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렌다 매독스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양문

 일단, 이 작가는 글을 잘 쓴다. 툭툭 던지는 글쓰기는 이렇게 긴 책을 쉽게 읽도록 만들어준다. 이런 전기를 읽으면 어린 시절에 읽었던, 혹은 읽어야만 했던 위인전을 생각하게 된다. 전기라는 것이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런 책들 말이다. 위인전에서의 그 ‘위인’이라는 인물들은 어렸을 때부터 다 철이 든 애늙은이로 묘사되며 죽을 때까지 모범생으로 산다. 그런 위인전에 의해 오히려 아이들의 꿈과 창의성이 억눌러지는 것은 아닐까. 그걸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모범생의 길로만 가야한다고 아이들을 억제하여, 본인의 소질이나 욕망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앞으로의 장래 희망을 생각하게 만든 위인전은 플레밍에 대한 것이었던 것 같다. 뭔지도 모르면서 세균학자인지가(요즘은 미생물학자로 말하겠지만, 그 때 책에는 세균학자라고 쓰였던 것 같다)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 같다. 아, 또 생각났는데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할 때, 푸른 곰팡이가 낀 미생물을 배양하는 것을 접시라고 표현하여, 나는 집에서 쓰는 접시를 상상하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와서 Petri Dish를 그런 식으로 번역한 거겠구나 생각하고 혼자 웃기도 했다.
아, 또 옆길로 빠졌군. 프랭클린을 처음 만난 건 거의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이듯이, 왓슨의 이중나선을 통해서였다. 아주 유쾌하게 쓰여진 그 책에서 프랭클린은 칙칙한 사람이었고, 책 말미에 왓슨이 그녀에 대해서 쓴 글은 동정적이었다. 참 우울한 느낌이어서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과소 평가에 대한 것은 많이 듣기도 했지만, 나도 역시 겪는 부분이라서 굳이 책을 통해서 겪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킹스칼리지에서의 갈등과 연구 업적 발표에서의 소외가 프랭클린의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프랭클린은 DNA의 X선 회절 사진말고도 많은 업적을 이루어냈으며, 하필 우울한 부분만으로 그녀를 생각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DNA의 X선 회절 사진이 빼돌려진 것에 대해 프랭클린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억울해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묘사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저자가 프랭클린이 얼마나 의욕적이고 즐거운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힘주어 주장하고 있지만, 프랭클린이 자신의 일에서 걸어갔던 길이 동시대의 다른 남성 과학자들에 비해서 얼마나 험난했는지는 충분히 느껴지고, 암으로 때이른 죽음을 맞게 된 결말이 해피 엔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후대에 그 이름이 어떻게 남겨지는지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인생에서 힘든 부분은 있는 것이고,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그만 아닌가.
아, 이제 윌킨스에 대한 변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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