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살아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2.

우리의 사랑이야기가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이 되지 못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 누군가 비행기를 놓치거나 전화번호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쓰이지 못했던 로맨스들을 간과해버릴 수 있었다.

..(중략)..

주사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향으로 구르지만, 우리는 미친 듯이 필연성의 패턴을 그려보려고 한다.

 

3.

잠시 후 나는 클로이가 나를 향해서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고통스럽고 약간 불안해보이는 표정이었는데, 나중에 나는 그것이 그녀의 평상시 표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4.

중요한 것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에서 완벽함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었다.

 

5.

우리는 자신에게 있다고 아는 것-비겁함, 심약함, 게으름, 부정직, 타협성, 끔찍한 어리석음 같은 것-을 상대에게서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랑에 빠진다.

 

6.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다.

 

7.

내가 필자였다면 견고하고, 단단하고, 문법적으로 강력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할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 펜을 잡는다)

 

8.

나는 듣기보다는 해석을 했다.

 

9.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구제불능일 정도로 따분한 사람은 자기자신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중략)..
진정한 연인의 생각은 두서가 없고, 말은 조리가 안 선다는 것이다. 언어는 사랑에 걸려 넘어지고, 욕망에는 명료한 표현이 결여되어 있다(그러나 나는 그 순간에는 나의 말의 변비를 자작의 능란한 어휘와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10.

클로이의 질문 하나하나가 무시무시했다. 무심결에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그녀를 불쾌하게 만드는 내용이 들어간 대답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11.

생각만큼 섹스와 대립하는 것은 없다. 섹스는 육체의 산물이다. 무분별하며, 디오니소스적이며, 직접적이며, 이성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이며, 희열을 동반한 육체적 욕망의 해소이다.

 

12.

신화에 나오는 정열적인 사랑의 행위는 팔찌가 걸린다든가, 다리에 쥐가 난다든가, 상대의 쾌락을 극대화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상대를 아프게 한다든가 하는 사소한 방해물로부터 자유롭다. 엉킨 머리카락이나 팔다리를 풀어내다보면, 욕망만 존재해야 하는 곳에 당혹스러울 정도의 이성이 침투할 수밖에 없다.

 

13.

인간은 둘로 나우어져 행동을 하는 동시에 뒤로 물러나서 자신이 행동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분열로부터 반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의 분열을 다시 통합할 수 없다면, 어떤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면, 그것은 자의식 과잉이라는 병이 된다.

 

14.

자연적인 것이라는 관념에는 모순이 있다. 자연이라는 신화는 (헤겔의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자연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에 나타난 것으로, 원시주의에 대한 향수와 사라진 에너지에 대한 애도를 표현한 것일 뿐이다.

 

15.

사랑을 바라지만, 자신의 진정한 자아가 드러나면 상대가 실망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략)..

마르크스주의자는 자신의 핵심적 자아가 남들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것이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면 자신이 협잡꾼이라는 것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16.

나는 그녀에게서 내 자신 안에서 생겨날까봐 두려워하는 의존성을 비난했다. 그러나 연약성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건, 독립성 역시 그 나름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7.

철학자들은 유토피아적인 사회를 생각할 때 그곳을 차이가 용해되는 용광로로 생각하기보다는 비슷한 마음과 통일성, 유사성과 동일성, 공동의 목표와 가정을 기초로 세워진 사회로 보는 것 같다.

 

18.

보들레르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여자와 하룻동안 파리를 걸어다닌 남자에 대한 산문시를 쓴 적이 있다. 그들은 아주 많은 것들에 대해서 의견이 같았기 때문에, 저녁이 되었을 무렵 남자는 자신의 영혼과 결합할 수 있는 영혼을 가진 완벽한 벗을 만났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들은 목이 말라서 대로 한 구석에 있는 화려한 새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남자는 가난한 노동계급 가족이 카페의 판유리 너머에서 우아한 손님들, 눈부신 흰 벽, 황금장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 가난한 구경꾼들의 눈은 실내의 부와 아름다움에 대한 경이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화자는 동정심과 더불어 자신이 그런 특권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에 수치를 느꼈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의 눈에도 자신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을 것을 기대하며 여자를 보았다. 그러나 남자가 영혼의 결합을 준비하고 있던 여자는 눈을 크게 뜨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불쌍한 사람들이 눈에 거슬린다며, 남자더러 주인한테 이야기해서 그들을 쫓아내버리라고 말했다. 모든 사랑 이야기에는 이런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19.

상대가 우리더러 마음대로 살라고 허락한다면 그것은 보통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

낭만적 사랑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일반성이 아니라 독특함이다. 그것은 이웃 A가 자기와는 다른 미소나 주근깨나 웃음이나 의견이나 발목 때문에 이웃 B를 사랑하게 되는 문제이다. 예수는 사랑에 기준을 갖다붙이지 않음으로써 이 까다로운 문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사랑이 고통스러워지는 것은 기준 때문이다.


21.

유머가 있으면 직접적으로 대립할 필요가 없었다.
..(중략)..
농담 뒤에는 차이에 대한, 심지어 실망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긴장이 완화된 차이였고, 따라서 상대를 학살할 필요없이 벽을 넘어갈 수 있었다.


22.

그녀는 플라톤주의자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각도에서는 추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움에는 플라톤적으로 완벽한 얼굴에는 없는 것이 있었다. 아름다움은 추함과 고전적 완벽성 사이의 동요의 영역에서 발견된다.


23.

진정한 아름다움은 흔들리기 때문에 측정이 불가능하다.
..(중략)..
추를 향하여 계산된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 것에 미는 있을 수 없다.
..(중략)..
고전적인 비례를 갖춘 사람을 "아름답다"도 생각하는 데에 무슨 독창성이 있을까?


24.

다만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너무 신중하여 그것을 (사랑을 합병하고 있는)낭만의 닳아빠진 사회적 언어로 말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녀의 감정들이 나를 향하고 있었음에도, 묘한 의미에서, 그 감정들은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25.

그 어느 때보다 언어가 독창적이고, 개인적이고, 완전히 사적이기를 바라는 순간에 나는 마음의 언어의 어쩔 수 없는 공적인 성격과 마주치게 되었다.
..(중략)..
'사랑'과의 거울 단계 동일화가 필요하지만, 나 자신을 그 말과 동일화하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말에는 이질적인 역사가 너무 풍부했다. 음유시인들로부터 카사블랑카까지 모든 것이 그 단어를 이용해왔다.


26.

그러나 그들은 마치 메시아적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을 마주한 무신론자들처럼 세속적이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중략)..
그러고 나서야 나는 사랑이 외로운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기껏해야 다른 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해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27.

의학사를 보면 자신이 달걀 프라이라는 이상한 망상에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의 사례가 나온다. 그가 언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찢어질까봐" 아니면 "노른자가 흘러나올까봐" 어디에도 앉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의사는 그의 공포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진정제 등 온갖 약을 주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어떤 의사가 미망에 사로잡힌 환자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늘 토스트를 한 조각 가지고 다니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하면 앉고 싶은 의자 위에 토스트를 올려놓고 앉을 수가 있고, 노른자가 샐 걱정을 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 환자는 늘 토스트 한 조각을 가지고 다녔으며, 대체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28.

갑자기 클로이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너 또 길 잃은 고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
전에는 아무도 내 표정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지만, 클로이가 말하는 순간 갑자기 그 말이 그때까지 내가 느끼던 혼란스러운 슬픔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되면서, 내 우울도 조금은 덜어지는 듯했다.
..(중략)..
고아에게 고아라고 말해줌으로써 집으로 돌려보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29.

"이 꿈틀꿈틀거리는 건 다 뭐야?" 내가 물었다.
"아, 그건 내가 너하고 있을 때는 흔들리는 느낌이기 때문이야"


30.

나는 그녀의 내적인 삶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지, 절대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다.
..(중략)..
클로이가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그녀는 결국 다른 인간-그 말이 가지는 모든 신비와 거리를 지니고 있는-일 뿐이었다.


31.

내가 현재 그녀에게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어떤 정의("남자", "남자친구") 안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클로이의 눈에 비친 존재(그 존재들 중에서는 특별하다고 해도)에 불과할 뿐이었다.


32.

나는 나무를 나무라고 부르지만, 1년 내내 나무는 변하고 있다.


33.

행복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행복이 워낙 희귀하기 때문에 눈앞에 다가오면 무시무시하고 불안해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중략)..
아침의 기대, 현실에서의 불안, 저녁의 유쾌한 기억.
..(중략)..
맛있는 음식이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고, 아름다워 보이는 클로이는 내 옆에 앉아서 내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도 뭔가가 이상했다. 나는 어서 그 사건이 역사 속으로 흘러들어가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를 살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평생 갈망해온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34.

우리는 서로 소리를 지를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서로 소리지르는 것을 견딜 수 있을지 없을지 보기 위해서라도 그런 과정이 필요했다.


35.

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한다. 개인적인 바람을 이야기하자면, 어떤 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속성이나 특질을 넘어선 존재론적 지위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이다.


36.

"내가 저 여자처럼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었어도 나를 사랑했을 것 같아?"
그 질문에는 "그렇다"는 대답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
..(중략)..
나는 당신이 내 얼굴보다는 머리를 칭찬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꼭 얼굴을 칭찬해야겠다면,(정적이고 피부조직에 기초를 둔) 코보다는 (운동신결과 근육이 통제하는) 미소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주기 바란다.
..(중략)..
내가 너한테 약해 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37.

그녀의 짝이 자신의 목에 입을 맞추는 방식, 책장을 넘기는 방식, 농담을 하는 방식에 유혹을 당했던 여자는 바로 이 연결점들 때문에 짜증을 낸다.
..(중략)..
나는 내가 하는 말이, 과거에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들렸던 말이, 갑자기 왜 화를 돋우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38.

한편에는 여자를 천사와 동일시하는 남자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사랑을 병과 동일시하는 천사가 있었다.


39.

일단 한쪽이 관심을 잃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서 그 과정을 막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40.

모든 삐치는 일의 밑바닥에는 그 즉시 이야기를 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질 수 있는 잘못이 놓여 있다. 그러나 상처를 받은 쪽에서는 그 일을 나중을 위해서, 좀더 고통스럽게 폭발시키기 위해서 쌓아둔다.


41.

그녀의 눈물 때문에 내 짐도 잠시 유예를 받았다. 나는 이 상황의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았다. 여자가 남자를 배반함으로 해서 생긴 고통을 놓고 배반당한 남자가 배반한 여자를 위로하고 있다니.


42.

거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악하다는 딱지가 붙고, 거부를 당한 사람은 선의 화신이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43.

예수가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이 된 것은 단지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려놓은 울 듯한 눈과 창백한 안색 때문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가 착하고 완전히 의로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배반당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중략)..
그 인물은 모든 사람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지만, 사람들은 그 관대한 메시지를 그의 면전에 내던져버렸다.


44.

세상은 내 행복에 기꺼이 편의를 제공했지만, 이제 클로이가 떠났다고 해서 무너져내리지는 않았다.


45.

오랫동안 내 소파와 함께 살고 나서야 클로이가 드레싱 가운을 입고 거기 누워있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 그 위에서 책을 읽고 있는 친구의 이미지라든가 내 외투가 가로놓여 있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46.

그러나 사랑이 미친 짓임을 안다고 해서 그 병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
..(중략)..
우리가 바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우리가 현자가 되지는 않았다.


47.

금욕주의자들은 사랑을 고통과 비합리성으로 단순화시켜서 그것으로 사랑에 대항하는 결정적인 논증을 만들어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욕망을 좇다보면 틀림없이 받게 되는 상처를 피해갔다고 하지만, 감정적 요구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반면 낭만적 실증주의자들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심리적 지혜로 문제를 단순화시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면 모두 고통 없는 사랑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냈다. 그럼으로써 지혜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켰다고 하지만, 그 지혜의 교훈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무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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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말수는 적지만 우스갯소리는 좋아했다. 함께 안동 갔을 때의 얘기다. 그는 유도회에서 일하는 한학자인 옛친구를 소개하면서 말했다. "이 친구는 유도는 못하면서 유도회 회장인기라." 그러자 그 친구는 대거리했다. "이 친구는 전우익이면서 만날 좌익만 안 하는기요."

 

-신경숙의 서문 '깊은 산속의 약초 같은 사람' 중..

 

 

2.

버릴 줄 알아야 지킬 줄 알겠는데 버리지 못하니까 지키지 못합니다.

 

 

3.

철 따라 옷 바꾸어 입는 일에 골몰한 그들에게 세상을 바꾸자는 말에 귀기울이게 할 순 없을까? 더 값진 집과 승용차에 인생을 건 그들에게 세상을 바꾸자는 말이 먹혀들어 갈 수 있을까?

 

 

4.

세월이 가는 걸 본 사람도 나무가 크는 걸 본 사람도 없는데, 세월은 가고 나무는 자랍니다.

 

 

5.

일을 변화시켜 노동의 고역(비지땀 흘리며 하는 일)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게 아니고 나와 내 자식만은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것은 극히 이기주의적인 발상입니다. 일을 변화시키는 일이 생활을 변화시키고 삶의 방식과 태도를 변화시켜 결국은 자신과 세상도 변화시키는 기초가 될 수 있지 않느냐 하고 생각해 봅니다.

..(중략)..

오늘날 일이 크게 둘로 양분되어 정신 노동, 육체 노동으로 나누어졌는데 이것도 빨리 어우러져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역시 경독(耕讀)의 일체화라고 여겨요. 참된 경은 독을 필요로 하며, 독도 경을 통해서 심화되고 제구실도 할 수 있겠지요. 

방에 틀어박혀 책상 붙들고 앉아서 천하명문이 나온다면 천하는 무색해질 것입니다.

 

 

6.

그런데 스님, 이 하늘 밑 어디에 과연 구경거리가 있습니까? 그러나 구경꾼에게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몸뚱이도 구경거리가 되는가 봅니다.

..(중략)..

땅 위에 돋아난 풀 한 포기에서 하늘에 뜬 구름까지 거기에 구경거리는 없습니다.

..(중략)..

달포 전 팀스피리트 작전이 벌어졌을 때 신문에서, 중단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미군 사령부에 들어가 항의하려다 잡혀 갔다는 기사와 사진을 보았습니다만, 그때 마침 제천 지방을 지나다가 팀스피리트 훈련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이색적인 외국군이 신기한 최신 무기를 들고 국토를 종횡으로 쏘다니는 것도 색다른 구경거리가 되나 봅니다. 이 나라의 구경꾼들이 돈 안내고 보는 구경거리라고 미안했는지 동방예의지국의 국민답게 환영 현수막으로 예의를 대신한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7.

씨의 공통점은 작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고 묻기 쉬우며 땅에도 별 부담감을 주지 않습니다. 나무도 어린 묘목을 심어야 많이 심고 살기도 잘 삽니다. 큰 나무는 옮기기도 심기도 힘들고 살리기도 힘듭니다. 옮겨 심은 큰 나무는 몇 해 몸살을 앓다가 겨우 살아나거나 말라 죽기 일쑤입니다.

스님, 종교 교리와 민족 해방, 인간 해방이란 이론도 무슨 씨 비슷한 데가 있지 않습니까? 그 씨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을 때 심어졌는지도 모르게 심어 그 사람이 씨를 싹틔워 키우고 꽃피워 열매 맺게 한다고 느끼곤 합니다.

 

 

8.

닭은 없어졌는데 달걀은 더 많이 먹게 된 얄궂은 농촌이 되었습니다. 마치 밀밭이 흔적도 없는데 온 나라에 밀가루 음식이 판을 치는 것과 맥이 통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9.

스님, 의료보험료를 내라고 끈덕지게 고지서가 오더니 한 번은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그 중에서 좀 높아 보이는-가장 비인간적인-사람이 보혐료를 내지 않으면 국민이 아니라면서, 전화를 압류하라고 부하들한테 명령을 합디다. 그렇게 하랬더니 그냥 갔습니다.

 

 

10.

우리는 너무나 아프지 않으려고 피하다가 아픔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맙니다.

..(중략)..

수월하게 살아보자고 아픔을 피하는 동안 아픔이 홀로 커서 감당하기 힘들게 된 거죠.

 

 

11.

과연 인간들의 축제를 위해서 주위의 생명들이 떼죽음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인간들 사이에서 힘센 자들이 약한 자들을 함부로 다루는 것도 수긍되어야 하고, 우르과이라운드라는 것도 비난할 것이 못 되지요.

 

 

12.

인간만이 남의 흉내를 내기 위해 안달을 하고 그걸 못하면 좌절하는 것 같아요.

 

 

13.

피로 쓴 정규도 세월과 더불어 빛이 바래는데 먹으로 쓴 구호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리는 없겠지요. 그걸 보고 감동할 천진난만한 사람들은 이 살벌한 땅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14.

도장을 새기는 데 음각과 양각이 있듯, 책을 읽을 때도 노상 그럴 수는 없지만 때로는 도장처럼 마음에 새기게(心刻) 됩니다. 그럴 때는 아파서 좀 읽다 덮고 그 통증이 사라져야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15.

예식이 끝나자 사진을 찍대요. 이 사진 찍는 데 사진장이가 별의 별 간섭을 다해요. 그뿐 아니라 모두들 그의 말에는 순순히 잘도 따라요. 언제부터 사진 찍는 풍토가 그렇게 되었는지 몰라도 마치 모리꾼이 짐승을 몰듯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얼굴 표정과 몸가짐을 간섭해요.

 

 

16.

줏대없고 자신없는 잘못된 몸가짐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 시대를 들먹이며 책임을 시대탓으로 넘기는 걸 많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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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날 우리는 매스컴이 길들여 놓은 경박한 방식으로나마 우리 나름대로 종말의 공포를 겪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현대인들은 무책임한 소비자 중심주의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이데올로기와 연대(蓮帶)의 종언을 찬양하면서, <마시자, 먹자, 내일 우리는 죽을 것이다.>라는 정신 속에서 그것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묵시록의 환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누구나 마귀를 쫓듯이 그 환영을 몰아내려고 애씁니다. 두려움이 클수록 그 노력은 더욱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면서도 태연하게 그 환영을 유혈이 낭자한 스펙터클의 형태로 스크린에 투사하여 보고 즐깁니다. 그럼으로써 그 환영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환영의 힘은 바로 그 비현실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중략)..
달리 말해서, 기독교 세계에서는 종말론을 묵상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고, 실제의 종말은 책력으로 측정할 수 없는 차원으로 돌리는 게 마땅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서, 세속에서는 그런 생각을 짐짓 무시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하나의 강박 관념으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대화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편지 '새로운 묵시록에 대한 세속의 강박관념' 중..


 

2.
계시록들에 나타나는 지배적인 주제는 일반적으로 현재로부터 도피하여 미래 속으로 숨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미래에는 현재의 세계 구조가 전복되면서 저자의 소망과 기대에 일치하는 완전한 가치 체계가 확고하게 수립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계시문학의 배후에는 억압받는 인간 집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직접적인 행동에서 출구를 찾기보다는 우주적인 힘이 지상에 내려와 적들을 섬멸해 주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계시록에는 유토피아를 향한 크나큰 열망과 현실에 대한 참담한 절망이 동시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첫번째 대화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편지에 대한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의 답장 '희망은 종말을 <궁극 목적>으로 바꾼다.' 중..


 

3.
사람은 개선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에 대해서만 잘못을 뉘우칩니다.

 

-첫번째 대화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편지에 대한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의 답장 '희망은 종말을 <궁극 목적>으로 바꾼다.' 중..


 

4.
인류의 어떤 문명들에서 학살과 식인 풍습과 타자의 육체에 대한 모욕을 용인했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문명들이 <야만족>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간주함으로써 <타자>의 개념을 부족 공동체 또는 민족에 국한시켰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군 병사들은 이교도를 사랑해야 할 이웃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사실, 타자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욕구를 타인들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인류의 천년에 걸친 성장의 결과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교의 계명조차도 그것을 위한 때가 무르익고 나서야 비로소 표명되고 어렵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네번째 대화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답장 ''타자가 등장할 때 윤리가 생긴다.' 중..

 


5.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자기의 죽음을 의미있는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신을 믿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자기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면 살아 있는 아이의 심장을 빼앗을 각오까지 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네번째 대화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답장 ''타자가 등장할 때 윤리가 생긴다.' 중..

 


6.
그런데, 당신은 세속의 모든 윤리는 그리스도의 모범과 말씀이 없어서 근본적인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고 확고한 신념의 힘을 지닐 수 없다고 하십니다. 어찌하여 용서하는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을 권리를 비신앙인들에게서 박탈하려고 하십니까?

 

-네번째 대화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답장 ''타자가 등장할 때 윤리가 생긴다.' 중..

 


7.
설령 그리스도가 단지 어떤 위대한 이야기의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이야기를 두 발 가진 불쌍한 동물들-오로지 자기들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는 동물들-이 상상하고 갈망했다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이 정말로 육화(肉化)하였다는 것만큼이나 기적적이라는 (기적처럼 신비롭다는) 점을 말입니다.

 

-네번째 대화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답장 ''타자가 등장할 때 윤리가 생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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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축구에 반대하지 않는다.
반대하고 말고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물론 축구경기장에는 가지 않지만,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밤에 밀라노의 중앙역 지하 통로에 가서 잠을 자지 않는 이유나
저녁 6시 이휴에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배회하지 않는 이유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멋진 경기를 보는 경우는 더러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한눈을 팔지 않고 재미있게 본다.
그만큼 나는 그 품위 있는 경기의 모든 장점을 인정하고 높이
평가하는 셈이다.

요컨대 나는 축구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축구팬들을 싫어할뿐이다.

..(중략)..

내가 축구광들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이상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지않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하며,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을 자기네들과 똑같은 축구광으로
간주하고 한사코 축구얘기를 늘어놓는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해 그 들의 태도와 비슷한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중략)..

이제 내가 기차를 타고 있다고 가정하고 , 맞은편에 앉은 승객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이런 물음으로 말문을 연다고 치자.
"프란스 브뤼헨이 최근에 CD를 냈는데, 그거 들어 보셨어요?"

"실례지만, 뭐라고 하셨지요?"

"[눈물의 파반]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초입 부분이 너무 느린거
같더군요"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반 아이크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또박또박한 말투로)
블록플뢰테말이예요"

"음..저는 그 방면에는 당최..그게 활로 켜는 악기인가요?"

"아 이제 알겠네요.그러니까 그 분야에 대해서는 아시는게 전혀.."

"그래요 문외한입니다."

"그거 참 재미있군요. 그래도 수제품 쿨스마를 손에 넣으려면 3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아시겠지요?그런 점에서 보면
흑단으로 만든 뫼크가 낫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것 중에서는
최고죠, 그건 그렇고 [데르드레 둔 다프네 도버]의 5번 변주 정도는
들어보셨겠지요?"

"금시초문인데요 사실 저는 파르마에 가는데.."

"아하~ 알겠어요 C보단F로 연자하는 것을 좋아하시는군요.
어떻게 보면 그 편이 더 듣기가 좋지요.말이 나왔으니 얘긴데요
뢰이예의 소나타 하나를 찾았는데 그 게 어떤 곡이냐면.."

"뢰이..뭐라고요?"

"그 곡보다는 텔레만의 환상곡들을 한번 연주해 보셨어면 해요.
해내실수 있겠어요? 설마 독일식 운지법을 사용하시지는 않겠지요?"

"아시다시피, 저는......독일에 관해서라면.....독일의 BMW는 대단한
차죠, 그래서 독일인들을 존경하기는 합니다만......."

"알겠어요 무슨 말씀인지. 바로크식 운지법을 사용하시는가 보군요.
좋습니다. 다만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 사람들은..."

이런 식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
지 모르겠다.
어쨋거나 독자들은 나와 마주 앉은그 불운한 승객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열차의 비상 제동 장치를 잡아당긴다 해도 그의 심정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런데 우리가 축구광을 만날때도 바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가장 고약한 경우는 택시 운전사가 축구광일때다.

"비알리 경기하는 거 봤어요?"

"아뇨, 내가 안볼때 나왔나봐요."

"오늘밤 경기 보실꺼죠?"

"아뇨 [형이상학] 전집 Z권 작업을 해야되요"

"좋아요, 그 경기를 보면 내 말이 옳은지 그른지 알게 될꺼예요
내가 보기에 반 바스텐은 90년대 마라도라가 될 재목이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반 바스텐도 그 렇지만 하지도
눈여겨 봐야돼요."

그의 얘기를 중단시키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건 벽에 대고 지껄이는 거나 진배없다.
그는 내가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는게
아니다. 그는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수 없는 사람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거기에 있다.
설령 내가 눈이 세개 달리고 후두부의 초록색 비늘에 안테나 두개가
솟아 있는 외계인이라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것이다.
그는 도대체가 다양성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할수 없는 사람이다.

..(중략)..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똑같다는 것을 그토록 확고부동하게 믿고 있는
자들이 다른 지방에서 온 축구광을 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고 드니 말이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이런 보편적인 쇼비니즘을 대하면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마치 극우 연맹의 지지자들이 이렇게 지껄이는
소리를 들을때 처럼.

-아프리카 인들이 우리에게 오도록 내버려둬라.
그래야 놈들에게본때를 보여 줄 수 있을 테니.-

 

 

 

-'축구이야기를 하지 않는 방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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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나이 또래의 부자집 아이들이 생각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라고는 거리의 거지 정도가 고작이었다.

 

-'거지와 창녀' 중..

 

2.

마치 등 뒤에 베개를 괴고 병실에 들어서는 사람을 기다리는 환자처럼 누군가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자 하는 내면의 욕구는 훗날 나로하여금 내가 어떤 여인을 오랫동안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그 여인이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였다.

 

-'병과 인내심' 중..

 

3.

파괴적 성격은 지속적인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어느 곳에서나 길을 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벽이나 산과 마주치는 곳에서 그는 하나의 길을 본다. 그러나 이처럼 그가 어디에서나 하나의 길을 보기 때문에 그는 길로부터 비켜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때 그는 언제나 조야한 폭력을 가지고 길로부터 비켜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매우 세련된 폭력으로 길로부터 비켜난다.

또 그는 어디에서나 길을 보기 때문에 그 자신은 언제나 교차로에 서있다. 어떤 순간에도 그는 다음의 순간이 무엇을 가져다 줄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현존하는 것을 그는 파편으로 만드는데, 그것은 파편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파편을 통해 이어지는 길을 위해서다.

파괴적 성격은 인생이 살 값어치가 있다는 감정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살할 만한 값어치가 없다는 감정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파괴적 성격' 중..

 

4.

의지력이나 집중력은 독자들의 강점이 아니다. 독자들이 더 좋아하는 것은 감각적인 향락들이다.

 

-'보들레르의 몇가지 모티브에 관해서' 중..

 

5.

신문의 의도가 신문이 제공하는 정보들이 독자들의 경험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데 있었다면, 신문은 이러한 의도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문의 의도는 이와는 정반대이며, 그리고 이러한 정반대의 의도는 달성되고 있다. 신문의 본질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경험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영역으로부터 제반 사건을 차단시키는 데 있다.

 

-'보들레르의 몇가지 모티브에 관해서' 중..

 

6.

[영국에서의 노동자계급의 위치]라는 저서에서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런던과 같은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시작도 끝도 없이, 그리고 바로 옆에 확트인 시골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몇시간이고 배회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매우 특이한 점이다.

..(중략)..

며칠동안 중심가의 보도를 거닐다보면 우리는 런던사람들은 그들의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문명의 기적들을 모두 완성시키기 위해 그들이 지닌 인간성의 가장 훌륭한 부분들을 희생시켜야만 했고, 또 그러한 문명의 기적들 속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힘들이 활용되지 못한 채 억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중략)..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에게 단 한번만이라도 시선을 던져 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러한 개인들이 작은 공간으로 밀집해서 밀어닥치면 밀어닥칠수록 잔인한 무관심, 즉 자신의 사적인 관심사에만 무감각하게 고립되는 현상은 그만큼 더 역겹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보들레르의 몇가지 모티브에 관해서' 중..

 

7.

대도시 사람들의 눈이 방어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지나친 부담에 시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게오르그 짐멜은 눈이 담당하고 있는 보다 덜 눈에 띠는 기능에 대해 언급하였다.

'..(중략)..대형버스, 지하철, 및 전차 등이 19세기에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말 한마디 주고 받음이 없이 서로를 몇부 동안 심지어 몇시간 동안이고 빤히 쳐다보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지는 않았었다.'

방어적인 시선 속에는 꿈꾸듯 먼 곳에 망연자실한 채 빠져드는 면이 없다. 방어적인 시선은 심지어 그러한 망연자실한 태도를 유린하는데에서 쾌감같은 것을 느끼기조차 한다. 

 

-'보들레르의 몇가지 모티브에 관해서' 중..

 

8.

[피가로]紙의 창립자인 빌머쌍은 정보의 본질을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써 규정짓고 있다. 그는 입버릇처럼 '나의 독자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마드리드에서의 혁명이 아니라 까르띠에 라땡에서 일어나는 다락방 화재이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이러한 표현이 명백히 말해주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가장 즐겨 듣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먼 곳으로부터의 소식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에 하나의 단서를 제공하는 정보라는 점이다. 먼 곳으로부터의 소식은-그것이 공간적으로 낯선 나라든 아니면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전설이든간에-비록 그것이 검증되지 않았더라도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중략)..

정보가 내거는 가장 중요한 요구조건은 그 정보가 '그 자체로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중략)..

매일 아침 우리들은 지구의 새로운 사건들을 알게 되지만 정작 진귀한 얘기에는 빈곤을 겪고 있다. 그 까닭은 우리들이 알게 되는 일들이란 모두 하나의 예외도 없이 이미 설명이 붙여져서 전달되기 때문이다.

..(중략)..

정보는, 그것이 새로왔던 바로 그 순간에 이미 그 가치를 상실한다. 그것은 오로지 그저 한 순간 속에서만 생명력을 가진다. 또 정보는 스스로를 완전히 그 순간에 내맡겨야만 하고 또 한순간의 시간도 잃음이 없이 그 순간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얘기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그것은 스스로를 완전 소모하지 않는다. 얘기는 자신이 지닌 힘을 집중된 상태에서 그대로 우지하고 있을 뿐더러 또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다시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얘기꾼과 소설가' 중..

 

9.

꿈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권태는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얘기꾼과 소설가' 중..

 

10.

한때 죽는다는 것은 각 개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공적 과정이자 또 가장 대표적인 공적 과정이기도 하였다. 임종시의 침대가 왕좌로 변하는-사람들은 활짝 열려진 죽은 사람 집의 대문을 통해 이 왕좌로 몰려들었다.-중세의 그림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러한 죽음이 갖는 공적 과정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세가 경과하면서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각의 세계로부터 점점 더 멀리 밀려나게 되었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어나간 적이 없는 집이나 방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중략)..

오늘날의 시민들은 한번도 죽음에 접하지 않았던 공간, 즉 영원성이 사라진 메마른 주거공간에서 살고 있고, 또 만약 그들의 마지막이 가까이 오게 되면 그들은 그들의 상속자들에 의해 요양소나 병원에 옮겨져 차곡차곡 안치된다.

 

-'얘기꾼과 소설가' 중..

 

11.

소설이 의미를 갖는 것은, 소설이 이를테면 제 3자의 운명을 우리들에게 제시해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제 3자의 운명이, 그 운명을 불태우는 불꽃을 통해서 우리들 스스로의 운명으로부터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따뜻함을 우리들에게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얘기꾼과 소설가' 중..

 

12.

동화는, 신화가 우리들 가슴에 가져다준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 인류가 마련한 가장 오래된 조치방안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동화는 바보의 인물을 통하여 어떻게 인류가 신화에 대해 바보처럼 행동하였는가를 보여주고, 막내동생의 모습을 통해서는 인류가 신화의 원초적 시간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짐에 따라 어떻게 그들의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두려움을 배우기 위해 떠났던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는 우리들이 두려움을 갖는 사물들이 투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현명한 체하는 영리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는 자연은 신화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들하고도 함께 어울리기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얘기꾼과 소설가' 중..

 

13.

사진사가 인위적인 조작을 하고 또 모델의 태도도 계획적으로 조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사진을 보는 사람은 그러한 사진에서, 미미한 한 줄기의 불꽃 즉 현실이 그것에 의해 사진의 영상을 골로루 태워냈던 우연과 현재적 순간을 찾고 싶어하고, 또 그 속에서  이미 흘러가 버린 순간의 평범한 삶 속에 미래적인 것이 오늘날까지도 얘기를 하면서 숨어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과거를 뒤돌아보면서도 미래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눈에 띄지도 않는 미미한 부분을 찾고 싶어하는 제어할 수 없는 충동을 느낀다.

 

-'사진의 작은 역사' 중..

 

14.

문화유산의 현존재는 그것을 창조한 위대한 천재들의 노고뿐만 아니라 어느정도는 이름도 없는 동시대의 부역자들의 노고에도 힘입고 있는 것이다. 야만의 흔적이 없는 문화의 기록이란 결코 없다.

 

-'수집가와 역사가로서의 푹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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