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우러 나가면서 자주 마주치는 이웃 할머니가 있다. 

오늘 새벽에도 마주쳤는데, (새벽에 운동 다니심), 오늘은 특별히 더 간곡히 호소하셨다. 


끊어. 

아이고. 

죽기살기로 독하게 마음먹고 끊어. 

여기 담배 긇게 못 끊고 피다가 뇌경색 와서 식물인간된 사람 있어. 

남편도 못알아봐. 애들도 있어. 

마흔 몇에 젊은 나이에 그르케 됐어.

세브란스 가서 그르게 됐어. 


술은 한 잔 하면 약이지. 

그건 다 독이야. 내가 해봐서 알아. 





불우한 세월이 꾸준히 흐르는 와중에도 

"담배만 끊으면 완벽하다" 같은 생각을 자주 진심으로 했었다.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 있고 써야 할 글들도 쌓여 있으니, 담배만 끊으면 완벽하다. 

새벽엔 산책하고 오후엔 목욕하면 개운하게 잘 수 있으니, 담배만 끊으면 완벽하다. 

..................... 


너무 쉬운 완벽. 

그런데 가장 쉽지는 않. 

하튼. 이것에도 실패하면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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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선 숨만 쉬어도 내 무덤 파는 삽질이었어. 

며칠 전 이런 문장이 어쩌다 떠오르고 나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보았다. 

digging one's own grave. 뭐가 나오나 보자. 


그러고 건진 뜻밖의 소득 하나가 저것이다. Scrubs에서 엘리엇이 제무덤 파는 장면. 


여기 서재에도 

지난 세월 동안 많이 썼다. Scrubs가 얼마나, 어떤 걸작인가. 

엘리엇이 제무덤 파는 장면, 실제 어떤 스토리였나는 잘 기억 나지 않지만 

걸작에 걸맞는 장면이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확신하면서 다시 한번 이게 얼마나, 어떤 걸작인가 찬탄하는 심정이 되었다.

미국 욕하지 마라. 너는 이렇게 개인의 (그게 누구든의) 지옥을 똑바로 본 적이 있느냐. 

하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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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유튜브에서 아기들 동영상도 보게 되었다. 

백송이tv, 아직 200일도 안된 아기인데 귀여움. 보기를 멈출 수 없음.  

위 영상 아가도 귀엽다. 토실토실 동그란 얼굴도 귀엽고 

판다 업고 있는 ; ㅎㅎㅎ 자기가 업겠다고 했을지, 어른이 업혀줬을지 상상하게 되고. 


어른도 화들짝 놀라 자빠지게 크게 소리쳐서 

댓글에서 뭐라하는 사람들 많다. 이 소리친 사람(아버지인지 삼촌인지), 아기한테 

크게 잘못한 거 같긴 하다. 내가 그럴 수 있다면 야단치고 싶어진다.  


그런데 너무 귀여워서 

자꾸 보게 됨. 머리 핀도 귀엽고 책상 다리(가 안되지만)도 귀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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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4-06 0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귀엽귀엽
그런데. ‘이놈‘할때 판다도 같이 놀랜 것 같은데요 ㅎㅎ

몰리 2021-04-06 06:32   좋아요 1 | URL
고사리손 손가락 다 펴고 잡으려고 하다가 화들짝. 어른들 다 웃고;
애는 정말 경기했을 거 같은데 말이에요. 애기가 인형 업고 있는 거 너무 귀엽죠.
왜 애기는 귀여운가....!

han22598 2021-04-06 06:48   좋아요 1 | URL
사람은 귀여운 사람이 따로 있는데, 아가는 그냥 다 귀여운것 같아요 ㅋㅋ 전 오래전부터 베붸 홀릭!!!!

라로 2021-04-06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깜딱이야!! 저는 댓글 달려고 하다가 듣고 넘 놀랐어요. 저렇게 이쁜 애에게(라면서 사실 저도 제 아이들 어릴 적에 저런 적이 있;;;) 그러면 안되는데 너무 귀여워서. 음 과거의 저를 반성합니다. 🙄🥺

몰리 2021-04-06 08:07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 보고선, 으아아아 내가 바로 이렇게 어른들에 의해 훼손됐었지 (진심),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이거 평생 갑니다..... 였다가 그런데 계속 반복 재생하다보니 애기의 귀여움만 남게 됐어요. 여자아이들은 앞머리에 핀 꽂았는데 뒷머리 일부는 묶기도 하는 것도 귀엽습니다. 애기들은 옷도 귀엽고.. ㅎㅎ
 

















슬로터다이크의 이 책에 크리스토폴 성인(Saint Christopher)에 대한 긴 논의가 있다. 

아틀라스 신화와 비교하면서, 아틀라스는 비정한 세계에 (세계의 힘에) 맞서는 궁극적으로 무력한 영웅, 크리스토폴은 신성과 인간성을 연결하는, 그 연결을 구현하는 영웅. 대강 이런 방향 논의. 크리스토폴은 여행자의 수호성인, 대강 이렇게만 알고 있다가 슬로터다이크가 하는 얘기들 보면서 감탄했었다. 그러다가 분도 출판사에서 성지순례 책자 구입하면서 사이트 검색하다 보니 이런 것이 있다. 






이태리 수입 성물. 크리스토폴 (*이렇게 표기하나 보았다) 성인 자석!  

여행자의 수호 성인이므로 차에 많이 부착하나 보았다. 나는 냉장고에 ;;;; 붙여두기 위해 구입. 

슬로터다이크의 책 읽지 않았다면 전혀 관심 없었을 것이다. 슬로터다이크가 하던 말들 보면서, 심오하고 매혹적이다 감탄한 다음 이런 성물이 있는 걸 보니 오 이건 사야해. 





이건 아직 사지 않았는데, 베네딕도 성인 촛대. 

이사한 집에서 책상 옆에 이어둘 테이블, 그 테이블 끄트머리에 이 촛대를 놓고 

밤에 수시로 초를 켠 다음 보고 있으면, 저절로 명상이 될 거 같다. 


슬로터다이크는 종교가 수행했던 면역적 힘을 매혹적이고 심오하게 말한다. 

그 자신은 무신론자고 종교가 주는 면역력은 진지하게는 추구할 수 없는 것이다 쪽이긴 하다. After God 아마 이 책에 실린 어느 글에서 약간 신경질적으로 "Newer Testament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New Testament가 복음이 될 수 있을 거 같니?" 기독교를 제대로, 완전히, 떠나야 함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든 말든. ; 나는 성인들의 전설, 성인들의 삶이 주는 영감, 힘, 정화력 등을 

소극적으로 찾기로 했다. 냉장고 자석과 촛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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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3-31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스러움과 에너지는 바로 곁에 있는거죠!

몰리 2021-04-01 02:30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래요!
이 주제로 뭔가 논문을 ;;;;; 써야 할 거 같아집니다!
 



마지막 교정본 보고 있는 페이퍼는

19년에 썼고 20년에 나오기를 기대했던 페이퍼다. 

20년에 나왔다면 삶이 달라..... 졌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늦게 나온다고 해서 아쉽지는 않다. 오래 걸리지 않았고 쉽게 썼고 재미있게 썼던 페이퍼. 

정말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보통은 초고 완성한 다음 여기 고치고 저기 고치고 어떤 대목은 오나전 다시 쓰고 

그러면서 그래도 페이퍼다운 페이퍼가 나올 텐데, 그 과정이 없었다. 타타탁 타닫다닥. 매일 일어나 앉아서 썼더니 얼마 후 페이퍼가 나왔다. 19년은, 어떻게든 빨리 논문을 많이 쓰고 이 인간 파괴의 현장 비정규직을 떠나야 한다가 삶을 장악했던 해. 그렇게 삶이 장악된다 한들 세 편 쓰기도 쉽지 않으니, 장악 없어도 되는 거 아니냐. ;;;; 아무튼 그랬던 해에, "오직 피로 쓰인 것만이 읽을 가치가 있다" 니체의 이 말 기준으로 한다면 피의 정반대는 무엇입니까. 침? ;;; 침으로 쓴 페이퍼. 


명망있는 곳은 아니지만 외국 학술지이기는 하고 무엇보다 

편집장이 내 글을 마음에 들어했다. ;;;;; 아무튼 그래서 발표가 늦어지긴 했지만 발표에 이르기까지도 

별어려움이 없었다. 지금 교정본 보고 고칠 대목 정리해서 (세 군데 정도가 다겠지만) 보내면 곧 발표될 것이다. 


그런데 이 페이퍼는 이런 것 백 편 써봐야 

아무 기여도 하지 않는다는 것. 2백년 뒤 누가 검색으로 어쩌다 이 페이퍼를 본다면 끝까지 읽지 않을 것이며 

아니 (그가 무엇이든 강박적으로 다 읽는 사람이 아닌 한) 한 페이지 이상 읽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리 "검색"으로 찾아냈다 한들. 이 페이퍼는 누구의 심장도 흔들지 못할 것이다. ;;;; 니체가 이게 강단 철학의 묘비명이라고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에서 했던 말. 그것은 누구의 심장도 흔들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이것말고 지금 추가 작업 기다리는 다른 페이퍼는 

이것과는 좀 비교불가 더 좋은 글이다. 그러니까 이 둘 사이에 "질적인" ;;;; 차이가 있다고 스스로 평가하게 된다. 


20년에 있은 어떤 일들이 더 좋은 글을 쓰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어떤 일들에 대해서 앞으로 적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 다 "고생";;;으로 수렴되기는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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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3-30 0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길로 수렴되기는 하나, 그래도 그 여정 가운데 ˝잼났다는˝ 기억하나 있었으면 운 좋은거 아닌가요 ㅎ 수고많으셨어요!

몰리 2021-03-30 07:45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긴 해요! 지옥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떤지 알고 있으니
지옥의 한복판에 있는 고요한 해변, 아니면 놀이공원;;;;;;; 적어도 had a good time! 이었다는 건 은총. 은총;;;;. 대학원 시절 무슨 페이퍼에 그것은 ˝grace˝에 속한다, 어쩌고 하는 문장 썼다가 무신론자인 쌤이 그 문장 못 견뎌하던 걸 본 기억이 납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