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릇 (50만 부 기념 에디션) -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김윤나 지음 / 오아시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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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서 <말그릇>에서 관계의 법칙 3가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진실'이 다르고, 본능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관계를 위하서는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은 섬들 사이를 부유하며, 섬과 섬들을 연결시키는 다리가 된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이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적, 신체적,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그 사건을 대하는 개인의 믿음, 즉 공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101) 저자가 언급한 A-B-C 법칙처럼 사건(Accident)을 경험하면서 개인은 자신만의 공식(Belief)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Consequence)를 창출해낸다. 마치 세월의 풍화 속에서 동식물이 퇴적, 암석화의 과정을 거쳐 화석이 되듯이 우리가 겪은 경험은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살아남아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구성한다. 본도서 <말그릇>에서 다루고 있는 ''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축적되고 숙성되어 각자의 독자적인 ''의 방식이 되고, 개인의 고유한 방식은 일상의 다양한 만남과 대화를 거치며 수정되고 발전되어 간다. 과거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일상을 탐구하는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그릇'은 그 사람의 내면과 닮아 있다. 저자는 기술이 아닌 내면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 즉 단순히 말 잘하는 법을 넘어선 말 그릇의 의미와 그것을 보다 단단하고 깊이 있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을 탐구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결국 나를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힘을 기르는 것으로 귀결된다. ''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나 정도(正道)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발굴하듯이, 탐험하듯이, 채집하듯이 사람의 감정과 메시지를 찾아내려는 집중력과 노력과 세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205)는 저자의 말에 귀기울여야하는 이유이다. '말그릇'은 단순히 특정 형식을 준수하거나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상황과 감정을 세심하게 살피고 진심을 다해 마련한 나만의 그릇에 '사람'을 담는 방법에 대한 통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말그릇>을 읽으며 가장 가슴을 울렸던 말은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저자의 말과 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었다. "아마도 (사랑한다는) 이 말은 네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겠지. 엄마가 사라져도 이 말은 남겠지." (310) 우리가 남긴 한마디 말은 우리가 없는 순간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떠다니며 타인의 인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오래도록 흔적을 남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말이 남긴 흔적으로 기뻐하거나 아파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말은 가시적인 권력의 힘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보유하며, 편하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말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세상이 변화가 더딘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말로서 표현되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앙금으로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말그릇'이 추구해야할 방향성을 씨름과 왈츠로서 비교설명하고 있다.

 

"씨름은 서로의 힘과 기술을 겨루어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그 관계에서는 한 명이 이기면 나머지는 한명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 반면 왈츠는 다르다. 왈츠는 동행이다. 파트너가 앞으로 몇 걸음 나오면 상대방은 그만큼 물러서서 균형을 맞추고, 한 명이 화려한 동작을 구사할 때 나머지 한 명은 그가 쓰러지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름다운 선율에 맞추어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해나간다." (303)

      

이 대목을 읽으며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의 가사가 떠올랐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 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맘이 바빠.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

 

저자의 말처럼 '말그릇'은 씨름이 아닌 춤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절대 출 수 없는 춤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선율에 맞추어 추는 춤은 아름다운 장면만 담겨 있지는 다. 때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 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상대가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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