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처럼 보이는 어떤 남자가 무대 위로 올라갔는데 사람들은 웃지 않고 아주 근엄하게 그 광대의 말을 경청하는 거예요. "우리 독일인들이 최고입니다. 우리가 우수한데 왜 전쟁에 졌습니까? 유태인들과 공산주의자들 때문입니다." 난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바보같으니라구, 사람들은 과거가 어땠는지를 기억한다고. 네 입을 다물게 만들 거야." 맙소사,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 거예요. 그 광대는 말했어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모든 게 가능합니다!" 수천수만 명이 손을 들고 한 사람의 목소리처럼 외치는 거예요. "하일, 히틀러!"
…(중략)…
그러더니 이번에는 손수레로 그들을 실어 날라 아주 커다란 화로 같은 데서 태워버렸어요. 모든 게, 기차에서부터 굴뚝까지의 모든 것이 마치 기계가 움직이는 거 같았어요. 그놈들이 사람들한테 빼앗은 안경들이 거대한 산처럼 쌓여갔어요.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고 모든 것이 뿌옇게 흐려졌어요. 그 뿌연 흐릿함 속에서 난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 광대 히틀러가 약속한 것, "모든 것이 가능하다"가 이루어졌다는 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말하자면 에티켓을 가르치는 책인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에 실린 내용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무릇 생선이나 고기를 구울 때는 젓가락으로 뒤집고, 맨손으로 뒤집지 말라. 그리고 손에 묻어도 빨아먹어서는 안 된다.’ ‘무나 참외를 먹다가 남을 줄 때에는 반드시 칼로 이빨 자국을 깎아버리고 주어야 한다.’ ‘아버지에게는 공경하면서 너무 무서워하고 어머니에게는 사랑하면서 버릇없이 구는 경우가 있는데, 너무 무서워하면 애정이 펴지지 못하고 버릇없이 굴면 공경심이 행해지지 못한다.’

…(중략)…

그러니까 온갖 금지 사항만을 늘어놓던 이덕무가 어느 결엔가 이런 문장을 썼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와 숙부들이 다 살아 계실 때는 매우 우애가 돈독하였다. 다섯 분 형제가 한 방에 모이시면 화기가 가득하였다. 어머니께서는 이분들을 공경히 섬겨 아침저녁 식사를 반드시 손수 장만하시어 다섯 그릇의 밥과 다섯 그릇의 국을 반드시 큰상에 차려서 드렸다. 다섯 분은 빙 둘러앉아서 똑같이 식사를 드시는데 화기가 애애하였다. 나는 어릴 때 그 일을 보았다. 지금은 네 분 숙부가 다 작고하고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으며, 아버지만이 홀로 계시는데, 때로 그 일을 말씀하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신 적이 없었다.’

이 문장을 쓰면서 이덕무는 그저 ‘어릴 때 그 일을 보았다’며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다’고만 말했다. 자기 마음은 하나도 밝히지 않고 은근슬쩍 그 일을 말씀하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는 아버지 얘기만 하더니 다시 ‘~하지 마라’는 식의 글이 이어진다. 이 문장에서 이덕무는 별말이 없었는데, 나는 그가 어머니와 네 분 숙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들을 여의고 난 뒤 집이 얼마나 조용해졌는지, 아버지와 둘이 앉아 옛 일을 얘기하노라면 슬피 우시는 아버지 때문에 눈물도 보이지 못한 이덕무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겠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제야 나는 이 책에 실린 말들이 사실은 이덕무의 말이 아니라, 그 어머니의 말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손에 묻어도 빨아먹지 말아라, 얘야. 참외를 먹다가 남에게 줄 때는 꼭 칼로 이빨 자국을 깎아버리고 주어야 한다.

 

 

2.

집이 있어 아이들은 떠날 수 있고 어미새가 있어 어린 새들은 날개짓을 배운다.

 

 

3.

예컨대 기호학자였던 움베르토 에코는 “너는 중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추리소설에 대해서도 잘 아니 중세를 다루는 추리소설을 한번 써보라”는 여자친구들의, 삼단논법에 가까운 권유에 혹해서 거의 쉰 살이 가까워 <장미의 이름>을 썼다. 이건 좋은 여자친구를 뒀을 때 가능한 얘기니까, 쉰 살이 가까워지더라도 여자친구는, 그것도 최소한 삼단논법 정도는 구사할 수 있는 여자친구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4.

삶의 여백이자 죽음의 적막을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 귀를 때리는 한여름 매미소리를 역설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매미소리가 천지를 울리다가 문득 멈춘 상태. 그 찰나적인 상태가 바로 견딜 수 없는 삶의 여백이자, 죽음의 적막이니까.

 

 

5.

여류시인 이시바시 히데노가 폐병을 앓다가 죽은 것은 그녀의 나이 서른여덟 살의 일이다. 그녀에게는 여섯 살짜리 딸이 하나 있었다. 어느 여름이겠다. 그녀의 병이 깊어져 구급차가 집으로 달려와 그녀는 병원으로 운송되고 있었다. 구급차로 옮겨지는 동안, 매미가 어찌나 큰소리로 울던지……. 그 와중에 딸아이는 제 엄마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게 무서워 울면서 엄마를 쫓아오고 있었는데, 어느 결엔가 그 애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시바시 히데노가 ‘매미소리 쏴-/아이는 구급차를/못 쫓아왔네’라는 겨우 17자로 표현한 일은 바로 이 일을 뜻한다.

 

 

6.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 서로에게 쓸쓸한 존재다.

 

 

7.

거리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이제 우리는 서로의 소식을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8.

그 아이를 보낸 뒤, 내가 한 일이란 그동안 내가 사귀었던 여자아이들을 기억해내고 그녀들에게 내가 얼마나 나쁜 일을 했는지 참회하거나 문장마다 후회에 가득 찬 일기를 쓰는 일이었다. 이제는 얼굴도 감감한 여자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용서를 빌고 싶었을까? 그 공허감이란 결국 새로 맞닥뜨려야만 하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도피해 들어가는 자폐의 세계였던 것이다.

 

 

9.

내가 아는 한, 김광석이 부른 노래란 그런 노래다. 그의 노래에는 청춘의 결정적 순간에만 맛볼 수 있는 설득력이 있다.

 

 

10.

평균적인 한국 남자라면 다 알 테지만, 어쨌든 입영통지서를 받게 되면 삶은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중략)…

새 양말 한 짝도 살 수 없는 처지라니!

…(중략)…

내 개인적 경험으로 보자면, 그런 인간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조금의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처지가 된 인간들이 열중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뿐이다. 바로 음주와 연애와 여행이다. 매달 계좌에서 종신보험료가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샐러리맨들이 마음 놓고 하지 못하는 세 가지이기도 하다.

 

 

11.

어설프게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를 향해 내 모든 것을 던져버리겠다는 식으로 매달렸고 내 예민한 신경을 건드리는 사람에게는 마음속으로 죽여버리겠다는 욕설을 퍼부었다.

 

 

12.

한번은 치과에서 사랑니를 빼고 관사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나를 부엌 한쪽에 앉혀두고 혼자서만 술을 마시던 대대장이 그날따라 날더러 가까이 오라고 했다. “이병 김연수. 예, 알겠습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래도 서로 인간적인 친밀감은 들었으니까 대대장도 내게 술 한 잔 정도는 다라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대대장은 내게 군납용 캔맥주를 건넸다. 그 캔맥주를 바라보며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오늘 낮에 치과에서 이를 뽑았는데, 의사가 당분간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대장의 동공이 순식간에 확장되면서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뭐라고 설명하기 곤란한 그 표정은 여태 잊히지 않는다.

 

 

13.

살아오는 동안, 그 누구도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한 사람은 없었다. 내 성적과 생김새를 지적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내 안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직접 가리켜 말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시를 쓰게 된 것도 그가 내게 던진 말 때문이었다. 한번은 내가 무슨 일로 약간 비꼬는 투를 섞어 “저도 시나 써야겠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정확하게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어떤 시를 쓸지 꼭 보고 싶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의 격려 덕분에 내 안에 가시덩굴처럼 쌓여 있던 수많은 두려움들, 예컨대 “이제까지 백일장은커녕” 같은 것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중략)…

스승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뜻은 우리 같은 사람들도 이 세상을 더 밝고 멀리 보라는 까닭이다.

 

 

14.

재촉하는 만큼 빨리 흐르지는 않는다고 해도 나이가 들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쯤이야 들어준다는 것, 삶이 너그러운 건 그때뿐이다.

 

 

15.

열일곱 살이라고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역할 분담이 생기기 때문에 즉석떡볶이는 그 아이가 만들었다. 국자로 떡볶이 국물을 아직 숨이 죽지 않은 재료 위에 연신 들이붓는 그 아이를 보면서 과연 함께 살면 음식은 잘 만들 것인가 혼자 상상한 것은 오버 중의 오버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난한 사람 ㅡ 그들을 돌보는 것은 모든 덕행을 대신하는 일이다.



기억력
ㅡ 자신의 기억력을 한탄할 것-그리고 심지어 기억력이 없음을 자랑할 것. 그러나 판단력이 없다는 얘기를 들으면 얼굴을 붉힐 것.



날씨
ㅡ 대화의 영원한 주제. 질병의 보편적인 원인. 언제나 날씨에 대해 불평할 것.



ㅡ 자신의 힘을 모른다. 만약 말이 자신의 힘을 안다면 끌려 다니지 않을 것이다.



백조
ㅡ “한 마리 백조처럼 하얗다.” 검은 백조도 있으므로. “백조의 노래.” 백조는 노래하지 않으므로.



ㅡ 한 마리 새가 되기를 바라는 것, 그리고 “날개, 날개”라고 한숨을 쉬며 말하는 것은 시적은 정신을 드러내준다.



수줍음
ㅡ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장식품.



신성 모독
ㅡ 아름다운 나무를 쓰러뜨리는 것은 신성 모독이다.



연민
ㅡ 항상 가지고 있을 것.



오아시스
ㅡ 사막의 여인숙.



오케스트라
ㅡ 사회의 판박이. 각자 자기 파트를 담당하고 지휘자가 있다.



질문
ㅡ 질문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다.



질투
ㅡ 끔찍한 열정



짐승
ㅡ 아! 짐승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인간보다 더 똑똑한 짐승들도 있다.



집안일
ㅡ 그것에 대해 언제나 존경심을 갖고 말할 것.



키스
ㅡ 키스는 아가씨의 이마에, 엄마의 뺨에, 예쁜 여자의 손에, 아이의 목에, 정부의 입술에 한다.



학문
ㅡ 종교와의 관계 : “학문이 얕으면 종교에서 멀어지고, 학문이 깊으면 종교에 다가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처음 접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는 갈수록(물론 내가 시리즈를 쭉 따라가며 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접한 범위 내에서) 내게 실망을 주고 있다.(하지만 그 만듦새라는 것은 정말 '간지'나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번역의 문제 때문이다. 도리스 레싱의 <런던 스케치>로 날 실망시키더니, 카프카의 <변신·시골의사>에 이르러 몰입을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려나'라는 단어를 나는 처음 들어보았는데, 그것은 무식한 나에게는 참으로 낯설고 낯선 단어라서 이 책을 온전히 다 읽은 다음에도 여전히 그 용례가 아리까리한 상태다. 사전을 찾아보면 '아무려나'는 '감탄사'로, 그 뜻은 '아무렇게나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승낙할 때 하는 말'이라고 나온다. 그러나 이 단어의 존재를 알고 나서야 찾아본 용례는, 또 이 책에서의 용례는 감탄사라기보다는 접속사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무려나(이 자리에 이렇게 쓰는 것이 맞을까?) '아무려나'는 도대체 뭐란 말이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번역도 눈물을 흘리게 한다는 것은 원작이 가진 본연의 훌륭함 이외의 것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십 몇 년 전의 그날처럼 나는 내 방에서 누워서 <변신>을 읽으며, 어느 구절에서 흘렀는지 모를 눈물로 베개를 적시고 있었다.

굳이 민음사에서 나온 이 책을 구입한 것은 여기 실린 장편(掌編) 소설들을 추천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부에 있는 글들은 내게 마치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겪어야만 하는 장애물처럼 인식되었는데 거기다 번역마저 실망스러우니 한층 더 힘들었다. 하지만 읽기가 싫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의 무식 때문에 여전히 정체 파악이 안되는 '아무려나'는 계속 나왔지만 처음 나오는 <변신>의 번역에 대한 실망이 컸던지 그 후로는 별로 번역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읽었다. 역자는 독문학을 하는 사람인데 번역에 있어서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실린 작품 선택에 있어서는 빛을 발한 것 같다. 

책을 절반 이상 읽다보니 문득 깨닫게 된 사실이 있는데, 카프카의 소설들에는 고유명사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부에 실린 <변신>이나 <판결>, <시골의사>, <학술원에의 보고>에는 그나마 사람들 이름이 나오지만 <굴>, <법 앞에서> 그리고 2부와 3부에 실린 짧은 소설에서는 고유명사를 잘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특징은 구체성을 흐리고 모호하게 함으로써 작품을 한편의 우화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더 나아가 어떤 환상성마저 부여하는 듯 느껴졌는데 이 책을 읽기 직전에 읽었던 책이 보르헤스의 <알렙>이라 그런지(물론 그래서일 것이다) 내게는 카프카의 환상성과 보르헤스의 그것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보르헤스가 카프카에게 영향을 받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카프카의 나이가 16살 정도 더 많지만 둘은 동시대를 살았다. 카프카와 보르헤스가 서로 알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2부와 3부에서(역자는 2부가 이 책의 중심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만, 특별히 어떤 기준이 있어서 나눈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특별히 인상적인 작품들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인디언이 되려는 소망>-단 6줄밖에 되지 않는 분량, 그 운율성. 마치 한편의 시처럼 느껴졌다.
<승객>-스스로에 대해 의아해하지 않으며(확신을 가지고) 존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동경과 놀라움.
<회랑 관람석에서>-'그러나 사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라는 그의 부정에도 불구, 하나의 사실을 보는 두 가지 시선.
<가장(家長)의 근심>, <트기>-<가장의 근심>은 '오드라덱'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에 대한, <트기>는 반은 고양이이고 반은 양인 동물에 대한 우화인데, 둘 다 장정일의 <생각>에 실린 '참(懺)'을 생각나게 했다. [책/eX libris] - 장정일, <생각> 중에서 하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모호하다. 어쩌면 언어권이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콘도르 독수리>-자신을 쪼는 독수리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결국 자신의 피로 익사시킨다는 결말. 강렬하다못해 …하다.
<공동체>-공동체의 배타적 속성에 대한 짧은 우화.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밀쳐내도 그는 다시 온다'는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다.
<프로메테우스>-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다른 해석. 이어서 나오는 두 개의 작품 <산초 판자에 관한 진실>, <사이렌의 침묵>과 더불어 보르헤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던(이유는 모른다) 작품이다.
<사이렌의 침묵>-오디세우스와 사이렌(세이렌이 좀 더 나은 번역이 나이었을까? 영어식 이름이라 약간 유감이다.)의 이야기. 세이렌은 사실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침묵을 했다는 가정에서 오디세우스는?
<시(市)의 문장(紋章)>-무의미함을 알아버렸으나 이미 멈출 수 없는 바벨탑 축조. 그들은 어떤 거인이 주먹으로 이 도시를 부수어주기를 기다린다.
<일상의 당혹>-엇갈림에 대한 이야기. 결코 일치될 수 없는 A와 B의 시간. '늘 있는 사건의 하나'라는 첫 문장처럼 환상적이지만 어딘지 익숙한 사건.


아아, 나도 이런 우화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호프 단편선 01 - 세계명작베스트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김순진 옮김 / 일송포켓북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일송포캣북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1.이번에는 작정을 하고 한 분야의 책을 연속해서 읽기로 했으니 '소설주간'의 연장선에서 단편소설들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2.마침 알라딘에서 진행했던 이벤트 중에 이 책들이 들어있어서 상당히 싸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며, 3.결정적으로 고디머(그가 없었다면 우리들 가운데 누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막심 고리끼(<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으니 다른 작가의 작품은 펜이 아닌 막대기로 쓴 것 같았다) 등등 수전 손탁, 버지니아 울프, 톨스토이, 서머싯 몸 등등 유명한 작가들이 체호프를 두고 한 말들 때문이다. 그밖에 아직은 낯선 러시아 문학을 접하고 싶었다던가 하는 이유들은 갖다 붙이려면 얼마든지 붙이겠지만 읽고 나서 만들어낸 것들이다. 출판사 이름에 걸맞게 책은 정말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크기가 작고 가벼워서 이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중에도 체호프 단편선이 있단다. 구경도 못해봤지만 왠지 이걸로 읽길 잘한 것 같다.)

두 권 각각 300페이지 정도 되는데 1권에는 무려 15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고, 2권에는 6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두 권을 굳이 비교하자면 1권에 비해 2권은 '고전적'이다. 달리 말하면 1권의 '모던'함이 나를 놀라게 했다.(체호프는 톨스토이와 동시대를 산 작가이다.) 대부분의 소설이 마찬가지겠지만 소설을 읽으면 영상, 이미지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것이 만화가 될 수도 있고, 영화가 될 수도 있다. 내게 체호프의 단편들은 '단편영화'나 '연극'을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이것은 그가 소설가이자 희곡작가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서머싯 몸이 그에 대해서 했다는 말, '장소와 정경, 인물 간의 대화를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재능을 체호프만큼 보여준 작가는 없었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한다. 그의 문장들은 결코 화려하진 않지만 무엇보다 생생하다.

1권에 실린 15편의 이야기가 모두 재미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조금은 무섭고 환상적이었던 <굽은 거울>, 유쾌하고 신선했던 <굴>, 그건 사랑이었을까의 여지를 남기는 기술 <농담>, 의식이 혼미할 정도로 아픈 상태와 졸린 상태의 묘사가 압권이었던 <티푸스>와 <자고 싶다>, 결말이 너무나 궁금하고 흥미진진했던, 어떤 면에서는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에 실렸던 '승부'를 떠올리게 했던 <내기>가 특히 인상적이고 마음에 들었다. 그 밖에도 현대 연극의 한 장면을 '듣는' 듯했던 <쉿>, 슬픔이 절절하게 묻어났던 <슬픔>도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번역에 대한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차라리 이런 번역은 감동스러운 것이라고 하겠다! 역자는 김순진이라는 사람으로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소개된 그의 경력은 4줄밖에 안되는 것이지만 상당히 흥미로운데, 그는 체호프가 다녔던 모스크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모스크바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하는 의사인데 러시아 문학에 심취하여 러시아 문호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문학을 밥줄로 잡고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편집자가 얼마나 손을 댔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소위 말하는 '어색한 번역투 문장'을 발견하지 못했다.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곧 번역투 문장 때문에 독서의 흐름에 방해받는 일 없이 이야기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오타가 없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그 반대여서 오타도 많은 편이고, 심지어는 단어가 빠진 문장(방금 쓴 구절로 예를 들면 '심지어는   가 빠진', 이런 식의 황당한 오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런 번역은 차라리 감동스러운 것이다.(이것은 직전에 읽었던 책의 번역에 실망한 탓도 크다.) 아무래도 생소할 수밖에 없는 단어들에 달아놓은 각주만 보아도 정성이 느껴진다. 

내게 단편 소설의 맛을 알게 해준 작가는 '알퐁스 도데'와 '다자이 오사무'였다. 체호프의 단편을 모아놓은 두 권의 책을 다 읽은 지금, 읽고 싶은 단편들이 생겼다. 같은 역자가 작업한 <톨스토이 단편선>과 대학교 수업 시간에 한창호 선생님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던 <모파상 단편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