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킹 우드스탁
엘리엇 타이버.톰 몬테 지음, 성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우드스탁 페스티벌 뒷이야기’와 ‘어느 성적 소수자의 성장기’ 중 무엇으로 엘리엇 타이버의 『테이킹 우드스탁』을 이야기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성장’에 먼저 방점을 찍기로 한다. ‘성장’은 그 자체로 반짝이는 무엇을 품고 있는 데다가 엘리엇 타이버는 분명 고통이었을 기억까지 천연덕스러운 유머로 어루만져 (올해 내가 읽은 성장 기록물 중에서) 가장 낙천적이고 유쾌한 성장기를 만들어냈다.

엘리엇은 “그 옛날 차르 군대한테 쫓겨 호주머니 속 얼음장 같은 감자로 연명하면서 6미터나 되는 눈더미를 헤치고 러시아민스크에서 줄창 걸어” 미국으로 이주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를 부모로 두었다. 그 부모는 낯선 땅에서 삶의 터전을 새롭게 마련하고 자식들을 어떻게든 먹이고 입히려다 보니 절로 악착같아졌을 터인데, 그리하여 자식들에게 살뜰한 마음 한번 내비칠 새도 없이 돈만 그러모으는 수전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부모라도, 아니 그런 부모여서 엘리엇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부모가 그 전설적인 고생담 레퍼토리를 아무리 늘어놓아도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 그리고 설령 그런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도 애정은 늘 고픈지라 사랑 한 자락 받아보겠다고 어른이 된 뒤에도 그 곁을 떠나지 못한 채 맴돌기만 한다.

그런 엘리엇을 족쇄처럼 얽어매는 것은 그가 ‘타이크버그가의 저주’라고 부르는 부모의 모텔 ‘엘 모나코’! 가짜 텔레비전 박스, 가짜 에어컨, 가짜 전화, 체모 몇 가닥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더러운 침대 시트, 그런데도 한 번 체크인 후 환불은 절대 불가인 모텔이다. 그러니 당신인들 그곳에 투숙하고 싶겠는가? 적자는 당연하고 모텔을 늘리느라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과 그 이자는 덤으로 엘리엇이 져야 할 짐이다. 엘리엇은 맨해튼에서 동성애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벌어들인 수입을 전부 이성애자 모텔 사업가로 변신해 ‘엘 모나코’에 쏟아붓는다.

엘리엇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이중생활 사이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과 자아를 찾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우드스탁 페스티벌이다. 그 엉망진창 모텔에 우드스탁 본부를 두고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무사히 열리기까지의 그 모든 가슴 뛰는 이야기가 흥분과 열광과 희열과 긍지 속에서 요동친다. 자유와 평화와 음악을 사랑하는 히피들이 끝없이 모여드는 자리는 ‘너’와 ‘나’를 구분하는 성적 취향, 인종, 외모, 그 모든 차이를 초월하고 ‘사랑’ 하나만을 남긴다. 엘리엇의 지독한 애정 결핍도, 동성애자이면서도 소수자를 압도하는 다수자의 불합리한 편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동성애 혐오증에 시달려야 했던 성적 취향도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엘리엇은 성장의 통로가 되어준 그 아름다운 축제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양성애든 사랑을 느끼는 대상의 성별이 다를 뿐 어느 ‘사랑’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또 자꾸 말하는 자체가 다수자의 오만한 시선(혹은 섣부른 동정)을 하고 동성애를 별종으로 바라보는 것이 될까 봐 개인적인 사생활에 속하는 성적 취향에 관해서는 되도록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엘리엇이 그에 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의 청년 시절에 동성애자라는 것은 백인일지라도 흑인보다 더 멸시받는 자리로 떨어진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경찰의 보호는커녕 동성애자라고 의심받는 순간 기본 권리도 박탈당했다고. 그리하여 ‘섹스’는 단지 동성애자의 성적 취향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그들을 억압하는 “세상을 향해 치켜 올리는 가운뎃손가락”이고 “혁명적인 행위”였다. 엘리엇은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따뜻한 관심과 애정, 스킨십이 그리워서 그게 동성애라는 것인 줄 모른 채 가학적인 동성애에 빠져들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극장에서 당한 추행조차 차가운 무심함보다는 아프지 않았다고.

세상의 어느 부모가 제 자식을 마음 깊이 사랑하지 않겠냐만, 어쨌든 ‘엄마가 일러바치는 소리’와 ‘아빠가 허리띠 푸는 소리’ 속에서 방치됐던 유년 시절을 지나면서도 엘리엇은 참 착하게 성장해 주었고, 운도 좋았다! 현대화가 마크 로스코와의 우정,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와의 하룻밤 스캔들, 트루먼 카포티와 테네시 윌리엄스와의 인연은 두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굉장했다. 이 책에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이런 사람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것도 이 책에 대한 흥미를 돋우었다.

이 책은 2007년 작품인데, 엘리엇이 1935년생임을 감안하면 일흔둘 할아버지의 회고록인 셈이다. 그런데도 청춘의 발랄한 감성은 올올이 배어 있고 페이소스 짙은 유머를 구사한다. 이런 멋진 글을 읽은 감상이 이토록 지루하게 늘어져서 정말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좀더 보태자면, 음악 축제를 넘어서 자유와 평화와 권리를 존중하는 아름다운 영혼들의 나라 ‘우드스탁 네이션’을 상징하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가장 깊숙한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엘리엇의 회고록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개최하여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마이클 랭, 아티 콘펠드, 존 로버츠, 조엘 로젠먼 뒤에서 그들이 볼 수 없었던 우드스탁의 또 다른 이야기들을 엘리엇이 스케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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