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말문이 트이는 것도 느리고, 말귀도 잘 못 알아듣고, 한글도 늦게 뗀 아들을 보는 엄마들의 시선이 곱지가 않다. 남매를 기르는 엄마는 종종 둘을 비교하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딸은 과외며 학원이며 시키지 않아도 공부를 잘하는데, 아들은 도통 공부에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 밖에 나가 친구들과 공차기나 좋아하고 집에서는 게임기만 붙잡고 있다. 말을 해도 흘려듣고 숙제나 준비물도 챙겨주지 않으면 빼먹기 일쑤다. 물론 모든 아들들이 다 이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중략)…
남아는 여아와 다른 발달 순서를 밟는데,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발달 순서에 불리한 환경을 제공받는다. 게다가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능력은 얄궂게도 대부분 여아의 발달 단계에 맞춰져 있고, 학습 과정 또한 그렇다.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항상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여아는 소근육과 사고, 언어가 먼저 발달하는 데 비해, 남아는 대근육과 행동이 먼저 발달한다. 여자아이는 발달 시기에 맞게 말하기와 읽기, 쓰기를 배우고, 별 어려움 없이 원하는 정보를 얻고 실력을 발휘해서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남자아이들에게 그 시기는 대근육을 발달시키는 시간이다. 한창 움직이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우리는 앉아서 공부할 것을 강요하는 셈이다. 이 시기에 남자아이의 대근육 발달은 여자아이를 능가하지만, 아무도 아이의 대근육 발달을 칭찬해주지 않는다.
2.
아기를 갖게 된 순간부터 엄마 아빠는 아이의 미래를 구상한다. 처음의 바람은 소박했다.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충분하다 싶었다. 심성 곱고 반듯한 아이면 더 바랄 것이 엇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엄마 아빠는 하나둘 욕심을 보태기 시작한다.
이제 첫돌을 맞이한 아이가 왜 옆집 아이보다 걸음마를 빨리 떼지 못하는가 안달하더니, ‘엄마’ ‘아빠’라는 말을 언제 시작하는지 조바심 내고, 생후 18개월에 기저귀 뗐다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는다. 그러고는 누구보다 한글을 빨리 떼겠다며 교재, 교구의 힘을 빌려 경쟁에 돌입한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대기자 명단에 올려둔 유명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언제 연락이 오나 노심초사하고, 막 세 돌이 되었을 뿐인데 요즘 트렌드라는 각종 교육기관으로 아이를 내몬다……. 처음의 소박한 바람으로 일관했던 부모도 ‘남들은 다 한다’는 생각에 점차 불안해지긴 마찬가지. 웬만한 강심장 부모 아니고서는 소신 있게 아이를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
3.
아이가 착하면 손해를 본다는 것은 부모의 착각이다.
4.
부모 역할극에서 아이들이 대신 보여준 부모의 태도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구분된다. 이것은 세상 모든 부모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첫 번째는 “네가 잘못을 하니까 걔가 네 이름을 적는 거 아니야”, “너 공부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평생 못살아”,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을 나쁘다고 그러면 안 되지” 등은 아이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에 해당한다. 부모들이 가장 흔히 취하는 태도다.
두 번째 “네가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려봐”, “친구들하고 같이 놀면 친구들이 널 좋아하잖아. 그러면 반장 뽑을 때 널 잘 뽑지 않을까?”, “그럼 네가 한번 반장이 돼봐” 등은 ‘설득’에 해당한다. 설득형 부모는 자신은 아이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마지막 세 번째 “뭐 그런 선생님이 다 있어”라는 대답은 ‘공감’에 속한다. 이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모의 태도다.
5.
사소한 이야기란 아이와 엄마 사이에 아무런 심리적 이해관계가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 쉽게 말해서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꽃이 피었구나”, “바람이 차구나” 같은 이야기인데, 혹시라도 추우니까 나가지 말라는 식의 훈계조가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