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len Coben 할런 코벤 <No Second Chance 마지막 기회> 베텔스만 코리아

음, 이런 소설들은, 재미는 있다. 우스운 것은 이런 소설들 중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 소설의 질이나 재미에 있어서 그것들 사이에 별 차이는 없다. 오히려 댄 브라운보다는 필리프 반덴베르크가 더 낫다. 광고의 힘에서 판매량의 차이가 나는 것일 테고, 그만큼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이야기이긴 하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수요일에 읽었다.

 

 사족 :  완전히 다른 책이긴 하지만, 더글라스 애덤스의 동명의 책이 있는데,

          아, 그 책은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멋지다.

         나는 내가 히치하이커가 나오면 바로 지를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버티고 있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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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렌다 매독스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양문

 일단, 이 작가는 글을 잘 쓴다. 툭툭 던지는 글쓰기는 이렇게 긴 책을 쉽게 읽도록 만들어준다. 이런 전기를 읽으면 어린 시절에 읽었던, 혹은 읽어야만 했던 위인전을 생각하게 된다. 전기라는 것이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런 책들 말이다. 위인전에서의 그 ‘위인’이라는 인물들은 어렸을 때부터 다 철이 든 애늙은이로 묘사되며 죽을 때까지 모범생으로 산다. 그런 위인전에 의해 오히려 아이들의 꿈과 창의성이 억눌러지는 것은 아닐까. 그걸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모범생의 길로만 가야한다고 아이들을 억제하여, 본인의 소질이나 욕망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앞으로의 장래 희망을 생각하게 만든 위인전은 플레밍에 대한 것이었던 것 같다. 뭔지도 모르면서 세균학자인지가(요즘은 미생물학자로 말하겠지만, 그 때 책에는 세균학자라고 쓰였던 것 같다)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 같다. 아, 또 생각났는데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할 때, 푸른 곰팡이가 낀 미생물을 배양하는 것을 접시라고 표현하여, 나는 집에서 쓰는 접시를 상상하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와서 Petri Dish를 그런 식으로 번역한 거겠구나 생각하고 혼자 웃기도 했다.
아, 또 옆길로 빠졌군. 프랭클린을 처음 만난 건 거의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이듯이, 왓슨의 이중나선을 통해서였다. 아주 유쾌하게 쓰여진 그 책에서 프랭클린은 칙칙한 사람이었고, 책 말미에 왓슨이 그녀에 대해서 쓴 글은 동정적이었다. 참 우울한 느낌이어서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과소 평가에 대한 것은 많이 듣기도 했지만, 나도 역시 겪는 부분이라서 굳이 책을 통해서 겪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킹스칼리지에서의 갈등과 연구 업적 발표에서의 소외가 프랭클린의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프랭클린은 DNA의 X선 회절 사진말고도 많은 업적을 이루어냈으며, 하필 우울한 부분만으로 그녀를 생각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DNA의 X선 회절 사진이 빼돌려진 것에 대해 프랭클린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억울해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묘사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저자가 프랭클린이 얼마나 의욕적이고 즐거운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힘주어 주장하고 있지만, 프랭클린이 자신의 일에서 걸어갔던 길이 동시대의 다른 남성 과학자들에 비해서 얼마나 험난했는지는 충분히 느껴지고, 암으로 때이른 죽음을 맞게 된 결말이 해피 엔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후대에 그 이름이 어떻게 남겨지는지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인생에서 힘든 부분은 있는 것이고,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그만 아닌가.
아, 이제 윌킨스에 대한 변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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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허삼관 매혈기> 푸른숲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음, 이런 때에는 그냥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잘 대처하는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사실, 힘들지는 않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두려움과 합쳐져서 이 할일 없음이 편안하지 않은 것이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느긋하게 쉴 수 있는 때가 또 언제 있을 것인가.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다. 시간이 다 해결해주는 문제이다.
이 불편한 곳으로 출근하는, 밀리는 전철에서 이 책을 읽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내려야 하는 전철역을 두 역 지나쳤고, 다시 꾸역꾸역 거슬러 올라가면서 욕이 나왔다. 오늘 알라딘의 서재들을 돌아다니다, 한 서재에서 밀리는 전철 타고 다니는 사람은 이해가 안 간다는, 왜 그 나이까지 자가용이 없느냐는 어처구니없는 말에 대해서 어이없어하는 글을 읽었다. 나도 같이 어이없어 화내다가, 아, 그래도 전철같은 대중교통으로 매일 출근하는 것은 싫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계속 전철이나 버스로 출근해야 하는데, 그만 싫어해야 할텐데.
음, 책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 ‘인생’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많긴 하지만, 시대적 배경이나 약간의 냉소와 풍자가 대강 비슷하다. 앗, 금방 책 앞날개에서 ‘인생’의 원작자가 이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아, 그랬던 거다.
점심을 먹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정말 재수없는 애를 보고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일이나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고 가식이 좀 심해서, 보면 느끼해져 콜라가 마시고 싶어진다. 옆에 있는 친구가 그래도 그 애의 태도가 여기 대학원에서는 통한다는, 그러니까 인정받는다는 그런 말을 했다. 물론, 알고 있었지만 그 애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에 적응하나. 또 한 번 심란해지고 불편해졌으나, 여기서 생각 정지. 생각을 많이 할수록 더 힘들어질 뿐이다.
그런데, 이게 독서일기가 맞나. 할 일 없이 이렇게 짱박혀있으니, 이런 소소한 일기를 쓰는 일 밖에 없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고 싶으나 ‘인생’과 비슷하다는 감상이 들고 난 후에는, 아무런 생각이 안든다. 이렇게 소설처럼 농담으로 인생을 어떻게 때워볼까 했는데, 여기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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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하여 아, 이건 아니다 싶어 리뷰를 써야겠다고 마음은 먹고 있지만,

과연 내가 뭔가를 쓸 수는 있는 걸까.

본성과 양육 논쟁에서 저자는 마치 화해를 시도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은 원제인 'Nature Via Nurture'  즉,' 양육을 통한 본성'을 봐도 알 수 있다.

이 짧은 문장에서 본성과 양육 중 어느 쪽이 주체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내가 굉장히 편협하고 멋대로 오해하는 인간이긴 하지만,

번역자가 마지막에 쓴 완전한 중립 입장에서 어쩌구 하는 말은, 정말 참아줬으면 한다.

번역도 몇 군데 허접하고 교정이나 제대로 봤는지 의심스러운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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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나 읽지 않았을까. 나는 그저 어려운 숙제를 해치우는 사람처럼 얼른 훑었을 뿐이다.

그 집요함에 대해서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선전 문구나 다른 작가들의 칭찬에 대해서는 그리 공감하지 못한다.

나는 소설에서 나오는 프랑수아즈가 참 좋았는데. 그 고집있는 당당한 할머니 말이다. 나는 그 모델이었던 펠레시의 회고를 듣고 싶다.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프루스트를 보아왔던 그는 적어도 알바레와 같은 맹목적인 숭배를 보이지는 않았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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