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책상이다 - 그레이트북스 1
페터 빅셀 지음, 김광규 옮김 / 문장 / 1993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얇은 책을 읽고 느낀 감흥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이지 한방 맞은 느낌이다. 이 감흥의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붙잡고 풀어가야 할까. 손쉽게 책 자체부터 보기로 하자.

 

이 책을 읽는 중간에 친구를 만나 교보문고에 갈 일이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은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던 터라 지금 내가 빌려서 읽고 있는 책 말고 다른 판은 어떻게 생겼나 보고싶은 마음에 찾아봤다. 예담출판사로 기억되는데 책상은 책상이다라고 적혀 있는 책은 한 권뿐이었고 양장본이었다! 패이퍼백이 없다는 사실에 많이 실망했지만 그 책의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느낀 실망하고는 차원이 다른, 아주 미미한 정도였다. 책을 넘겼을 때 나는 거기 삽입된 삽화들에 기겁을 하고 말았다. 이런 새로운 텍스트에 이런 진부하고 몽실몽실한 그림이라니..전혀 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이 책이 좋은 책이라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므로 씹는 건 여기까지 하자.

 

이제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말해볼까. 물론 페이퍼백일 뿐더러 값은 2500원이다. 같은 값으로 구입했던 기억이 있는 브레히트 시집의 역자는 김광규씨다. 이 책의 역자도 김광규씨다. 문장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고 아마도 활자조판 시대에 만들어진 책으로 짐작된다. 그것은 글자가 옆으로 누워있다거나 하는 것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이 책에는 그런 실수는 없고, 다만 그 페이지의 뒷면을 손으로 쓸어보면 오돌토돌 엠보싱처럼 만져지는 것이 있다. 자세히 보면 앞면의 글자가 종이에 베긴 것이다. 내가 이걸 알았을 때 얼마나 좋아했던가. 좋아한 일은 또 있다. 이 책에서 쓰인 한글은 지금의 맞춤법과 다르다. 못읽을 정도의 옛날 말이 아니라 '아무튼'을 '아뭏든'으로 적는다든지, '-습니다'를 '-읍니다'로 적는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이걸 발견했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책 내용이 맘에 든 것과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낸다. 한자도 드물게 섞여있는 것도 좋았다.

뭐니뭐니해도 이제하 화백의 그림이 압권이다. 교보문고에 갔을 때만해도 누가 그린 건지 몰랐는데 가서 양장본으로 요새 나온 책의 그림을 보고 실망하면서 '내가 읽고 있는 책의 그림은 아마 원서에 있는 원판 그림인가보다'하고 생각했다. 후에 우리나라 작가의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고 저런 생각을 한 것이 정말 부끄러웠다. 왜 괜찮은 그림을 보고 당연하다는 듯 외국 사람이 그린 것으로 생각했을까. '아뭏든',  나는 이 책을 돌려주기 전에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로 그림들을 다 찍어둘 생각이다.

 

다음, 내용을 볼까. 이 책은 총 3부로 되어 있다. 1부는 온갖 괴상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2부는 그야말로 '창조적 글쓰기'란 이런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김광규씨의 해설에도 나와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기존 문학 장르의 어느 방안에 넣어야 하나. 3부는 한편의 이야기로 어떻게 읽으면 이것이 무슨 문학이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나도 읽으면서 그랬다. 하지만 이건 60년대의 '문학작품'으로 엄연히 대접받고 있다고 한다.

 

내게 이 책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것은 처음의 이야기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물론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죽 마음에 들었던 것이 더 큰 이유겠지만 '첫' 이야기는 '첫인상'과 같다.) '지구는 둥글다'는 이 이야기를 읽고 쥐스킨트가 생각났다. 왜 생각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메리카는 없다'에서의 상상력에서는 탄복했고, '요도크 아저씨'에서는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의 유명한 씬-모든 사람들이 '말코비치' 이 한 단어로 대화하는 장면-은 분명히 이 이야기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여기서만큼 빛을 발한 이야기도 없다고 생각된다.)

 

2부의 이야기는 그림이요, 영화요, 연극이다. 이 모두이면서 그 어느 것도 아니다. (본인은 번역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지만,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생객해볼 때, 번역은 정말 잘 되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2부에서 그렇다.) 읽으면서 머리 속으로 문장들을 그림으로 옮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방금 쓴 표현이 너무나 흔한 표현이라 잘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혹자는 평소에 내가 상상력이라고는 전혀 없이 글을 읽을 때 머리 속에도 역시 글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런 사람은 아니다. 

 

3부 '스위스인의 스위스'를 읽으면서 좀 덜 전투적이고 좀 더 감성적인 조지 오웰의 글을 읽는 듯 했다.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에, 보수보다는 변혁에 방점을 두는 작가의 사고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통찰력이 대단하다.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내가 읽은 이 책, 문장사에서 나온 다소 옛스러움이 묻어나는 이 책은 더 훌륭하다. 지극히 개인적 감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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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돈은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늙은 것을 젊게" 만들고, 심지어 "문둥병조차 사랑스러워 보이도록" 만들며, "늙은 과부에게도 '젊은 청혼자들'이 오게" 만든다고('아테네의 타이먼' 4막 3장). 맑스는 "화폐의 본질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며 이 구절을 즐겨 인용하곤 했다.

 

2.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아니 오늘날에 더욱 셰익스피어의 말을 실감할 것이다. 최근 어느 화폐 심리학자는 화폐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실감케 하는 말을 했다. "조사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해있는 문제들의 대부분이 돈만 있으면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만큼 돈에 대한 예속을 잘 보여주는 말이 또 있을까.

 

3.

물물교환을 했다고 해서, 혹은 저질 주화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들이 곧바로 큰 불편을 겪었다고 추론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화폐가 삶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불평이 여러 곳에서 나왔다.

..(중략)..

기층 민중들은 화폐가 없어서 불편했다기보다, 화폐가 없으면 불편한 상황 속으로 내던져졌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폴라니가 잘 지적했듯이 생존을 시장 메커니즘에 의존해야 하는 사회에서만이 어떤 불편,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공포가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4.

이처럼 화폐를 확보하는 것이 모두에게 관건이 되면, 화폐를 발행하는 국가와 화폐 형태로 부를 축적한 자산가들은 곧바로 경제 전반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5.

화폐 유통이 특정한 인간관계를 전제한다는 손쉬운 증거 중의 하나는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 화폐 거래를 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친밀감이 높고 내적인 결속이 강한 공동체에서 화폐 거래는 어떤 어색함을 불러일으킨다.

 

6.

모두가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떨어져 있는 상황. 각자는 자기 생존에 필요한 재화들을 다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한 재화를 '교환'을 통해서 얻어야 한다. 자신의 생산물 중 남는 부분을 타인의 생산물 중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과 바꾸는 것이다. 여기서 '욕구의 이중적 우연일치'라고 하는 불편이 생겨난다.

..(중략).

이때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어떤 하나의 상품(타인들이 거절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상품)을 확보하도록 노력한다. 이것이 바로 스미스가 화폐의 기원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이다.

각자가 자기 생존을 위해 타인과 교환하고 그 과정에서 화폐가 생겨난다는 주장의 문제는 무엇인가. 바로 공동체가 부재한다는 것이다.

..(중략)..

원시공동체들에서 판단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다.

 

7.

각 공동체들은 대외적 자율성과 대내적 통일성을 유지해야 하는 정치적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 과제 때문에 경제 운용에 있어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자급자족의 이상'을 구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잉여의 형성을 방지'하는 것이다. 생산이 너무 부족하면 다른 공동체에 의존해야 하고, 생산이 너무 많아 잉여가 생기면 그것 때문에 권력의 분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일반화된 등가물로서 화폐는 신분이나 연령 등의 체계는 물론이고 공동체들 사이의 온갖 차이들을 제압해버린다.

 

8.

맨더빌은 아예 '적선할 바엔 사치를 하라'고 했다. 적선이 가난한 자들을 더 게으르게 만들기 때문이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가난을 개인의 게으름으로 환원하는 것은 부를 개인의 노력의 결과로 간주하는 것만큼이나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이 출처도 불분명한 이야기가 빈민 문제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메기가 사는 곳의 미꾸라지가 건강하듯이, 빈곤의 공포가 빈민들을 나태하지 않고 건강하게 만든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9.

가장 경계할 것은 지배적 유형과 우수한 유형을 혼동하는 진화론적 편견이다.

 

10.

화폐는 어떤 질적인 차이도 알아보지 못한다. 화폐는 자신이 마주한 사람의 혈통, 성별, 나이를 묻지 않는다. 화폐는 철저한 평등주의자이며, 모든 차이들을 교환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동일자이기도 하다.

 

11.

화폐를 앞에 두고 그 정체를 묻는다면, 우리는 한꺼번에 울려오는 여러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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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행동하는 지식인'을 이야기 할 때면 항상 거론되는 하워드 진. 이름은 들어봤지만 책을 읽어본 것은 처음이다. 행동하는 지식인은 사실 노엄 촘스키와 하워드 진 뿐만이 아닐텐데도 이들의 이름은 이미 어떤 대표성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이들이 세계 초 강대국 미국에 살면서 미국을 까대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국제 공통어로서 영어가 갖는 힘도 있겠지만.(일본의 행동하는 지성 오에 겐자부로는 이들만큼 언급되던가) 미국이 강대국이기 때문에 이를 비판하는 소리도 더 대담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제 나라의 행위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개별적 차원에서는 분명 비슷한 정도의 용기가 필요할 텐데 말이다.

촘스키가 인용한 오웰의 말처럼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권력자들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은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화씨 9.11>의 마이클 무어나 촘스키, 하워드 진같은 사람이 미국을 비판하는 것이 의도하지 않은(물론 이들의 진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선전효과를 내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미국 내에서는 이 정도도 용인된다!'라고 하는. 

 

세계최초의 언론자유 선언문이라고도 하는 '아레오파지티카'를 쓴 영국의 존 밀턴은 '사상의 자유시장'을 주장했지만 자신이 의원이 된 후에는 그토록 반대했던 검열을 직접 수행했다. 아레오파지티카의 정신을 이어받은 미국의 수정 헌법 제1조에 의해 거의 '절대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는 미국에 살고 있는 이방인인 친구가 보아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한다. 인터넷을 통한 포르노를 청소년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성인인증제도를 도입하고자 했지만 이 수정 헌법에 걸려 부결되는가하면, 미국 성조기를 태우고 다닌 사람도 이 수정 헌법에 의해 무죄가 선고되었다.(이 점을 생각하면 한국 현대사에서 학생들이 미국 성조기를 태웠는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갔다는 사실은 참.. 재밌다.) 

 

뭔가 억압하고 차단하고 은폐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사회 분위기에서 그것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이야기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누구나 그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래서 온갖 종류의 주장이 난무한다면, 그 어떤 주장도 장기적인 주목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오웰의 말을 좀 더 확대해보면 베르베르가 말한 검열의 문제와 만난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인정한다. 그러면 너도나도 자신이 믿는바를, 생각하는 바를 서슴없이 말하게 되고 온갖 정보와 주장들이 넘쳐난다. 이런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이렇게 보면 오웰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권력자들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은 많다.'는 말에는 정보를 차단하지 않고 범람시킴으로써 검열을 한다는 의미도 들어가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책의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왜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고 있는거지? 미국에서 일어난 그런 사건들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읽을 수록 드는 생각은 현실은 영화보다 드라마틱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났던 영화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실제 모델이 따로 있다고 하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하워드 진이 그 모델인가 싶었고, 곧 이어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 지구상에 무수히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메리칸 히스토리 엑스'같은 것들이었다. '말콤엑스'나 '제이에프케이'는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이지만 생각날 수 밖에 없었고, 그 밖에 전쟁의 참상을 다룬 많은 전쟁영화와 폴 오스터의 '거대한 괴물'과 같은 소설도 생각났다.

 

그에게 뭔가 부당한 일이 일어났고 거기에 대해 재판을 하게 되면 승리할 것이 확실한데도 그것이 '자기 인생을 구속시킬' 것이라는 이유로 회피하고,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의 뜻으로 징병 기록부를 불지른 사건에 대한 법정의 증인석에서도 스스로 고백했듯이 '집에 가서 아이들과 아내를 보고싶은 욕망이 정의에 대한 욕망을 이겨' 집으로 돌아간 것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물론 그가 좀 더 세게 밀고 나아가 법정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고 해서 무죄가 선고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그가 느낀 좌절감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뭔가 씁쓸하다. 인간적이라고 해야하나.

감옥에 가기로 결정하고 수감된지 하루만에 남은 벌금을 내고 나온 것은 또 어떻게 봐야할까(이 부분에서는 웃기기까지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물론 그가 우스워보였다는 말은 아니다.)

그 결정적 이유는 감방 안의 바퀴벌레였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오브리언이 윈스턴으로 하여금 줄리아를 배신하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쥐였다. 오브리언은 이렇게 말한다. '고통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인간은 죽을 지경에 빠져서도 고통을 참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누구나 견딜 수 없는 것,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용기나 비겁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절벽에서 밧줄을 잡는 행위나 물속에서 나와 숨을 크게 쉬는 것처럼 아무리 저항하려 해도 이쩔 수 없는 압력의 한 형태가 있다.' 그것이 윈스턴에게는 쥐였다면 하워드 진에게는 바퀴벌레라고 이해할 수 있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은 많다. 하지만 그 대상이 감옥과 같은 성격의 것일 경우 겪어보지 않고 말한다는 것은 피상적이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일종의 퍼포먼스 또는 연극과 같은 '일일감옥체험'이 아니라 진짜로 감방에 들어가는 것 말이다. 비록 그것이 하워드 진의 경우처럼 원하기만 한다면 벌금을 내고 나올 수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이를 겪어본 사람과 안 겪어본 사람은 달라진다.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제대군인원호법'이 부러웠다.(하워드 진은 이 법을 통해 제대 후 대학교육을 받고 학위를 따게 된다) 인생의 여러 측면들을 경험하고(진은 빈민가에서 태어나 조선조 노동자로 떠돌다 2차 대전때 폭격기를 탔고 그 후에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교수가 되었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는 그의 모습이 부러웠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의 제목이 읽기 전에 느꼈던 것보다 훨씬 크게 다가왔다. 정말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제어할 수 없다고 느끼고 어떤 결정에 대해 침묵한다면 그것은 찬성의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달리는 기차 위에서 자신은 중립이라고, 중도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넌센스다.

 

예전에 중앙일보에서 조사한 젊은 세대의 정치적 성향이 '중도 보수화'되었다고 표현한 것이 생각난다. 하워드 진과 같은 행동하는 교수를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면서 활발한 연구를 하는 교수(학자의 기본 자질이라고 생각한다)도 찾기 어려운 '낡은 질서에서 적당한 자리를 찾도록 준비시키는' 대학과 거기에 적극 호응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어울려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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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까지 하루에 집회 두 번 참가한 게 한두 번이겠습니까만, 오후에는 파병반대 집회에 가서 대통령을 성토하고 저녁때는 그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밝히다니,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참 별짓을 다해보기도 했습니다.

 

2.

날아가는 명패를 보며 나는 1989년 1월 1일 국회 본회의장의 허공을 가로지른 또 다른 명패가 생각났다. 초선 의원 노무현이 던진 것이었다. 3당 야합으로 가는 길목에서 5공 청산은 유야무야되었고 백담사에서 하산한 전두환은 여유있게 발언을 마치고 의사당을 빠져나갔다. 그 빈자리에 말없이 앉아 있던 노무현이 명패를 날렸다. 지금의 노무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나는 솔직히 그때 노무현에게 반했다. 그가 명패라도 집어던지지 않았더라면, 내가 텔레비젼을 집어던졌을지도 모를 그런 기분이었다.

 

3.

논쟁판에는 이미 머리에 쥐가 난 사람들과 곧 나려는 사람들 두 부류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4.

미군을 상대하는 기지촌 여성들에게는 청와대 비서관 등 고위관리들이 나와 안보역군으로 치켜세웠고,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기생관광'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외화벌이 전선에 나선 산업전사가 됐다.

 

5.

일부러 집정관 총재라는 타이틀로 공문을 보내는 대통령 이승만에게 상해 임시정부의 총리 이동휘는 제발 헌법을 존중해달라고 호소했다. 대통령 이승만의 답변은 참으로 걸작이었다. 헌법을 지키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아직 헌법을 읽어보지 않았노라고... 원래부터 이승만을 탐탐히 여기지 않았던 괄괄한 성격의 이동휘는 바다 건너에서 그런 소리를 해대는 이승만을 보고 "대가리가 썩었다"고 펄펄뛰었다. 이승만을 통합 임정의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당대의 인격자 안창호조차 이승만을 가리켜 '정신병자'라며 진저리를 쳤다.

 

6.

최 교수의 부인은 <워싱턴 포스트>기자가 집에까지 찾아와서 큰소리로 당신의 남편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타살된 것이 아니냐며 물었을 때, 중앙정보부 직원들이 바로 옆에 지켜 서서 감시하는 가운데, 그저 돌아가달라는 말 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7.

여호와의 증인들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일제 강점기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나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똑같은 행동을 했을 뿐이다. 똑같은 행동을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한 행동은 독립운동으로 찬양받고, 군사독재 시절에 한 행동은 반국가사범으로 처벌받는다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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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의 상처를 안고 미친 세월을 살아내야 했던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들은 다 내가 그때 죽어야 했다고 하십니다. 한국과 베트남, 차이가 없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우리는 곧 떠나야 했습니다. 누군가가 인사를 드리라고 해서 몇 사람이 등을 떠밀려 앞으로 나갔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도대체 이런 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휘청 무릎이 꺾이면서 저는 분홍색 아오자이를 입은 할머니의 뼈만 남은 무릎 위로 고꾸라졌습니다. 분홍색 옷이 까맣게 보이면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어떻게 밖으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따라온 외신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대며 인터뷰를 하자고 했습니다.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규명한답시고 아픈 상처를 헤집고 다니는 우리나, 생생한 현장의 육성을 전한답시고 이런 때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이나 참 사람되기 글러먹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중략)..

진실은 귀중한 것이지만 진실과 마주선다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2.

양심적 병역거부 토론회에서 만난 군목 출신의 한 목사님은 한때 군대가 1주일에 새로운 신자를 5천 명씩 만들어내던 복음전파의 '황금어장'이라고 말한다. 물론 초코파이는 그 미끼였고, 나도 그 미끼를 문 한 마리 붕어였다. 어떤 목사님은 한 발 더 나아가 "왜 교회 안나갔나"하면 "시정하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군대는 '황금어장' 정도가 아니라 '가두리 양식장'이라고 말한다.

 

3.

입시제도는 능력본위주의라는 신화에 기초하여 출발했지만, 여기서 능력이란 개인의 학습능력만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적 능력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 되어버렸다.

 

4.

출옥 뒤의 박노해는 어떤 친구의 표현에 따르면 도사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출옥 인사에서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을 했을 때, 그말을 반기면서도 어느 장난기 많은 친구는 "박노해만 몰랐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언제 우리 운동이 다른 무엇을 가진 적이 있었는가?

 

5.

한번도 본토를 공격당한 적이 없는 미국한테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예양의 의리에 눈물을 흘린 조양자와 같은 태도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와도 같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도 당할 수 있다라는 자각이 미운 놈과 더불어 사는 지혜와 관용을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6.

이 글을 준비하면서 들어가본 청와대의 '인터넷신문고'는 접속하자마자 둥둥둥 스스로 북을 울리고 있다. 신문고인 줄 알고 접속해보았더니 자명고(自鳴鼓)였던 것이다.

 

7.

김승옥에게 서울은 서로 소통을 절실히 바라는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눠도 서로 교류할 수 없는 곳이었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는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평화시장 앞에 줄지어선 가로등 가운데서 동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은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화신백화점 6층 창들 가운데는 세 개만 불빛이 나오고 있다거나 하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세 사내가 시합하듯 이런 자잘한 기억을 주고받는 모습을 통해 김승옥은 모든 욕망의 집결지 서울에서 소외된 자들의 비애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중략)..

옛날에도 시골 사람들은 "서울놈들은 비만 오면 풍년이란다"라며 서울 사람들이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을 탓했다. 그리고 "쌀나무도 알고 있는 슬기로운 머리"를 가진 서울 사람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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