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어사 - 지옥에서 온 심판자
설민석.원더스 지음 / 단꿈아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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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컨텐츠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측면에서 보면 저자는 타고난 스토리텔러의 면모를 보이는데, 소설가로서는 어떨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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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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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십시오여기 천재가 나타났습니다.”

 


 이는 슈만이 쇼팽을 처음 보고나서 그 경이로움에 대해 남긴 소회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슈만은 그만의 감성이 담겨 있는 독창적인 음악으로 유명하지만쇼팽멘델스존브람스 등을 발굴해낸 음악 비평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특히자신과 동갑내기인 무명의 작곡가 쇼팽의 천재성을 단번에 알아보고천재의 탄생을 대중에게 알렸던 음악사상 최대의 찬사가 담겨 있는 그의 평론은 쇼팽이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음악 애호가들에게 널리 회자되는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다.




 


 여러분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십시오거장의 숨결이 느껴지는 새로운 추리소설이 탄생하였습니다. 그것도 시리즈로요.”

 


 다소 낯 간지러운 표현이 될지는 몰라도, M. W. 크레이븐의 <퍼핏 쇼>를 읽고 나서 내가 느낀 소회는 쇼팽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경이와 찬사존경이 담겨 있는 슈만의 표현을 빗댄 위와 같은 문장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물론 나는 슈만 처럼 해당 업계의 전문가거나 엄청난 영향력을 보유한 사람은 아니지만, 오랜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또한 꾸준한 서평가로서 마치 슈만이 쇼팽을 처음 보고서 느낀 흥분 및 경이로움과 같은 성격의 것이라고 굳게 믿는 <퍼핏쇼>를 읽고 느낀 내 소회를 이 리뷰를 통해 조심스럽게 독자들에게 전달해보고자 한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디 이 같은 진심이 출판사와 또 다른 독자들에게 전달되어 이미 영국과 일본 등 2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는 시리즈의 다음 권들을 빠른 시일 내에 번역된 책으로 만나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추리소설의 애호가라면 익히 알고있겠지만 트릭과 반전은 추리소설의 핵심인만큼 지금까지 나온 추리소설에 대한 서평은 주로 독자들이 해당 작품을 읽었다는 것을 대전제로 하여 작품의 스토리와 트릭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하지만 이 같은 리뷰방식은 양날의 검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당 소설을 읽은 독자들끼리 전체적인 스토리의 얼개를 평가하고, 트릭이 얼마나 정교했는지, 반전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지를 논하는 측면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하지만, 해당 소설을 아직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트릭과 반전을 포함하여 리뷰를 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쉽게 짐작하겠지만 아직 소설을 읽지 못한 독자들이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리뷰에 앞서 나는 이 같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소설이 왜 뛰어난 추리소설인지 논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연히 작품의 얼개와 트릭, 반전을 포함하여 언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같은 리뷰방식은 이 리뷰를 쓰는 목적과는 맞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추리소설 애호가이자 서평가로서 나는 이 리뷰를 통해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읽으며 느낀 충족감과 기쁨을 또 다른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이로서 워싱턴 포 시리즈의 다음 권들을 만나볼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다. 따라서 나는 대략적인 작품의 줄거리를 소개하면서 스포일러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이 작품이 왜 뛰어나고 재밌는 작품인지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언급하는 리뷰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 작품의 트릭이나 반전 보다 작품에 대한 소개와 가이드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으니 본 도서를 아직 읽지 않은 미래의 독자분들도 안심하고 이 리뷰를 보시길 바란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영국 컴브리아 지역을 지켜 온 '환상열석'에서 불에 탄 시신들이 잇달아 발견된다. 수사관으로서 누구 보다 뛰어난 직감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관계에는 다소 서툰 중년 남자 '워싱턴 포'와 천재적인 지능을 가졌으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괴짜 아가씨 '틸리 브래드 쇼'가 거대한 선돌 사이에서 발견된 꺼져버 목숨들의 비밀을 함께 파헤친다. 워싱턴 포 시리즈의 포문을 여는 <퍼핏쇼>는 영국추리작가협회 (CWA)에서 그해 최고의 범죄소설 작품에 주는 '골드 대거상 (Gold Dagger)'을 받았다. 뒤이어 2편과 3편도 후보에 올랐고, 4편은 CWA에서 최고의 스릴러소설에 주는 '이언 플레밍 스틸 대거상 (Ian Fleming Steel Dagger)'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식스턴 올드 피큘리어 올해의 범죄소설상 (Theakston Old Peculier Crime Novel of the year)' 후보에도 올랐다. 현재 시리즈 5편까지 출간되었고, TV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퍼핏쇼>는 작가 M. W. 크레이븐을 스타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존르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등 개인적으로 '골드 대거상'을 수상한 작품들에 대해 높은 선호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를 가지고 <퍼핏쇼>를 읽기 시작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흥미로운 사건들에 푹 빠져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미 500여 페이지가 모두 넘어간 뒤였다. 오랜만에 소설 본연의 재미를 느끼며 작품에 몰입했던 흡족한 독서 경험을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독자들을 열광하게 하는 <퍼핏쇼>의 매력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고민끝에 나름대로 다음의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번째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존재하고, 캐릭터간의 조화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작품 속에 '고전 미스터리'의 우아한 세계와 이익과 탐욕이 동력이 되어 움직이는 '하드 보일드'한 세계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주인공 탐정 듀오에 맞서는 매력적인 악역이 존재하고, 그가 악을 행하게 된 설득력 있는 서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먼저 첫 번째로 캐릭터를 살펴보자. <퍼핏쇼>에서 셜록 홈즈의 든든한 동료로 그의 곁에 머물면서 홈즈의 지성을 이끌어내는 왓슨이 연상되기도 하고아이언맨의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가 연상되기도 하는 '워싱턴 포' '틸리 브래드쇼'라는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로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추리소설 속 명탐정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에드가 앨런 포의 오귀스트 뒤팽 시리즈에 서술자이자 추리를 들어주는 파트너가 있었고 이것이 시기적으로는 최초의 탐정과 보조자의 원조라고 한다. 하지만 단순히 탐정의 활약상을 듣고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 역시 뚜렷한 캐릭터성을 갖고 탐정의 수사와 모험을 함께하는 파트너라는 점에서는 셜록과 왓슨이 탐정 콤비의 원조라고 일컬어진다. 추리 미스터리 장르에 '왓슨 역' 또는 '왓슨 캐릭터'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지금까지 추리소설 팬으로서 수많은 작품 속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주인공을 주인공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캐릭터를 봐왔다. 그 수많은 캐릭터들 중에서도 '' '브래드쇼'는 각자 독특한 형식과 매력을 가지고 절묘한 케미를 형성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브래드쇼의 순진함과 순수함은 그의 어두운 기질과 날카롭게 대비되었지만, 여러모로 둘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둘 다 강방적이었고, 둘 다 사람들을 거슬리게 했다. (p. 322)

 


작가 M. W. 크레이븐은 10년 간 군에서 복무하고 16년 간 보호관찰관으로 일하며 경찰과 사회복지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삶이 투영된 '워싱턴 포'라는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그는 뛰어난 수사관이지만 관계에 서툴고, 자신만이 가진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좀처럼 타협하지 않는다. 어둡고 냉소적이며 현실적인 캐릭터다. 이런 그와 전설의 콤비를 이루는 '틸리 브래드쇼'는 열여섯의 나이에 옥스퍼드에서 첫 학위를 따고 박사학위 두개를 추가로 취득할 만큼 천재적인 지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세상 물정에 어둡고 지나치게 순수하다. 틸리는 포를 만나 사무실 밖 진정한 세상 속으로 나오게 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서로가 바라보는 상대의 모습은 세상을 경험하며 당황하고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었지만, 차츰 서로를 알아가고, 세상에 적응하면서 최고의 파트너로 거듭나게 된다. 포를 통해 변해가는 틸리의 모습을 보며 포 조차도 놀라는 모습은 이를 잘 표현해주는 재밌는 에피소드이다.

 


받아요. 문제 생기면 안되니까.”

틸리는 휴대전화를 무음모드로 바꾸더니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신호가 안잡히네요.”

포가 흠칫했다. ‘내가 뭘 만들어버린거지?’ (p. 213)

 


나는 포와 틸리의 모습이 빛과 그림자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와 삶을 이룬다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면서 빛이 되고그림자를 만든다그림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불완전한 형태와 빛깔을 띠지만 나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필연적으로 나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다. 삶을 탐구하는 여정에서 우리는 모르고 지나쳤던혹은 애써 외면했던 우리 자신의 내면, 또 다른 나와 대면한다. 우리의 삶이 행복의 빛을 향해서 나아갈 수록 그림자는 빛을 따라 묵묵히 우리의 삶을 지지해준다. 삶이 빛나는 순간에도, 짙어가는 어둠 속에서도 묵묵히 서로의 곁에서 서로의 삶을 지지하며 진실을 탐구하는 포와 틸리의 모습이 빛과 그림자 같았다. 현실적이며 냉혹한 포와 이상적이며 순수한 틸리는 빛과 어둠처럼 상반된 성격을 가졌지만 그들 각자는 서로에게 최고의 파트너다. 빛의 세기가 더해갈수록 옅었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면서 꼬리를 끌며 빛을 따라오듯이... 

 


두 번째로 '고전 미스터리'의 우아한 세계와 하드 보일드한 '현대 미스터리'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세상에 존재하는 탐정은 두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얘기한다. 한쪽은 고전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셜록 홈즈의 후예들이고, 다른 한 쪽은 하드 보일드를 대표하는 필립 말로의 후예들이다. (윤영천의 미스터리 가이드북에서 일부 인용) 전자인 고전 미스터리 속 탐정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존경 받는 상류층의 인사들이다. 반면 하드보일드 속의 탐정들은 거친 남자의 세계를 대변하는 노동자나 개인사업자들이다. <퍼핏쇼>에는 코난 도일이나 아가사 크리스티로 대표되는 '고전 미스터리'의 우아한 세계와 피와 땀으로 점철된 어두운 뒷골목정의가 아닌 이익과 탐욕이 동력이 되어 움직이는 '하드 보일드'한 거친 악의 세계가 공존한다. 고전 미스터리에 향수를 느끼는 팬들과 현대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스타일의 이야기를 원하는 팬들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동일한 속성을 공유하면서도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주인공 '''브래드쇼'의 캐릭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묘한 케미스트리를 빚어내며 자신들이 직면한 현재의 사건과 관련있는 과거의 사건까지 파헤치며 해결해나가는 소설의 스토리와 관련되어 있다.

 


'하드 보일드' "원래 ‘계란을 완숙하다라는 뜻을 내포한 형용사이지만계란을 완숙하면 더 단단해진다는 점에서 전의(轉義)하여 ‘비정 ·냉혹이란 뜻의 문학용어가 되었다개괄적으로 자연주의적인또는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무감정의 냉혹한 자세 또는 도덕적 판단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비개인적인 시점에서 묘사하는 수법을 의미한다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이 기법은 특히 추리소설에서 추리보다는 행동에 중점을 두는 하나의 유형으로서 ‘하드보일드파를 낳게 하였고셜록홈즈를 창조한 코넌 도일 류의 고전파의 계획된 것과는 명확하게 구별된다. 소설 속 워싱턴 포는 하드보일드류 탐정에 가깝다. 정직된 경찰 출신의 포는 체계적인 계획을 가지고 사건에 세심하게 접근하기 보다는 본능과 영감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하는 과정을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 이는 천재적인 두뇌와 데이터 분석능력, 최신 IT 장비 활용을 기반으로 포의 직감에 근거를 제시하거나,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브래드쇼와 환상의 케미를 이룬다. 두 사람이 합심하여 연쇄살인사건을 분석하고, 현재의 사건이 과거의 어떤 사건과 관계 있다는 것을 밝히며 진실에 다가서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고전 미스터리물과 현대의 하드보일드한 세계의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포는 생각했다. 물론, 오늘 벌어진 일이 내일의 역사가 되는 법이라고 (p. 47)

 


고전 미스터리와 하드보일드를 대표하는 추리소설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관심은 오직 진실을 아는 것이라는 에도가와 란포가 창조해 낸 아케치 고고로의 말처럼 과거와 현재, 이상과 현실 속에서 진실을 찾아 방황하는 범시대적인 고뇌를 다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환경은 다르지만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핵심은 특정 시대의 산물이 아닌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근원으로 반복되는 삶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벌어진 일이 내일의 역사가 되는 법'이라는 포의 대사를 보면서 나는 먼훗날 '워싱턴 포 시리즈'가 추리소설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상상을 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주인공 탐정 콤비에 맞서는 매력적인 악역이 존재하고, 그가 악을 행하게 된 설득력 있는 서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악역이 누구인지, 그가 왜 이런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는 이 리뷰에서는 밝힐 수 없다. 어떠한 스포일러도 없이 리뷰를 하겠다는 앞서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악역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도 이 악역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존재감을 지녔는지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번 언급했듯이 이 소설의 제목은 <퍼핏쇼 (Puppet Show)>이다. 퍼핏쇼 즉, 꼭두각시 놀음이란 뜻이다. 앞에서 나는 뛰어난 수사관인 포와 천재적인 분석가인 포의 강력한 케미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언급했었다. 하지만 이제껏 존재해왔던 그 어떤 탐정 콤비에 버금가는 전설적인 이들 콤비 마저 꼭두각시 놀음에 놀아나도록 판을 만든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악역이다. 또한, 이 악역은 포와 브래드쇼가 수사과정에서 아포페니아 (서로 연관성이 없는 현상들 사이에서 의미, 규칙, 연관성을 찾아내서 믿는 현상)에 빠져 있을 때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까지 한다.

 


역자가 옮긴이의 말에서 밝혔듯이 <퍼핏쇼>'누가 했느냐 (Who done it)''어떻게 했느냐 (How done it)' 보다는 '왜 했느냐 (Why done it)'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범인이 누군지 찾고, 그가 어떤 방식으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탐구하는 일반적인 추리 미스터리와는 달리 사건의 동기에 해당하는 '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집중한다는 의미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퍼핏쇼>에 담긴 미스터리의 핵심이다. 이야기의 구조상 필연적으로 사건을 일으킨 자와 그가 그러한 행동을 한 이유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범죄를 저질렀을까? 앞서와 마찬가지 이유로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없지만 책에서도 언급한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것은 좋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뿐이다. (All that is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that good men do nothing.)" 라는 에드먼드 버크의 말이 힌트가 될 수 있다. 극중에서도 에드먼드 버크의 이 말은 워싱턴 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는데 결졍적 역할을 한다. 이런 매력적인 악역을 후속되는 시리즈에서 계속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쉽기까지 하다.

 


정의 때문에 하는 게 아냐, . 정의를 위한 일이었던 적은 한순간도 없어. 이건 복수야.” (p. 421)

 


나는 고전 미스터리 뿐만 아니라 하드 보일드의 팬이다. 영미권 하드 보일드에 레이먼드 챈들러가 있다면 일본에는 하라 료가 있다하라 료는 데뷔작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통해 챈들러의 ‘필립 말로에 비견되며 이후 작가의 분신이 되는 사립탐정 ‘사와자키를 창조해내었다이후 하라 료는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물인 <내가 죽인 소녀>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표 기수로 떠올랐다하라 료는 여러 면에서 챈들러와 유사하다본업을 따로 가지고 있다가 40대의 다소 늦은 나이에 작가로 데뷔했다는 점하드 보일드의 거장으로 불리지만 그 명성에 비해 그리 많은 작품을 발표하지 않은 대표적인 과작 작가라는 점에서 그렇다이같은 점은 <퍼핏쇼>의 작가 M. W. 크레이븐도 마찬가지다. (워싱턴 포시리즈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리즈까지 런칭한 그는 다행히도 그렇게 과작 작가는 아닌 듯하다.)

 


하라 료의 '하드 보일드' '사와자키'를 통해 시작되고 완성된다고 생각한다이는 그가 사건에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필연적인 것이긴 하지만 사와자키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었더라면그 아무리 빛나는 웰메이드 스토리가 있었다 한들 시리즈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와자키는 탄생후 수많은 독자들과 세월을 함께 하며 이제 50대의 중년으로 접어들었다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신주쿠의 어두운 뒷골목을 조용히 비춘다오랜 시간 고단한 현실을 겪으며 그를 기다려온 독자들은 그의 건재함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는다. 나는 <퍼핏쇼>를 읽고, '워싱턴 포''틸리 브래드쇼'라는 새로운 친구를 얻었다. 내가 하라 료의 사와자키와 함께 하며 위안을 얻어왔듯이 이제 또 다른 친구와 함께 할 생각에 흥분이 밀려온다. 앞으로도 나는 새로운 친구와 함께 현재를 헤쳐나갈 힘을 얻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것이다. 포가 자신의 소임을 마치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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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5-09 22: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멋진 소개 글 잘 읽었습니다.
고전과 하드보일드의 조화, 와이 던 잇 추리물이라는 점이 매우 끌리네요~

잭와일드 2023-05-09 23:47   좋아요 1 | URL
긴 글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하수 2023-05-20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잘 읽었습니다.^^
작품에 관심가지고 꼭 읽어보겠습니다!
 
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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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은 갑자기 닥친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에 앞서 40여 년 전에는 임진왜란을 겪었고, 불과 그 10여 년 전에도 정묘호란을 겪었다. 정묘호란 이후, 청나라는 각종 경제적 요구는 물론, 명나라를 치는 데 협조하라며 수시로 조선을 압박했다. 이런 와중에도 인조 정권은 시종일관 국방이나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외면하고 오직 자신들의 권력 팽창에만 열을 올렸다." (p. 5)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국가의 지도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확대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파벌을 나누고, 정쟁을 일삼는 행태를 아프고 안타깝게 지켜봐왔다. 또한, 역사도 국민의 진의에 귀 기울이지 않거나 혹은 고의로 묵살하면서 민생을 외면하고, 주변 정세와 국가안보에 조차 신경 쓰지 않음으로서 국가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수많은 리더들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다. 본서 <인조 1636>에서 다루고 있는 조선의 16대왕 인조도 정권의 안위를 위해 국가안보를 희생시킨 대표적인 그릇된 리더, 혼군 (昏君)으로 거론된다. 지금까지 역사서를 비롯해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수많은 자료들이 인조 집권시기를 다뤘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논쟁을 다루기도 하고,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히는 삼전도의 굴욕과 조선 왕실 최대의 가족비극사이자 최초의 의문사로도 일컬어지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조명하기도 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인조 정권이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좀더 유연하게 대처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인조 정권은 임진왜란 이후 급변하는 주변 정세에는 눈을 감은 채 지나친 숭명배금과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만 급급한 나머지 국방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p. 131)

 


<인조 1636>가 기존의 수많은 자료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발간된 자료들은 기왕에 알려진 이야기만을 다루거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료에 근거하지 않고 저자의 추정적 판단하에 자료를 만들었다면, 이 책은 <인조실록>, <승정원일기>, <만문노당> 등의 조, 청 양국의 1차 사료를 중심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1차 사료라 함은 동시대 또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편지 자서전 사진 유물 등을 말한다. 1차 사료가 중요한 이유는 당시 역사적 현장에 실재했던 증인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1차 사료를 기반으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해석이 들어간 2차 사료는 1차사료에 비해 '사실 (fact)'에의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자 유근표는 <인조 1636>을 통해 '자신들만의 권력을 지키고 대국을 섬기기만 하면 백성은 어떻게 되는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병자호란은 불가피한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인조반정과 뒤를 이은 이괄의 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소현세자의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을 시간대순으로 면밀하게 분석하고 돌아보면서 무능한 지도자의 그릇된 인식과 판단이 이 모든 비극과 전쟁의 원인이며, 그 결과로 아픔을 견디고 삶을 살아내야 했던 최종 피해자는 백성들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이라는 책의 부제에 걸맞게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병자호란이 발발하기 전 인조반정,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등을 다루고 있고, 2부는 병자호란 중 인조를 비롯된 집권세력의 무능과 무책임한 행태들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3부는 병자호란 후 패배로 인해 고통 받는 백성들의 삶을 기술하고 있다.

 


'반정'이라 함은 실정을 하는 왕을 폐위시키고 새로 왕을 세우는 일을 말한다. , 왕이 무능하거나 포악하여 백성이 곤경에 빠졌을 때 행하는 무력적인 정치변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선은 500여년의 역사 동안 두 번의 반정이 있었다. 바로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이 그것인데, 바르게 되돌린다는 반정의 의미를 생각해볼 때, 이 두번의 반정이 역사를 바르게 되돌렸는지, 아니면 역사의 수레바퀴 자체를 거꾸로 되돌려 퇴보시켰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종반정은 연산군의 난정(亂政)과 패륜을 바로잡는다는 분명한 명분이 있었고, 후에 중종이 되는 진성대군이 반정의 주역도 아니었다. 하지만, 인조반정은 후에 인조가 되는 능양군이 반정이 주역이었고, 폐모살제(廢母殺弟), 배명금친, 과도한 궁궐공사로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는 세가지 명분도 되돌아 생각해보면 석연치 않은 것이었다.

 


폐모살제를 내세우며 반정을 일으킨 인조는 후에 정권유지를 위해 자식인 소현세자 살해의혹과 세자빈을 살해하고 3명의 손자들 귀양을 보냈다. 또한, 배명금친을 이유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숭명반청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출범당시 명나라에게조차 정권을 인정받지 못했고, 이렇게 정권의 명분을 찾기 위한 행위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발발시켜 나라의 존폐에까지 몰아넣는 사태에 이르게 했다. 또한, 인조정권이 반정의 명분으로 과도한 궁궐공사로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는 것을 들었다는 것은 생각할 수록 기가 찰 노릇이다. 인조가 왕위에 오른 지 10개월 만에 반정 2등 공신이었던 이괄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는 이인거, 유효립, 이충경, 심기원 등으로 이어졌다. 이런 내분에도 모자라 정묘호란과 병자호란까지 겪은 민중들의 삶은 단지 과도한 궁궐공사에 따른 피폐한 정도에 비할 수 있을까? 하물며 인조는 전쟁이 발발할 때마다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떠났다.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로,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으로 숨어들었다.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하면서 울부짖는 자가 만 명을 헤아렸다." (p. 224)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이는 대부분의 전쟁사가 승리자의 입장에서 생략과 왜곡을 포함한 것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개연성 있는 말이다. 승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명분을 만들고 선행을 열거하며 찬양하는 한편 패자의 잘못을 드러내어 꾸짖고, 패자의 선행과 행동의 명분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는 수많은 역사서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은 조금 더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이는 '승자''승리'의 기준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전쟁이나 정쟁에서 승리한 일방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당대의 최고 권력층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근현대 이전 과거의 역사는 권력자의 역사였다. 이는 역사서술의 중심이 최고 지도층 등의 권력자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권력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절대 다수에 해당하는 민중들을 배제시킨 것은 진정한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조 1636>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주목 받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물과 사건들을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도 있다역사의 주역은 왕이나 최대 권력층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족과 국가를 위한 진심을 보이고 이름 없이 사라져간 민중들의 삶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할 때 역사적 진실의 조각을 맞춰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조 1636>1차 사료를 중심으로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근왕령 발동으로 죽어간 수많은 근왕병들, 삼남에서 몰려온 군사들, 의병들, 지휘관들의 삶을 조명한다. , 전쟁에서 패배한 후 청으로 잡혀간 피로인들의 절절한 삶과 고향을 잊지 못하고 탈출한 안추원과 안단의 사례를 빼놓지 않고 소개하고 있다. 특히, 근왕군으로 참전한 윤충우가 쌍령전투를 앞두고 부안에게 남긴 편지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며 읽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적의 세력이 시각을 다툴 만큼 급박하니, 내가 살아서 돌아간다는 것은 기약할 수가 없구려! 비록 살아서는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시신이 나뒹구는 산야에서 어떻게 나의 시신을 찾을 수 있겠소. 이 편지 띄운 날을 내가 죽은 날로 삼으시오만, 다만 어린 아들이 마음에 걸리는구려. 어미와 아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살 곳을 잃는 슬픔만 겪지 않는다면 다행이겠소. 편지를 써 놓고 보니 슬프고도 망연하구려!” (163711일 쌍령에서) (p. 167)

 


이들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힘은 민중에게 있으며이는 핍박과 분열갈등이 빚어낸 시대의 소음들을 꿋꿋이 버텨내며 역사는 계속된다는 사실을 후손들에게 일깨워준다. 역사는 지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떠오르는 하나의 그림이 있었다바로 윌리엄 터너의 명화 <전함 테메레르>.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빅토리호를 구하는 전적을 올린다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그림 속에서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트라팔가 해전 승리후 런던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조성되었고광장 중앙에 승장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세워졌다넬슨이 승선했던 빅토리호는 포츠머스 해군기지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반면 테메레르호는 운수업자에게 넘겨져 해체되는 운명을 맞는다템즈 강가로 산책을 나간 터너는 이 위대한 선박의 마지막 항해를 그림으로 남겼다윌리엄 터너는 시대를 빛내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영웅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를 보냈다모두가 기억하는 넬슨 제독빅토리호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테메레르도 있었다고 그것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이들을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간 이름 없는 민중들수많은 윤충우와 안추원, 안단들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아니 그 이전에 역사의 페이지에 그들의 몫도 있을까우리는 윌리엄 터너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그들을 다시 역사의 테두리 안쪽으로 끌어들이고 기억해주어야 한다그들의 정신과 투쟁숭고한 희생은 <전함 테메레르>가 되기 충분하다그들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기 때문이다또한 그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세상의 진보를 위해 고독한 걸음을 내디딘 수많은 '우리'들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인조1636리뷰대회, #인조1636, #유근표, #북루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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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자 - 돈·시간·운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7단계 인생 공략집
자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베스트셀러 중 자기계발 만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분야가 또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자기계발서를 선호하지 않는 쪽이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독자들의 대다수가 수긍할 만큼 좋은 철학적 지침이나 실천 방법론들이 담겨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책을 읽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라는 것 등이다. 하나 같이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좋은 내용들만 가득한 자기계발서를 읽고, 삶이 변화된 케이스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 처럼 힘든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내가 자기계발서를 선호하지 않게 된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사실 성공의 방법은 여타의 자기계발서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 보다 심플하고,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성공방정식 중에서 내 상황과 환경에 맞는 나만의 성공루틴을 찾아서 그것을 꾸준히 실행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한 숨겨진 비밀이 아니고, 대단한 통찰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이들이 삶을 살아오며 직간접적으로 깨닫고 느낀 체험적 지식들인 경우가 많다. 이 처럼 대다수가 수긍하고, 이미 삶에서 체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게다가 심플하기까지 한 성공의 법칙들을 우리는 왜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찾아 낸 답은 세 가지다. 먼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서 종국적으로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고, 행복한 삶에 다가가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찾는다. 이를 위한 특별한 비결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자기계발서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성공의 법칙은 이미 우리에게 공개되어 있는 평범한 아포리즘일 확률이 높다. 따라서, 이런 기대를 하며 자기계발서를 찾는 이들은 자신에게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지는 뻔한 지식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실망을 하고 건질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삶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기피하고 현실의 삶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 인간은 자신의 삶의 방향이나 속도에 영향을 주려고 하는 외부작용에 저항하고 기존의 삶을 유지하고, 익숙함과 편안함 속에 안주하려는 '관성 (Inertia)'이 있는 것이다. 변화된 삶을 애타게 갈망하지만, 이를 위해 지루한 성공루틴을 오랜 세월에 걸쳐 유지하면서 현재의 삶을 희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변화된 삶을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내딛어 보지만, 결국 이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수많은 기회비용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기존의 익숙한 삶, 정체된 삶으로 회귀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각자 다른 삶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저마다 주어진 다른 환경 하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이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진다우리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각자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주어진 삶의 조건이 다른 개인들의 삶을 변화시킬 만능의 솔루션이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존재한다해도 자기계발서에서 그것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이 리뷰를 쓴 필자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품고 있는 여러가지 의문에도 불구하고 왜 자기계발서인 <역행자>를 선택했을까? 이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역행자>를 선택했고 독서 후 이렇게 리뷰까지 남기고 있는지 그 이유를 밝혀야겠다.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절대 이 책을 읽지 마라! 죽을때까지 똑같이 살고 싶다면..."이라는 이 책의 독특한 마케팅 문구 때문이었다. 저자 자청은 마케팅 전문가답게 자기계발서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조차 호기심을 유발할 정도의 스토리텔링과 마케팅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없었다면 애초에 자기계발서라는 카테고리 자체를 거부했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되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저자 자청은 자신은 반월공단에 취직해 월 200만원을 받으며 게임만 하는 삶을 꿈꾸던 오타쿠 흙수저였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현재의 자신은 이 같은 운명과 본능의 굴레를 극복하고 경제적 자유와 행복한 삶을 쟁취한 역행자이며, 라이프 해커라고 말한다. 그는 무자본으로 다수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키워 낸 창업가이고, 이에 대한 결과로 노동을 하지 않아도 월 1억의 자동 수익을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도 공개하고 있다. 궁금하지 않은가? 가난한 가정환경과 비호감의 외모, 바닥을 기는 학업성적... 최악의 조건 속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하루하루 게임으로 현실도피를 했던 20대 초반의 사회부적응자는 어떻게 30대 초반의 나이로 연봉 10억의 8개 회사의 최고 책임자가 될 수 있었을까?

 


저자 자청은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신이 '역행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역행자'의 개념은 이런 것이다. 그는 인간 중 95퍼센트는 타고난 유전자와 본성에 치우쳐서 살아간다고 말한다이렇게 본성에 치우쳐 사는 사람들은 정해진 운명과 본성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순리자'. 그러나 나머지 5 퍼센트에 속하는 '역행자'들은 타고난 유전자와 본성을 거스르고 극복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이러한 삶의 방식으로 인해 경제적 자유와 행복을 얻는다는 것이다. 저자 자청은 자신이 역행자로 살아온 10년 동안의 지식과 노하우들을 본서 <역행자>에 풀어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역행자의 7단계 모델'이다.

 


'역행자의 7단계 모델'은 저자 자청이 자신 있게 공개하는 인생 레벨업 치트키이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단계 자의식 해체 : 잘못된 자의식을 인지하고 해체한다. 무의식에 균열을 내고 잠재된 능력을 깨우는 단계이다.

2단계 정체성 만들기 :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 수 있도록 고찰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통찰하는 단계이다.

3단계 유전자 오작동 : 평판 및 새로운 경험에 대한 거부나 오작동을 극복한다. 심리적 함정을 극복하는 단계이다.

4단계 뇌 자동화 : 지속적으로 뇌를 자극하여 뇌를 '최적화'하는 단계이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2년간 매일 2시간씩 책을 읽고 글을 쓰는 '22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5단계 역행자의 지식 :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한 학습과 훈련을 하고, 이를 실제로 실행하는 단계이다.

6단계 경제적 자유를 얻는 구체적 루트 : 상대를 편하게 해주거나 행복하게 해주는 구체적 방법을 발굴하여 사업화를 하는 단계이다.

7단계 역행자의 쳇바퀴 : 실패를 통해 실수나 과오를 되돌아 보고 더 나은 방안에 대해 탐구하는 단계이다.

 


이것이 바로 '역행자''역행자'가 되기 위한 7단계 모델이다. 물론 책에는 각각의 단계별로 현실에서 발생했던 케이스와 구체적 실천 방법론들이 소개되어 있지만 간략히 축약한 것이다. 앞서 전술한 바와 같이 나는 자기계발서를 선호하지 않았던 사람이고, 오히려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기피했던 사람이다. 자기계발서 혐오자가 본 <역행자>는 어땠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역행자>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동력이 잠재되어 있는 훌륭한 자기계발서이고, 내 자신에게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역행자>를 읽고 난 내 솔직한 소회이다.

 


왜 그렇게 생각 하냐고? 그 이유는 앞서 내가 자기계발서가 독자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이유로 언급한 3가지와 관련이 있다. 내가 <역행자>라는 자기계발서에 호기심을 느끼고 읽어보기로 결정하면서 기대한 것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특별한 인생 성공 비결이 아니었다. 또한, 저마다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개인들을 만족시키는 만능의 행복 솔루션이 있다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단지 내가 기대했던 것은 누군가가 인생을 변화시킨 방법들 중에서 내 삶에 적용시키고, 나만의 성공 루틴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하나의 단서였고, 이를 통해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내 본능과 관성에 작은 균열을 내는 것이었다.

 


<역행자>를 접하고 자연스럽게 나는 역행자의 7단계 모델을 내 현실의 삶에 적용해보았다. 자의식 해체 과정을 통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진정한 ''와 대화를 시도했고, 내가 원하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그러면서 마주한 결론은 오랜시간 현실의 벽 앞에 숨겨왔던 '작가'라는 꿈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읽고 쓰는 삶'은 내 오랜 꿈이었다. <역행자>를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유전자 오작동을 극복하고 내 본연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되었고 나는 용기 내어 공모전에 도전하게 되었다.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짬을 내어 쓴 동화로서 먼저 도전해보았다. <역행자>를 만나기 전 '22전략'은 몰랐었지만 그 동안 취미로 행한 독서 경험들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앞으로도 작가라는 꿈에 도전하기 위하여 뇌 자동화와 나만의 역행자의 지식 노하우를 쌓은 훈련을 계속해나가고자 한다. <역행자>의 리뷰를 남기는 것도 그 과정 중 하나이다.

 


<역행자>를 읽고 내용을 정리하며 나만의 성공 방정식이자 인생의 법칙으로 변환해 보았다. 첫번째 인생의 법칙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의식 해체와 정체성 만들기와 관련된 것이다. 두 번째 인생의 법칙은 실행에 앞서 리스크에 대한 통찰과 결단을 거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전자 오작동과 뇌자동화 역행자의 지식과 관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인생의 법칙은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누구도 알지 못한 성공비결은 존재하지 않고, 성공 방정식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 속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볼 때 지식을 습득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습득한 지식을 현실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먼저 실행하는 것 (Doing First)'을 내 삶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삶의 모토로 정하고자 한다. 어떤가? 당신도 당신만의 성공법칙을 만들고 꿈꾸던 삶으로 도전해보고 싶지 않은가? <역행자>를 읽는 것은 그 길로 가는 훌륭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역행자리뷰대회, #역행자, #인생역행, #자청,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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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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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에세이의 전범이자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사나운 애착>에서 비비언 고닉은 모녀(母女)간의 관계에 투영된 삶에 대한 진실을 생생하게 포착해낸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애정 (affection)'이 아닌 애착 (attachment)’으로 표현한 것 그리고 또 이를 사나운 (fierce)’이라는 형용사가 수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착'은 대상에 대한 애정에서 한발 더 나아가 끈끈하고 끈즐긴 감정적 유대와 소유와 집착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만큼 모녀라는 특수한 관계에서 비롯된 애증이 섞인 복잡미묘한 감정과 욕망들을 저자는 기발한 전개로 풀어내고 있다. <사나운 애착>은 어머니와 뉴욕 거리를 산책하며 사소한 말싸움을 하다가, 돌연 과거를 회상하며 엄마를 포함한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저자는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유대계 이민 가정의 자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저소득의 노동자 계층이 주로 거주하는 브롱크스에서 다양한 이웃들과 부대끼며 성장했다. 그러한 그녀의 삶의 중심에는 이른바 '사나운 애착'으로 엃힌 어머니가 있었고, 고닉은 성장 과정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본 서에서 어머니와의 대화나 서사를 통해 진솔하게 털어 놓는다. 이러한 과거 어느 순간의 감정과 욕망들은 일정시점의 시공간을 포착해내는 사진처럼 <사나운 애착>에 잘 스크랩되어 있다.

 

"삶이라는 건 층층이 쌓인 무수한 목소리들을 다루는 고고학과도 같다. 내게 없어선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목소리들이다." - 비비언 고닉 -

 

브레히트는 헤겔의 진리는 구체적이다. (Die Wahrheit ist konkret.)” 라는 명제를 즐겨 인용했다. 구체적이지 않은 진리는 인간을 모호한 주관적 확신으로 이끈다때문에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이는 에세이나 자전적 글쓰기에도 적용되는 명제다. 생동하는 저 세계를 구체적으로 겪어내고 구현해내야 한다. 구체적이지 않고서는 독자의 마음을 관통할 수 없다. 비비언 고닉도 자전적 글쓰기에 관한 지침서 <상황과 이야기(The Situation and the Story)>에서 자서전의 주제는 항상 자기 인식이 우선이지만 실체가 없는 자기 인식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좋은 글은 실제로 경험하고 목격한 것들을 살아 있는 어휘로 표현되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 자전적 에세이는 자신의 경험과 체험,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서 가장 쉽고 명확한 어휘와 문장으로 누구나 읽고 싶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사나운 애착>이 자전적 글쓰기의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화자는 절대적으로 구체적 진실을 이야기 해야 하며, 불명확하게 또는 모호하게 두리뭉실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속여서는 안된다는 저자 비비언 고닉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여러 가지 확실한 문제가 있다. 숨이 막힌다. 그래도 안전하다." (p. 110)

 

그들 모녀는 삶을 함께 하며 같이 살아남았고, 모든 순간은 아니었다 해도 서로의 곁을 지켰으며, 그렇게 그들만 아는 동지애를 키워냈다. 그들은 끈끈하게 얽힌 혈육으로서 서로를 단단히 지지하지만, 함께 있으면 숨이 막히고 천 근 같은 공허가 무거운 짐짝처럼 매달려 두 사람을 바닥으로 끌어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무기력과 절망, 분노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로 인해 위안을 얻는다. 저자는 책에서 히로시마 원폭이 터졌을때 기모노를 입고 있던 사람들의 경우 기모노는 열에 녹아 사라졌지만 기모노의 무늬가 피부에 인쇄된 것처럼 남아 있던 사례를 언급한다. 어쩌면 모녀가 삶 속에서 겪은 일들은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그들 삶의 빛났던 순간과 깊고 어둡고 무감각한 수동성은 그들 모녀의 피부에 고스란히 새겨져버린 게 아닐까? 두 모녀는 평생 서로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인생을 그저 허망하게 응시한다. 희망과 절망, 연민과 분노 등이 뒤섞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로 묶인 그들 모녀는 삶을 살아내며 결국 서로 간의 적절한 거리와 각자의 공간을 확보하고, 진정한 독립된 자아로 성장해간다. 이는 그들의, 그들만이 가능한 사나운 애착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제대로 살지도 않았는데. 세월만 가버려." (p. 301)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돌아보면 지극히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이었고 사건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일상의 소박한 순간들로 채워진 하루 하루가 존재하였기에 쓸모와 필요만으로 이루어진 '기능적 생활'을 벗어나 여유를 풍경으로 두는 ''이 가능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하지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란 각자가 고유한 존재 방식을 가졌지만 서로가 가진 중력으로 인해 영향을 받고 기쁨과 고통을 나눈다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읽으며, 삶이란 저마다 쌓아둔 사연들로 섬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그들 모녀간에 존재했던 '사나운 애착' 처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온기를 나눈다.

 

"얘들아, 감정이 모든 걸 좌우한단다. 무엇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인생이 풍족할 수도 빈곤할 수도 있어. 감정을 고양시키면 큰 재산이 되기도 하고, 그게 싹 사라져버리면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인생이 되기도 하는 거야." (p. 44)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삶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모든 것을 상실한 듯 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우리는 세상에 관해또 삶에 대해서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얻기 위해 간절히 매달리지만진실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 언저리에서 표류하며 잡힐 듯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중요한 것은 무모할지라도 우리의 생각과 언어로서 세상을 이해하고지속적으로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아닐까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잡힐 듯 떠오르는 희망에 대해삶의 온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엄마의 인생 저장소야, 알잖아?" (p. 305)

 

현재의 삶은 지나온 삶의 이력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작가의 지나온 삶에 관한 기록을 읽으며현재까지  삶에 존재했던 행복했던 기억아픈 추억낯설고도 친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픔들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절들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우리는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들을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간다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행복한 기억들을 화석화하여 영원과 불멸의 세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하지만 기억은 불완전한 것이고 객관화된 진실은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사실 (事實)' 보다 '사연 (事緣)'이 중요해지는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라쇼몽 (羅生門)의 대사처럼 진실이란 어차피 그 사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은 현재의 삶 안에서 고동치는 두번째 심장이자미래의 삶에 대한 이정표이다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 간에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재생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이 될 수도 뼈아픈 추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같은 역사를 겪어내며, 서로의 삶의 동반자인 동시에 증인이기도 '사나운 애착'으로 묶인 이들 모녀 관계처럼 말이다.

 

"이제 더 이상의 '항상'은 없다. 정해져 있던 패턴이 서서히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이 어그러짐의 과정 속에 나름의 즐거움도 있고 놀라움도 있다." (p. 301)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하지만 인간이 죽음을 예정하고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과 그러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존재와 소멸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정글과 같은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과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인정’ 그리고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다그것은 환경의 제약 속에서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잡힐 듯 떠오르는 희망에 대해삶의 온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우리가 그토록 잡고자 했던 불분명한 현실의 경계를 너머 표류하고 있는 진실의 조각은 이것 아닐까? 과거와 현실을 딛고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진실 말이다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가면서도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불완전한 궤적이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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