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엘리트를 위한 서양미술사 - 미술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
기무라 다이지 지음, 황소연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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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에 대해 관심도 많고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미술사를 죽 훑어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시간이 된다면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를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두께도 만만치 않고 다른 읽을 책들에 치여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읽게 된 [비즈니스 엘리트를 위한 서양미술사]. 왜 '비즈니스 엘리트'라는 글자가 앞에 붙었을까, 조금 갸우뚱했는데, 작가는 이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는 미술사 강좌의 상급 과정인 '초기 네덜란드 회화'를 수강하던 때 어떤 학생을 만나게 된다. 처음 보는 얼굴의 학생과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미술사 전공이 아니라 물리 전공이라는 말에 의아해 하며 던진 질문. 그 학생은 '물리학 전공인데 일반 교양 수준의 미술사 수업은 아닌 이 강의를 왜 듣느냐'라는 말에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이 다음에 사회에 나갔을 때 내 뿌리가 되는 나라의 미술을 모른다는 건 좀 창피할 테니까요'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명성이 자자한 국제변호사로 활동하는 저자의 친구도 서구의 다른 엘리트들처럼 미술사에 대한 소양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고.

 

살짝 삐딱선을 타보자면 사실 저 '엘리트'라는 단어가 그리 달갑지 않다. 이 단어에는 미술과 그에 대한 역사에 정통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당연한' 어떤 권리의식 같은 게 느껴진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반드시 미술사에 정통한 것도 아니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미술에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도 있다. '미술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미술을 어떤 특권 계층이나 뛰어난 지성인들의 발판으로 생각하는 도구적 의식도, 선민의식같은 느낌도 거부감이 들었지만, 애석(?)하게도 이 책은 참 잘 읽힌다. 한 나라의 종교적, 정치적, 사상적, 경제적 배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로서 접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임에는 분명해보인다.

 

'신'중심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도교, 르네상스 시대를 통해 엿볼 수 있는 '회화에 나타난 유럽 도시의 경제 발전', 미술 대국으로 올라선 프랑스의 시대별 독특한 양식들,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은 근대 미술의 발전-이라는 총 4개의 챕터를 통해 비교적 간단하고 손쉽게 시대별 특징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리스와 로마 미술, 종교미술, 고딕 미술,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 미술, 네덜란드 회화, 종교 개혁, 프랑스의 고전주의와 로코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근대사회에서 나타난 사실주의와 영국 미술, 바르비종파, 인상주의, 현대미술까지 그림이 한 시대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그림 속 소품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읽다보면 '엘리트'를 지향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지적 희열이 아니라, 그저 그림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무언가를 알아가는 기쁨이 컸다-고 말할 수 있겠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 비하면 압축된 내용이겠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부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서 책 한 권에 거의 밑줄을 치게 되었다는 이야기. 50일 동안 쪼개 읽으면서 컴퓨터로는 내용 정리는 해놓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를 한 번 필사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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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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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풍차를 향해 돌격했던, 다소 무모한 기사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돈키호테입니다. 앞뒤 문맥없이 '돈키호테'! 하면 풍차! 였죠. 그런 돈키호테가 겪는 모험을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제대로 읽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유년 시절에는 빚을 갚지 못해 재산을 압류당한 아버지 때문에 여러 곳을 전전하기도 하고 감옥살이도 하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세르반테스는, 길거리에 떨어진 찢어진 종이라도 주워 읽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다고 해요. 해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기도 하고 터키 해적선의 습격을 받아 포로가 되어 알제에서 노예 생활을 겪기도 했으며 징수한 돈을 예금해둔 은행이 파산하여 감옥살이를 하기도 하는 등,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보냈던 세르반테스. 그런 그의 인생이 온전히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 바로 [돈키호테] 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의 삶은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류의 성서이자 소설의 원형이라 불리는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을 탐닉하다가 급기야 자신이 직접 기사가 되어 모험을 찾아 떠나는 엄숙한 미치광이 돈키호테와, 그런 그의 모험을 통해 어떻게 한 자리 얻을 수 없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함께하는 순박한 종자 산초의 이야기입니다. 지구 상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아직까지도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정도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고 넘어가야 할 필독서! 인 셈이지요.


 

첫 페이지에서부터 1605년 초판본 표지 번역과 규정 가격, 정정에 대한 증명, 특허장, 서문, 돈키호테 데 라만차에 부치는 시-등이 줄을 잇는데요, 당시 하나의 작품을 출판하기가 얼마나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라만차 지역에 살고 있던 가난한 이달고 돈키호테. 틈이 날 때마다 기사 소설을 읽는 데 푹 빠져 있어서 사냥이나 재산을 관리하는 일조차 까맣게 잊을 정도였습니다. 이 기사 소설을 탐닉하다 못해 거의 미쳐버린 그는, 자신 또한 기사가 되어 명예를 드높이고 나라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 무장한 채 세상을 돌아다녀 보기로 결심하죠.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것도 많은 법. 세월의 풍파를 맞이해버린 증조할아버지 대의 칼과 창과 투구, 피부병에 걸린 데다 값도 얼마 나가지 않으며 많은 흠을 가진 로시난테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랑할 귀부인'까지 정해버리는 그의 모습에서부터 그만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그렇게 떠난 첫 번째 모험. 황당무계한 말들을 읊조리면서 모험을 시작한 그 앞에 어느 객줏집이 나타나고, 주인을 성주로, 몸을 파는 여자들을 귀부인으로 착각하기에 이릅니다. 짓궂은 주인의 장난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로부터 기사 서품을 받은 돈키호테. 마침내 '기사' 돈키호테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그의 영원한 동반자 산초 판사는 돈키호테의 두 번째 모험부터 함께 해요. 그의 광기를 알아차리기는 하지만, 모험에서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금화나 후작 같은 작위에 마음을 빼앗겨 순박하고도 충직하게 돈키호테를 모십니다. 오마이갓! 산초 '판사'의 판사를 저는 정말 판사인 줄 오해했어요. '판사'는 땅딸막한 의미의 스페인어라 하니 어쩐지 산초가 지니는 의미와 딱 맞아떨어지지 않습니까! 으흐흐. 그 후 두 사람이 함께 겪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모험들. 그저 지나가고 있을 무리를 적이나 악의 무리라 여겨 돌진하는 것은 예사요, 어떤 이발사가 가지고 있던 놋쇠 대야를 투구로 착각해 머리에 쓰고 다니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이없음을 넘어서 짠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어요. 그렇게 덤벼든 상대들에게 승리를 쟁취하면 모르겠으나, 늘 패배하는 것은 돈키호테와 산초 쪽. 돌팔매로 갈비뼈가 나가고 어금니를 잃어도 그들의 대화와 돈키호테의 일장연설은 멈추지 않으니, 분명 물에 빠져도 입만 둥둥 뜰 위인들이 여기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돈키호테] 의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가 돈키호테와 산초가 만나는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사연이에요. 사랑을 잃은 사람이 역시 반미치광이가 되어 산에서 자신을 버린 모습으로 생활하다가 결국 사랑을 되찾고 행복해지는 이야기, 친했던 두 친구가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이야기 등 흥미롭고 다채로운 이야기 속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떻게 이런 인물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당한 모험들이 줄을 이어요. 그런데 1권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대목이 등장합니다.

 

만일 당신이 우울해 있으면 그러한 이야기가 어떻게 그 우울증을 몰아내며, 상태가 나쁠 때라면 어떻게 그걸 좋아지게 만드는지 알게 될 것이오. 나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나는 편력 기사가 되고 나서부터 용감하고 정중하고 자유롭교 교양 있고 관대하고 정중하며 대담하고 온유하고 참을성 있으며 고난도 감금도 마법도 견뎌 내는 사람이 되었소.

p751

 

이 대목을 읽는데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이제 쉰이 다 된, 어쩌면 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었던 남자가 삶의 낙이라 할만한 일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한낱 미친 짓이라 치부했어도, 돈키호테에게 있어 기사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자부심이 마음 속에 넘쳐나서, 과도한 행동으로 표출되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 대목을 읽고 나니 2권에 이어질 그의 세 번째 모험길은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방대한 분량과 촘촘한 글씨들에 놀랐지만 정말 순식간에 읽어내려간 [돈키호테] 1권. 2권에서는 어떤 모험길이 준비되어 있을지, 이제는 익숙해져버리다 못해 꿈 속에서까지 대화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푹 빠져버린 돈키호테와 산초의 만담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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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 현대지성 클래식 3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홍대화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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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깨달은 삶의 교훈! 함께 음미해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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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나폴리 4부작 4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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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에 걸친 레누와 릴라의 이야기가 마침내 끝을 맺었다. 총 4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그 중 어느 한권도 허술하게 쓰여진 책이 없다 여겨질 정도로 촘촘한 구성과 세밀한 내면 묘사로 읽는 이의 마음을 들었다놨다 한 대작! 매번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끝을 맺어 다음 책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던 4권의 제목은, 읊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덜컹하는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다. 부디 상징적인 의미이기를, 그 누구도 아이를 잃는 아픔만은 겪지 않기를 바랐던 희망과는 달리, 두 명의 여성 중 한명만 품안에 아이를 안고 있는 표지에서부터 불길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이 낳은 두 딸조차 내버려둔 채 니노를 따라 그의 학회에 따라나선 레누. 학회 기간 동안 그들은 꿈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를 향한 맹세를 조금도 멈추지 않는다. 각자의 가정과 결별하고 서로 함께 하게 되기를 바라는 레누에게, 이제 피에트로와의 관계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처음에는 미안한 감정이 다소 있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 이혼과정이 고통스러워지자 시어머니에게조차 뻔뻔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레누를 바라보면서, 대체 어떻게, 얼마나 대단한 사랑에 빠져야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도 개의치 않을 수 있나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레누의 책이 해외에서 호평을 받게 되면서 출장이 잦아진 그녀.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는 아이들-데데와 엘사-의 외침도 그저 한순간일 뿐, 집을 떠나 강연을 하고 책과 관련된 일이 진행될수록 레누가 느끼는 감정은 자유 뿐이다. 그리고, 니노를 향한 멈추지 않는 열망만이 오직 레누를 움직이게 했다.

 

나폴리에 자신들의 거처를 마련해놓았다는 니노. 하지만 역시 니노는 니노였다. 어찌됐든 이별의 과정을 거친 레누에게, 그는 현재 아내가 임신 7개월이라 끝내 이혼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말을 전한다. 나는 이미 니노가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있었고, 작품 속 레누를 향해 '이제 제발 정신을 차려라'고 외쳤지만, 레누의 열망은 니노의 변명에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결국 니노의 아이를 임신한 레누. 마침 비슷한 시기에 엔초의 아이를 임신한 릴라. 임신을 계기로 그녀들의 소원했던 사이가 다시 가까워진다. 그리고 태어난 레누의 딸 임마와 릴라의 딸 티나. 파렴치하고, 뻔뻔스럽고, 더러운 니노의 외도들이 발각되고, 레누는 그와의 관계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는다. 잠시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만, 예전에 써놓았던 작품이 호평을 받으면서 레누는 다시 한 번 작가로서 도약할 기회를 얻었다.

 

고향 마을에서는 여전히 솔라라 형제들이 득세하고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악행은 계속된다. 3권에서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알폰소는 미켈레와 깊은 사이를 맺고 있으며 언행마저 여성처럼 변해간다. 이런저런 일들 속에 겪은 어머니의 죽음. 다정한 구석이라고는 없었던 어머니는, 죽음에 가까워지고나서야 레누를 향한 사랑과 믿음을 고백하고, 레누도 어머니를 향한 깊은 애정을 느꼈다. 솔라라 형제들의 악행을 폭로한 기사 게재로 레누의 입지는 한층 단단해져가고, 레누와 릴라의 어린 시절 한부분을 차지했던 사람들이 이런저런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면서 하나의 페이지가 그렇게 닫혀갔다. 그리고 일어나버린 그 일.

 

릴라의 딸 티나가, 사라진다. 아무 징조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자식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실종이 아닐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고,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온갖 상상이 머리속을 침범해 한시도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없다. 그 고통은 부모가 죽어야만 끝이 난다. 어떤 부모가 잊을 수 있을까. 티나의 실종으로 인한 충격은 릴라를 덮치고, 그 일을 계기로 릴라는 무너져간다. 아이들이 자라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나고, 주변을 비롯한 자신들마저 노년에 이른, 시간이 이렇게나 흐른 지금까지도.

 

시리즈의 처음부터 릴라의 레누를 향한 감정의 정체가 궁금했다. 레누의 감정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분명 자신보다 뛰어난 릴라를 향한 선망, 질투, 어떻게든 그 영향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그럴수록 릴라의 영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좌절, 열등감, 우정. 하지만 릴라의 감정은 모호하다. 레누를 향한 마음에 질투가 없었을까.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레누에게 부러움이 없었을까. 하지만 릴라의 감정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채,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레누를 향한 조롱이나 멸시, 비난으로 대체된다. 어쩌면 릴라 또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붙잡고도 싶고, 떠나보내고도 싶었을 복잡한 심정. 하지만 그 감정에, '우정'이라는 두 글자로 얼버무렸던 감정에 릴라는 잔인한 종지부를 찍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아픈 추억을 글로 써서 발표한 레누에게.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을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또한 1권에서의 서먹함은 이미 멀리 사라지고, 레누와 릴라의 삶에 대한 애정과 연민으로 가득차 있다. 다른 작품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만약 그 작품에도 니노같은 넘이 등장한다면, 음, 그것은 글쎄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험한 말을 하도 많이 했더니, 싫은 그 넘이 꿈에라도 나올까 두려울 정도. 그렇지만 이러면서도 언젠가는 읽게 되지 않을까. 구간은 물론 신간이 출간되지는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다. 마성의 작가, 마성의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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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공간
조종하 지음 / 이상공작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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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온다 한다

사람들은 벚꽃이 핀다 하니

저마다 아우성이다

벚꽃은 피고 지는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저 저마다의 모습으로

묵묵히 조용하게

피고 질 뿐

지난 봄

너를 향해 피운

나의 아우성은

지는 내내 시끄러웠다

꽃처럼 살겠다

남은 생

조용히 피고 지어

깊숙히 품고 살리라

다시, 봄이 온다 한들

<벚꽃>

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니 어렵게 느껴지고 어렵게 느껴지니 멀리 했었다. 주제가 뚜렷하지 않은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인 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타인의 자기 연민,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하나하나의 글에 공감하며 동조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안는 것은 20대 때로 족하다 여겼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생각하는 중이었다. 꽤 오랜 시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지 못했고, 아, 이제 내 감성은 메말랐구나, 생각하던 찰나. <벚꽃>을 만난다.

시와 에세이, 어렵고 신경쓰고 싶지 않은 두 장르가 만났다는 것에 사실 처음부터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등장한 시에 그만 가슴을 덜컥 베이고 말았다. 한 편의 시가 나를 데려간 곳은 과거의 어느 때쯤. 나를 그리움에 잠기게 한 것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공간이었다.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던 그 때의 나, 그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라서 한참동안이나 벚꽃을 바라보았던 그 때의 시간이 떠올라 울컥 가슴이 차올라온다. 더불어 치밀어오르는 생각. 나는 그 때의 내가 그렸던 그 모습으로 잘 살고 있는 걸까. 그 때의 마음, 그 때의 내 모습은 지금 내 안에 남아있을까. 나는 다시 나만의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첫 시에 마음을 강타당하고, 결국 온순해진 감각으로 그의 글들을 읽어나간다. 리뷰를 쓰기 전에 SNS 라이브방송으로 접한 그의 모습 때문인지 하나하나의 시, 한편한편의 에세이가 가볍게 넘어가지지 않았다. 깊은 밤, 혹은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자신의 마음을 펜 한 자루에 담아 꾹꾹 눌러나갔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내가 그동안 타인의 글들을 생각보다 가볍게 여기고 있었음을 깨닫고 부끄러워진다. 모두가, 이렇게 글들을 써나갔겠지. 읽고 내 나름의 감정으로 평가해온 그 글들에 무수히 많은 밤과 새벽이 쌓여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성의있는 글이라면, 단순히 SNS만 뒤져도 나올법한 글이 아니라면 앞으로는 최대한의 경의를 가지고 모든 책들을 대하리.

시와 에세이는 가장 사적인 영역의 글이다. 그러니 모든 글에 작가와 같은 감정으로 공감하기는 어렵다. 작가도 그 점은 분명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눈에 띄는 시와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에세이였지만 나에게 최고는 이 <벚꽃>. 사실 이 한 편의 시로 인해 다른 글들을 읽다가도 다시 앞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나의 추억과 그의 추억이 만나 전해지는 각자의 특별한 감정들. 시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이 한 편에 이리 감흥을 받았으니 이만하면 성공적인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이것으로 되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그의 감성이 더욱 풍부해지기를. 그의 감각이 더욱 날카로워지기를. 담대한 마음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가기를. 다음 책에서는 '시 쓰는 배우'가 아니라 '시 쓰는' 조종하님이 되기를. 어쩐지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그의 시작을 작게나마 응원한다.

** <이상공작소>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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