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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평점 :

다른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풍차를 향해 돌격했던, 다소 무모한 기사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돈키호테입니다. 앞뒤 문맥없이 '돈키호테'! 하면 풍차! 였죠. 그런 돈키호테가 겪는 모험을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제대로 읽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유년 시절에는 빚을 갚지 못해 재산을 압류당한 아버지 때문에 여러 곳을 전전하기도 하고 감옥살이도 하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세르반테스는, 길거리에 떨어진 찢어진 종이라도 주워 읽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다고 해요. 해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기도 하고 터키 해적선의 습격을 받아 포로가 되어 알제에서 노예 생활을 겪기도 했으며 징수한 돈을 예금해둔 은행이 파산하여 감옥살이를 하기도 하는 등,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보냈던 세르반테스. 그런 그의 인생이 온전히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 바로 [돈키호테] 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의 삶은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류의 성서이자 소설의 원형이라 불리는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을 탐닉하다가 급기야 자신이 직접 기사가 되어 모험을 찾아 떠나는 엄숙한 미치광이 돈키호테와, 그런 그의 모험을 통해 어떻게 한 자리 얻을 수 없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함께하는 순박한 종자 산초의 이야기입니다. 지구 상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아직까지도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정도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고 넘어가야 할 필독서! 인 셈이지요.
첫 페이지에서부터 1605년 초판본 표지 번역과 규정 가격, 정정에 대한 증명, 특허장, 서문, 돈키호테 데 라만차에 부치는 시-등이 줄을 잇는데요, 당시 하나의 작품을 출판하기가 얼마나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라만차 지역에 살고 있던 가난한 이달고 돈키호테. 틈이 날 때마다 기사 소설을 읽는 데 푹 빠져 있어서 사냥이나 재산을 관리하는 일조차 까맣게 잊을 정도였습니다. 이 기사 소설을 탐닉하다 못해 거의 미쳐버린 그는, 자신 또한 기사가 되어 명예를 드높이고 나라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 무장한 채 세상을 돌아다녀 보기로 결심하죠.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것도 많은 법. 세월의 풍파를 맞이해버린 증조할아버지 대의 칼과 창과 투구, 피부병에 걸린 데다 값도 얼마 나가지 않으며 많은 흠을 가진 로시난테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랑할 귀부인'까지 정해버리는 그의 모습에서부터 그만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그렇게 떠난 첫 번째 모험. 황당무계한 말들을 읊조리면서 모험을 시작한 그 앞에 어느 객줏집이 나타나고, 주인을 성주로, 몸을 파는 여자들을 귀부인으로 착각하기에 이릅니다. 짓궂은 주인의 장난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로부터 기사 서품을 받은 돈키호테. 마침내 '기사' 돈키호테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그의 영원한 동반자 산초 판사는 돈키호테의 두 번째 모험부터 함께 해요. 그의 광기를 알아차리기는 하지만, 모험에서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금화나 후작 같은 작위에 마음을 빼앗겨 순박하고도 충직하게 돈키호테를 모십니다. 오마이갓! 산초 '판사'의 판사를 저는 정말 판사인 줄 오해했어요. '판사'는 땅딸막한 의미의 스페인어라 하니 어쩐지 산초가 지니는 의미와 딱 맞아떨어지지 않습니까! 으흐흐. 그 후 두 사람이 함께 겪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모험들. 그저 지나가고 있을 무리를 적이나 악의 무리라 여겨 돌진하는 것은 예사요, 어떤 이발사가 가지고 있던 놋쇠 대야를 투구로 착각해 머리에 쓰고 다니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이없음을 넘어서 짠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어요. 그렇게 덤벼든 상대들에게 승리를 쟁취하면 모르겠으나, 늘 패배하는 것은 돈키호테와 산초 쪽. 돌팔매로 갈비뼈가 나가고 어금니를 잃어도 그들의 대화와 돈키호테의 일장연설은 멈추지 않으니, 분명 물에 빠져도 입만 둥둥 뜰 위인들이 여기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돈키호테] 의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가 돈키호테와 산초가 만나는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사연이에요. 사랑을 잃은 사람이 역시 반미치광이가 되어 산에서 자신을 버린 모습으로 생활하다가 결국 사랑을 되찾고 행복해지는 이야기, 친했던 두 친구가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이야기 등 흥미롭고 다채로운 이야기 속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떻게 이런 인물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당한 모험들이 줄을 이어요. 그런데 1권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대목이 등장합니다.
만일 당신이 우울해 있으면 그러한 이야기가 어떻게 그 우울증을 몰아내며, 상태가 나쁠 때라면 어떻게 그걸 좋아지게 만드는지 알게 될 것이오. 나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나는 편력 기사가 되고 나서부터 용감하고 정중하고 자유롭교 교양 있고 관대하고 정중하며 대담하고 온유하고 참을성 있으며 고난도 감금도 마법도 견뎌 내는 사람이 되었소.
이 대목을 읽는데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이제 쉰이 다 된, 어쩌면 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었던 남자가 삶의 낙이라 할만한 일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한낱 미친 짓이라 치부했어도, 돈키호테에게 있어 기사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자부심이 마음 속에 넘쳐나서, 과도한 행동으로 표출되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 대목을 읽고 나니 2권에 이어질 그의 세 번째 모험길은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방대한 분량과 촘촘한 글씨들에 놀랐지만 정말 순식간에 읽어내려간 [돈키호테] 1권. 2권에서는 어떤 모험길이 준비되어 있을지, 이제는 익숙해져버리다 못해 꿈 속에서까지 대화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푹 빠져버린 돈키호테와 산초의 만담이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