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늘 하나하나의 문장에 고민하고 고심하며 애를 쓰는 타입이어서, 컨디션이 아주 좋은 날에도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엉금엉금 기어가듯, 조금씩조금씩밖에 써나가지 못했다. 내 경우에는 아주 하찮은 단어가 거대한 침묵에 둘러싸여 있었고, 그 단어를 종잇장 위에 옮긴 뒤에도 마치 신기루, 모래 위에서 반짝이는 의심스러운 우령처럼 거기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내게는 절대로 삭스가 그러는 것처럼 적절한 표현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차단되어 감정과 언어 사이의 무인 지대에 갇혀 있었고, 내 생각을 표현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여간해서 혼란스러운 웅얼거림 외에는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삭스는 그런 어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에게는 말과 사물이 조화된 반면, 내게는 그것들이 끊임없이 분리되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조각들을 주워 모아 하나로 이어 붙이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지만 삭스는 단 한번도 그런 식으로 혹시 자기가 잘못된 조각들을 이어 붙이지나 않았을까 해서 쓰레기통을 다시 뒤지며 꾸물거리는 법이 없었다.

2.
"그랜트는 내가 미쳤을때 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그가 술에 취했을 때 그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언제나 나란히 서 있다."

3.
지나치게 예민한 양심, 즉 자신의 욕망에 직면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기질이 한 선량한 남자를 이상하게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그 자신의 선과 타협하도록 이끈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것이 재난의 핵심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은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문제가 되면 아주 사소한 행위에서까지도 완벽하고 거의 초인적인 엄격함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실망,자신의 인격적 결함에 대한 참담하기 그지 없는 자각이었다.

4.
결국 숨을 멈출수 있는데에는 한계가 있는 거니까, 조만간 숨을 쉬기 시작해야 할 때가 오기 마련이니까-비록 공기가 오염되어 그것을 들이마시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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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대가서 사람된다느니 사내다워진다느니 하는 얘기는 그저 농담이다. 사람이 되는게 권위에 무작정 복종하는 일이고 사내다워지는 게 힘없는 사람에게 일수록 불량스러워지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군대도 군대 나름이겠지만 이 나라의 평범한 아들들이 가는 군대란 언제나 고되고 삭막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며 아차하면 병신되거나 죽는 곳이며 도무지 배울게 없는 곳이다. 돈을 먹여서 군대를 빠지는 일이 끔찍한 죄인 건 단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 하지 않거나 남 하는 고생을 피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대신 군대에 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마님 아들 빠진 자리를 머슴 아들이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개새끼들' 중..

2.
"터무니없고도 서글픈 대비"의 전적인 생산자이자 그것을 자정할 아무런 능력이 없는 자본주의가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체제라면 인류는 이쯤해서 지구를(자연의 자정능력을 가진) 동물들에게 돌려주는 게 낫다.

-'혁명은 안단테로' 중..

3.
폐업에 나선 의사들은 "이럴 바에는 개업할 돈으로 차라리 카페나 당구장을 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개업하지 말고 카페나 당구장을 하면 될 것이다. 카페나 당구장을 하는 인간은 의사보다 하등하단 건가.자신들이 더 이상 특권층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특권 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의사들의 이중의식은 그들의 권리주장의 공정성을 손상한다.

-'돌팔이2' 중..

4.
그런 도덕주의자들이 매우 특별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건 그들 스스로 쉴새없이 증명하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조리퐁은 여성 성기이고 가수 이정현이 꼽고 나온 비녀는 남성성기이며 테트리스 게임은 삽입성교이고 '거북알'이라는 과자는 콘돔이다. 그들의 '음란성'은 놀랍지 않은가. 그들의 눈에 온 세상은 성기와 닮은 것들이다. 나는 그들이 총각김치나 조개구이를 먹는지가 정말 궁금하다.

-'거북알' 중..

5.
돌팔이 이후 내가 만난 의사들이란 늘 불친절했다. 몸에 좋고 나쁜걸 잘 구별해 먹어선지(이른바 의사답게) 평균보다 뽀얀 외관을 한 그들은 늘 환자에게 불친절했다. 그들이 그 뽀얀 입을 여는 순간이란 자기들(이른바 의료진들)끼리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대화할 때뿐이다. 그런때 그들의 얼굴은 생선가게 앞에서 생선의 물을 의논하는 아주머니들의 나른한 얼굴과 같다. 답답하다 못한 환자나 보호자가 비굴함을 넘어서는 겸손으로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그들은 그 질문의 비전문성을 사사오입한다. (중략) 오늘 우리가 의사들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이유가 그들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특별한 임무를 가진 사람들이라서라는 의견은 순진하다 못해 아둔하다.

-'돌팔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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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이 이미지의 연속적인 단계일 것이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반영이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을 감추고 변질시킨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부재를 감춘다.
이미지는 그것이 무엇이건간에 어떠한 사실성과도 무관하다:
이미지는 자기자신의 순수한 시뮬라크르이다.

첫번째 경우에 이미지는 선량한 외양이다. 여기서 재현은 신성의 계열이다.
두번째 이미지는 나쁜 외양으로 저주의 계열이다.
세번째 이미지는 외양임을 연출한다. 이것은 마법 계열에 속한다.
네번째 이미지는 전혀 외양이 아니라 시뮬라시웅의 계열이다.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는 기호로부터
아무것도 없음을 감추고 있는 기호로의 이전은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첫번째 기호는 진실과 비밀의 신학으로 돌려진다.(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여기에 속한다.)
두번째 기호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의 시대를 여는데,여기서는 자신을 인지하기 위한
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참으로부터 거짓을,실재의 인위적 부활로부터 진짜 실재를
분리하기 위한 최후의 심판도 더 이상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미 죽었고 또 미리 부활되었기 때문이다.

2.
사회전체가 광기에 젖어 있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서는
자신으로부터 어떤 사람들을 따로 떼어 미친 사람의 표준을
삼아야 한다. 자신이 광기에 젖어 있음을 숨기기 위하여
일종의 저지전략의 일환으로써 자신의 부정인 광기의 범주를
만들어 이것만이 미친 것이고 미친 것은 사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고 가장하기 위하여 광기의 모델을 생산한다.
그들에 비추어 다른 사람들은 미치지 않았다고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인종학의 경우처럼 광기가 유폐의 대상이 되고
객관적 분석의 대상이 되면 어느덧 그 광기는 광기가 아닌
일반적인 것이 된다. 즉 광기란 우리의 이성의 범주를 벗어난 것인데
광기가 분석되어서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된다면 이제 광기는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광기가 사라지게 되면 광기의
실재성이 없으므로 사회는 살제 광기의 시뮬라크르를 생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사회는 쉬지 않고 광기를 규정하고 흡수하는 작업을 해야한다.
실제로 광기의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 광기란 시대에 따라서 그 규정된 범주가 다르다. 그것은 곧 광기가 한 사회의 음각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광기의 역사는 이성에 의한 사회규범의 변화의 역사와도 같다. 광기란 그 사회가 감추고 있는 다른 모습일 따름이다. 따라서 한 사회는 자신이 내건 광기의 거울에 의해 오염되어 있는 것이다.
(역주)

3.
자본의 순간적인 잔인성,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함,
그의 근본적인 부도덕성, 이게 바로 스캔들적인 것이고,
계몽사상 이래로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좌익사상의 공리인 도덕과
경제의 등가 체계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도덕과 경제의 등가라는 계약사상을 자본에 돌린다.

그러나 자본은 이 계약사상에는 전연 관심이 없다.

자본은 괴물 같은 기업이다. 원칙도 없으며, 오직 한 가지,
그게 전부다. 자본에 규칙을 강제하면서 자본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계몽된> 사상이다. 그리고 혁명적 사상을 대변하는,
자본에 대한 모든 비난은 오늘날 자본이 놀이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다시 비난한다. <권력은 정의롭지 못하며,그의 정의는 계급의 정의며,자본은 우리를 착취한다 등.> 마치 자본이 그가 움직이는 사회와 계약에 의해 맺어져 있기라도 하였듯이.

4.
그러나 위험에 따라 어려움도 크다. 어떻게 위반하는 척하고 그것을 증명하겠는가? 커다란 가게에서 절도를 시뮬라크르로 해보시오. 어떻게 시뮬라크르인 절도임을 단속 기관에게 설득할 것인가? <객관적인> 어떠한 차이도 없다. 이들은 실제 절도와 똑같은 몸짓들이고 똑같은
기호들이다. 따라서 기호들이란 이편에도 저편에도 편향적으로 속하지 않는다. 기성 질서에게는 그들은 항상 실재의 질서에 속한다.
거짓 납치를 조직하여 보시오. 당신 무기의 무해함을 확인하시고 어떠한 인명도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그렇지 않으면 다시 형법에 떨어지게 되니까) 가장 확실한 인질을 잡으시오. 몸값을 요구하시오. 그리고는 작전이 가능한 한 모든 반향을 일으키도록 하시오-간단히 말해, 완벽한 시뮬라크르에 대한 진압 기구의 반응을 시험하기 위하여 <진실>에 가장 가깝게 밀착하시오.
당신은 목적에 이르지 못한다. 인위적 기호망은 실제 요소들과 뗄 수 없이 섞인다.(경찰은 당신을 보고 실제로 총을 쏠 것이다. 은행의 어떤 고객은 기절하거나 심장마비로 죽을 것이다. 사람들은 실제로 당신 구좌에 허위 몸값을 지불할 것이다.)

한마디로, 당신은 원치 않게 즉시 실재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5.
1971년 라우드 가에 대해 시도된 tv-진실의 미국적 경험의 근거는 여전히
기본적인 평범성 속에서 그리고 철저한 진본성 속에서 실재의, 경험된 것의,
발굴의 이데올로기이다. 대본도 없고 각본도 없는 7개월간의 촬영.
300시간의 생방송,끊임없는 한 가족의 이야기. 그의 극적 사건들,
기쁨들,有爲變轉들, 한마디로 <생상한> 역사적 문서, 그리고 <우리 일상적 차원에서, 달 착륙 영화에 비교될 만한 tv의 가장 아름다운 수훈>이다. 촬영중에 이 가족이 해체되어서 일은 더 복잡해진다.
갈등이 폭발하여 라우드가 사람들은 헤어졌지 때문이다. 이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tv가 책임자인가? tv가 거기에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마치 tv가 거기 없었던 듯이 라우드가를 찍는 환성은 더욱 재미있다. 연출가의 승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우리가 거기 없었던 듯이 살았다.> 부조리하며 역설적인, 참도 거짓도 아닌 유토피아적인 공식이다. <우리가 거기 없었던 듯이>는 <당신이 거기 있었던 듯이>와 등가이다.
(중략)
tv-진실. 그 의미의 모호성으로 하여 좋은 용어, 이 가정의 진실에 해당되는가, 아니면 tv의 진실에 해당되는가?
사실,라우드가 의 진실은 tv이다.

6.
텔레비젼은 모든 사건의 역사성에 종지부를 찍는 진정한 해결이다. 유태인들을 화장터나 가스실로 다시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고, 소리와 이미지의 테이프에, 기독교적 화면에, 소형 정보처리기로 다시 통과시킨다. 망각, 근절은 이리하여 마침내 대중적 차원에까지 올려지고, 복고 속에서 완성된다.
죄의식의, 부끄러운 잠재태의, 말해지지 않는 것의 형태 하에 여전히 망각으로 남아있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차후로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학살 앞에서 전율하고 울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기호. 그러나 이렇게 싸게, 몇 방울의 눈물로 축출해버린 것은 사실상 결코 다시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것은 이미 줄곧, 현재, 다시 일어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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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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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싫었다.

선생님께서 꼭 읽으라고 몇번이고 강조하신 거에 대한

괜한(보통은 쓸데없는) 거부감.

 

-느낌표 추천 도서는 보지 않는다는 류와 비슷할까?

 

게다가 그 내용이 동양과 서양의 인식,사고의 차이라는 것을 알고

더 읽기 싫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렇게 강조하시는 걸 보니

뭔가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고보니

약간 읽고 싶어졌다.

 

오늘날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에게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정말 지겨운 이야기이다.

동양은...서양은...

거기다가 이런 '단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거부감마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아니 이 책을 말하기 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동양적', '서양적'이라는 것의 특징들이

과연 무엇인지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런 책을 지겨워할 만큼 동양과 서양의 차이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다는 말인가?

 

내 생각에 우리는 그런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편견'만을 단편적으로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그 이상을 알려준다.

이 책은 단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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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지음 / 길찾기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는

박재동 화백의 추천사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부터 재밌다는 이야기를 들어오던 터라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그림체를 보니, 내 기대와는 좀 다른 그림체였다.

 

3월 1일이고 하니 이제 3월의 독서를 시작해볼까하며

(제라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오늘부로 포기할란다;)

책을 들었는데 어느새 다 읽어버렸다.

물론 1권일 뿐이고 이 책은 5권 이후로도

계속 출판될 예정이라고 한다.

 

확실히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시가 이라크 침공 때 십자군 운운한 것은

미국이 십자군만큼 잔혹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십자군만큼 멍청하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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