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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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수상 작가 줄리언 반스는 소설 <시대의 소음 (The Noise of Time)>에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다룬다그는 소련 최고의 작곡가였지만형식주의 (formalism)와 사회적 리얼리즘 (social realism)이라는 경직된 이념으로 예술의 영역을 재단하려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다반스는 쇼스타코비치의 삶 안에서 예술과 권력의 충돌로 빚어지는 시대의 소음을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조명한다. 예술은 그 어떤 한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것이어야 한다. 예술가들도 자신들이 시대의 소음에 맞서는 역사의 속삭임이길 바랄 것이다하지만 개인의 생존의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가권력의 폭력 앞에서 고뇌하는 쇼스타코비치가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만약 당신이 예술가라면 예술과 권력의 불협화음을 통한 시대의 소음 앞에서 어떠한 선택을 내릴 것인가?

 

벵하민 라바투트도 소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에서 현재의 과학적 결실이 있기까지 한계를 넘어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해 온 인류 지성의 역사를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조망하고 있다. 그것은 안개로 뒤덮인 세상을 비집고 나오는 연약한 빛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환희와 절망의 역사다. 그렇게 기쁨과 고통의 명멸로 찾아낸 한 조각의 진실은 인류의 기대를 저버리기도 한다. 프란츠 하버는 공기 중의 질소를 통해 비료를 개발해 내어 산술급수로 증가하는 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따라 갈 수 없을 것이라는 멜서스의 저주로부터 인류를 구한 영웅이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 염소가스라는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이면을 가지고 있다. 또한, 유럽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킨 아름다운 푸른색의 안료 프러시안 블루는 치명적 독극물인 시안화물과 아우슈비츠 학살에 사용된 치클론 B의 모태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일부 벽은 치클론 B로 인해 푸른빛으로 점철되어 있다.


거대한 장막의 끄트머리를 들추어내어 세상에 대한 진실을 처음으로 발견한 이들은 감출 수 없는 환희의 순간을 경험하지만 곧이어 선지자만이 감당해야 할 고독과 자신이 목도한 진실이 내포하고 있는 절망의 무게를 동시에 짊어져야만 했다. 슈바르츠 실트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방정식의 해를 처음으로 도출해내었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위대한 진보이지만, 동시에 그가 우주가 질서를 벗어나 무의 심연에 도달하게 되는 블랙홀의 존재, 즉 특이점을 최초로 발견한 인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로텐디크는 수학의 심장부에서 진실의 조각을 엿보았지만 그 대가로 두번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양자역학에 대한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논쟁도 인류가 간신히 들여다 본 한 조각의 진실에 대한 이견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진실의 단면은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이 꿈꾼 이성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단단하고 확고한 실재를 갖춘 세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우연성과 확률, 무작위가 넘쳐나는 변화무쌍하고 유동적인 놀랍고도 희한한 세상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은 확률에 그치지 않고,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연법칙이라는 관념을 버리고, 우연을 왕좌에 앉힐 수는 없다는 의미에서다. 세상을 뒤덮은 안개를 흩뜨리고, 무작위를 꿰뚫을 수 있는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벵하민 라바투트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세상을, , 삶을 어떠한 자세로 대해야 하는가 아닐까? 사실 우리가 속한 세계, 그리고 우리의 삶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 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에 관해, 또 삶에 대해서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얻기 위해 간절히 매달리지만진실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 언저리에서 표류하며 잡힐 듯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모할지라도 우리의 생각과 언어로서 세상을 이해하고, 지속적으로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아닐까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잡힐 듯 떠오르는 희망에 대해삶의 온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잡고자 했던 불분명한 현실의 경계를 넘어 표류하고 있는 삶에 대한 진실의 조각은 이것 아닐까과거와 현실을 딛고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진실 말이다. 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가면서도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불완전한 궤적이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광기는 어디서 시작됐지요? 언제부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춘 겁니까?" (p.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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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9-08 0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잭와일드 2022-09-09 17:5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9-08 09: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잭와일드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하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잭와일드 2022-09-09 17:5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9-08 09: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잭와일드님 축하드려요~~

잭와일드 2022-09-09 17:5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이하라 2022-09-08 1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잭와일드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연휴 되세요.^^

잭와일드 2022-09-09 17:5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9-08 18: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잭와일드 2022-09-09 17:5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9-1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잭와일드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