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책상이다 - 그레이트북스 1
페터 빅셀 지음, 김광규 옮김 / 문장 / 1993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얇은 책을 읽고 느낀 감흥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이지 한방 맞은 느낌이다. 이 감흥의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붙잡고 풀어가야 할까. 손쉽게 책 자체부터 보기로 하자.

 

이 책을 읽는 중간에 친구를 만나 교보문고에 갈 일이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은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던 터라 지금 내가 빌려서 읽고 있는 책 말고 다른 판은 어떻게 생겼나 보고싶은 마음에 찾아봤다. 예담출판사로 기억되는데 책상은 책상이다라고 적혀 있는 책은 한 권뿐이었고 양장본이었다! 패이퍼백이 없다는 사실에 많이 실망했지만 그 책의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느낀 실망하고는 차원이 다른, 아주 미미한 정도였다. 책을 넘겼을 때 나는 거기 삽입된 삽화들에 기겁을 하고 말았다. 이런 새로운 텍스트에 이런 진부하고 몽실몽실한 그림이라니..전혀 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이 책이 좋은 책이라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므로 씹는 건 여기까지 하자.

 

이제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말해볼까. 물론 페이퍼백일 뿐더러 값은 2500원이다. 같은 값으로 구입했던 기억이 있는 브레히트 시집의 역자는 김광규씨다. 이 책의 역자도 김광규씨다. 문장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고 아마도 활자조판 시대에 만들어진 책으로 짐작된다. 그것은 글자가 옆으로 누워있다거나 하는 것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이 책에는 그런 실수는 없고, 다만 그 페이지의 뒷면을 손으로 쓸어보면 오돌토돌 엠보싱처럼 만져지는 것이 있다. 자세히 보면 앞면의 글자가 종이에 베긴 것이다. 내가 이걸 알았을 때 얼마나 좋아했던가. 좋아한 일은 또 있다. 이 책에서 쓰인 한글은 지금의 맞춤법과 다르다. 못읽을 정도의 옛날 말이 아니라 '아무튼'을 '아뭏든'으로 적는다든지, '-습니다'를 '-읍니다'로 적는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이걸 발견했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책 내용이 맘에 든 것과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낸다. 한자도 드물게 섞여있는 것도 좋았다.

뭐니뭐니해도 이제하 화백의 그림이 압권이다. 교보문고에 갔을 때만해도 누가 그린 건지 몰랐는데 가서 양장본으로 요새 나온 책의 그림을 보고 실망하면서 '내가 읽고 있는 책의 그림은 아마 원서에 있는 원판 그림인가보다'하고 생각했다. 후에 우리나라 작가의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고 저런 생각을 한 것이 정말 부끄러웠다. 왜 괜찮은 그림을 보고 당연하다는 듯 외국 사람이 그린 것으로 생각했을까. '아뭏든',  나는 이 책을 돌려주기 전에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로 그림들을 다 찍어둘 생각이다.

 

다음, 내용을 볼까. 이 책은 총 3부로 되어 있다. 1부는 온갖 괴상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2부는 그야말로 '창조적 글쓰기'란 이런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김광규씨의 해설에도 나와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기존 문학 장르의 어느 방안에 넣어야 하나. 3부는 한편의 이야기로 어떻게 읽으면 이것이 무슨 문학이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나도 읽으면서 그랬다. 하지만 이건 60년대의 '문학작품'으로 엄연히 대접받고 있다고 한다.

 

내게 이 책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것은 처음의 이야기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물론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죽 마음에 들었던 것이 더 큰 이유겠지만 '첫' 이야기는 '첫인상'과 같다.) '지구는 둥글다'는 이 이야기를 읽고 쥐스킨트가 생각났다. 왜 생각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메리카는 없다'에서의 상상력에서는 탄복했고, '요도크 아저씨'에서는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의 유명한 씬-모든 사람들이 '말코비치' 이 한 단어로 대화하는 장면-은 분명히 이 이야기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여기서만큼 빛을 발한 이야기도 없다고 생각된다.)

 

2부의 이야기는 그림이요, 영화요, 연극이다. 이 모두이면서 그 어느 것도 아니다. (본인은 번역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지만,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생객해볼 때, 번역은 정말 잘 되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2부에서 그렇다.) 읽으면서 머리 속으로 문장들을 그림으로 옮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방금 쓴 표현이 너무나 흔한 표현이라 잘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혹자는 평소에 내가 상상력이라고는 전혀 없이 글을 읽을 때 머리 속에도 역시 글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런 사람은 아니다. 

 

3부 '스위스인의 스위스'를 읽으면서 좀 덜 전투적이고 좀 더 감성적인 조지 오웰의 글을 읽는 듯 했다.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에, 보수보다는 변혁에 방점을 두는 작가의 사고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통찰력이 대단하다.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내가 읽은 이 책, 문장사에서 나온 다소 옛스러움이 묻어나는 이 책은 더 훌륭하다. 지극히 개인적 감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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