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어느 영화과 학생이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 영화라고 한다.
페이스북에 Adorno changed my life라는 그룹이 있었고 이 학생이 영화를 만들 당시 가입자수 오백명이 넘었다는데 지금은 다수 탈퇴했고 활동이 거의 정지한 그룹.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이렇게 된 건 아니고 "아도르노" 주제로 "집단"이 오래 가기는 어려울 거라는 것이 사정의 이유, 라고 어제 어쩌다 들은 팟캐스트에서 설명). 영화과 학생은 누가 왜 "아도르노가 내 삶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나 궁금했고 이 그룹의 회원들에게 그에 대해 답해줄 것을 청했다. 그리고 그 답들이 이 영화가 되었다. 영화에 나오는 회원들은 전부 남자고 전부 너드다. 이들은 <미니마 모랄리아>를 사랑했다. 이 책에서도 특히 "틀린 삶을 옳게 살 수는 없다" "이 세계에 결백한 무엇도 남지 않았다" "지식인에게 오직 고립만이 연대의 방법이다" 같은 문장들을 그들은 사랑했다.
이 작품에 대한 얘기 들으면서, 아도르노에 대해 나쁜 편견 갖게 할 작품이겠다 생각함. 올해 아도르노 책 모아 놓고 읽으면서, 예전 생각들이 바뀌기도 하고 안하던 생각들을 하게 되기도 하고 몰랐던 면모를 보게 되기도 한다. 아도르노는 "집단적 주체"를 집요히 구상하고 이론화하기도 했다. 집단에 바로 적대적이거나 회의적이지 않았다. "고립만이 연대의 방법이다" 같은 말을, 그가 주는 집단, 집단 실천의 이론 맥락에서 볼 수도 있는 것인.
감탄이 늘어가고 쌓여 간다. <마의 산>에 세템브리니가 한스에게 하던 말이던가. 누가 누구에게 하던 말인가는 찾아봐야겠지만 하튼 "지금 당신이, 당신의 지적인 높이가, 내 눈 앞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투의 말이 있다. 이 말이 전해주는 그 심정이 된다.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어느 페이지를 넘기든, 당신의 지적인 높이가 어김없이 영원히 더욱 커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 얘기로 시작해서 "회고록을 씁시다"로 끝낸다는 계획이었던 포스팅이고, 이 얘기와 "회고록을 씁시다"를 연결하는 고리가 되는 무엇이 있었는데, 그게 무엇이었나 있긴 있었나 갑자기 가물가물. 아무튼 본론은 이겁니다, 회고록. 회고록을 씁시다. 우리는 모두 회고록 저자가 되어야 합니다.
써야겠다 생각한 후 달라진 게 적지 않다. 사건들과 사람들을 새롭게 다시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책들을 그렇게 보게 되는 것 물론이고 (읽은 책이든, 읽을 책이든). 공쟝쟝님 리뷰 읽고 나서 전에 사뒀던 영어판 <랭스로 되돌아가다> 조금씩 보고 있는데, 아아아 한국에서도 이런 책이 매일 하늘에서 책상 위로 쏟아졌으면 좋겠다. 이 소원은 자연스럽다. 이 기적은 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