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킹 우드스탁
엘리엇 타이버.톰 몬테 지음, 성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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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스탁 페스티벌 뒷이야기’와 ‘어느 성적 소수자의 성장기’ 중 무엇으로 엘리엇 타이버의 『테이킹 우드스탁』을 이야기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성장’에 먼저 방점을 찍기로 한다. ‘성장’은 그 자체로 반짝이는 무엇을 품고 있는 데다가 엘리엇 타이버는 분명 고통이었을 기억까지 천연덕스러운 유머로 어루만져 (올해 내가 읽은 성장 기록물 중에서) 가장 낙천적이고 유쾌한 성장기를 만들어냈다.

엘리엇은 “그 옛날 차르 군대한테 쫓겨 호주머니 속 얼음장 같은 감자로 연명하면서 6미터나 되는 눈더미를 헤치고 러시아민스크에서 줄창 걸어” 미국으로 이주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를 부모로 두었다. 그 부모는 낯선 땅에서 삶의 터전을 새롭게 마련하고 자식들을 어떻게든 먹이고 입히려다 보니 절로 악착같아졌을 터인데, 그리하여 자식들에게 살뜰한 마음 한번 내비칠 새도 없이 돈만 그러모으는 수전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부모라도, 아니 그런 부모여서 엘리엇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부모가 그 전설적인 고생담 레퍼토리를 아무리 늘어놓아도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 그리고 설령 그런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도 애정은 늘 고픈지라 사랑 한 자락 받아보겠다고 어른이 된 뒤에도 그 곁을 떠나지 못한 채 맴돌기만 한다.

그런 엘리엇을 족쇄처럼 얽어매는 것은 그가 ‘타이크버그가의 저주’라고 부르는 부모의 모텔 ‘엘 모나코’! 가짜 텔레비전 박스, 가짜 에어컨, 가짜 전화, 체모 몇 가닥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더러운 침대 시트, 그런데도 한 번 체크인 후 환불은 절대 불가인 모텔이다. 그러니 당신인들 그곳에 투숙하고 싶겠는가? 적자는 당연하고 모텔을 늘리느라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과 그 이자는 덤으로 엘리엇이 져야 할 짐이다. 엘리엇은 맨해튼에서 동성애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벌어들인 수입을 전부 이성애자 모텔 사업가로 변신해 ‘엘 모나코’에 쏟아붓는다.

엘리엇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이중생활 사이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과 자아를 찾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우드스탁 페스티벌이다. 그 엉망진창 모텔에 우드스탁 본부를 두고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무사히 열리기까지의 그 모든 가슴 뛰는 이야기가 흥분과 열광과 희열과 긍지 속에서 요동친다. 자유와 평화와 음악을 사랑하는 히피들이 끝없이 모여드는 자리는 ‘너’와 ‘나’를 구분하는 성적 취향, 인종, 외모, 그 모든 차이를 초월하고 ‘사랑’ 하나만을 남긴다. 엘리엇의 지독한 애정 결핍도, 동성애자이면서도 소수자를 압도하는 다수자의 불합리한 편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동성애 혐오증에 시달려야 했던 성적 취향도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엘리엇은 성장의 통로가 되어준 그 아름다운 축제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양성애든 사랑을 느끼는 대상의 성별이 다를 뿐 어느 ‘사랑’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또 자꾸 말하는 자체가 다수자의 오만한 시선(혹은 섣부른 동정)을 하고 동성애를 별종으로 바라보는 것이 될까 봐 개인적인 사생활에 속하는 성적 취향에 관해서는 되도록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엘리엇이 그에 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의 청년 시절에 동성애자라는 것은 백인일지라도 흑인보다 더 멸시받는 자리로 떨어진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경찰의 보호는커녕 동성애자라고 의심받는 순간 기본 권리도 박탈당했다고. 그리하여 ‘섹스’는 단지 동성애자의 성적 취향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그들을 억압하는 “세상을 향해 치켜 올리는 가운뎃손가락”이고 “혁명적인 행위”였다. 엘리엇은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따뜻한 관심과 애정, 스킨십이 그리워서 그게 동성애라는 것인 줄 모른 채 가학적인 동성애에 빠져들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극장에서 당한 추행조차 차가운 무심함보다는 아프지 않았다고.

세상의 어느 부모가 제 자식을 마음 깊이 사랑하지 않겠냐만, 어쨌든 ‘엄마가 일러바치는 소리’와 ‘아빠가 허리띠 푸는 소리’ 속에서 방치됐던 유년 시절을 지나면서도 엘리엇은 참 착하게 성장해 주었고, 운도 좋았다! 현대화가 마크 로스코와의 우정,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와의 하룻밤 스캔들, 트루먼 카포티와 테네시 윌리엄스와의 인연은 두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굉장했다. 이 책에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이런 사람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것도 이 책에 대한 흥미를 돋우었다.

이 책은 2007년 작품인데, 엘리엇이 1935년생임을 감안하면 일흔둘 할아버지의 회고록인 셈이다. 그런데도 청춘의 발랄한 감성은 올올이 배어 있고 페이소스 짙은 유머를 구사한다. 이런 멋진 글을 읽은 감상이 이토록 지루하게 늘어져서 정말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좀더 보태자면, 음악 축제를 넘어서 자유와 평화와 권리를 존중하는 아름다운 영혼들의 나라 ‘우드스탁 네이션’을 상징하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가장 깊숙한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엘리엇의 회고록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개최하여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마이클 랭, 아티 콘펠드, 존 로버츠, 조엘 로젠먼 뒤에서 그들이 볼 수 없었던 우드스탁의 또 다른 이야기들을 엘리엇이 스케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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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윤덕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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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이라는 가정 중에 가장 많이 상상하는 것은 ‘만약 엄청난 금액이 걸린 로또에 당첨된다면?’과 ‘지구의 종말이 닥친다면?’일 것이다. 그 가정들에 대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스스로 물어봤다. 그런데 두 가정에 대한 답은 어느 부분까지는 놀랍도록 일치했다. 그 소식을 듣는 즉시 일을 그만둔 뒤,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 종일 함께 보내면서 집에 빈틈없이 채워둔 책들 사이에 파묻히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 먹거나 평소에 가지고 싶었지만 못 가졌던 것들을 쇼핑하거나…….

도무지 짐작조차 불가능한 내일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오늘 참았던 것을 이제는 날마다 참지 않고 즐기자는 마음이 절로 든다. 일단 로또는 최소한 물질적 풍요로움을 보장해 주니까 내 권리가 된 물질을 마음껏 향유하고 싶고(어쩌면 평생, 대개는 그 물질에 취해 탕진해 버린다지), 종말은 얼마 남지 않은 살날 동안 지금껏 아등바등 비축해 둔 물질을 모두 누리고 싶게 한다. 하지만 종말의 시간까지는 어떡하든 살아내야 한다는 깨달음이 뒤늦게 머리를 스친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로또에 비해 좀더 복잡해진다. 내가 종말의 날까지 편안하게 살 수 있을 만큼 비축해 두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세상의 종말을 통보받는다면 처음에는 두렵고 절망스럽겠지만 나에게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똑같이 닥친 일이니, 내게 남은 날들의 평화와 행복에 좀더 열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 삶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안다면 딱 그만큼만 아등바등하고 적절히 균형을 잡으면서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이사카 고타로의 『종말의 바보』는 ‘소행성 충돌로 지구가 6년 후에 멸망한다’는 가정하에 3년이 지난 시점, 그러니까 살날이 이제 3년 남은 시점의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여덟 편의 연작에 담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곧바로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두 편을 더 산 것은, 그 스케치 방식에서 전해져 오는 삶을 대하는 작가의 자세가 내 마음에 꼭 들었기 때문이다.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데도 종말의 불길한 긴장감 이면에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 이어진다. 끝이 보이는 삶이라도 소중하게 다뤄지고 있다.

물론 이사카 고타로가 그리는 종말의 세상이 처음부터 아무런 동요 없이 일상적인 평화가 이어진 것은 아니다. 자신의 종말을 예언하는 지구의 멸망에 충격과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아무에게나 폭력을 휘두르고, 서로 죽이고, 생존에 필수적인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확보하려고 악다구니를 썼다. 모든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춘 채 종말에 안전한 곳 없는 지구에서 안전한 곳을 찾아 차를 몰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면서도 서로 먼저 가겠다고 뒤엉켰다. 그 끔찍한 혼돈 속에서도 자살하지 않고 죽임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문득 종말의 날까지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이제 슈퍼마켓이든 비디오 가게든, 더 이상 내일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벌어두려는 탐욕의 일터가 아니다. 늘 영원할 줄 알았던 ‘내일’도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이제야 자기 일의 영웅이 된다. 모두가 혼비백산하여 일터를 떠난 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밥벌이나 돈이 아니라 자신의 자긍심과 일 본연의 가치를 위해 계속 일한다. 딸과 아빠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랑으로 두 마음을 갈라놓았던 오랜 골을 메우고 남은 시간을 함께한다. 우유부단하기 그지없었던 남자는 종말을 앞두고 이제야 찾아온 아기를 낳아 마지막까지 기르기로 결단한다. 한 소녀는 자신만 남겨둔 채 먼저 죽음을 선택한 아빠와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아빠의 서재를 가득 메운 책들을 모두 읽어치우는 데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킥복싱 선수는 5년 전이나, 3년 후나 지금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킥복싱 훈련을 한다. 별을 사랑하는 남자는 소행성이 떨어져도 별을 관측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사카 고타로는 킥복싱 선수의 말을 빌려 “내일 죽는다고 삶의 방식이 바뀝니까?”라고 묻는다. 이야기가 쓸데없이 길어졌지만, 이사카 고타로가 그리는 종말의 나날은 ‘내일 죽는다고 해도 삶의 방식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적이 안심이 된다.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지 않아도 우리는 언젠가 생의 마지막 종말을 맞을 것이다.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하고 아기를 낳고 애인을 찾아 나서는…… 소소한 일상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삶의 관성이 우리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달래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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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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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해보면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웠던 것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며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답을 내놓을 것이다. 우리가 배웠던 정의의 일반적인 의미라면 ‘옳은 것’일 것이다. 정의는 미덕이며 좋은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연 그러한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정의의 가치는 절대적인 것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정치철학으로 접근한 정의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신은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달리고 있는 전차를 운전하고 있는 기관사이다. 눈앞의 철로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다섯 명의 인부가 보이지만 브레이크가 들지 않아 전차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대로라면 이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을 알기에 절박한 심정이 된다. 이때 보이는 옆의 비상철로 이쪽에는 한 명만이 있다. 이쪽으로 가면 한 사람은 죽지만 다섯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당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가정이 너무 극단적이라면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책의 예를 살짝 바꿔서 살펴보자. 당신은 부대원 열 명과 함께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군인이다. 어떤 마을에서 염소를 치는 두 사람과 아이 한 명을 포로로 잡았다. 이들은 비무장 민간인으로 보였지만 그냥 놔줄 경우 분명히 정의로운 행동이지만 염소치기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적에게 알려줘 죽을 위험이 크다. 당신은 이런 경우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전자의 의문에는 대부분 한 사람을 죽이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당신이 염소치기들을 살려주는 경우 그들이 위치를 누설해 자신을 제외한 부대원 전부가 희생된다. 당신은 진정 정의로운 선택을 했는가? 마이클 샌델은 이런 도덕적 딜레마를 가진 ‘정의’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정치철학적으로 접근해 여러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포로들을 죽여 부대원들을 살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부대원의 수가 많아질수록 이런 공리주의적 입장은 명확해진다. 하지만 이런 공리주의적 입장은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권리에 대한 무시와 모든 가치를 통화화해 계산하려 한다는 반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후 칸트의 사회계약을 기초로 한 도덕철학, 존 롤스의 원초적 평등사상에 의거한 차등원칙, 아리스토텔레스의 텔로스(목적, 목표, 본질)와 미덕을 들어 이런 질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다. 행복과 자유, 미덕은 오늘날 국가(정상적인)를 구성하는 근간이 되었지만 수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마이클 샌델은 미덕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아니며 정답을 찾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정의는 행복과 자유와 미덕, 그리고 삶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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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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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읽어 보았을 작가 중 한명이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일 것이다.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 불리는 작가답게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뒤마 클럽』, 『검의 대가』 같은 작품을 본다면 이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에 있음직한 큰 줄기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기존의 방식이었다면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는 기존의 것들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가진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건도 없을 뿐 아니라 둘의 대화만으로 이끌어 가는 구성 역시 기존 작품들과 다른 독특한 느낌을 준다. 종군 기자, 내전이나 국제 분쟁 관련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중해 해안가의 낡고 외딴 망루에 살고 있는 안드레스 파울케스는 과거 유명한 종군기자이며 사진작가였다. 평생을 함께 해온 사진을 버리고 외딴 망루에 살며 벽에 전쟁화를 그리는 파울케스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 이름은 마르코비츠, 그는 파울케스에게 ‘당신을 죽이러 왔다’고 담담히 이야기한다. 파울스케는 마르코비츠가 왜 자신을 찾아와서 죽이려 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마르코비츠는 지난 10여 년간 그를 추적한 사실과, 그가 찍은 사진으로 자신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의 전쟁 당시 종군기자였던 파울스케는 크로아티아 민병대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았다. 그 사진은 유명해져 파울스케에게는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지만 그 사진에 찍힌 주인공은 붙잡혀 무참히 고문을 당했고 2년 만에 간신히 집에 돌아왔지만 그의 가족은 세르비아 군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 사진 속 주인공이 마르코비츠였다. 이렇게 자신을 죽이러 온 마르코비츠와 파울스케는 이야기를 나눈다. 파울스케가 자신의 연인을 잃고 카메라를 놓은 이야기, 전쟁의 참혹함과 그곳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 또 이야기 속에 파울스케가 벽화를 그리는 이유를 알게 된다.

렌즈로 담아내는 사진은 진실의 모습이어야 한다. 수많은 기다림 속에서 포착하는 찰나의 순간은 피사체를 객관적으로 담아내지만 작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하나의 장면, 하나의 컷일 뿐이다. 작가의 의지가 개입하는 순간 거짓이 되어 버리고 방관자의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는 사진을 버리고 붓을 들게 된 것은 전쟁의 참혹함 속에 인간의 본성을 경험한 파울스케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안 파울스케에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이 본 것을 투영하는 것이 최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대화는 끝이 났고 상처를 입은 서로의 삶과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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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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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은 다르다, 는 것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대학을 졸업할 즈음 그때껏 꿈꾸면서 열심히 준비해 온 직업의 세계에 들어섰다가 얼마 버티지도 못한 채 뛰쳐나왔을 때였을 것이다. 내 나름대로는 비장한 각오를 했는데도 그동안 내가 머릿속으로 수만 번 상상하고 동경해 왔던 일과는 너무나 달라 깜짝 놀랐다. 풋내기였으니 많이 인내했으면 그 바닥에서 내 꿈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가닿을 수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발버둥 칠수록 꿈은 멀찍이 물러났을 것이다. 어쩌면 꿈이라고 믿었던 그 자리에 도달했더라도 꿈은 그 순간 비루한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화려했던 꿈을 두고 현실로 내려와 차선의 직업으로 밥벌이를 했다.

정한아의 『달의 바다』는 꿈과 현실의 간극을 어떻게 메워 비루한 현실에 따뜻하게 안착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꿈을 이루지 못해도 루저의 실패한 삶이 아님을,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며 용기 있게 살아가는 삶보다 감동적인 것은 없음을 알게 해준다. 이 소설은 달나라를 오가는 우주비행사 순이 고모의 편지와 언론고시에 번번이 낙방하는 은미(‘나’)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단순한 구성으로 꿈과 현실의 간격을 밀도 있게 좁혀간다.

순이 고모가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 일곱 통은 ‘꿈’이다. NASA 소속 우주비행사로 달에 기지를 구축하는 일급비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고모의 낯설고도 환상적인 우주 이야기는 꿈같이 펼쳐진다. 엄마에게도 꿈을 심어주는 이 정성스러운 딸의 편지들은 차갑고 메마른 현실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소설 전체에 온기를 퍼뜨린다. 이에 비해 또다시 언론고시에 낙방하고 감기약 200알로 자살을 결심한 백수인 은미의 나날은 철저하게 ‘현실’적이다. 은미의 절망은 그리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해서 소설을 읽으면서까지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을 정도다.

감기약 200알을 가지고 잠시 자신의 현실에서 떠나는 은미의 미국행은 순이 고모의 편지가 마련해 준 기회다. 15년 전에 미국으로 떠난 뒤로 간간이 편지만 보내올 뿐인 딸의 안부가 너무나 궁금해서 할머니는 자기 대신 손녀딸 은미를 미국으로 보낸다. 딸의 부탁대로 방문을 잠근 채 ‘실은 네 고모가 우주비행사란다’라고 남몰래 간직한 비밀을 간신히 털어놓은 할머니는 딸의 이야기를 믿지만, 우주비행사의 일상이 우주비행사가 아니라면 묘사하기 어려울 만큼 편지글에 생생하게 담겨 있긴 하지만 딸이 정말 우주비행사가 맞는지, 도대체 정말 건강하게 잘살고 있는지 염려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딸이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딸의 안부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미국에서 순이 고모를 만나고 돌아온 은미는 가족을 모두 불러모아놓고서 할머니가 고모에 관한 비밀을 처음 털어놓을 때처럼 방문을 잠근 채 자신이 만난 고모 이야기를 은밀하게 들려준다. 고모에게 얻은 관광상품인 NASA 우주비행사 배지와 휘장, 고모네 뒷마당에 주워 온 달나라 돌 두 개 같은 것들을 늘어놓으면서 모든 것이 진짜였다고, 고모는 우주비행 일정을 소화하느라 몹시 바쁘더라고, 그런 고모가 아주 멋지더라고 말이다. “환상과 꿈, 아름다움, 비극, 무지개에 대한 믿음”을 가진 할머니는 “적금과 등산, 단골손님, 소갈비, 독감 예방주사에 대한 믿음”을 가진 할아버지와 살면서 유일한 꿈으로 품었다가 가슴에 뼈아픈 상처로 안은 딸이 끝내는 자신이 꿈꾸던 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꿈을 계속 꾼다. 그것은 서재 한가득 우주에 관한 책들을 간직한 순이 고모가 지켜주고 싶어 했던 꿈이고, 이제 은미도 자신은 꾸지 못해도 할머니가 꾸기를 바라는 꿈이다.

은미는 순이 고모를 만나 이렇게 물었다. “왜 할머니한테 가짜 편지를 쓴 거야?” 그러자 고모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즐거움을 위해서. 만약에 우리가 원치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작은 위안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잖니.” 고모가 진짜 우주비행사이든 아니든 그 황홀한 꿈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현실을 긍정하고 앞으로도 용기 있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자의 달콤한 위안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삶에 열중하는 자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도 좌절일 수 없다. 고모의 꿈은 할머니의 꿈을 이어주고, 고모의 현실은 은미가 꿈의 자리에서 가볍게 날아올라 현실에 사뿐하게 내려앉을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준다. 꿈을 별처럼 달아두고도 절망을 몰아내고 용감하게 살아내는 모든 사람들의 현실은 더 이상 비루하지 않다. 꿈보다 견고하고 아름다우며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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