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편 우리나라 노비에게는 성(姓)은 없고 이름만 있는 반면, 서양 노예는 성이 있었다. 왜 그럴까? 그 차이의 비밀은 '체면'과 '실리'라는 상반된 가치관에 있었다. 다시 말해 체면을 중시하던 우리나라에서는 성을 매우 명예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노비에게 성을 준다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반면 실용주의 사고가 만연한 서양에서는 노예를 매매할 때 산지를 증명하기 편리하도록 성을 주었던 것이다.


2.
늑대인간과 구미호를 비교해보면 밤에만 활동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몇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늑대인간은 남자가 늑대로 변한 다음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반면, 구미호는 여우가 미녀 모습으로 변한 다음 남자들을 홀린다. 이것은 야수에 대한 공포감은 똑같지만 서구인들은 야수 그 자체를 두려워하고, 한국인들은 인간의 교활함을 두려워한다는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늑대인간은 타인을 늑대인간으로 만드는 전염성 질병을 퍼뜨리는 반면, 구미호는 전염성은 없으나 사람을 죽이거나 또는 남자와 성관계를 갖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여기서 늑대인간의 전염성은 해괴한 현상이라도 질병 차원으로 해석하는 서구인의 관념을 보여주고, 구미호의 살인 또는 섹스 욕구는 처녀 귀신의 원한과 관계가 있어 맺힌 한(恨)을 결코 잊지 못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셋째, 늑대인간은 보름달이 뜰 때만 활동하지만 구미호는 달빛이 희미한 밤에 활동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보름달'은 서구인의 과학과 연계된 자연관을 보여주는 것으로, 실제로 보름달이 뜰 때 범죄율이 높다고 한다. 반면 한국의 어스름한 달빛 또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은 심정적으로 두려운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3.
그런데 서양인은 사진을 찍을 때도 "three, two, one"으로 큰 수부터 말하는데, 이는 출발 자체에 중점을 둔 관념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이에 비해 한국인은 "하나, 둘, 셋"이라고 점차 큰 수를 말한다. 이는 자연적 스름에 맞춰 그 순간을 택하는 정서에거 비롯된 습관이다. 한마디로 '카운트다운'은 일 중심의 사고이고, '하나 둘 셋'은 자연 중심의 사고인 셈이다.


4.
여러 나라를 살펴보면 묘하게도 문명이 발달하고 개인주의 문화가 팽배할수록 편견과 경계심이 강함을 발견할 수 있다. 공동체 사회에서는 어울려야 하는 일이 많으므로 사회적 기준으로 판단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많은 데 비해,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상황이 적어 대부분 자기 주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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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의 사진이 불만스럽다면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버트 카파를 비롯한 많은 사진의 대가들이 한결같이 얘기하는 사진의 원칙이다. 초보자들뿐 아니라 몇 년씩 사진을 찍은 사람들도 인물을 찍을 때는 가까이 가지 못한다. 겁을 내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데 가까이 가도 될까, 나(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을까" 걱정하다 보니 앞으로 나서는 것이 힘들다. 두 번째 이유는 전체를 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다. 어차피 사진은 전체를 보여주지 못한다. 가까이 갈수록 필요한 것이 잘 보이고 크게 보인다.



2.
찍히는 사람의 예의

미국에서 사진공부를 할 때, 길에서 모르는 사람 10명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얼굴을 찍으라는 과제가 있었다. 미국에서 난 기자가 아닌 학생이었다. 명함도 없고 얼굴색도 다른 동양인이었을 뿐인데도 대부분 흔쾌히 시간을 내줬다. 우리는 거리에서 사진 찍힐 때 너무 경직되어 있다. 낯선 사람이 다가와서 사진 찍겠다고 부탁하면 관대하게 응해 주자. 내가 응해 줘야 나도 찍을 수 있다.내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모전에 출품되어 상을 받았다고 기분 나쁠 일이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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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인들은 아동처럼 자신을 어떤 경험에도 전적으로 내맡기지 않는다. 아동들은 미술을 지탱시켜 주는 철학이나 전망이 없이도 매순간을 일시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이며, 삶의 정서적 기복들을 열정적으로 강렬하게 견디어내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못하다.


2.
자기가 이루어 놓은 것에 불만을 갖게 되고 자기 그림을 남의 마음에 들도록 하려는 강한 열망으로 하여, 그는 판에 박힌 모방을 하느라고 자신의 독창적인 창안이나 나름대로의 표현을 포기해 버리게 된다. …(중략)… (구어적 언어 구사에 있어서 이에 상응하는 현상은 늘 똑같은 것을 말하라는 점이다. 옛날 속어나 낡은 상투어구들이 모든 사고와 감정의 소통에 이용되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사고와 감정은 이러한 일상적인 규범과 지시에 따라 압축되고 순응되어 결국 진부하게 된다.)


3.
이 아동들은 사실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 자기들의 서툰 솜씨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만간 그들 각자는, 그림이란 항상 그 그림이 표현하는 사실(실재)과는 동일해질 수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적절한 시기에 가서는 더 나은 것으로 대치시키기 위해 현재 상용(常用)하고 있는 그릇된 희망과 소망들을 다른 어린이다운 것들과 함께 내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모든 그림이란, 어떤 객관적인 인식 속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진리'가 아니라 화가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는 그의 관념, 그의 정신과 의지 및 개인 감정에 따라 종속된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다. 그것이 미술 작품의 생명이다.


4.
아동들은 기만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것으로 채택한 지식이나 신념이나 의견은 무엇이고 그 '정확성'을 보증받기를 몹시 바라는 것 같다. 상대주의는 그들의 성향에 맞지 않으므로, 단지 가능성을 잘 생객해 보든지 비교, 생각해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받아들이든지 배격하든지 하기 위해 복잡하고 혼란된 생각들을 단순화시키려고 애쓴다. 이 단계에 도달한 아동들은(나이에 관계없이) 때로, 만물박사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자신들이 의심하고 있는 것을 권위있게 해결지어 주기를 바란다.
이때가 이들을 잘 돌보아서 다음 단계로 넘겨 줄 필요가 있는 성장 단계이다. 이 단계의 아동들에게는, 인간이 이룩할 수 있는 온갖 것을 포괄할 수 있는 어떠한 간단한 법칙이나 한결같은 독단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주 솔직하게 보여주고, 아동 자신들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 증명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5.
적어도 가르치기 위해서는, 주관적인 사고와 그것이 학생들에게 가지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확신과 신의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상황이란 인간적 신뢰와 인간적 책임이 포함되어 윤리적으로 뒤얽혀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실수하기 쉽다는 깨달음은, 교사를 독단으로 흐르지 않도록 해주는 유일한 양심적 보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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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2년의 여름은 그렇게 급박한 것이었다. 별 생각 없이 세상을 살아오던 사람들의 삶이 어느 한순간 어마추어와 프로의 분명한 기로 위에 서게 되었고, 그것을 느끼건 말건, 혹은 좋건 싫건 간에 분명한 선택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중략)…
아닌 게 아니라 세상에는 속속 ‘땅 끝까지 전하라’의 성격을 띤 프로의 복음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고, 한결같이 방송인과 지식인, 광고인과 경영인들의 슬기를 모은 것들이었으며, 과연 줄기찬 것이었다.
①이젠 프로만이 살아남는다: 당시 가장 많이 회자되던 프로복음 1호 되겠다. 프로가 안 되면 아마 죽을 거라는, 최후의 통첩이 실린 무게 있는 복음이다.
②난, 프로라구요: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앞으로는 잔업이든 휴가 반납이든-아무튼 불꽃 같은 프로의 삶을 살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뚜렷이 공고한 프로복음 2호 되겠다. 한편 당돌해 뵈면서도 목숨의 부지를 위한 비장한 각오와 잔잔한 애수가 서려 있는 복음. 과거 유신복음 중에는 같은 맥락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있다.
③프로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 아닙니까?: 주로 비열한 방법으로 목적을 이룬 자들이 내뱉던 프로복음 3호 되겠다. <동물의 왕국>을 인간의 삶에 적용시킨 친(親)환경주의, 동물애호주의의 복음. 이 복음을 토대로 어쨌든 이기면 된다. 어쨌든 돈만 벌면 된다는 새로운 세계관이 빠르게 형성될 수 있었다.
④하루빨리 프로가 되게: 주로 회사의 상사들이 신입사원들에게 쓰던 프로복음 4호 되겠다. 쉽게 말해, 할 일이 태산 같다는 말이다.
⑤허허, 이 친구 아마추어구먼: 미전향 아마추어들에게 전도의 목적으로 쓰이던 프로복음 5호 되겠다. 가벼운 멸시와 조롱을 담아서 그들의 전향을 유도했다.
⑥맛에도 프로가 있습니다: 요식업계를 통해, 민간에서 처음으로 창출된 프로복음 6호 되겠다. 거창한 문구로 위장해 있으나, 그 어원은 ‘옆집보다 우리 집이 더 맛있어요’라는 소박한 것이다.
⑦이러고도 프로라고 말할 수 있나?: 주로 실수를 범한 부하직원에게 상사가 내뱉던 프로복음 7호 되겠다. 쉽게 말해, 나가 죽으라는 말이다.
⑧프로의 정식 명칭은 ‘프로페셔널’이다: 아직 멀었다. 더 높은 경지의 프로 세계가 있으니 분발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프로복음 8호 되겠다. 주로 대학교수나 무슨 연구소의 소장이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최대 급소인 무식(無識)의 혈을 찌른 고급 복음이다.
⑨프로는 끝까지 책임을 진다: 아무추어 음해와 더불어 야근의 생활화 고착을 목표로 한 프로복음 9호 되겠다. 이후 아마추어는 책임감이 없다는 사회적 무의식과 야근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기업 풍토가 널리 확산된다.
⑩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한국 경제사에서 여성 고급 인력의 필요성이 대두될 때 나온, 그러나 여성 고급 인력의 필요성과는 아무 상관 없는 프로복음 10호 되겠다. 역시 거창한 문구로 위장해 있으나, 그 원래의 뜻은 ‘옷 사세요’라는 말이다.
⑪프로주부 9단: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주부들에게 그럴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만든 프로복음 11호 되겠다. 주부가 앞장서서 살림도 프로로 하고, 애들도 프로로 키우라는 거시안적 포석이 깔린 복음. 승단 심사와 발표를 어디서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랬다. 불과 4개월 만에, 세상은 프로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나도 프로 중학생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의 귀가 시간도 눈에 띄게 늦어져만 갔다. 나도 이젠 프로란다. 지친 표정으로, 그러나 세상의 흐름을 받아들여 안심이란 눈빛으로, 어느 날 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내뱉으셨다. 누가 묻지도 않았고
온 식구가 모여 카레라이스를 먹고 있던 저녁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카레를 먹다가, 문득 그런 말씀을 하신 걸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또 그런 말을 듣고도 다들 묵묵히 카레를 먹기만 했다는 사실 역시 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무척 이상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2.
마찬가지로 한 인간이 평범한 인생을 산다면, 그것이 비록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인생이라 해도 프로의 세계에서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삶이 될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중략)…
아무리 봐도 3위와 4위가 그럭저럭 평범한 삶처럼 보이고 6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최하위의 삶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프로의 세계다. 평범하게 살면 치욕을 겪고, 꽤 노력을 해도 부끄럽긴 마찬가지고, 무진장,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해봐야 할 만큼 한 거고, 지랄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좀 하는데’라는 소리를 듣고,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의 노력을 해야 ‘잘하는데’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중략)…
무진장 노력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남들 사는 만큼 사는 거죠.”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죠.”
라고 말하는 이상한 세상이 온 것이다.




3.
그날의 선거에서 우리는 노태우 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부정이다! 개표 현황을 지켜본 나는 내일 아침이면 또 난리가 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부정은 이내 밝혀질 것이고, 그날의 함성은 다시 세상을 뒤흔들겠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쩌면 올해의 대입도 취소되기가 쉬워. 혁명의 과도기야. 일찍 자자.
다음날 아침. 그러나 세상은 조용했다. 음 혁명 세력도 아침은 먹어야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점심이 지나도 마찬가지. 음 어디가 아픈가, 라고 생각했지만 저녁이 되자 세상은 평화롭기까지! 옳거니, 폭풍 전야구나, 엄청난 규모의 혁명이다. 각오해!
그 다음 날 아침.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음 오늘도 아침은 먹어야지. 그러나 점심이 지나도 마찬가지. 저녁엔 어제보다 더한 평화가 찾아왔다. 죽었나?




4.
원서를 썼다. 생각보다 갈 만한 학과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지만 우수한 성적에게도, 평범한 성적에게도, 저조한 성적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인생의 진로는 불과 일주일 사이에 결정났고, 4지 선다형의 교육은 4지 선다형의 진로만을 펼쳐놓았다.
원서를 쓰면서, 나는 교육의 목표 역시 ‘소속’을 가리는 데 있었다는 중요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 똥배짱이 아닌 이상은,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했다간 큰일이 나는 것이다.




5.
그런데 세상을 둘러보니 다들 그런 거야. 다들! 다들 돼지발정제를 마신 것처럼 땀을 흘리고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어. 아무래도 놈들이 원하는 건 돈과의 교미가 아닌가 싶어. 이미 마신 이상은…… 그 끝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거지. 어쩌면 우리가 대학을 간 것도 다 그걸 마셨기 때문이야. 지금은 느끼지 못해도 좀더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겠지. 여하튼 땀이……나도 숨소리가 거칠어질 테니까. 내가 왜 이러지? 난 결백해…… 하며 똑같은 짓을 하게 될 거라구. 분명해. 그래, 분명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걸 먹였어. 우리가 마셔온 물에, 우리가 먹어온 밥에, 우리가 읽는 책에, 우리가 받는 교육에, 우리가 보는 방송에, 우리가 열광하는 야구 경기에, 우리의 부모에게, 이웃에게, 나, 너, 우리, 대한민국에게…… 놈은 차곡차곡 그 약을 타온 거야. 너도 명심해. 그 5분이 지나고 나면, 우리도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지 몰라……




6.
10년 후에 분명 국회위원이 되어 있을 놈을 추대하기 위해, 저마다 노선이 중요하다는 둥 연설을 듣고 결심하겠다는 둥 법석을 떠는 모습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말을 믿는다면 바보고, 믿지도 않으면서 동조하겠다면 범죄가 아닌가!




7.
이를테면-모처럼 부서를 방문한 이사와 함께 오찬을 나눌 때였다. 무척 긴장된 자리였는데, 이사가 꺼낸 서두는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된장이 그렇게 몸에 좋다는군.”
이사가 된장 얘기를 꺼냈기 때문에, 한동안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된장 얘기를 주고받았다. 부장은 서대문의 유명한 우렁된장집 얘기를 했고, 입사 동기지만 조기 승진을 한 과장은 된장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첼리스트 얘기를 늘어놓았다. 나는-고추장은 순창이 유명하다는 뜻밖의 소리를 내뱉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직장에서 승리하는 인간은-그런 상황에서 된장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첼리스트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인간이다.




8.
터무니없을 만큼 세상은 여전했다. 세상이 여전한 이유는 반드시 누군가가 여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9.
‘착취’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행해진 게 아니었어. 실제의 착취는 당당한 모습으로, 프라이드를 키워주며, 작은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며, 요란한 박수 소리 속에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형이상학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던 거야.




10.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11.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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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사람과 관계를 하다 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안 그럴지 모르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신화적 분위기가 조금씩 사라진다. 즉 개인적 자만심은 형제들에 의해, 가족에 대한 자부심은 학교 친구들에 의해, 계층에 대한 자부심은 정치에 의해, 국가에 대한 자부심은 패전과 경제 실패에 의해 사라진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자부심 혹은 허영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 사실 사회적 관계가 드러내는 결과를 볼 때 이런 자부심과 관련된 신화 만들기는 끝없이 진행되는 것 같다.



2.
자신의 왜소함에 대범할 수 있는 자만이 자신이 가진 위대함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3.
실용주의자들은 우리 의견의 비이성적인 면을 강조하고, 정신분석학자들은 우리 행위의 비이성적인 면을 강조한다. 두 부류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견해와 행위에 유용한 척도가 될 만한 ‘이상적 합리성’은 없다는 생각을 사람들의 머리에 심어놓았다. 그들의 주장을 따른다면, 당신과 내가 의견이 다를 때 정돈된 논리로 설득하거나 객관적 외부 중재인을 찾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재정 상태와 군사력에 따라 현란한 언어나 광고, 돈의 힘을 빌어 각자의 의견을 사수하는 것이 전부다. 이런 관점은 극히 위험하고 종래에는 문명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것이다.


4.
인간사 바깥에 놓여 있는 것들은 진실이 아니라 사실이다. 진실이란 믿음의 속성을 띠며, 믿음은 심리적 사건이다. 나아가 믿음과 사실의 관계는 논리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런 단순한 도식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중략)…
정신분석학에서 보면, 사람들이 ‘위대한 사상’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들의 정적을 괴롭히는 좋은 구실이기 때문이다.


5.
신비주의자들이란 원래 기질은 활발한데 무위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간 이들이며, ‘행동주의자들’은 원래 기질은 수동적인데 행동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다.


6.
우리의 욕망이 경쟁에서 비롯되는 한 전체적으로든 구체적으로든 부가 증가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행복이 따라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아무튼 이런 기근 예방을 위한 때를 빼놓고는 부의 증진 자체는 인간의 행복에 가치가 그리 크지 않다.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자율성과 다양성이라는 인간 행복에 없어서는 안 될 두 요소를 잃게 되었다. 그것은 기계가 나름의 속도를 가질 뿐만 아니라 거부하기 힘든 것은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싼 공장을 가지고 있는 공장주는 끊임없이 기계를 돌려야만 한다. 감정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기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규칙성이다. 물론 기계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감정의 가장 큰 허점은 불규칙성이다. 자신을 ‘진지하다’고 평가하는 이들은 대체로 기계의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자신이 확실함이나 정확함 혹은 분명함 같은 기계적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칭찬으로 생각한다. 이들에게 ‘불규칙한’ 삶은 ‘잘못된’ 삶이다.


7.
전통 철학에서는 변하지 않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다. 물론 천상에도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하프가 연주되겠지만, 항상 같은 찬송가가 불리어지고 하프는 항상 맑은 소리를 낼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현대인은 하품만 할 뿐이다. 신학이 현대인에게 별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천상에 ‘현대적인’ 악기를 설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밀턴은 현대적 악기를 지옥에다 설치했다.)
윤리 체계들은 모두 불합리한 추론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규정해도 좋을 듯하다. 철학자는 먼저 사물의 본질에 관해 잘못된 이론을 만들어 낸다. 그런 다음 악한 행위란 자신의 이론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라는 결론을 추론해 낸다. 먼저 기독교인을 살펴보자. 기독교인은 만물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므로 하느님의 뜻에 거역하는 것이 바로 악이라고 주장한다.


8.
우리는 여러 가지 것들을 열정적으로 성취해 내지만, 그것들이 과연 가치가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중략)…
또한 우리는 오늘날 과거 어느 때보다도 능률적 경찰 체계를 두고 있어 한편으로는 범죄를 탐지하고 예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새롭고 건설적 생각을 품고 있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 가둔다.


9.
그리고 우리 자신이 어떤 이론을 띠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사회생활에서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덕스러운 것이라고 여전히 우리는 생각한다. ‘죄’라고 불리는 특정 행위들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특별히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착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중략)…
세상은 불의로 가득 차 있는데, 이런 불의로 득을 보는 이들은 바로 처벌과 보상을 담당하는 이들이다. 사회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독창적 이론을 개발하는 이에게는 보상이, 그 폐단을 고치려고 하는 이에게는 벌이 내린다. 내가 아는 한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은 국가는 없다.


10.
‘공식적인’ 도덕은 언제나 압제적이고 부정적이었다. 즉 이 도덕은 ‘그것을 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하면서 그 도덕규범이 금지하지 앟는 행위들이 초래하는 결과를 전혀 조사하려 하지 않는다.


11.
우리가 조금이라도 정치로 좋은 일을 하고 싶다면 정치 문제를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정권을 잡을 정당은 국민들 대다수가 호응할 수 있는 것에 호소해야 한다. 나중에 논거를 펼칠 때 그 이유를 알게 되겠지만, 현 민주주의 체제에서 폭넓게 지지받는 제안은 거의 해를 끼쳤다. 따라서 유용한 강령을 가진 중요한 정당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그러므로 유용한 정책은 정당 정치와는 다른 절차를 통해서 통과되어야 한다. 이런 절차를 민주주의와 어떻게 결합하는가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이다.
…(중략)…
정치인에게, 깬 사람의 관점에서 봤을 때 좋은 것을 대변하라고 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 이들이 만약 그렇게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중략)…
정당 정치가 있는 모든 곳에서는 정치인들이 특수 계층에 호소하면, 이들의 반대 세력은 그 반대 계층으로 눈길을 돌린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인들의 성공은 한 계층을 다수 집단으로 만들 수 잇는가 하는 데에 달려 있다. 모든 계층에 똑같이 호소하는 정책은 대체로 모든 정당들의 공통적 기본 틀이기에, 정당 정치인에게는 별 쓸모가 없다. 따라서 그는 반대파의 핵심 지지자 집단이 싫어하는 정책을 집중 공략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뛰어난 정책이라도 그 근거를 정치인이 연단에 서서 보통 사람들에게 먹히게 설명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따라서 정당 정치인들이 중요시하는 정책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그 정책이 국민 일부만을 겨냥해야 한다. 둘째, 정책을 합리화하는 논변은 극히 단순해야 한다.
…(중략)…
나아가 정치인들은 라이벌 집단끼리 갈리기 때문에, 전쟁 시처럼 외부의 적에 대항해 뭉칠 때 외에는 나라 전체를 분열로 몰고 간다. 즉 그들은 의미 없는 소리와 분노를 삶의 원칙으로 삼는다. 설명하기 힘든 것이나, 국가들 간에 혹은 한 국가에 분열을 조장하지 않는 일, 나아가서는 정치인들 계층의 힘을 약화시키는 일은 이들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다.


12.
악행을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인간이 가진 자연스런 경향이다. 가격이 상승하면 이익을 보는 사람 탓이고, 임금이 내려가면 자본가 탓이다. 길 가는 사람들 중에 임금이 오르면 왜 자본가가, 가격이 하락하면 왜 이익을 보는 자가 무력해지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사람은 없다. 또한 이들은 임금과 가격이 동시에 상승하고 하락한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자본가는 임금이 하락하는 반면 가격이 상승하기를 바랄 테고, 임금 노동자는 반대의 상황을 바랄 것이다. 이익을 보는 자나 노동조합, 고용주가 이와는 실제로 무관하다는 사실을 통화 전문가가 설명할라치면, 사람들은 마치 그가 독일 사람들의 잔인무도한 행위를 감싸기라도 하듯 짜증을 낸다. 우리는 ‘적’을 우리 삶에서 제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13.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임금 노동자가 착취당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입증한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가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실제로 고통을 덜 겪을지를 입증하지 못할뿐더러 입증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냥 그가 글을 쓰는 형식과 각 장을 배열한 방식에서 기정사실이었을 뿐이다. 프롤레타리아 계층 특유의 편견을 가진 독자가 이 책을 읽을 때도 마르크스처럼 이 사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기에, 그 사실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14.
전쟁 시 연합국들 사이에 존재했던 범국제 정부와 같은 국제단체가 평화 시에도 널리 확대된다면, 전 세계 사람들 대부분의 물질적·심리적·도덕적 안녕이 증진될 것이다. 사업가들도 여기에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지난 3년간 평균 수입에 해당하는 금액을 평생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실업과 전쟁에 대한 공포, 빈곤, 생산 부족, 생산 과잉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주장과 방법이 로이드의 책에 자세히 나온다. 이렇게 분명하고 폭넓은 장점들이 있긴 하지만, 이런 체제는 전 세계에 혁명적 사회주의가 설제로 설립되는 것보다도 먼 현실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의 문제가 너무 많은 반감을 사는 데 반해, 공무원이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너무 적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자신의 적이 손해를 입었으면 하는, 적어도 무의식적 기대 때문에 사람들은 정책에 반대한다. 따라서 그 어느 쪽도 상하게 하지 않는 정책은 전혀 지지를 얻지 못하며, 지지를 많이 받는 정책은 그만큼 강한 반대 세력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15.
현대 정치인들과 정부가 쓰는 선전 기술은 광고 기법에서 유래한 것이다. 광고인들 덕분에 심리 과학이 많이 발전했다. 과거에는 심리학자들 대부분이 한 사람이 자신의 뛰어남을 순전히 말로 반복해서 많은 사람들을 확신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심리학자들의 생각이 틀렸음이 경험을 통해 드러났다. 만약 내가 공공장소에서 벌떡 일어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돈을 끌어 모아 버스나 모든 주요 철로 광고판에 똑같은 문구를 광고하면, 사람들은 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비정상적일 정도로 피한다는 말을 해도 믿게 될 것이다. 만약 내가 구멍가게에 가서 “저기 길 건너에 있는 경쟁 가게를 보십시오. 선생님의 사업을 잠식하려 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그만 접고 길 한복판에 나가, 먼저 총에 맞기 전에 저 인간을 쏘아버리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요?” 하고 말하면 어떤 구멍가게 주인이든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군악대까지 동원해 주장을 되풀이하면, 구멍가게 주인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게 된다. 그러다가 나중에 정부의 선전 내용과 달리 자신의 사업이 오히려 고전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왜 그런가 하고 놀라게 된다. 광고주들이 성공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선전은 이제 모든 선진국가의 정부들이 인정하는 방법들 중의 하나이며, 특히 이 방법으로 민주적 의견이 창출된다.


16.
소수를 보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중 가장 주류에 속하는 이들도 언젠가 소수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 모두 다수의 횡포를 억제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중략)…
이 전쟁은 종교적 관용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과 똑같은 방식으로 치러져야 한다. 그 경우처럼 여기서도 열렬한 믿음 자체를 잦아들게 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구교든 신교든 그 종교를 절대 진리라고 믿었던 시기에, 사람들은 그 진리를 위해 박해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17.
관용적인 세상을 만들려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증거 자료를 잘 검토하고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없는 주장을 완전히 수용하는 것을 자제하는 습관을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어, 신문을 읽는 법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사는 오래전에 일어난 일들 중 당시에 뜨거운 정치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을 골라낸 다음, 아이들에게 그 문제에 대해 한쪽에서는 어떻게 보도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떻게 기사화했는지 읽어주고, 실제로 일어난 일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제대로 된 독자는 편향된 양쪽 보도를 통해 어떻게 사실을 유추하는지를 교사는 설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신문 기사가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 사실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이런 교육을 통해 양성된 ‘비판적 회의주의(cynical scepticism)'가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점잖은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아 불한당들의 계획을 더 추진하게 만드는 이상주의적 선전에 휩쓸리지 않게 할 것이다.


18.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도덕의 부재만큼이나 지성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까지 도덕적 병폐를 근절시킬 만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설교나 훈계는 위선이라는 항목을 지금까지 악의 명단에 첨가시킬 뿐이다. 이에 반해 지성은 유능한 교육가라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방법으로, 쉽게 그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 따라서 덕을 교육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도덕보다는 지성의 수준을 끌어올림으로써 문제의 해결을 앞당기는 방법을 써야 할 것이다. 지성을 고양하는 데 주된 걸림돌 중의 하나가 쉽게 믿는 경향이다.


19.
자유방임주의자들은 가난한 이들이 살인과 무장 폭동을 할 수 없게 하는 법을 발동시켰으며, 심지어는 노동조합주의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처럼 정부의 관여가 최소화되면 그들은 나머지를 경제적 힘으로 이룩하려 했다. 자유주의 체제에서는 고용주가 고용인에게 “당신, 굶어죽을 줄 알아.” 하고 말하는 것은 괜찮았지만, 고용인이 이 말에 “당신이 먼저 총알에 갈 줄이나 알라고!” 하고 응수할 수는 없었다. 법률적 탁상공론을 즐기지 않는 한, 이 두 협박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양쪽 모두 최소한의 기본적 자유를 위반하는데, 어느 쪽이 더 위협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20.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을 채워주기 위해 한 사람에게서 안락함을 빼앗는 것은 ‘선험적으로(a priori)' 합리화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행위는 특정 시기에 특정 공동체에서는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고 도 경제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자유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서 필수품을 박탈하는 경우가 다른 한 사람으로부터 잉여물의 축적을 막는 경우보다 큰 자유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21.
자유에 관한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구분이 첫째, 다른 사람의 손실을 통해 한 사람이 가지는 이익과 둘째, 다른 사람의 손실과 무관한 이익, 이 두 가지에 관한 것이다. 만약 내가 정당한 양 이상의 음식을 가진다면 이로 인해 배고픈 사람이 생기지만, 내가 교육 기회를 독점하지 않는 한 내가 엄청난 양의 수학 공부를 한다고 해서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 도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사실은 음식과 집, 의복 같은 것들은 삶에 필수적이어서, 이것들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없을뿐더러 사람들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민주주의 저부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런 모든 문제는 정의가 그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 민주 사회에서 정의는 평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계층 간의 수직적 서열이 있고, 그 서열을 상류층과 하류층 모두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정의가 평등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22.
그리고 의견의 문제에서는 ‘자유 경쟁’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자유주의자의 오래된 구호가 적용되어야 할 분야는 정신적 분야인데, 이제까지 경제학이라는 잘못된 분야에 적용이 되었다. 우리에게 ‘자유 경쟁’이 필요한 곳은 생각이지 경제가 아니다. 여기서 문제는, 경제 분야에서 자유 경쟁이 점점 사라져 감에 따라 ‘승리자들’이 자신의 경제력을 정신적·도덕적 분야로 확대 적용하려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먹고 살게 해줄 테니 ‘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르게’ 살 것을 설파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행한 일이다. 실제 여기서 ‘바른 삶’은 위선을, ‘바른 생각’은 어리석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3.
아이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말하는 것을 배운다. 아이들을 지켜보면 아이들이 이때 얼마나 많이 노력하는지 알 것이다. 이때 아이들은 주의 깊게 듣고, 다른 사람 입술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하루 종일 말을 연습한다. 물론 어른들은 이것을 칭찬으로 격려한다. 아이들이 새로운 단어를 하나도 습득하지 못하는 날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어른들이 매를 들지는 않는다. 부모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기회를 제공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다른 교육 단계에서도 이런 기회와 격려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24.
정치적 의견은 이성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25.
과거에는 지배 계층이 권력을 대물림했기 때문에, 많은 지배 계층 사람들은 게으르고 무능해져 다른 계층 사람들이 파고들 틈을 제공했다. 그러나 만약 지배 계층이 각 세대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자기 노력으로 권력을 잡은 이들로 구성된다면, 평범한 인간들에게 다가올 미래는 그야말로 캄캄하다. 그런 사회에서는 게으른 이들, 즉 다른 사람의 일에 상관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할 사람을 찾기가 힘들 것이다. 밀치고 설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권력이 주어지는 사회에서, 조용한 사람들은 작은 기회라도 잡기 위해 어렸을 때 대담무쌍함과 활력을 배워야 한다. 아마도 민주주의는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26.
산업화는 통합적이다. 산업화는 거대한 경제 단위를 창출하고, 사회를 더 유기적으로 만들며 개인 욕구를 제한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산업화 아래의 경제 조직은 지금까지 소수 독점 체제였으며, 정치적 민주주의가 분명히 승리하는 그 순간에 그 민주주의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새로운 ‘통합적 편협함’의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러한 시대는 으레 그렇듯 경쟁하는 철학 혹은 신념 간의 전쟁을 야기할 것이다.


27.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개인은 사회 체제에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의 무능력을 수치스러워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듣고 자란 개인주의 철학의 영향 때문에, 단체 행동이 좋은 결과를 맺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28.
나로 말하자면, 다가오는 두 집단 간의 갈등에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줄 능력은 없고 에라스무스처럼 바라볼 뿐이다. 여러 면에서 미국의 부호들보다 공산주의자들의 의견에 더 공감이 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철학이 궁극적으로 참이라거나 혹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 점점 발달하고 있는 개인주의가 매우 멀리 갔다는 사실과, 또한 산업 사회가 안정되고 보통의 남녀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으려면 협동 정신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29.
결국 공식·비공식적 검열의 결과 반대 주장이 이성적이기보다는 열띤 주장으로 변해 새로운 것에 대한 찬반의 근거를 차분하게 논할 장을 흐려 놓는데, 이런 식으로는 일반 대중들에게 전혀 전달이 되지 않는다.
…(중략)…
극단적 의견은 보도가 되지만, 온건하고 이성적인 것들은 당국의 반대를 뚫기에는 색깔이 없다고 여긴다.


30.
예를 들어, 만약 한 나라에 사는 사람이 자신이 사는 지역이 다른 나라에 속한다고 말하면, 그는 반역죄로 무거운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그의 의견 자체는 다른 의견들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정치적 논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1.
그러나 나는 모든 나라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학교 교육이 부자들의 이익을 증진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공산주의자라는 것은 해고의 이유가 되지만 보수주의자라서 직장을 잃는 경우는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런 일이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이유들로 인해, 만약 우리 문명이 부자의 이익만을 계속 쫓는다면, 결국에는 망할 것이다.


32.
가족이란 방어 능력이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조직이다. 개미와 벌의 경우 이 역할을 집단이 담당하기 때문에 가족이 필요 없다. 따라서 인간의 경우에도 부모들의 보살핌 없이도 어린이들의 삶이 안전하다면, 가족생활이 점차 사라질 것이다.


33.
점점 더 동인들이나 몇몇 부유한 후원자들만의 것이 된 예술은 종교와 공공 생활에 관계할 때처럼 보통 사람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일로 간주된다. 세인트 폴 성당을 건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건립 자금을 영국 해군에게 주어 네덜란드 군대를 물리치는 데 쓸 수도 있었지만, 당시 재위 중이던 찰스 2세가 그 성당 건립을 더 중요한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34.
거대한 조직은 개인에게 무기력을 심어주고 게으르게 만든다. 이런 위험을 조직 운영자들이 깨닫는다면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사실 이런 일은 운영자들이 체질적으로 깨닫기 힘든 것이다. 인간의 생활양식을 정리하는 깔끔한 ‘계획안’에는 약간의 무정부주의가 ‘첨가’되어야 하는데, 그 양은 부패 상태로 이어지는 부동(不動)의 상태를 막을 수 있을 만큼은 되어야 하되 붕괴를 가져올 정도로 많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여러 가지 일들이 뒤범벅된 실제 생활에서는 좀처럼 풀기 힘든 아주 조심스러운 문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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