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증명 - 상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9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 해문출판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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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면서도 동양인인 '조니 헤이워드'가 고급 호텔 레스토랑의 엘리베이터에서 죽는다. 일본과 미국에서 제각기 수사를 진행하게 되고 또 다른 한 남자는 아내의 실종을 뒤쫓는다. 미궁에 빠져버릴 듯한 조니 사건은 우연히 발견된 밀짚모자와 밀짚모자가 나오는 시집이 등장하면서 서로 다른 사건과 수많은 사람들의 연결고리가 된다.

엔딩에 이르러 평행선을 달리던 사건들이 종결되고 그 사람들이 하나로 엮이게 될 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속죄, 죽음, 포기로 '인간임을 증명'하는 사람들.

너무 많은 우연과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들이 많아 좋은 '추리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정말 좋은 '작품'이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인간임을 증명'하고 싶은 사람들의 우울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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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정벌레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9
S.S. 반 다인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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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타의 매>에 이어 읽은 책인데 여러모로 대비되는 작품이다. 지독히 현학적이며 고급 취향을 가진 파일로 밴스가 탐정으로 등장하는데, 가진 것은 몸뿐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한 샘 스페이드와는 반대쪽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의 탐정인 파일로 밴스는 평소에는 연주회와 식도락, 예술 쪽의 관심을 가지고 살다가 사건이 발생하면 달려가 지방검사인 매컴과 형사부장 히스를 마음껏 비웃으며(?)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며 사건을 해결한다.
그는 살인사건이 발생한 현장을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범인을 알아내는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잘난 척까지 하면서 범인을 알려주지 않으니 파일로 밴스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길 수 밖에...

책의 직접적인 소개는 없었지만 반 다인의 팬이라면 선택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파일로 밴스의 지식은 이집트에 관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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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 단편
신카이 마코토.사하라 미즈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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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별의 목소리》는 아주 유명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신카이 마코토’라는 일본의 젊은 애니메이션 감독의 일인 작품으로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인 《별의 목소리》를 사하라 미즈가 더욱더 서정적인 만화로 훌륭히 재현해 냈다.

2046년, 지구.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에 있는 노보루의 휴대 단말기로 메일이 날아든다. 나가미네가 그리움과 함께 외로운 마음을 노보루에게 띄우는 메일이다. 노보루와 나가미네는 그저 평범한 중학생들에 불과했지만, 나가미네가 우주 생명체의 흔적을 쫓는 우주 탐사대에 선발되면서 그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같은 세계에서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못하는 어린 연인들을 잇고 있는 것은 메일뿐이다. 그것도 나가미네가 지구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메일이 도착하는 기간은 더욱더 길어진다. 며칠, 몇 달, 8년 7개월.

머나먼 우주에 있는 나가미네는 외롭고 그리워서 끝까지 노보루를 기억에서 놓지 않으려 했지만, 지구에 있는 노보루는 그립고 외로워서 나가미네를 기억에서 놓으려 한다. 여전히 16살 풋풋한 나가미네를 두고 노보루는 25살의 어른으로 화살보다 빠른 지구의 시간을 견딘다. 노보루의 시간과 공간에서 점점 멀어지는 나가미네의 지독한 외로움과 그리움만큼 나가미네의 시간과 공가에서 점점 멀어지는 노보루의 그리움과 외로움도 지독했을 것이다. 아마도 노보루와 나가미네는 서로의 존재 때문에 더욱 외로워하고 또한 더욱 그리워했을 것이다.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가득 찬 시간의 끝은 8년 7개월 전에 나가미네가 노보루에게 보낸 메일이다. “있잖아, 노보루… 우리 우주와 지상으로 갈라진 연인 같다.” 이제 노보루가 긴 외로움과 그리움을 끝내고 나가미네를 만나러 간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그동안 서로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라도…….

《별의 목소리》는 나가미네의 시공과 노보루의 시공을 번갈아 보여주지만, 무수한 별들을 사이에 둔 그들의 시공은 그들이 함께한 추억 안에서만큼은 하나로 합쳐진다. 《별의 목소리》를 읽는 내내, 나는 아주 외롭고 그리운 기분에 휩싸였다. 나와 시공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너무도 두려운 일이다. 청상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짐작해 보려 했던 때가 있었다. 한 해, 두 해, 홀로 망자가 된 연인보다 더 오래 살아갈수록 사진 속의 파릇한 청춘의 연인은 위로가 되기보다 그리움도 삭이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게 할 것 같았다. 저세상과 이세상의 시공처럼 막막한 시공을 사이에 둔 노보루와 나가미네의 만남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나도 그만 외롭고 싶다. 나도 그만 그립고 싶다. 지금 노보루가 나가미네를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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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타의 매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
대쉴 해미트 지음, 양병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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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추리소설에서의 살인은 어떨까? 살인자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살인하는 방법도 기이하다. 트릭이 등장하고 살인자와 탐정은 치열한 두뇌 게임을 벌인다. 범인이 누구인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였는지를 알아내는 것 또한 탐정의 임무이다.

이런 고급스러운 범죄자는 이제 없다. 때려 죽이건 총으로 쏴 죽이건 가장 살인자스럽게 살인을 한다. 이런 살인자들에게는 '회색 뇌세포'의 포와로보다는 몸으로 부딪히고 여자를 좋아하는 탐정이 어울린다. 샘 스페이드가 그러하다. 그는 여자를 좋아하며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하고 머리를 쓰는 것보다 몸으로 맞서는 걸 즐기는 듯하다. 비정해 보이기까지 하는 샘 스페이드. 이게 하드보일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샘 스페이드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홈즈나 포와로, 밴스 같은 초인들을 만나는 것도 큰 즐거움이고, 사람 냄새 나는 샘 스페이드와의 만남도 매우 즐거웠다.

몰타 섬의 기사단이 바친 매보다 더욱 빛나는 샘 스페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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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정원 - 독일문학 다림세계문학 2
미하엘 엔데 글, 곽선영 그림, 진정미 옮김 / 다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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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의 유고작 《망각의 정원》은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에 미완성작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책이다. 이 책이 미하엘 엔데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것에만 혹해서 열심히 읽어나갔다가 크게 낭패감을 느꼈다. 상상력이 빈곤한 나로서는 이야기의 끝이 없으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내 마음대로 나머지 이야기를 지어나가도 가장 상식적으로 추측해 보는 수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미하엘 엔데의 완성작으로서의 《망각의 정원》을 이제 영영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러나 책을 고를 때 내게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하는 ‘미완성작’이라는 사실에 크게 개의치 않고 미하엘 엔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한 번쯤 읽을 만하다.

《망각의 정원》은 누구도 꿈꾸지 않는 도시에서 특별한 꿈을 꾸는 소녀 소피헨의 ‘망각의 정원’ 모험담이다. 소피헨이 원래 살고 있었던 도시 노름과 망각의 정원은 현관문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지만 서로 완전히 대조적인 곳이기도 하다. 풍경도, 살아가는 생명체도, 그 생명체가 살아가는 방식도 아주 다르다.

노름 시는 모든 것이 일정한 규격에 들어맞도록 계획되고 재단된 공간이다. 도시 전체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바둑판처럼 지루하게 늘어서 있고, 주소를 잊어버리고 한순간의 실수로 남의 집에 들어가도 자기 집이라고 착각할 만큼 집 안 풍경이나 사람들의 외모, 옷색깔, 행동 패턴, 생각까지도 전부 똑같다. 노름 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노름 시의 가장 큰 미덕은 남과 똑같아지는 것이다. 남과 달라지는 어떤 일탈도 허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모든 것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똑같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노름 시의 사람들에게 금기시되어 있는 것은 꿈을 꾸는 일이다.

'망각의 정원'의 풍경은 지금껏 장황하게 늘어놓은 노름 시의 풍경과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이 살아가고 있고 모든 일이 일어난다. 망각의 정원에 똑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으며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존재이다. 다만 이름이 없을 뿐이다. 망각의 정원에 내려진 유일한 저주는 '이름이 없다'는 것뿐이다. 망각의 정원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이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어떤 기억도 잡아두지 못한다. 아무것도 오래도록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원초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이렇게 완전히 상반되는 두 세계를 잇고 있는 것이 노름 시의 공터에 덜렁 있는 현관문과 소피헨이다. 노름 시와 망각의 정원은 대조적인 공간이지만, 진정한 생명력과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모두 반쪽짜리 공간이다. 김춘수의 시 <꽃>-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처럼, 망각의 정원에 '이름'을 부여하고 노름 시에 잃어버린 꿈을 되찾아줄 사람은 소피헨이다. 그것이 미하엘 엔데가 마지막까지 소피헨에게 걸었던 희망일 것이다. 그의 부재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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