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하의 야생학교 - 도시인의 생태감수성을 깨우다
김산하 지음 / 갈라파고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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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발견하고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삶 (LIFE)의 목적이다.

 

 

이는 잡지 라이프(Life)의 모토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실제 라이프의 창간사이자 모토인 '라이프를 통해 세상을 보라'를 영화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라이프지는 필름 시대의 아이콘이자 '포토 저널리즘'을 개척한 20세기를  대변하는 잡지였다. 글 보다는 사진의 강렬함으로 1960년대까지 공황, 세계대전, 냉전의 처절한 현실을 전했던 라이프는 TV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쇠락하기 시작했다. 라이프지는 73년에 주간지 시대를 마감하였고, 월간지와 특별호 체제로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2007 3월 종이 잡지로서 마지막 호를 발간하고 온라인 잡지로 전환되었다.

 

 

영화 속에서 42세의 '소심남' 월터는 잡지사 라이프에 다니는 평범한 미혼의 직장인이다.입사 후 16년 동안 그가 맡은 업무는 필름을 현상하는 것이었다. 글 보다 한 장의 사진에담긴 힘을 믿었던 잡지사 라이프에서 현상부서는 핵심부서였지만 디지털 사진이 보편화되면서 필름 사진은 퇴색되어 갔고, 수작업으로만 가능했던 인화기술 또한 디지털 보정기술로 대체되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라이프는 종이 잡지를 폐간하고 온라인 잡지로 거듭나기 위해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고, 경영진은 마지막으로 발간될 종이 잡지의 표지를 전설적인 사진작가 숀 오코넬의 사진으로 결정한다. 그러나 '삶의 정수'를 담고 있다는 말과 함께 숀이 월터에게 보낸 필름은 어디에도 없었고 월터는 필름을 받기 위해 숀을 찾아서 모험을 떠난다. 온갖 고난과 역경 끝에 월터는 멸종위기종 눈표범 (Snow leopard)을 사진에 담을 준비를 하고 있는 숀을 만나게 된다.

 

 

“언제 찍을 건가요?”
“어떤 때는 찍지 않아.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에 머물고 싶지. 진정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거든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자연과의 만남처럼 진정으로 경이로운 순간은 포토제닉하지 않다.그 순간은 카메라의 존재를 잊게 만들 정도로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전설적인 사진기자 숀도 고산지대에 서식하며 우아한 외형과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특성 때문에 실존 동물 중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물로 꼽히는 눈표범과 만난 순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보다 그 순간에 남아 있는 것을 택한다. 눈표범은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산간에 사는 고양이과 동물로 털 색깔 때문에 회색표범, 또는 설표(雪豹)라고도 불린다. 눈표범은 밀렵, 인프라 개발 등으로 인간에게 서식지를 빼앗기고 환경변화로 먹잇감이 줄어들면서 멸종위기 희귀 동물의 대명사로 꼽힌다.

 

 

영화 속의 숀이 맞이한 경이로운 순간은 현실 속에서도 한 사람의 인생과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영국의 변호사 스티븐 스패로우는 2005년 히말라야를 여행하다가히말라야의 유령이라 불리는 눈표범과 마주쳤다. 이 만남을 계기로 스패로우는 런던으로 돌아와눈표범 살리기 재단을 만들고 눈표범의 이름을 딴 보드카 브랜드스노우레퍼드를 만들었다. 보드카 판매수익금의 일정 부분은 몽골, 중국, 인도, 키르기스스탄 등에 남아있는 눈표범을 살리기 위한 기금으로 적립되어 10년 간 약 11억원이 눈표범 보존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에 힘입어 눈표범은멸종위기 수준에서레어 수준으로 개체 수가 크게 증가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자연과 만났던 순간이 있다. 그것은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한 쌍의 잉꼬를 키우던 어린 시절, 먹이를 찾아 열린 창문으로 느닷없이 들이 닥친 잿빛의 매에 대한 기억이다.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애완동물을 향해 느닷없이 달려든 거친 존재로부터 느낀 위협감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 원치 않았던 조우는 내 삶의 영역을 침범하고 내가 사랑하는 존재에게 상처를 주는 야생이라는 존재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오랜 기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도시 속에서 살아가면서 야생과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긴 시간 동안 오해가 풀리지 않았던 하나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도심 속의 삶이 역설적으로 야생과 자연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가 되었다. 도시의 삶이 나에게는 야생학교였던 셈이다.

 

현대 도시인의 삶이란 부대낌의 연속이다. 출퇴근 시간의 만원 버스와 지하철 등 하나의 공간 속에 삶의 여러 주체가 경쟁하며 본의 아니게 불편과 해를 끼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일어난다. 나는 도시의 삶을 통해 모든 소유와 점유는 일시적이며 잠시의 사용에 대한겸손한 자세와 공존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지구라는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자연의 소리에 너무나 무신경하다. 아니 무신경한 것을 넘어서 동식물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그러한 강요된 침묵을 당연시한다.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 자연에 영향을 끼칠 때, 그 자연의 반응을 우리의 잣대로서 평가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자 교만이다. 인간은 자연의 마음을 자의적으로 넘겨짚어서는 안 된다. 자연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장애물이 아니라, 지구라는 공간에서 공존하면서 생태계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이끌어갈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서 인간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발을 맞추어야 한다.

 

 

또한 다른 관점에서 보면 도시 속 현대인의 삶은 야생동물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개와 고양이 등 애완동물로서 인간과 역사를 함께 해온 가축들을 제외하고 야생성이 살아있는 동물들은 현대인의 일상에 직접적으로 등장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일상에 부재하는 야생동물들은 브랜드로서 현대인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우직하고 뚝심 있는 믿음직한 이미지의 곰은 밀가루와 자양강장제 등 제품과 기업의 경영철학을 대변한다. 스포츠 구단들은 힘과 기민함, 날렵하고 역동적인 다양한 야생동물의 이미지 중에서 자신의 종목의 특성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차용한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는 고래와 여우 등이 브라우저간의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트위터에서는 새들이 지저귄다. 기업의 경제활동을 비롯한 모든 상업 활동들은 기본적으로 자연자원을 활용하며 이루어지고, 그에 대한 부작용은 생태계의 교란 또는 파괴다. 야생동물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경제 매커니즘 안에서 소비되고, 그 소비의 효과가 클수록 자신의 존립의 기반을 헤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야생동물들이 사라지면 그들의 경제행위의 효과는 지속될수 있을까?

 

 

눈표범의 사례처럼 최근 야생동물의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는 재규어의 힘과 기민함,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자신의 브랜드 네임을 재규어로 명명하였고, 재규어를 위한 각종 보전사업을 펼치고 있다. 아메리카 표범 퓨마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차용하여 네이밍을 한 스포츠 브랜드 퓨마도 탄소절감과 동물보호활동을 하고 있다. 나아가 퓨마를 보호하는데 그치지 않고 잠비아의 사자, 라이베리아의 코끼리, 나이지리아의 고릴라 등 야생동물 전반을 위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나도 작년 랫서팬더, 모래 고양이, 황제펭귄 등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의 보호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기금 모금에 작은 힘을 보탰다.

 

 

진정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는 영화 속 숀의 말은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잡지 라이프의 모토처럼 우리는 진정한 세상을 보기 위해서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가까이 다가가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는 자연을 발견해야 한다. 어린 시절 갑작스럽게 내 삶 속에 들어온 잿빛의 매는 자연이 친히 나에게 선사한 가르침 아니었을까? 우매한 중생은 나이가 들고 나서야 자연의 소리를 알아채고 답한다.

 

 

“네가 거기 있으니, 내가 여기 있다. 참 고맙다

#김산하의야생학교, #김산하,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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