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사생활 아이의 사생활 시리즈 1
EBS 아이의 사생활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에 대한 관심> 

 

# 1
멍 때리고 TV 리모콘을 돌리다가 아기들이 나와서 보고 있었다. 외국의 아기들이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雪)을 접하는 모습이 앙증맞았고, 흉내내기 등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다. 화면도 좋고 나레이터의 설명도 담백한 것이 언뜻 보아도 꽤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 알고 보니 <아기의 사생활>이라는 프랑스 다큐멘터리로, 갓 태어났을 때부터 2년간 5명의 아기들을 관찰한 프로그램이다.

# 2
멍 때리고 TV리모콘을 돌리다가 EBS가 걸렸는데, 뮤직비디오에 나올 것 같은 배경에 두 아이가 나와서 무슨 단어 연상 놀이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몇 초 안에 단어 몇 개를 말하면 언어지능이 높다'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때 본 화면의 세련됨이란 사실 굉장한 것이었다. 늘 관심이야 있지만 늘 오래 두고 보지 못하는, 동경의 대상 EBS기에 어김없이 채널은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아니, 형이 뺏어서 돌렸던가?)
 
# 제목
가끔 순찰하듯 돌아보는 서점에서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내가 처음 떠올린 것은 예전에 TV에서 봤던 다큐 <아기의 사생활>이었다. 이 글을 쓰려고 찾아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같은 제목이라고 생각했고, 그 프랑스 다큐가 얼마나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대놓고 베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은 확실히 사람들의 주목을 끈다. 비록 이 제목이 프랑스 다큐 <아기의 사생활>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랬다 하더라도 이 책의 영어 제목 'Discovering a Child'를 한글로 썼다면 <아이의 발견> 정도가 되었을 것이니, 그 편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아이의 발견'도 썩 나쁜 제목은 아니다.)

# 전인(全人)
이 책을 간단하게 '양육'에 관한 책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아이'가 강조되고, EBS라는 교육방송에서 제작한 콘텐츠를 다듬어 나온 책이니까 그렇게 판단할 근거는 충분하다. 하지만 굳이 부록까지 읽지 않더라도 목차를 들여다보는 순간, 그렇게 간단하게 가둘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록에서 말하고 있듯, 이 책의(프로그램의) 기획의도는 양육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수수께끼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고, 그 시기로 '아동기'가 선택되었다고 보는 편이 훨씬 사실에 가깝고, 책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다음의 다섯가지가 이들이 택한 주제다. 

# 뇌-남녀-다중지능-도덕성-자존감
뇌에서 시작해서 다중지능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장들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과학적 접근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후 이어지는 도덕성과 자존감이라는 주제는 다소 막연하게 느껴지는데, 이를 실험이라는 방법을 써서 적절히 보완하고 있다.(그래도 자존감 부분은 역부족인 것 같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남녀 차이에 대한 부분이었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도덕성에 대한 챕터다. ‘아이가 착하면 손해를 본다는 것은 부모의 착각이다’라는 짧은 문장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착한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나에게 앞으로 생길지 모를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생각하게 만드는 챕터였다. 흔히 ‘착하게 살아라’하는 식으로 잔소리처럼 하게 되는 도덕 및 윤리 교육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꿔서, 실험과 관찰, 즉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한 점은 정말 놀랍다. 

# 개인적인 이야기들
책을 읽으면서 은근히 엄마를 중심에 두고 아빠는 다소 보조적으로 서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당연히) 엄마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는 듯한 느낌. 실험의 내용에서도 종종 발견되었고, '부모'라고 하며 서술하고 있지만 확실히 '엄마'를 가정하고 서술되고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 그런 면에서 나는 다소 비판받을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은, 자식이 있는 부모들은 모두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아빠와 엄마는 아이와 관계 맺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고 하며 서술 방식에 특별히 문제는 없어보인다고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 점은 굉장히 과학적이라고 해야겠다. 
처음에는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였던 소박한 바람이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의 불안과 조급증, 욕심으로 변질되는 것을 표현한 부분을 읽으면서,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부모들은 모두 반쯤 미쳤다’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의 소신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혹시 나도 훗날 ‘반쯤’ 미쳐 아이를 망치는 짓을 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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