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잠 동서 미스터리 북스 125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문영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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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셜록 홈즈도 파일로 반스도 아닙니다. 경찰이 샅샅이 뒤지고 난 장소에서 부러진 펜 같은 걸 집어들고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따위의 재간을 부릴 수 없거든요'
이전 시대의 추리소설과 하드보일드의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필립 말로의 말이다. 말로는 일당 25달러를 받고, 그 25달러도 술과 기름값으로 써버리는 좀 더 현실스러운 탐정이다. 악녀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총알을 박아넣을 수 있는 말로다. 비정한 시대의 고독한 말로는 하드보일드 그대로이다.
더 이상 예술적인 범죄는 존재하지 않으며 예술적인 탐정도 죽었다. 포와로 시대라면 경감정도였을 말로는 하드보일드 세계에서 새로 태어났다.

렉스 스타우트의 단편 <탐정놀이>의 니어로 울프를 본 것도 즐거움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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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이창식 번역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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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faction) 붐을 일으키면서 여전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다빈치 코드》는 시온이라는 비밀단체가 은밀히 지켜온 성배를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실감나게 풀어나가기 위해서 댄 브라운이 선택한 방법은 이른바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합성을 일컫는 팩션이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소설에 나오는 예술작품과 건물, 자료, 비밀 종교의식 들에 대한 모든 묘사는 정확한 것이다.”라고 사실을 명백히 전제함으로써 시온 수도회나 오푸스 데이, 성배의 정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들에 대한 기호학적 해석 등등에 신빙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 신빙성은 시종일관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그것은 소설가로서 댄 브라운이 의도한 바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신빙성이 진실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빈치 코드》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비난도 많이 받았는데, 소설은 본질적으로 허구이다. 그 허구를 통해서 진실된 가치를 지향할 뿐이다. 소설이 역사서가 아닌 다음에야 사실과 허구를 가려낸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팩션에서 그동안 몰랐던 지식을 어설프게 얻기를 바라지 않고 소설적 재미만 기대한다면, 《다빈치 코드》는 더없이 잘 만들어진 대중상품이다. 아더왕의 전설에서 영화 ‘인디아나 존스’나 ‘툼 레이더’ 등에 이르기까지, ‘성배’는 신이 아닌 인간의 호기심과 경외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모티프이다. 그러나 성배의 존재 유무에서부터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 가장 유력한 설은 성배가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열두 제자에게 포도주를 돌린 신성한 잔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빈치 코드》에서는 이 성배가 예수와 결혼했다는 신성한 여성 마리아 막달레나와 그 후손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탈바꿈한다. 아니, 그렇게 탈바꿈할 뻔했다. 내가 왜 ‘뻔했다’라고 표현을 바꿨는지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면 알 것이다. 사실 댄 브라운으로서도 ‘성배는 이것이다’라고 명확하게 제시하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성배가 예수의 신성을 해치고 교회를 붕괴시킬 위험한 물건이라는 판단이 성배를 감추게도 하고 그것을 쫓게도 하면서 이 소설을 이끌어나간다. 그런 종교적 논란은 현실에서도 일부 있었다. (사실 나는 마리아 막달레나와의 결혼이 어째서 예수의 신성을 해치는 요소로 작용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부활 이전의 예수는 분명 인간이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책은 종교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소설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내게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재미있었다. 흥미로웠다. 팩션에서 지식으로서의 ‘사실’을 가려내려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 종교적 코드를 객관화시키고 재미만을 추구한다면, 누구나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문학성 같은 어설픈 잣대도 들이대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문학성을 추구한 작품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저 어느 따분한 하루, 좀처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한 번쯤 이 책을 손에 들어도 손해 볼 것은 없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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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수확 동서 미스터리 북스 71
대쉴 해미트 지음, 이가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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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부터가 비정한 포이즌빌이다. 갱들의 무법천지에서 주인공은-샘스페이드라면 어땠을까- 갱들과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포이즌빌을 대청소한다. 갱 못지 않은 의뢰인과 역시 갱 못지 않은 샌프란시스코 지국 소속의 탐정간의 대결이다. 탐정이 포이즌빌의 대청소에 개입한 목적이 석연치 않은 것은 흠이다. 의뢰인의 의뢰 철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일에 착수하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큰 의문이었다.
하지만 작품 내내 등장하는 시니컬한 탐정 특유의 매력은 샘 스페이드가 탄생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시체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등장해 무감각해지고 거친 범죄의 세계는 하드보일드가 뭐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의 또 하나의 매력은 뒤에 실려있는 심농의 두 단편이다. <세 개의 렘브란트>와 <살인자>가 그것인데 <세 개의 렘브란트>는 얼핏 단순한 듯 하지만 인간의 사고의 헛점을 잘 짚어낸 좋은 단편이다.
메그레 경감이 등장하는 <살인자>도 마찬가지로 재미있었다.

조르즈 심농의 다른 소설을 기대하게 된 것도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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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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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가, 바다가, 노을이, 아침 햇살이, 어선이, 집어등이,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팥죽이 내 오감을 자극한다. 당장 나를 얽고 있는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과 음반 하나를 골라 배낭에 짊어지고 남루한 여행자의 행색으로 길을 떠나고 싶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일상에서 멀어지고 바다와 육지를 이어주는 포구에 가까워질수록 짭조름한 갯내 어린 바닷바람과 눈 시리도록 푸르게 펼쳐진 풍광에 뒤에 두고 온 일일랑 까맣게 잊고, 곽재구 시인처럼 맑은 시정에만 취할 수 있을까.

곽재구는 발길 닿는 대로 우리나라의 포구들을 터벅터벅 돌아다니며 광대한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을 시인 특유의 감성으로 풀어놓았다. 그의 유려한 시적 언어는 그의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을 너무나 아름답게 포장한다. 시인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외로움과 고단한 삶까지도 고즈넉해지는가. 그가 내 눈앞에 생생하게 보여주는 해 뜨고 해 지는 바다 풍경은 내가 그와 함께 바다를 마주하고 있을 때 내게 위로와 감동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사라지고 나 홀로 바다를 등지고 뒤돌아보았을 때는 암담한 마음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내가 결코 외면하지 못하는 현실 건너편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현실 너머에 있는 바다를 등질 때도 가슴에 그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름답고 선하기만 한 그에게 선경 뒤에 현실을 힘겹게 견디고 있는 사람의 고단함이 보이지 않냐고 비난의 화살을 던질 수는 없다. 그는 외부인이자 여행자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충실히 포구들을 감상했고, 그 감상으로 잠시나마 내게 충분한 위안이 되어주었다.

사람 한 명 지나가기조차 버거운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한 뼘 마당조차 없는 집들이 다닥다닥 엎디어 있는 달동네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어느 외국인 건축가의 말에 정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어도, 맛조개나 캐면서 시를 쓰고 싶다는 그가 현실에서 한 발짝 비껴나 시종일관 방관자의 시선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곽재구의 포구 기행》에서만큼은 그의 아름다운 시정으로 현실의 고단함과 너무나 쿨하지 못한 인생이 달콤한 위안을 받는다. 어차피 그도 나도 모든 현실에 발 디딜 의무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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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31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평역에서'라는 그의 데뷔 시가 그렇게도 좋더니
기행문도 참 서정적으로 쓰는 것 같아요.^^

zipge 2005-10-3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정말 시인이 쓴 글 같았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현실을 어쩌지 못하는 나는 현실에서 홀가분한 듯한 그가 그렇게 질투날 수 없었지요. 그래서 마구 시기했습니다.^^;
 
빈센트의 구두 - 하이데거, 사르트르, 푸코, 데리다의 그림으로 철학읽기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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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 습득의 방법이라면 단연코 '눈으로 보는 것'일 것이다. 영상과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시각적인 것'에 묻혀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회화는 철학자들에게 자주 인용되어 왔는데, 회화는 철학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뿐 아니라 현실과 닮았으면서도 현실과 자유로운 자율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과 그림의 만남을 통해 후기구조주의 철학자인 푸코와 데리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와 사르트르를 살펴보게 된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통해 '재현의 재현'이라는 개념을, 쉬베의 <디뷰타의 혹은 그림의 기원>에서는 그림의 제목 그대로 '그림의 기원-드로잉의 기원'을 보여주는데, 두 그림에서 전자는 화가 자신을 재현하지 못했다는 점과 후자의 모델과 그림 사이에서의 눈멂은 서로 닮아 있다.

사르트르의 미의식은 무(無)였다. 마티스의 빨간 양탄자처럼 현실에서의 사물에는 감동이 없는 반면 화폭에 옮겨져 마티스의 그림이 되었을 때 우리는 감동을 느낀다. 현실에서는 감동이 없는 사물이 비현실이 되면서 감동을 주게 된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예술작품을 보고 감동하는 것은 그것이 무(無)를 표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세계를 무(無)로 만들때  미(美)가 발생한다.

하이데거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드러남'으로 보았다. 예술작품에는 진실이 들어 있기 때문인데 이 진실은 사전적인 뜻이라기보다는 '존재의 드러남'이다. 이 '존재의 드러남'을 위해 빈센트 반 고흐의 구두 그림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구두를 신은 사람이 구두를 바라보지 않고 의식하지 않을 수록 구두 본래의 모습을 가진다. 우리가 일반적인 구두를 상상하거나 사용되지 않은 구두를 본다면 제품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을 통해 책 초반의 그림의 기원과 눈멂에 대해 영화를 보여준다. 신화적인 모티브의 분석과 영화라는 방식 자체의 파페르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철학적인 기초 지식이 턱없이 부족한 나에게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림이 이해를 돕긴 했겠지만 역시 그림에 못지 않게 텍스트의 어려움이 크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처럼 직접적인 이해를 돕는 그림은 텍스트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책에 언급되는 그림들이 많은데 작게라도 그림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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