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 단편선 01 - 세계명작베스트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김순진 옮김 / 일송포켓북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일송포캣북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1.이번에는 작정을 하고 한 분야의 책을 연속해서 읽기로 했으니 '소설주간'의 연장선에서 단편소설들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2.마침 알라딘에서 진행했던 이벤트 중에 이 책들이 들어있어서 상당히 싸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며, 3.결정적으로 고디머(그가 없었다면 우리들 가운데 누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막심 고리끼(<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으니 다른 작가의 작품은 펜이 아닌 막대기로 쓴 것 같았다) 등등 수전 손탁, 버지니아 울프, 톨스토이, 서머싯 몸 등등 유명한 작가들이 체호프를 두고 한 말들 때문이다. 그밖에 아직은 낯선 러시아 문학을 접하고 싶었다던가 하는 이유들은 갖다 붙이려면 얼마든지 붙이겠지만 읽고 나서 만들어낸 것들이다. 출판사 이름에 걸맞게 책은 정말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크기가 작고 가벼워서 이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중에도 체호프 단편선이 있단다. 구경도 못해봤지만 왠지 이걸로 읽길 잘한 것 같다.)

두 권 각각 300페이지 정도 되는데 1권에는 무려 15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고, 2권에는 6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두 권을 굳이 비교하자면 1권에 비해 2권은 '고전적'이다. 달리 말하면 1권의 '모던'함이 나를 놀라게 했다.(체호프는 톨스토이와 동시대를 산 작가이다.) 대부분의 소설이 마찬가지겠지만 소설을 읽으면 영상, 이미지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것이 만화가 될 수도 있고, 영화가 될 수도 있다. 내게 체호프의 단편들은 '단편영화'나 '연극'을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이것은 그가 소설가이자 희곡작가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서머싯 몸이 그에 대해서 했다는 말, '장소와 정경, 인물 간의 대화를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재능을 체호프만큼 보여준 작가는 없었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한다. 그의 문장들은 결코 화려하진 않지만 무엇보다 생생하다.

1권에 실린 15편의 이야기가 모두 재미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조금은 무섭고 환상적이었던 <굽은 거울>, 유쾌하고 신선했던 <굴>, 그건 사랑이었을까의 여지를 남기는 기술 <농담>, 의식이 혼미할 정도로 아픈 상태와 졸린 상태의 묘사가 압권이었던 <티푸스>와 <자고 싶다>, 결말이 너무나 궁금하고 흥미진진했던, 어떤 면에서는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에 실렸던 '승부'를 떠올리게 했던 <내기>가 특히 인상적이고 마음에 들었다. 그 밖에도 현대 연극의 한 장면을 '듣는' 듯했던 <쉿>, 슬픔이 절절하게 묻어났던 <슬픔>도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번역에 대한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차라리 이런 번역은 감동스러운 것이라고 하겠다! 역자는 김순진이라는 사람으로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소개된 그의 경력은 4줄밖에 안되는 것이지만 상당히 흥미로운데, 그는 체호프가 다녔던 모스크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모스크바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하는 의사인데 러시아 문학에 심취하여 러시아 문호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문학을 밥줄로 잡고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편집자가 얼마나 손을 댔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소위 말하는 '어색한 번역투 문장'을 발견하지 못했다.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곧 번역투 문장 때문에 독서의 흐름에 방해받는 일 없이 이야기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오타가 없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그 반대여서 오타도 많은 편이고, 심지어는 단어가 빠진 문장(방금 쓴 구절로 예를 들면 '심지어는   가 빠진', 이런 식의 황당한 오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런 번역은 차라리 감동스러운 것이다.(이것은 직전에 읽었던 책의 번역에 실망한 탓도 크다.) 아무래도 생소할 수밖에 없는 단어들에 달아놓은 각주만 보아도 정성이 느껴진다. 

내게 단편 소설의 맛을 알게 해준 작가는 '알퐁스 도데'와 '다자이 오사무'였다. 체호프의 단편을 모아놓은 두 권의 책을 다 읽은 지금, 읽고 싶은 단편들이 생겼다. 같은 역자가 작업한 <톨스토이 단편선>과 대학교 수업 시간에 한창호 선생님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던 <모파상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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