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이란 어떤 일인가 - 기획의 발상부터 인간관계까지
와시오 켄야 지음, 김성민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편집자는 간혹 판권에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 이름 석자로 존재하지만, 그나마도 저자의 이름이나 출판사의 이름에 가려버린다. 사실 판권에 편집자의 이름이 없는 책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모든 책에는 반드시 편집자가 존재한다. 저자로부터 온 날원고를 눈 빠지게 들여다보며 다듬었을 편집자의 노고가 한 권의 책 구석구석에 스며 있다. 편집자의 눈길과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그 책에 대한 애정은 저자보다 편집자가 더 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편집자를 두둔한다고 내가 ‘편집’이나 ‘편집자’에 대해 그럴듯한 신념을 내세울 만한 처지는 아니다. 편집자들은 책의 생산자이지만, 사실 나는 책의 소비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와시오 켄야는 일본의 출판 시장과 출판 과정, 편집자의 정체성과 역할, 편집자로서의 그의 경험 등을 총체적으로 들려주면서,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편집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더군다나 읽기만 좋아해서는 더더욱 편집자가 되기 어렵다고 말이다. 그는 ‘책의 생산자’로서의 유능한 편집자를 강조하며, 편집자는 ‘책 읽기’가 아니라 ‘책 만들기’를 좋아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소비자적 성향이 아주 강하다. 이 외에도 그는 편집자의 적성으로 여러 가지를 들고 있다. 그에 따르면 나의 경우 편집자로서는 거의 절망적이다.

“편집자가 되려면 우선 호기심이 왕성해야 한다.”

내 관심권 내에 들어야 호기심이 생긴다. 관심권도 그다지 넓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베스트셀러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 편이다. 나중에 주로 뒷북치는 형이다. 열린 시야를 가지려고 애는 쓰지만, 내 눈과 귀는 어느새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으로 돌아가 있다.

“편집자에게는 풋워크가 요구된다. 행동력이라 할 수 있다. 뭐든 가벼운 마음으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순발력이다.”

이 부분에서 남 앞에서는 전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을 예로 들고 있는데, 적어도 나는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낯선 사람에게 전화를 할 일이 생기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건다. 주위 사람보다 전화를 받을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자존심이라기보다 똥고집을 부린다. 하지만 잘 사과할 줄은 안다. 한 번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닦아줘도 될까.

“‘인간성은 나쁘다’ 하더라도 편집자만큼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오래 배기기 힘든 작업도 없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딱 그만큼만 사람을 좋아할 뿐, 남보다 유별나게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늘 꿈을 잃지 않는 자세도 필요하다.”

여기에서 꿈은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 이런 저자의 글을 언젠가는 꼭 받고 싶다. 이런 그림을 넣어보고 싶다’ 등등을 의미한다. 〈빨강머리 앤〉을 아름다운 우리말 문장을 살려서 최고의 우리말 판본을 만들어보고 싶긴 하다.

“사회, 시대, 문화의 동향이나 변용에도 끊임없이 관심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지도 못할뿐더러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편이다.

“술도 못 마시는 것보다는 마실 줄 아는 편이 낫다.”

술은 조금도 못 마신다.

“취미가 많은 것도 나쁘지 않다. 단 일과 관련된 취미를 가지는 게 좋다.”

책, 게임, 십자수, 홍차, 음악 외에는 즐기는 취미가 별로 없다.

“편집자는 과묵하기보다 약간은 말이 많은 편이 좋다.”

나는 말이 많지는 않다. 낯선 사람에게는 과묵하기 그지없다.

와시오 켄야가 들고 있는 편집자의 적성은 내가 극복하기에 너무 버거운 벽이었다. 그러나 내게 편집자는 ‘첫 독자’라는 점에서 언제나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또 가끔은 ‘책 읽기’를 훨씬 좋아하지만 가끔은 ‘책 만들기’에 대한 욕구를 주체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와시오 켄야가 들고 있는 편집자의 적성을 모두 갖춘 편집자를 유능한 편집자라고 치고, 누가 나에게 유능한 편집자와 무능한 편집자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과감히 무능한 편집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채산성에 상관없이 내가 만들고 싶은 책만 만들 수 있게 되길 꿈꾸는 무능한 편집자 말이다. 굳이 나의 본질을 바꾸지 않더라도 유능한 편집자가 될 수 있는 날이 오길 꿈꾼다. 뭐, 안이한 철부지 생각이라도……, 생각도 못 하나? 꿈도 못 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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