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스 - 어떻게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가
애덤 그랜트 지음, 홍지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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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시감 (未視感, Vuja de) : 독창성의 발현

독창성의 출발점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왜 애초에 현재 상태가 존재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는 행위이다. 우리는 '기시감 (旣視感, Déjà vu)'의 정반대 현상인 '미시감 (未視感, Vuja de)'을 경험할 때 현재상태에 의문을 품게 된다. 기시감은 우리가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전에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현상을 말한다. 미시감은 그 반대다. 늘 봐온 익숙한 것이지만,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서 기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함을 뜻한다.

 

 

2. 가치 창출의 원천 : 세그웨이의 실패사례

상품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는 고객이 창출한다. 시장견인 전략 (Market Pull)  VS  기술주도 전략 (Technology Push)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세그웨이를 발명한 카멘은 다른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는 뛰어났지만, 풀어야 할 문제를 찾는데는 그다지 재주가 없었다. 세그웨이의 경우, 카멘은 먼제 해결책을 찾은 후에 비로소 그 해결책이 쓰일 문제를 찾아 나섰다. 그는 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시장견인 전략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만든 신기술을 시장에 공급하는 기술주도 전략을 밀어붙이는 실수를 했다.

1) 시장견인 전략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전략으로 시장 중심의 전략

2) 기술주도 전략기업이 기술 중심으로 전략을 세워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전략을 말한다.

 

 

3. 혁신의 과정

권한은 단순히 기존 체제에 도전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일단 기존체제 내에서 자위를 확보한 후에, 기존 체제에 도전하고 뒤엎어야 얻어진다.  <Francis Ford Coppola>

 

 

4.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

아이디어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은 독창성도, 재능도, 실행능력도, 사업모델의 질도, 가용자금이 있는지 여부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기포착이다.  <Bill Gross>

 

 

5. 변화를 일으키는 힘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게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현재 상테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사람들을 안전지대에서 몰아내고 싶다면, 현재 상태에 대한 불만, 좌절, 분노를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가장 뛰어난 소통의 달인은 현재 상태를 먼저 규정하고 나서 이를 가능한 미래의 상태와 비교하고, 그 괴리를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만든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그 유명한 취임연설에서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의 절박한 현실을 묘사하고 나서야 비로소 도달가능한 미래상을 언급하였고 마틴 루터킹도 인종분리와 차별의 악몽 같은 현실을 고발하고 나서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였다. 일단 결의가  굳건히 다져지면, 과거를 돌아보는 대신 앞으로 해야할 일을 강조함으로 시선을 미래로 향하게 하는 것이 좋다. 일단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결심이 서면 현재 상태와 바라는 상태 사이의 괴리가 사람들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만든다.

 

 

6. 독창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과 세상을 즐기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 때문에 하루일과를 계획하기가 어렵다.  <E. B. 화이트>

독창적인 사람이 된다 함은 행복을 추구하는 가장 쉬운 길은 아니지만, 숭고한 목적을 추구함으로서 행복을 느끼기에는 최적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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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하의 야생학교 - 도시인의 생태감수성을 깨우다
김산하 지음 / 갈라파고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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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발견하고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삶 (LIFE)의 목적이다.

 

 

이는 잡지 라이프(Life)의 모토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실제 라이프의 창간사이자 모토인 '라이프를 통해 세상을 보라'를 영화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라이프지는 필름 시대의 아이콘이자 '포토 저널리즘'을 개척한 20세기를  대변하는 잡지였다. 글 보다는 사진의 강렬함으로 1960년대까지 공황, 세계대전, 냉전의 처절한 현실을 전했던 라이프는 TV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쇠락하기 시작했다. 라이프지는 73년에 주간지 시대를 마감하였고, 월간지와 특별호 체제로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2007 3월 종이 잡지로서 마지막 호를 발간하고 온라인 잡지로 전환되었다.

 

 

영화 속에서 42세의 '소심남' 월터는 잡지사 라이프에 다니는 평범한 미혼의 직장인이다.입사 후 16년 동안 그가 맡은 업무는 필름을 현상하는 것이었다. 글 보다 한 장의 사진에담긴 힘을 믿었던 잡지사 라이프에서 현상부서는 핵심부서였지만 디지털 사진이 보편화되면서 필름 사진은 퇴색되어 갔고, 수작업으로만 가능했던 인화기술 또한 디지털 보정기술로 대체되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라이프는 종이 잡지를 폐간하고 온라인 잡지로 거듭나기 위해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고, 경영진은 마지막으로 발간될 종이 잡지의 표지를 전설적인 사진작가 숀 오코넬의 사진으로 결정한다. 그러나 '삶의 정수'를 담고 있다는 말과 함께 숀이 월터에게 보낸 필름은 어디에도 없었고 월터는 필름을 받기 위해 숀을 찾아서 모험을 떠난다. 온갖 고난과 역경 끝에 월터는 멸종위기종 눈표범 (Snow leopard)을 사진에 담을 준비를 하고 있는 숀을 만나게 된다.

 

 

“언제 찍을 건가요?”
“어떤 때는 찍지 않아.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에 머물고 싶지. 진정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거든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자연과의 만남처럼 진정으로 경이로운 순간은 포토제닉하지 않다.그 순간은 카메라의 존재를 잊게 만들 정도로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전설적인 사진기자 숀도 고산지대에 서식하며 우아한 외형과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특성 때문에 실존 동물 중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물로 꼽히는 눈표범과 만난 순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보다 그 순간에 남아 있는 것을 택한다. 눈표범은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산간에 사는 고양이과 동물로 털 색깔 때문에 회색표범, 또는 설표(雪豹)라고도 불린다. 눈표범은 밀렵, 인프라 개발 등으로 인간에게 서식지를 빼앗기고 환경변화로 먹잇감이 줄어들면서 멸종위기 희귀 동물의 대명사로 꼽힌다.

 

 

영화 속의 숀이 맞이한 경이로운 순간은 현실 속에서도 한 사람의 인생과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영국의 변호사 스티븐 스패로우는 2005년 히말라야를 여행하다가히말라야의 유령이라 불리는 눈표범과 마주쳤다. 이 만남을 계기로 스패로우는 런던으로 돌아와눈표범 살리기 재단을 만들고 눈표범의 이름을 딴 보드카 브랜드스노우레퍼드를 만들었다. 보드카 판매수익금의 일정 부분은 몽골, 중국, 인도, 키르기스스탄 등에 남아있는 눈표범을 살리기 위한 기금으로 적립되어 10년 간 약 11억원이 눈표범 보존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에 힘입어 눈표범은멸종위기 수준에서레어 수준으로 개체 수가 크게 증가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자연과 만났던 순간이 있다. 그것은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한 쌍의 잉꼬를 키우던 어린 시절, 먹이를 찾아 열린 창문으로 느닷없이 들이 닥친 잿빛의 매에 대한 기억이다.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애완동물을 향해 느닷없이 달려든 거친 존재로부터 느낀 위협감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 원치 않았던 조우는 내 삶의 영역을 침범하고 내가 사랑하는 존재에게 상처를 주는 야생이라는 존재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오랜 기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도시 속에서 살아가면서 야생과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긴 시간 동안 오해가 풀리지 않았던 하나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도심 속의 삶이 역설적으로 야생과 자연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가 되었다. 도시의 삶이 나에게는 야생학교였던 셈이다.

 

현대 도시인의 삶이란 부대낌의 연속이다. 출퇴근 시간의 만원 버스와 지하철 등 하나의 공간 속에 삶의 여러 주체가 경쟁하며 본의 아니게 불편과 해를 끼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일어난다. 나는 도시의 삶을 통해 모든 소유와 점유는 일시적이며 잠시의 사용에 대한겸손한 자세와 공존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지구라는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자연의 소리에 너무나 무신경하다. 아니 무신경한 것을 넘어서 동식물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그러한 강요된 침묵을 당연시한다.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 자연에 영향을 끼칠 때, 그 자연의 반응을 우리의 잣대로서 평가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자 교만이다. 인간은 자연의 마음을 자의적으로 넘겨짚어서는 안 된다. 자연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장애물이 아니라, 지구라는 공간에서 공존하면서 생태계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이끌어갈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서 인간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발을 맞추어야 한다.

 

 

또한 다른 관점에서 보면 도시 속 현대인의 삶은 야생동물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개와 고양이 등 애완동물로서 인간과 역사를 함께 해온 가축들을 제외하고 야생성이 살아있는 동물들은 현대인의 일상에 직접적으로 등장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일상에 부재하는 야생동물들은 브랜드로서 현대인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우직하고 뚝심 있는 믿음직한 이미지의 곰은 밀가루와 자양강장제 등 제품과 기업의 경영철학을 대변한다. 스포츠 구단들은 힘과 기민함, 날렵하고 역동적인 다양한 야생동물의 이미지 중에서 자신의 종목의 특성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차용한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는 고래와 여우 등이 브라우저간의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트위터에서는 새들이 지저귄다. 기업의 경제활동을 비롯한 모든 상업 활동들은 기본적으로 자연자원을 활용하며 이루어지고, 그에 대한 부작용은 생태계의 교란 또는 파괴다. 야생동물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경제 매커니즘 안에서 소비되고, 그 소비의 효과가 클수록 자신의 존립의 기반을 헤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야생동물들이 사라지면 그들의 경제행위의 효과는 지속될수 있을까?

 

 

눈표범의 사례처럼 최근 야생동물의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는 재규어의 힘과 기민함,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자신의 브랜드 네임을 재규어로 명명하였고, 재규어를 위한 각종 보전사업을 펼치고 있다. 아메리카 표범 퓨마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차용하여 네이밍을 한 스포츠 브랜드 퓨마도 탄소절감과 동물보호활동을 하고 있다. 나아가 퓨마를 보호하는데 그치지 않고 잠비아의 사자, 라이베리아의 코끼리, 나이지리아의 고릴라 등 야생동물 전반을 위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나도 작년 랫서팬더, 모래 고양이, 황제펭귄 등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의 보호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기금 모금에 작은 힘을 보탰다.

 

 

진정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는 영화 속 숀의 말은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잡지 라이프의 모토처럼 우리는 진정한 세상을 보기 위해서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가까이 다가가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는 자연을 발견해야 한다. 어린 시절 갑작스럽게 내 삶 속에 들어온 잿빛의 매는 자연이 친히 나에게 선사한 가르침 아니었을까? 우매한 중생은 나이가 들고 나서야 자연의 소리를 알아채고 답한다.

 

 

“네가 거기 있으니, 내가 여기 있다. 참 고맙다

#김산하의야생학교, #김산하,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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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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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우리 부부에게 오랜 기간 간절하게 기다리던 딸이 가족의 일원으로 찾아와 주었던 날, 나는 딸의 태명을행복이라고 지었다. 무엇보다 딸과 함께 만들어갈 우리 가족의 행복한 삶이 그때 당시 내가 직면한 가장 큰 화두였기 때문이었다. 한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익숙지 않은 부모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 , 가정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이가 눈을 떠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마주친 순간, 내게 지은 미소, 첫 걸음마, 처음으로 말을 하고 나와 소통했던 순간들이는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님과 공유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부모로서 앞으로 내 딸과 공유해갈 기억들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은 삶의 어떤 순간순간들을 공유하며 추억을 만들어나갈까?

 

 

 

정재승 교수는 <열두 발자국>이란 제목에는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자국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히고 있다. (11) 정재수 교수는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에 등장하는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경험을 떠올리며 본서의 제목을 지었다. 나는 <열두 발자국> 한 생명의 탄생과 미래의 삶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부모로서 읽었다. 이 세상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내게 있어 딸의 탄생은 움베르토 에코의 체험 못지 않게 신비롭고 낭만적이고 때론 비현실적인 경험이었고, 그 체험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낀 챕터는 세번째 발자국 (결핍 없이 욕망할 수 있는가?), 네번째 발자국 (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일곱번째 발자국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아홉번째 발자국 (4차산업혁명시대, 미래의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 이었다. 여기서는 <열두 발자국> 중 딸에게 전해주고 싶은 4개의 발자국을 소개하고자 한다.


 

세번째 발자국에서 다루는 주제는결핍이다. 경제학도인 내게 결핍은 희소성 (Scarcity)과 근접한 개념이었는데, 저자는 경제학적 희소가치가 아닌 심리학적 결핍과 삶과의 연관관계를 다루고 있다. 누구나 결핍 없는 삶을 원한다. 무엇인가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한 노력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든다. 결핍에는 동기부여 (Motivation)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저자가 결핍의 관점에서 바라본 교육의 문제는 아이들이 결핍을 경험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얼마전 만난 친한 형의 고민은 초등학생이 고교 교과과정인수학의 정석을 선행 학습하는 강남 일대의 교육열이었다. 남보다 빨리, 더 잘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과도한조기교육’, ‘선행학습이 행해질 때 아이들은 스스로 학교 공부의 부족함을 깨닫지 못하고 정규교육 시스템은 서서히 무너진다. 세번째 발자국을 보며아이들이 진정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할 시간과, 기회,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번째 발자국에서 저자는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나의 성정과정과 마찬가지로 딸이 성장해나가면서 가장 많이 받게 될 질문 중 하나는 꿈과 장래희망에 대한 것일 것으로 생각했다. 아이에게 꿈이 무엇인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 건 상당히 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걱정했던 부분은 딸이 성장해가면서 질문이 담고 있는 의미가 '너는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그림으로든 완성될 수 있단다.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맘껏 펼쳐보렴'에서 "이제는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정해야 하지 않겠니?"로 바뀌어 가는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문제제기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너는 커서 뭐가 될래?”에 대한 질문은 많이 받지만어떻게 놀며 성장할래?”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하는 시간 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노는데 사용한다. 어떻게 노는냐가 그 사람을 규정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시간도 바로 노는 시간이다. 더군다나 이제 워라밸 (Work and Life Balance) 시대 아닌가? 놀이가 창의력을 높이고, 혁신의 열쇠가 된다는 과학적 분석 결과를 보며, 일과 더불어 놀이를 함께 성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일곱번째 발자국은 창의적인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룬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이긴 하지만 창의성으로 가는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창의성은 남과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하고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노력들, 다양한 시도를 하며 세상과의 의미 있는 충돌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다. ‘창의적인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순간의 있을뿐’ (220)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한가지 궁금했던 건 캐릭터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저자가 제시한 주장이다. 동양인은 대체로 눈을 보고 감정을 읽어내는데, 서양인은 입을 통해 감정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본서를 접하기 이전에 저자가 알쓸신잡에 출현해서 동일한 내용을 소개한 것을 보고 상당히 흥미를 느꼈었다. 헬로키티는 그러한 주장에 딱 맞는 사례였지만, 딸아이가 사랑하는 입이 없는 형태의 유럽회사의 국민 애착인형을 보면서 이 경우 어떻게 해석을 내려야 하는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자에게 질문하고 싶었다.


 

 

 


아홉번째 발자국은 제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은 우리의 미래를 전망하는 내용이다. 나는 딸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 세대가 살아온 세상보다 분명 더 나은 곳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버지로서 딸이 살아갈 세상은뿐만 아니라우리가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이길 바란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존재한다. ‘증기’, ‘전기’, ‘인터넷등 단일의 기술로서 이루어 낸 1, 2, 3차 혁명과는 달리 여러 가지 기술이 융복합되는 4차 혁명의 허구성을 지적하기도 하고, 아직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선언된 혁명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의심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지만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볼테르의 말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미래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테크놀로지의 혁신으로 변화하는 세상을 목도하고 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일자리의 지형도가 아니라 업무의 지형도이다. 직업이 아니라 작업이 중요하다.’ (270)는 저자의 주장이 인상 깊었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겪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다는 말처럼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시대에 존재하는 일렁임을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서서히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딸 아이가 시대의 풍랑을 힘겹게 견뎌내야 할 때 자신이 살아 있고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 가족과 사회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사랑과 신뢰 속에서 하나의 조각 (One Piece)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 아직은 대화하고 토론하기에 어린 나이의 딸이지만 언젠가 나와 소통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열두 발자국>을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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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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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을 열면서 나는 42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를 읽었다. 세대간, 성별간 시각 차이의 기저에 내려앉은 상실과 절망에 대해 무겁고 깊게 성찰한 소설이었다. 작가의 전작 <그 남자의 가출>에서 다룬 좌절, 실패, 상실감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더욱 깊게 침투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를 상실한 사람은 유예 기간을 겪어야만 진정한 슬픔에 이르게 되지. 깊은 슬픔은 단번에 그냥 주어지지 않아. 어느날 문득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을 뿐인데 두 눈에서 용암처럼 눈물이 흘러나와 귓속에 고이지 않던가.”(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65)하고 읊조리던 소설 속 늙은 불한당의 독백은 가슴에 오래 남았다. 작가의 수상소감은아짐찮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아짐찮다는 말,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 말. 유언처럼 아껴둔 이 말.” 작가가 이 말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작가는 작품집에 수상소감과 함께 자신의 문학적 자서전을 남겨 놓았다. 이것이 나를 작가의 산문집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으로 이끌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작가의 문학에 대한 진정성을 느꼈고, 동시에 온 생애를 다해 성과 속의 경계를 떠돌아야 하는 소설가로서의 그의 삶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학적 자서전은 본 산문집 1부에도절망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우리에게 문학의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 손흥규에게 문학은 소다. 소는 그에게 다정한 동무인 동시에 소통불능의 벽이었고, 긴 세월 그의 삶을 담담하게 지켜봐온 목격자인 동시에 그를 배신하고 다른 세계로 떠난 그 무엇이었다. 또한 그것은아직 차갑기만 한 불꽃’ (18)처럼 삭혀지는 서투른 욕망과 분출되려는 욕망의 충돌이었고, ‘육식동물의 송곳니’ (20)처럼 단단하고 투박한 그의 잃어버린 일부분이기도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이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하지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문학이란 저마다 쌓아둔 사연들로 섬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온기를 나눌 수 있을테니. <그 남자의 가출>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소설은 온기가 남은 아궁이라고 하였다. 그 앞에 앉아 손을 내민 우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삶의 숨결을 느낀다. 산문집 뒷편의 미니픽션 <불한당의 소설사>에서 노소설가는문학은 감동을 통해 평범하고 흔한 진리를 비범하고 독특한 진리로 고양시키는 것이다.” (341)라고 말한다. 이는 노소설가의 입을 빌린 작가 손흥규의 아포리즘 (Aphorism)임을 나는 이 산문집을 읽으며 깨달았다. 결국 문학은 우리가 선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므로... (118)

 

산문집에는아짐찮다.’는 작가의 수상소감의 의미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아짐찮다는 사전에 담기지 않은 말로 저자의 할머니가 자주 사용한, 저자가 결코 흉내낼 수 없다고 말하는 단어다. 언어는 기표 (Signifiant)와 기의 (Signifie)가 유동적인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작가는 할머니의 말투와 어휘를 흉내낼 수 없는 이유는 할머니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사연들과 그 말에 깃든 정서를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하나의 낱말 속에 담긴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무거운 한 사람의 인생과 진심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사전은 할머니의 삶과 정서, 목소리의 떨림까지는 담아내지 못한다. 따라서, 작가는 소설가로서 사전에 없는 말을 탐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언어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서 소설가는 사전이 아닌 삶에서 언어를 발굴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미 아는 삶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삶을 추구하는, 불확정의 영역에 놓여있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작가가 가진 사연의 일면들을 엿보면서 나는 조심스레 짐작을 해본다. ‘아짐찮다는 작가의 수상소감 속 마지막말은 긴 세월동안 함께 해온 문학에게 그가 건넨 인사 아니었을까?

 

산문집 전반에 흐르는 감정 중 하나는 작가의 딸을 향한 애정이다. 산문집의 제목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도 딸과의 에피소드에서 따왔다. 아이가 오른팔을 다쳐 아픔을 달래기 위해 왼손으로 감싸쥔 모습을 보고 작가는 결국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최선의 혹은 최소의 방법은 자신에게 기대는 것임을,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고통과 불안을 견디는 일이 우리 자신에게 속한다는 걸 (212) 부모의 입장에서 안쓰러운 시선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나이들수록 몸이 아닌 마음을 다쳐 돌아오는 저녁이 많아지게 될 아이가 타인의 오른손에 나의 왼손을 살풋 얹어 서로에게 기대는 일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길 바란다. 어쩌면 나에게도 작가와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어 더 마음이 가고 공감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다는 말처럼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시대에 존재하는 일렁임을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서서히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딸 아이도 나이가 들면서모호한 단어들을 하나씩 명백한 단어들로 뒤바꿔가고’ (52), 슬픔과 고통으로 인해제아무리 반듯이 펴놓는다 해도 구겨진 은박지처럼 삶에 흔적이 남을’ (195)것이다. 하지만 딸 아이가 삶을 살아가며 시대의 풍랑을 힘겹게 견뎌내야 할 때 최고이자 최선의 응원은 자신이 살아 있고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 가족과 사회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종국에는가난하고 고된 시간이라 할지라도 사랑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이든 장엄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임을, 무엇을 기억하든 실제로 기억하는 건 사람과 사랑뿐임을 (241) 깨닫게 되길 바란다.

 

“괴물은 숲속에 있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숲속에는 네가 잃어버린 것들, 두고 온 것들이 있어. 잃어버린 걸 찾고 싶으면 깊은 숲으로 들어가야 해... 우리는 우리라는 하나의 사연이 되어 깊어가는 가을밤에 소리 없이 지는 낙엽처럼 서로의 손안에서 바스락거렸다.” (5)

 

우리가 잃어버린것들, 두고온 것들은 무엇일까?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채 조용히 빛난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 혹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문학이라는 숲에 머물 것이다. 나 역시 그 속에 머물면서 앞으로의 작가의 여정을 지켜보며 응원할 것이다. 2018년 한해의 시작과 끝을 손흥규라는 한 사람의 작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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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보이 2018-12-3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을 울리는 문장들이 많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잭와일드 2018-12-31 23:57   좋아요 0 | URL
2019년 새해 첫 책으로 추천 드립니다^^
골든보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유정 문학상 수상 작품집의 출간을 기다리고 찾아 읽어본지 어느덧 3년이 된 것 같다. 김유정 문학상은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모든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작품을 선별하고 시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에 걸맞게 올해 역시 표제작인 한강의 <작별>을 포함하여 7명의 빛나는 작품이 한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2018년을 이 책과 함께 마무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강화길의 <>은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자기본위적 편향에서 기인한 오해를 극복하고 삶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감춰진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수 있음을 소설 속 화자와 독자들이 동시에 깨닫게 만드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권여선의 <희박한 마음>은 악의 없는 무심함과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소외된 자들의 삶에 가하는 폭력을 그린다. 그럼으로서 종국에는 약자이자 소수일수 밖에 없는 우리를 지탱하는 건이해배려임을 보여준다. 김혜진의 <동네사람>은 집단 이기주의와 배타주의로 인한 왜곡된 인식과 믿음이 진실에 이르는 눈을 멀게 하고, 인간이 인간을 장담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아프게 그려낸다. 이승우의 <소돔의 하룻밤>은 소돔의 멸망과 롯의 구원에 대한 일화를 통해서 인간 행동의 동기가 되는 집단적 광기와 비이성적 열기, 욕망의 실체에 대해 밀착하거나 매몰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차분히 성찰한다. 정이현의 <언니>는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 패악과 구시대적 질서 속에서 희생되는 가치와 약자들의 삶을 다룬다. 정지돈의 <Light from Anywhere>는 신기루와 같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허망함이 1970년 한국 뿐만 아니라 21세기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수상작인 한강의 <작별>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흰색을 말할때, ‘하얀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하얀과 달리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책이었다.” - <> 작가의 말 중 -

 

폴란드 바르샤바의 천변을 걸으며 썼다는 작가의 전작 <>을 읽었을 때, 어쩌면 나는 본작 <작별>을 이미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로 시작하는 <작별>의 첫 대목부터 나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녀에게 생긴난처한 일이란 겨울날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는데, 눈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이 눈사람으로 변한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상식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는 그녀의 상처를 읽어내기 어렵다.

 

합의금으로 대체된 오빠의 죽음, 생존에 급급한 가난한 연인,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자본주의 시스템의 도구로서의 삶... 그녀는 희지도 검지도, 뜨겁지도 차지도,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삶을 살아 왔다. 자신을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사물화된 그 어떤 것이라고 상상하는 그녀의 삶은 개인의 취향인 식성마저 억압당하는 <채식주의자>의 영혜를 연상시킨다.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몸도 사회와 권력을 통해 규제되고 강제된다. 하지만 <채식주의자>의 영혜가 자본주의 사회와 가부장적인 권력과 대면하여 저항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면, <작별>의 그녀에게서는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녀에게 눈사람으로 변하는 일은 그저 난처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그녀의 절망감이, 운명을 거부하지 못하는 체념적이고 순응적인 태도가 슬프고 아프다. 멀쩡한 사람이 눈사람이 된 기막힌 사실 조차 그저 난처한 일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녀 주변을 둘러싼 참담한 현실이 가슴을 울린다. 눈사람이 된 이후에도 피와 살과 내장과 근육이 있는 몸을 다시 갖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동안 어떤 시간들을 견뎌왔던 것일까?

 

하이데거는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미 죽기에는 충분히 늙어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매순간 죽음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다 종국에는 모두 소멸하는 존재다. 하지만 인간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존재와 소멸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46)

비록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아직 그녀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일까, 그녀는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53

 

<작별>은 인간적 가치가 소실되는 임계점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녀가 인간으로서 존재했던 것은 언제까지일까? 눈사람으로 변했지만 그녀의 심장은 아직  미미하게 따뜻하다. 그녀는 몸이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홀로 남겨질 아이와 연인을 걱정하며 서둘러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한다. 부모님의 안위를 물으려 한 전화에서 어머니가 자신의 안부를 묻자 그녀는 차마 대화를 더 이어나가지 못하고 잠시 전화를 끊는다. 마지막 순간 그녀가 사력을 다해 가까스로 뒤를 돌아본 이유는 세상에 대한 절망과 혐오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미련 때문 아니었을까? 동시에 그것은 슬픔과 외로움이 삶의 근원적 속성이며, 마지막 순간에도 그 사실 자체는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세상을 향한 그녀의 마지막 몸짓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허망하게 스러져 간다. 다만 눈 알갱이 안에 담긴 슬픔처럼 잠시 바닥을 적셨다가 고독하게 증발해버리고 말 뿐이다.

 

<작별>을 읽고 난후 내리는 눈을 하염 없이 바라 보았다. 눈은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하얀눈이 아닌 아닌 슬픔과 고독,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배어 있는눈으로 보였다. 저 내리는 눈이 세상을 정화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공중에서 제각각으로 흩날리는 눈송이들은 지면에서 서로의 냉기를 견디며 하나가 되고 공기 입자들을 덜어내며 단단해진다.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연약하고 쉽게 증발해버리는 것이지만... 모든 군더더기를 덜어낸 뒤에야 남는 한마디 그 말... 사랑한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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