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친구들이 이상해 내일을여는어린이 6
고수산나 지음, 정용환 그림 / 내일을여는책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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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동물원이란 공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평소에 접할 수 없는 야생동물들을 볼 수 있는 곳? 아니면 자연에 있어야 할 야생동물들을 가두는 나쁜 곳? 동물원은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이다. 그곳은 학창시절 우정을 나눴던 공간이고, 연인과의 아련한 추억이 담긴 공간이며, 따뜻한 봄날 아이와 함께 했던 기억이 서려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동물원을 찾지만 그곳에 속해 있는 동물의 삶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지하다. 동물원을 방문하면서 동물들의 복지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는 일상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동물과의 조우에 감사하고 동행한 사람들과 추억을 쌓기 바쁘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동물원은 애초에 동물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것이다. 동물원이 더 자연에 가깝고, 야생다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는 이유도 동물 보다는 관람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 일수 밖에 없다. 관람객이 환경에 몰입하여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각종 체험형 동물원이 등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동물의 행복은 우선시되는 목표가 아니다. 인간의 흥미와 편리를 위해 동물들의 삶이 희생되고 있는 곳, 이것이 동물원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이다. <동물원 친구들이 이상해>는 동물들의 입장에서 동물원의 삶에 대해 한편의 동화로 풀어내면서 독자가 동물원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과 동물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동물원은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과 폭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야만이 전시되던 시대를 거쳐 동물원도 꾸준히 진화해왔다. 다행스럽게도 진보의 물결은 동물원에게도 불어닥쳤다. 동물원의 교육적 기능과 동물 복지가 거론되었고, 멸종위기 종을 번식시키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보전센터의 역할도 대두되었다. 동물원의 존재목적이 관람에서 보전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책의 제목과 같이 동물원 동물들의 삶에 이상 징후가 있다는 것은 최근 발생한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 감지되었다. 불법 포획되어 쇼돌고래로 살다가 고향의 제주바다로 돌아간 제돌이의 삶이 그랬고, 인간에 의해 동물원에서의 삶을 강요당하다가 인간의 실수로 우리를 나와 인간의 안전을 위해서 사살당한 퓨마 뽀롱이의 비극적인 삶이 그랬다. 그 중에서도 내가 <동물원 친구들이 이상해>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인간에 의해 장애를 가진 몸으로 태어나 단 한 번도 숲을 거닐어 보지 못하고 평생을 좁은 철창 안에서 외롭게 살다가 작년에 세상을 떠난 호랑이 크레인이었다.

시베리아 호랑이 크레인은 2000년 서울동물원에서 태어났다. 갓 태어난 새끼 호랑이로 언론과 관람객의 주목을 받았던 어린 시절이 크레인의 삶의 정점이자 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었다. 남매 사이였던 부모를 통해 태어난 크레인은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고 안면기형, 백내장, 부정교합 등 근친교배의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다. 크레인이라는 이름도 중장비처럼 튼튼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육사들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크레인은 자라면서 못생긴 외모와 지병으로 종 보전은 물론 전시동물로서의 가치도 떨어졌고, 지방의 민영 동물원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져 갔다.

크레인이 다시 등장한 건 지방 동물원이 부도 위기에 처해 소속 동물들이 거의 굶다시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였다. 시민들의 서명과 청원에 힘입어 크레인은 태어난 고향 서울동물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수컷 시베리아 호랑이 성체는 300kg까지 나가지만 서울동물원으로 돌아왔을 당시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였던 크레인의 몸무게는 170kg밖에 되지 않았다. 동물원 크레인의 존재는 동물원의 존재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되는 종 보전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크레인 사례로 인해 동물원법이 제정되고 시행되었고 전시·체험·공연동물을 위한 복지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크레인은 철창 안에서 태어나 전시 동물로서의 가치마저 부정 당하는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동물원의 동물 역시 살아있는 생명이며 그들에게도 삶의 질이 있고 복지가 필요한 존재임을 알리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인간은 자연에서 멀어질수록 자연을 그리워하고 야생의 동물들을 더 가까이 두고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다양한 동물을 한 장소에서 편하게 보기 위해 만든 동물원이라는 공간이 내포하고 있는 부작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이 아닌 인공의 환경에서 동물이 태어나게 했다면 그리고 그들이 죽는 순간까지 불행한 조건 속에 살다 갔다면 그것은 모두 인간의 책임이다. 일생을 닫힌 공간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시달리고 있는 동물원의 동물들은 그들이 생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윤과 효율의 잣대만으로 평가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본 도서 <동물원 친구들이 이상해>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화두이다.

우리는 지구라는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자연의 소리에 너무나 무신경하다. 아니 무신경한 것을 넘어서 동식물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그러한 강요된 침묵을 당연시한다.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 자연에 영향을 끼칠 때, 그 자연의 반응을 우리의 잣대로서 평가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자 교만이다. 인간은 자연의 마음을 자의적으로 넘겨짚어서는 안 된다. 자연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장애물이 아니라, 지구라는 공간에서 공존하면서 생태계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이끌어갈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서 인간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발을 맞추어야 한다.

나에게도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딸아이가 있다. 아직 <동물원 친구들이 이상해>를 읽고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아이가 자라서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동물원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다. 이 책에도 등장하는 행복한 동물원은 어떤 것일지, 또 그러한 동물원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동물원을 방문하는 것은 딸과 그러한 교감을 나눈 이후 딸의 선택에 맡길 것이다. 벌써부터 그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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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하버드 글쓰기 비법 - SNS부터 보고서까지 이 공식 하나면 끝
송숙희 지음 / 유노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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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글쓰기 수업의  목표는창의적이면서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한 방법적 툴로서 하버드식 글쓰기 수업은 O.R.E.O Map을 제시하고 있다. O.R.E.O Map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Opinion(의견 주장): 핵심 의견을 주장한다. 

Reason(이유 들기): 이유와 근거로 주장을 증명한다. 

Example(증명하기): 사례와 예시로 거듭 증명한다. 

Opinion/Offer(의견 강조 및 제안): 핵심 의견을 강조하고 제안한다. 

 

 

전하려는 주제를 오레오맵 순서대로 한 줄씩 작성하면 글의 뼈대가 만들어지고, 해당하는 문장에 세부 내용을 보태 단락으로 만들고 연결하면 한 편의 글이 완성되고, 오레오맵을 활용하면 에세이뿐 아니라 보고서, 제안서, 이메일, 상품 설명서 등 어떤 글이든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요 주장이다.

 

글쓰기에 있어 하나의 방법적 툴로서 O.R.E.O Map을 제시한 것은 글쓰기가 막막한 초심자에게 글쓰기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줄 수 있다는 관점에서 나름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의 방법적 툴에 대한 내용을 책 한권에 걸쳐 반복적으로 서술한 것은 다소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하나의 글쓰기 툴로 모든 형식의 글에 적용하는 것도 무리가 있고, 저자 자신이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애초에 글쓰기의 소재가 없다면 방법적 툴도 의미가 없다. 저자는 제목 부터 내용, 하버드 출신 유명인의 사례에 이르기까지 하버드 150년 비법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비법 및 하버드의 교육철학과 저자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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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 기시미 이치로의 사랑과 망설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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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길 바라고, 사랑 안에서 행복하길 원한다.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사랑 받는 기술이 아닌사랑하는 기술에 대해 주목한다. 사랑받길 원하는 사람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어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까지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저자는 사랑은 바꿀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아닌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277)


사랑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시간은체험되는 시간이 아닌 것이 됩니다. ‘체험되는 시간’ (Le temps vecu) 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민코프스키입니다. 노력하는 두 사람만이 같은 장소에서 체험되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체험되는 시간의 반대말은 죽은 시간입니다.” (139)


저자의 말처럼 사랑은 시간을 쌓아나가는 일이다. 상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을 그의 곁에서 보내며 그 시간 속에 함께 했던 경험을 담는 일이다. 둘만이 기억하는 체험되는 시간을 만들고,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금 이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둘만으로 구성되는 시간은 멋진 대화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 앞에서는 평소 모습으로 처신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 즉 그가 나를 온전히 포용하고 있고, 내가 타인에게 온전한 나 자신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체험되는 시간과 관련한 저자의 주장은 로버트 노직을 연상시켰다. 로버트 노직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에서 사진과 초상화의 차이를 통해 한 사람을 바라보는 행위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한다. 사진이 인물의 순간적 속사(速寫)로 한순간의 단면을 담는 것이라면, 초상화는 긴 시간 동안 각각 다른 빛 속에서 일련의 특징, 감정, 생각을 가진 개인의 다양한 모습, 지금까지 한 번도 동시에 드러난 적 없었던 여러 부분을 깊이 있게 담아낸다. 따라서, 우리가 한 사람을 본다고 할 때 그 행위는 사진을 찍는 행위 보다 초상화 그리기에 가까울 수 있고, 특히 당장 눈 앞에 있는 사람을 볼 때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림에는 한 사람을 일정 시간 이상 바라본 만큼의 시간성이 농축되어 있어, 어딘가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이 오랜 시간 그 사람과 만나며 끌어 모은 세부사항들로 합성된 이미지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시간과 빛을 거치며 덧입혀진 개인적 삶과 역사가 녹아 있는 초상화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포착한 사진 보다 더 풍부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음을 나도 삶에서 맺은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체험하였다.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 초상화의 매력은 초상화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훌륭한 화가일수록 사진의 매력을 넘어서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도 초상화의 또 다른 매력이기 때문이다. 연인과 공유한 체험되는 시간은 상대를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이 아닌 영원을 지향하는 초상화의 이미지로 느낄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의 가사가 떠올랐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 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맘이 바빠.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

 

연애는 사랑하는 한 쌍의 연인이 추는 춤이다. 그 춤은 혼자서는 절대 출 수 없고, 어느 일방의 리드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또한 두 사람이 선율에 맞추어 추는 춤은 아름다운 장면만으로 구성되지도 않는다. 때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 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상대가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연인들의 인생의 주어는에서우리로 변한다. 저자의 말처럼 자립이란 결코 혼자 사는 것, 자신의 일을 자기 혼자서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를 위해서가 아니라우리를 위해 생각하고, ‘가 아니라우리의 행복을 달성한다는 과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바로 자립이다. (166)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며, 또한 사랑은 활동이며 과정이기 때문에소유의 대상도 아니다. 설레임 가득한 사랑의 시작은 여리고 깨지기 쉬운 불안정한 감정에 불과한 것이나, 그러한 사랑의 가능성을 발전시켜 사랑을 완성시키고 결실을 맺게 하는 것은 관계의 진전을 위한 연인의 끊임 없는 노력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오만과 착각 속에서 사랑을소유할 수 있는것으로 여기며, 관계의 진전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하곤 한다. “사랑은 오직 사랑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138)”는 저자의 조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 즉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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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오년 :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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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의 애독자로서 현재까지 출간된 3권까지 이미 읽었지만, 3.1운동을 다룬 2권이 이렇게 특별판으로 재출간되어 반갑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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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릇 (50만 부 기념 에디션) -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김윤나 지음 / 오아시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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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서 <말그릇>에서 관계의 법칙 3가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진실'이 다르고, 본능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관계를 위하서는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은 섬들 사이를 부유하며, 섬과 섬들을 연결시키는 다리가 된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이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적, 신체적,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그 사건을 대하는 개인의 믿음, 즉 공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101) 저자가 언급한 A-B-C 법칙처럼 사건(Accident)을 경험하면서 개인은 자신만의 공식(Belief)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Consequence)를 창출해낸다. 마치 세월의 풍화 속에서 동식물이 퇴적, 암석화의 과정을 거쳐 화석이 되듯이 우리가 겪은 경험은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살아남아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구성한다. 본도서 <말그릇>에서 다루고 있는 ''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축적되고 숙성되어 각자의 독자적인 ''의 방식이 되고, 개인의 고유한 방식은 일상의 다양한 만남과 대화를 거치며 수정되고 발전되어 간다. 과거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일상을 탐구하는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그릇'은 그 사람의 내면과 닮아 있다. 저자는 기술이 아닌 내면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 즉 단순히 말 잘하는 법을 넘어선 말 그릇의 의미와 그것을 보다 단단하고 깊이 있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을 탐구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결국 나를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힘을 기르는 것으로 귀결된다. ''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나 정도(正道)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발굴하듯이, 탐험하듯이, 채집하듯이 사람의 감정과 메시지를 찾아내려는 집중력과 노력과 세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205)는 저자의 말에 귀기울여야하는 이유이다. '말그릇'은 단순히 특정 형식을 준수하거나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상황과 감정을 세심하게 살피고 진심을 다해 마련한 나만의 그릇에 '사람'을 담는 방법에 대한 통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말그릇>을 읽으며 가장 가슴을 울렸던 말은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저자의 말과 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었다. "아마도 (사랑한다는) 이 말은 네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겠지. 엄마가 사라져도 이 말은 남겠지." (310) 우리가 남긴 한마디 말은 우리가 없는 순간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떠다니며 타인의 인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오래도록 흔적을 남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말이 남긴 흔적으로 기뻐하거나 아파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말은 가시적인 권력의 힘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보유하며, 편하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말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세상이 변화가 더딘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말로서 표현되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앙금으로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말그릇'이 추구해야할 방향성을 씨름과 왈츠로서 비교설명하고 있다.

 

"씨름은 서로의 힘과 기술을 겨루어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그 관계에서는 한 명이 이기면 나머지는 한명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 반면 왈츠는 다르다. 왈츠는 동행이다. 파트너가 앞으로 몇 걸음 나오면 상대방은 그만큼 물러서서 균형을 맞추고, 한 명이 화려한 동작을 구사할 때 나머지 한 명은 그가 쓰러지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름다운 선율에 맞추어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해나간다." (303)

      

이 대목을 읽으며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의 가사가 떠올랐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 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맘이 바빠.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

 

저자의 말처럼 '말그릇'은 씨름이 아닌 춤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절대 출 수 없는 춤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선율에 맞추어 추는 춤은 아름다운 장면만 담겨 있지는 다. 때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 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상대가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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