찌찌 아파"라고 얘기하면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착하게 밥을 먹는다.
이제 남은 3일간 좀더 잘 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