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 기시미 이치로의 사랑과 망설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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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길 바라고, 사랑 안에서 행복하길 원한다.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사랑 받는 기술이 아닌사랑하는 기술에 대해 주목한다. 사랑받길 원하는 사람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어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까지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저자는 사랑은 바꿀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아닌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277)


사랑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시간은체험되는 시간이 아닌 것이 됩니다. ‘체험되는 시간’ (Le temps vecu) 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민코프스키입니다. 노력하는 두 사람만이 같은 장소에서 체험되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체험되는 시간의 반대말은 죽은 시간입니다.” (139)


저자의 말처럼 사랑은 시간을 쌓아나가는 일이다. 상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을 그의 곁에서 보내며 그 시간 속에 함께 했던 경험을 담는 일이다. 둘만이 기억하는 체험되는 시간을 만들고,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금 이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둘만으로 구성되는 시간은 멋진 대화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 앞에서는 평소 모습으로 처신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 즉 그가 나를 온전히 포용하고 있고, 내가 타인에게 온전한 나 자신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체험되는 시간과 관련한 저자의 주장은 로버트 노직을 연상시켰다. 로버트 노직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에서 사진과 초상화의 차이를 통해 한 사람을 바라보는 행위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한다. 사진이 인물의 순간적 속사(速寫)로 한순간의 단면을 담는 것이라면, 초상화는 긴 시간 동안 각각 다른 빛 속에서 일련의 특징, 감정, 생각을 가진 개인의 다양한 모습, 지금까지 한 번도 동시에 드러난 적 없었던 여러 부분을 깊이 있게 담아낸다. 따라서, 우리가 한 사람을 본다고 할 때 그 행위는 사진을 찍는 행위 보다 초상화 그리기에 가까울 수 있고, 특히 당장 눈 앞에 있는 사람을 볼 때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림에는 한 사람을 일정 시간 이상 바라본 만큼의 시간성이 농축되어 있어, 어딘가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이 오랜 시간 그 사람과 만나며 끌어 모은 세부사항들로 합성된 이미지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시간과 빛을 거치며 덧입혀진 개인적 삶과 역사가 녹아 있는 초상화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포착한 사진 보다 더 풍부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음을 나도 삶에서 맺은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체험하였다.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 초상화의 매력은 초상화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훌륭한 화가일수록 사진의 매력을 넘어서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도 초상화의 또 다른 매력이기 때문이다. 연인과 공유한 체험되는 시간은 상대를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이 아닌 영원을 지향하는 초상화의 이미지로 느낄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의 가사가 떠올랐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 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맘이 바빠.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

 

연애는 사랑하는 한 쌍의 연인이 추는 춤이다. 그 춤은 혼자서는 절대 출 수 없고, 어느 일방의 리드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또한 두 사람이 선율에 맞추어 추는 춤은 아름다운 장면만으로 구성되지도 않는다. 때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 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상대가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연인들의 인생의 주어는에서우리로 변한다. 저자의 말처럼 자립이란 결코 혼자 사는 것, 자신의 일을 자기 혼자서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를 위해서가 아니라우리를 위해 생각하고, ‘가 아니라우리의 행복을 달성한다는 과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바로 자립이다. (166)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며, 또한 사랑은 활동이며 과정이기 때문에소유의 대상도 아니다. 설레임 가득한 사랑의 시작은 여리고 깨지기 쉬운 불안정한 감정에 불과한 것이나, 그러한 사랑의 가능성을 발전시켜 사랑을 완성시키고 결실을 맺게 하는 것은 관계의 진전을 위한 연인의 끊임 없는 노력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오만과 착각 속에서 사랑을소유할 수 있는것으로 여기며, 관계의 진전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하곤 한다. “사랑은 오직 사랑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138)”는 저자의 조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 즉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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