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은 통하지 않는다. 예컨데 나는, 강아지보다 지능이 훨씬 높았지만, 대학의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에도 여전히 신문의 경제면을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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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탄전 일보 직전까지 갔던 그날의 작은 소동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다른 친구들의 현명한 예방조치 덕분에 그 정도로 끝이 났다. 내가 내린 그날의 결론은 이랬다. "경제학을 공부하면 인간성이 나빠진다."
2.
알아듣기 쉽게 '돼지 같은 인간'이 하나 있다고 가정하자. 이 돼지 또는 인간은 처음에는 먹을 것만 있으면 행복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서 먹어도 먹어도 남을 만큼 먹이를 많이 구했다. 막상 이렇게 되니까 돼지는 이제 먹을 것만 가지고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제가 싼 똥이 너무 더러워 기분이 나빠졌다. 돼지는 또 일해서 집을 깨끗이 수리하고 화장실을 만들었다. 그 다음에는 침대를 들여놓고 마누라도 구했다. 그런데도 돼지는 여전히 충분히 행복하지는 않았다. 룸살롱에 진출해서 날씬하고 예쁜돼지와 춤도 추고 2차도 갔다. 그것마저도 곧 싫증이 난 돼지는 호화유람선을 타고 세계일주 여행을 한다. 유람선 안에서 돼지는 생각한다. 나는 정말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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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양은 유한하기 때문에 그걸로 충족할 수 있는 욕구의 양 역시 유한하다. 방정식 우변의 분자는 유한한 크기라는 말이다. 그런데 충족시키고 싶은 욕구는 무한하다. 분모는 무한대라는 이야기다.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 나누면 뭐가 되나? 답은 0이다. 이건 '수학적 진리'다. 돼지가 새로운 그 무엇을 소유하고 소비할 때마다 느낀 행복은 '심리적 착각'에 불과하다. 수학적으로 볼 때 '무한한 욕망'을 가진 돼지의 행복지수는 언제나 0이다.
3.
경제학에서 '합리적'이라는 표현은 단지 그런 의미일 뿐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거나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이걸 오해하면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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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인간은 시기심과 동정심을 가진 존재다. 그는 언제나 이웃집 담장 너머를 흘끔거리면서 남이 어떻게 사는지를 살핀다. 그러나 경제학의 세계에서 인간은 언제나 혼자서 자기의 행복을 키우는 데만 관심이 있는 철두철미 이기적이고 고립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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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세계에서 인간은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것은 증명 없이 참으로 인정하는 명제, 즉 공리이다.
4.
물론 '자발적 매춘'이라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일리가 있다. 먹고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누가 몸을 팔겠는가. 이런 점에서 모든 매춘은 사회적으로 강요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논리를 성매매에만 적용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데 있다. 먹고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누가 막노동판에 나가겠는가. 먹고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누가 유독가스가 흘러 다니는 영세한 화학공장에 다니겠는가. 먹고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누가 남들이 다 곤히 자는 새벽길에서 냄새 나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을 하겠는가.
5.
한국 민간가계의 저축률은 미국이나 유럽국가는 물론이요 근면하기로 유명한 독일과 일본보다 더 높다. "온 국민의 과소비가 IMF위기를 불렀다"는 일부 정치인과 경제 전문가들의 주장은 이론적으로 황당하고 실증적으로도 아무 근거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베짱이보다는 개미 쪽에 훨씬 더 가깝다.
6.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말이 있다. 원칙적으로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 타당한 건 아니다. 나는 예컨대 1980년대의 전두환 정권이 당시 국민의 수준에 맞는 것이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아무리 우리의 민주주의 역량이 부족했다 할지라도, 우리가 삼청교육대와 국보위, 고문살인과 보도지침 따위에 어울리는 국민이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7.
유력 신문사들은 일부 언론학자와 경제학자들의 입을 빌어 1999년 정부 규제개혁위원회가 규제 완화 차원에서 폐기했던 '신문고시'를 되살리는 것이 정부의 신문 길들이기이며, 무가지 배포는 소비자에게 이익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보수적인 법률가 모임에서는 위헌심판 청구를 하겠노라고 했다. 신문사가 공정위의 '고객'인데 고객이 거부하는 신문고시를 왜 공정거래위원회가 강요하느냐고 쓴 신문기자도 있었다. 모두 다 헛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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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신문사가 공정위의 '고객'이라면 도둑놈도 경찰의 '고객'이 될 것이니 이런 해괴한 논리가 달리 또 있을까?
신문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정부가 손대지 말고 신문업계의 '자율규체'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220여 년 전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 제 1편 제10장에 남겨두었던 유명한 말씀을 한번 되새김질해 볼 필요가 있겠다.
동업자들은 즐겁게 놀거나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서로 만나는 경우가 드물지만, 만나기만 하면 대화는 언제나 국민대중에 대한 음모로 끝난다.
8.
의사들이 즐겨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일약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던 어느 논객은 이것이 '의료 자본주의'와 '의료 사회주의'의 싸움이라고 주장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의료 서비스 시장과 의료 보험 시장은 원래부터가 자본주의 시장원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예외 영역이어서 국가의 개입과 통제는 어떤 경우에도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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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특별한 도덕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며, 자선사업가나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살피는 목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들이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의사가 되었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의사가 된 것 또한 사실이다. 남의 생명을 다루는 사람이라고 돈을 탐해서 안 될 이유는 없다.
9.
전염병과 인구 증가 사이의 역사적 상관관계를 연구한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약품과 수술 등 의료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평균수명 연장에 기여한 바는 상대적으로 매우 미미하다. 그보다는 상하수도의 분리와 방역 등 일반적인 공중보건정책, 그리고 주거환경과 식생활의 개선 등으로 영아사망률과 전염병 사망자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이 평균수명 연장의 주된 원인이었다. 그러니 의료기술이 더 발달하면 나도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10.
국민건강보험은 사실 의료보험이 아니라 진료비 할인 제도에 불과하다.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게 너무 많고 본인 부담율이 너무 높아서 암이나 신장 계통 만성질병 등 정말 큰 병에 걸렸을 때는 보험기능을 하지 못한다. 연예인들이 암 환자를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모금을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는데, 의료보험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이런 것은 필요가 없다. 원래 보험이라는 것이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대비한 것인데 정말 큰 위험이 닥칠 경우 소용이 없으니 이걸 어찌 보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11.
국가채무를 가구수로 나누어 뽑은 액수를 들이대며 온 국민이 다 빚을 지고 있는 것처럼 분노와 공포감을 조성했지만, IMF차입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부채를 국내에서 조달했다는 사실, 따라서 그 어머어머한 나라 빚의 채권자 역시 우리 국민이라는 사실을 주목한 언론사와 정치인은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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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조 원에서 400조 원에 걸쳐 저마다 다른 수치를 들이대지만, 어쨌든 사람을 겁에 질리게 만들기에 충분한 규모다. 하지만 겁먹을 이유는 별로 없다. 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무지를 악용하는 정치적 선동에 휘둘리면 자기만 손해다. 대한민국은 해마다 생기는 국민소득이 국가채무보다 훨씬 많은 나라다. 게다가 대부분의 국가채무는 결국 우리 국민이 자기 자신에게 빌린 돈이다. 자기 자신에게 꾼 돈의 액수가 너무 크다고 경기를 일으키는 것은 어린아이에게나 어울리는 행동이 아닐까?
12.
아주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이익을 얻는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정도 개인적 이익 때문에 번거로운 활동을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적은 수의 사람들이 큰 이익을 얻는 문제가 있으면 강력한 이익단체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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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소수의 이익은 다수의 이익보다 조직하기 쉽다. 둘째 생산자의 이익은 소비자의 이익보다 조직하기 쉽다.
13.
공공재라는 따분한 이름을 가진 바구니에는 도둑을 잡고 산간벽지에 노선버스를 넣어주는 그런 좋은 것만이 아니라 독재와 인권유린 같은 끔찍한 '흉기'도 함께 들어있는 것이다.
14.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투표를 통한 집단적 의사결정에서는 규칙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진다. 그리고 어떤 규칙이 다른 규칙보다 우월하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특정한 표결방식을 통해서 권력을 잡은 집권세력이 야당을 존중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자는 이야기다.
15.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대한 리스트의 비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하다. '영국적 세계'의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갔고, 미국은 정보통신, 항공우주, 생명공학 등 현재 돈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돈이 될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했다. 자유무역론은 한때 영국의 이데올로기였지만 오늘날 그 이데올로기의 주인은 미국이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 등 거의 모든 국제경제기구를 통제하면서 다른 나라들이 이러한 미래지향적 전략산업을 국제경쟁에서 보호하거나 인위적으로 육성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다. 한때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세율을 자랑했던, 그리고 조국 독일에서 추방당한 보호무역론의 원조 프리드리히 리스트를 위대한 경제학자로 떠받들었던 과거는 모두 망각 속에 묻어버린 채 말이다.
16.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국제 금융계의 큰손 조지 소로스를 일산 저택으로 초대해 극진한 대접을 한 적이 있다. 소로스는 1990년대 중반 영국과 프랑스 같은 서유럽 선진국 국민경제를 투기 대상으로 삼아 엄청난 돈을 벌었던 인물로서, 국제금융시장을 혼돈에 빠뜨리고 동남아시아 신흥공업국들과 한국 등 멀쩡한 국민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은 범죄자라는 비난까지 듣고 있던 터였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조지 소로스의 만남은 국제적 자본 이동이 국민국가의 주권을 농락한다는 유럽지식인들의 진단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