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2 세트 - 전2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편을 접하고 난 후부터였다. 그 전에 출간된 우리나라 편을 읽자니 내용도 방대하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한국사보다 세계사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때라 소홀히 한 탓도 있었다. 일본편이 출간된 후 우연히 유홍준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 그 강연이 아니었다면 이 시리즈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열린 사고방식, 아직도 답사를 다니며 각국의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열정, 깊은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 등에 매료되었고, 결국 작품 전체 시리즈에 대해 드디어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편을 읽은 후에 중국편도 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요렇게 가제본으로 먼저 읽을 수 있게 되어 반갑다.

중국편은 1부 : 돈황과 하서회랑, 2부 : 막고굴과 실크로드의 관문이라는 부제의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는 규슈와 아스카, 나라와 교토라는 한정된 지역을 답사하는 데 그쳤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지리적인 범위도 너무 넓고 그 역사도 무려 3천년이나 되어 처음 기획하는 단계부터 몇 권으로 완성될 지 교수님 또한 몰랐다고 한다.

책의 서두에는 중국 문화를 바라보는 우리 시각에 대해 몇 가지를 명확히 하고 있는데, 문화의 영향 문제와 자연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을 문화 역량으로 생각해서 불필요한 열등감을 느낄 필요 없다는 것, 중국의 압도적인 문화적 스케일에 주눅들지 말고, 스케일이란 그때그때의 필요에 의해 나타난 현상이지 크다고 위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역설한다. 국제적인 무게 중심이 중국에 쏠리는만큼 중국을 더욱 깊이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 답사기는 중국 문화가 가지는 세계적인 위치의 확인, 동시에 우리 문화의 특질을 동아시아의 지평에서 재인식하는 현장, 오늘날 국제사회 속에서 우리의 좌표를 생각하게 하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있다.

두 권의 책은 거의 돈황과 실크로드 답사에 그 내용이 치우쳐 있는데 교수님은 이 답사를 '로망'이었다 지칭한다. 나도 어렸을 적 TV를 통해 다큐멘터리 <실크로드>를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뿌연 사막만 나오는 저 길이 왜 대단하고 유명한 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었다. 돈황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의 타클라마칸사막 동쪽 끝자락에 있는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여기에는 모래 구릉이 연이어 펼쳐지는 명사산과 전설적인 석굴사원인 막고굴이 있다. '실크로드'라는 말은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중국의 비단을 매개로 하여 동서교역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에서 비단길이라 이름 지어진 것이다. 리히트호펜은 실크로드를 크게 동쪽, 중앙, 서쪽 세 구역으로 나누었는데 교수님이 관심을 가진 지역은 동쪽과 중앙 구역으로, 동쪽 구역은 하서회랑이라는 넓고 긴 협곡을 따라 하서사군을 관통하는 길이고, 중앙 구역은 중국 사람들이 일찍부터 서역이라 불러왔던 곳으로 곤륜산맥, 천산산맥, 타클라마칸사막을 아우른다.

일반적인 기초 중국사 책은 몇 번 읽었지만 집중적으로 실크로드에 관해 다룬 책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익숙하지 않고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수님의 강의가 그러했듯, 이번 답사기 또한 답사의 시초부터 과정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고 조근조근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어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실크로드에 대해 별 생각 없었던 나조차도 언젠가 한 번 가본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사기의 내용은 흥미롭다. 다만 가제본이다보니 사진이 흑백으로 되어 있어, 그 생생함을 느끼는 데 조금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웠다. 완전한 출간본이 나오면 다른 독자들은 아마도 현장감을 느끼는 데 어려움 없이, 더욱 재미있게 이 답사기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에는 대중에게 익숙한 곳들의 중국 답사기도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헬로 아메리카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의 쇠망을 알리는 20세기 중반에 드러난 불안한 징조들. 세계의 에너지 자원, 석유와 석탄과 찬연가스의 소비 속도가 급증하고 있으며 그때까지 확인된 매장량이 그들의 손자 세대에 들어서면 고갈되어 버릴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다. 개발도상국들의 산업화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유가는 급격히 뛰어올랐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자 해결 방법이 없는 전 지구적 규모의 에너지 위기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한 때 번영을 누리던 국가들의 경제가 주저앉았고, 전 세계의 공업 생산량은 감소했으며, 미국의 매장 원유는 고갈되어버렸다. 연료와 식량의 배급, 전기의 사용량 제한, 파국은 순식간이었다. 미국의 도로에서 자동차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2000년대 초반 교통은 완전히 정지된다. 결국 원시적인 농업에 의존하며 삶을 이어가지만 사람들은 점차 다른 나라로의 이주를 시작하고, 2030년에 이르러 미국은 완전히 버려진 땅이 되어버렸다. 이후 기후변화를 겪으며 동부 해안 구역은 사막화가 진행되고, 태평양 연안 지역은 빙하시대를 겪게 된다.

이후 약 10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 꾸려진 탐사대. 유럽에서 출발한 아폴로 탐사대에는 선장인 스타이너와 정치장교인 오를롭스키, 탐사대의 주 목적인 최근 증가한 방사능 수치를 조사하기 위해 참여한 서머스 박사와 리치 박사, 기술자인 맥웨어와 밀항자였지만 어느 새 어엿한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웨인이 있다. 척박한 미국 땅에 도착하자마자 발견한 자유의 여신상과 햇빛에 의해 금빛을 내뿜는 청동가루로 일행은 흥분하지만, 탐사가 계속될수록 그들의 행로는 불투명하다. 웨인은 제2의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자신이 폐허가 된 미국을 재건해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보겠다는 야심과, 몇 십년 전의 탐사대에 동행했던 자신의 아버지(라 알려진)를 찾아보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대륙 횡단길에 오른 탐사대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과연 무엇이 될 것인가. 각자의 마음에 서로 다른 욕망을 품은 이들의 탐사가 이어진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강대한 문화에 대한 밸러드풍 묵시록-이라는 문구에 어울리게, 작품이 드러내는 분위기는 황량하다. 가슴 속에 희망을 품고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 붙잡고자 하는 것은 한낱 신기루와 흡사하다. 몽환적이고 허무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다소 읽히기 쉽지 않은 밸러드풍 문장이 여기에 한몫한다.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쇠퇴,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버려진 땅으로 그려지는 묘사와 과거의 유물들은 기괴하고 낯설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문장이다. 탁월한 비유와 묘사로 눈 앞에는 어느 새 탐사대 일행이, 모래 바람에 파묻힌 아메리카 대륙이 떠오른다. 자꾸만 빠져드는 작품이었다.

SF소설이자, 미래를 그려내는 역사소설이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미래의 역사. 작가 자신이 -나는 나의 작품을 경고로 본다. 나는 길옆에 서서 '속도를 줄여!'라고 외치는 바로 그 남자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은 일종의 경고이기도 하다. 눈 앞에 닥친 현실과 위기를 모른 척 하면 결국에는, 약소국 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조차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경고.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 넷플릭스에서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밸러드풍 문장을 어떤 영상으로 창조해냈을지 궁금하다. 수많은 작가들의 찬사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출간될 밸러드 문학에 대한 기대는 말할 것도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의 귀를 너에게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다. 들리지 않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들리는 아이. 아라이 나오토는 코다였다. 전(前) 경찰 사무직원이었지만 현재는 수화통역사로 일하는 아라이. 그는 법정에서 농인을 대변하며 연인인 미유키, 그녀의 딸 미와와 함께 살고 있다. 미와의 반에는 오랫동안 등교를 거부하는 에이치라는 소년이 있는데,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할 수는 없는 함묵증을 가지고 있다. 미와는 아라이가 에이치에게 수화를 가르쳐주었으면 한다는 부탁을 하고, 그들만의 수화 수업이 시작된다. 아라이에게 적극적으로 수화를 배워나가는 에이치는 어느 날, 자신의 집 앞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농인을 소재로 하는 미스터리라니, 들리지 않으면 제대로 발화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알고 있는 나에게 그들이 작품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했다. 접하지 못했던, 접할 수 없었던 세계에 대한 작은 관심이 혹시라도 어떤 이들에게는 상처가 될까봐 작품을 읽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작가가 전하는 들리지 않는 세계는 고요한 울림이 가득하지만, 때문에 더욱 열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손의 움직임, 눈 앞에서 그려지는 듯 생생하게 묘사되는 그 움직임은 직접 소리를 내어 표현할 수 없기에 한층 간절하게 여겨졌다.

용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지?

용에게는 뿔이 있지만 귀는 없지.

용은 뿔로 소리를 감지하니까

귀가 필요없어서 퇴화해 버렸어.

쓰지 않는 귀는 결국 바다에 떨어져 해마가 되었단다.

그래서 용에게는 귀가 없어.

농(聾)이라는 글자는 그래서 '용의 귀'라고 쓰지.

주인공 아라이가 느껴왔고 현재도 계속되는 혼란은 그가 서 있는 위치와 겹쳐진다. 가족 모두 농인이었지만 혼자만 청인이었던 외로움, 미와의 아버지의 입장임에도 과연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망설임. 그것은 수화 통역사로서 자신이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청각장애인이 청각장애인에게 범죄를 저지른 에피소드 부분에서 드러난 그의 목소리(손짓)는 아라이가 어떤 인물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있는 그대로만 전달해야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낸 목소리는 범죄자인 신카이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과연 수화통역사 역할의 한계가 무엇인지, 농인들을 대상으로 한 통역이 있는 그대로만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목소리와 말투, 말의 내용, 그 전부가 해당될텐데 농인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더 깊은 정성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것 또한 편견인가 싶어 마음이 복잡하다.

한편 [데프 보이스] 에 등장한 해마의 집과 관련하여 '정육학'이라는 교육정책이 등장한다. 육아의 기본은 부모이며 부모가 주는 애정의 크기가 아이의 장래를 결정하고, 발달장애도 부모의 애정에 따라 예방,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육아의 기본은 부모이지만, 과연 부모가 주는 애정의 크기가 아이의 장래를 좌우하는 것일까.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는 애정이 부족한 것인가. 현실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가 이 작품을 읽는다면 너무 마음 아파할 대목이 아닌가 싶어 혼자 식은땀이 났다.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육학을 주장한 사람이 작품의 뒷부분에서 엄청난 허무와 고통을 맛본다는 것은, 작가는 현실적으로 그런 이론은 터무니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상하게, 그리고 괜히 미안하게, 작품을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소리가 존재하는 이 세계가 어떤 이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가슴이 아팠고, 부끄러울 정도로 감사했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세계. 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용기 있게, 아름답게. 그 세상의 단면을, 아름다운 손의 언어를 엿볼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하는 수업, 하브루타 - 아이를 강하고 특별하게 키우는 유대인 생각법
지성희 지음, 김태광(김도사) / 위닝북스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 교육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이런저런 아이들을 봐왔던지라 너무 이르고 강압적인 교육이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해칠 수 있는지 깨달았다고 생각한 나도, 첫째 곰돌군이 말이 트이고 내년이면 벌써 유치원에 간다는 생각에 이대로 아이를 놀리기만 해도 되는 것인가 걱정스럽다. 와중에 친한 동료 교사가 먼저 사교육의 현장으로 뛰어들면서, 그 동네에서는 축구도 학원을 다니며 아이들이 어울린다는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영어유치원 권유와 어디어디 유치원이 더 낫네 하는 식의 이야기가 들리면서, 내가 지금 무얼 해야하는지 마음도 복잡해진다. 중심을 잘 잡아야 할텐데, 그 중심을 가정에서 우리 가족의 관계에서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구나 들으면 아는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육. 전 세계 문화와 경제, 정치를 주름잡는 유대인을 양성한 하브루타 교육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일단 길잡이라도 얻어보자는 마음에 읽게 된 책이다. 유대인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복잡한 상황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한다. 질문을 할 때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며 상대방의 처지와 자신의 입장 또한 미루어 짐작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결국 '나는 지금 어떻게 하고 싶은가?'에서 시작해 '지금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까지 고려되어야 한다고 한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우리 교육현장에서 저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어른도 하기 힘들 것이다. 언젠가는 사라질 지식을 배우기 위해 10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한다고 비난한 앨빈 토플러의 말을 그저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하브루타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아이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육아는 물론 고되고 힘든 것이지만 육아의 방향을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아이를 관찰해야 하고, 아이의 기질과 부모의 육아 성향을 따져봐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지나야 아이에게 어울리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하브루타 교육에 대해 그리 체계적이지는 않다. 육아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자신은 딸과 아들, 요렇게 남매 아이들을 두었으니 200점 만점 엄마라는 요상한 소리도 나오지만, 직접 겪어야 했던 문제들과 그것을 뛰어넘은 경험들이 같은 엄마로서 인상적이었다.

네가 제일 행복할 때는 언제니?

네가 제일 싫어하는 건 어떤 거니?

너는 어떤 것이 제일 재미있니?

언제가 제일 슬프고 힘이 드니?

생각해보면 첫째 곰돌군과 진정한 대화라는 것을 하는 시간이 매우 짧다. 말이야 하고 있지만, 주로 나의 요구사항이 아니던가.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건강한 생활을 하기 바라면서 드러나는 대화의 내용은 일방적이고 뻔하다. 육아 내용이 많다는 이야기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대상인 하브루타 교육인만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육아 내용은 관심이 없다면, 제목이라도 짧게 훑어보면 어떨까. 제목에 하부르타 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이 많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경 3미터의 카오스
가마타미와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 인연 없는 사람과의 만남 중에 가장 이상했던 경우를 생각해보자면, '도를 아십니까'와 '변태'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외국인인데, 나한테 도를 아냐고 물어! 어째서 외국인이 도에 심취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정말 오랜만에 외출한 나한테 도를 아냐고 묻는 것이냐!-라고 되려 묻고 싶어질 정도로 집요하게 따라오던 외국인이었다. 변태 중에 변태는 일본 변태라 할까. 벌써 10년 전의 일인데 혼자 교토를 여행할 때의 일이었다. 여름이라 반바지, 그런데 그리 짧지도 않아! 무릎이 보일랑말랑한 애매한 바지를 입고 버스에서 여행책자를 보고 있던 내 다리를 맨손으로 슥 훑고 지나간 후 급하게 내린 변태가 있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입만 벌린 채 멍하니 얼이 빠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정도도 꽤 큰 충격이었는데, 주인공이자 만화가인 가마타미와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내 경우는 명함도 못내밀 정도다.

자기는 사지 않으면서 정말 싸다며 물건을 들이미는 아주머니는 귀여울 정도. 갑자기 다가와 저 알고보면 은근히 변태라며 커밍아웃을 하는 점원에, 채소가게를 어슬렁거리는 변태, 자기 딸에게 사 줄 옷의 사이즈를 고르기 위해 주인공에게 허락(?)도 없이 대보는 모르는 아주머니와, 갑자기 약속 있냐고 묻더니 그냥 가버리는 남자는 뭐며, 체육관에서 만난 기묘한 할머니 무리와, 여행을 떠난 아타미에서는 며느리 이야기를 주구장창 늘어놓는 아주머니도 있었고, 라스베이거스 호텔 엘레베이터에서는 갑자기 크레이지를 외치는 외국인까지 만난다.

글로 써놓으니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를 컬러풀한 생생한 그림과 함께 보고 있자면, 내가 주인공이라면 꽤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서 내 주변에만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거지,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나 같은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작가는 그런 일상의 에피소드들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이기적이고 무례한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 작가는 오히려 '유유상종일까요?'라며 느긋한 모습을 보이니 그건 그것대로 또 골똘히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랄까.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사람들로 인해 주인공의 인생은 좀 더 재미있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단조로운 일상에 요상한 활력을 주는 존재들이랄까. 또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건, 주인공이 굉장히 착하게 생겼거나, 모르는 사람조차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놓고 싶어질 정도의 매력녀일지도. 변태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지만, 그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아주머니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라면 만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떠려나.

읽다보니 어느 새 끝. 속편이 나와주면 즐겁게 읽을텐데 그렇다면 주인공들이 이상한 사람들을 더 만나야 할테니 그것도 딜레마. 그래도 궁금하다. 또 어떤 이상한 사람들로 인해 카오스를 맛보았을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