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전집 2 - 산문 김수영 전집 2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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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산문>


600쪽이 넘는 이 두꺼운 책을, 그것도 돈을 주고 사서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어느 블로그에서 보았던 다음과 같은 김수영의 문장 때문이다.  


   
  무식한 위정자들은 문화도 수력발전소의 댐처럼 건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최고의 문화정책은,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 문장이 포함된 글이 이 책에 실렸으리라는 보장도 없었지만, 김수영의 전집 중에서도 산문을 모아놓은 이 책이라면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하고 선뜻 주문한 것이다. 이게 벌써 몇 개월 전이다. 들고 다니며 읽기에는 무거워서, 잠자리의 머리맡에 두고 잠들 때마다 틈틈이 읽었다. 책은 모두 7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일상과 현실, 창작과 사회의 자유를 다룬 1부와 2부의 글들은 '빛나는 문장'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그의 전공의 세계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시론과 문학론(3부), 시작 노트·편지·일기초(4부), 시 월평(5부), 미완성 장편소설 '의용군'(6부) 등은 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문청도 아니고 역사적으로 한국의 근대 문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닌 나같은 사람에게는 다소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다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문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참으로 고매하면서도 한없이 유약한 김수영의 인감됨이다.

내게 시인의 산문을 읽는다는 것은 고역이다. 물론 그동안 내가 읽은 글 중에는 수많은 시인의 산문이 있었을 것이나 나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은 강정의 <나쁜 취향>이다. [책/독후잡문] - 나쁜 취향-강정 어떤 시인의 산문이 기억에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한 것은 그것이 아마 불편함이 아닌 안도감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면에서 시인 강정의 <나쁜 취향>은 분명 의미있는 책이지만 나에게 '시인의 산문'에 대한 고정관념을, 그것도 토할 것 같은 고정관념을 심어주었다는 면에서 손가락질을 당해 마땅하다. 게다가 이 책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쌈마이'인 척, 로우클래스인 척 한다. 물론 이것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마케팅 차원에서 결정되었을 확률이 높지만.

강정의 산문과 김수영의 산문을 단지 '시인의 산문'이라는 직업적 형식적 공통점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강정의 책은 분명 그의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야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고, 이 책은 다양한 목적의 산문들을 모아놓은 책이기 때문에 글의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김수영도 그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시세계에 관한 글을 보면 사뭇 낯설고 어려운 말들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강정에 비할 바가 아니다. 워낙 읽은 지가 오래되어서 애꿎은 강정을 여기서 계속 들먹이는 것이 적당한 것인가조차 판단이 잘 서질 않지만 대체로 강정의 문장은 그 현란한 어휘들로 인해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고 어지럼증만 느꼈던 기억이 있고, 김수영의 문장은 비록 문학이라는 전문적인 세계에 대한 글에서는 어려운 말,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대체로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일상과 현실(1부)의 글들은 대문호의 그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쉽고 평이한 문장들이었다. 김수영은 말한다. '내가 써온 시어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어뿐이다'  

그가 살던 시절은 특수한 시절이었으나 그의 시의적인 글은 오늘의 현실에도 잘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그 시절이나 오늘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는 셈이다. 아니,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 시절이 오히려 좀 더 리버럴하지 않았나'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이 더 나빠졌다는 증거다.
그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아파할 줄 알았고, 시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 했다. 그런가 하면 여편네를 팼고, 술을 먹고 잠자리에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자학의 미덕에 대신할만한 종교를 찾지 못했고, 글씨의 나열에 오천원을 받는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는 점잖다기보다는 오히려 반대쪽이다. 그는 젊다. 김수영은 청춘이다. 그의 표현대로 '아직 늙기에는 빠르다'


사족-
대부분 5~60년대 쓰여진 글들을 읽으면서 새삼 한글의 변화 속도에 대해 생각했다. 나같은 80년대생이라면 그래도 무리없이 읽겠지만 내 짐작에 지금의 90년대생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내가 느끼는 것보다도 더 큰 이질감을 느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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