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공간
조종하 지음 / 이상공작소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시, 봄이 온다 한다

사람들은 벚꽃이 핀다 하니

저마다 아우성이다

벚꽃은 피고 지는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저 저마다의 모습으로

묵묵히 조용하게

피고 질 뿐

지난 봄

너를 향해 피운

나의 아우성은

지는 내내 시끄러웠다

꽃처럼 살겠다

남은 생

조용히 피고 지어

깊숙히 품고 살리라

다시, 봄이 온다 한들

<벚꽃>

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니 어렵게 느껴지고 어렵게 느껴지니 멀리 했었다. 주제가 뚜렷하지 않은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인 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타인의 자기 연민,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하나하나의 글에 공감하며 동조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안는 것은 20대 때로 족하다 여겼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생각하는 중이었다. 꽤 오랜 시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지 못했고, 아, 이제 내 감성은 메말랐구나, 생각하던 찰나. <벚꽃>을 만난다.

시와 에세이, 어렵고 신경쓰고 싶지 않은 두 장르가 만났다는 것에 사실 처음부터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등장한 시에 그만 가슴을 덜컥 베이고 말았다. 한 편의 시가 나를 데려간 곳은 과거의 어느 때쯤. 나를 그리움에 잠기게 한 것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공간이었다.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던 그 때의 나, 그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라서 한참동안이나 벚꽃을 바라보았던 그 때의 시간이 떠올라 울컥 가슴이 차올라온다. 더불어 치밀어오르는 생각. 나는 그 때의 내가 그렸던 그 모습으로 잘 살고 있는 걸까. 그 때의 마음, 그 때의 내 모습은 지금 내 안에 남아있을까. 나는 다시 나만의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첫 시에 마음을 강타당하고, 결국 온순해진 감각으로 그의 글들을 읽어나간다. 리뷰를 쓰기 전에 SNS 라이브방송으로 접한 그의 모습 때문인지 하나하나의 시, 한편한편의 에세이가 가볍게 넘어가지지 않았다. 깊은 밤, 혹은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자신의 마음을 펜 한 자루에 담아 꾹꾹 눌러나갔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내가 그동안 타인의 글들을 생각보다 가볍게 여기고 있었음을 깨닫고 부끄러워진다. 모두가, 이렇게 글들을 써나갔겠지. 읽고 내 나름의 감정으로 평가해온 그 글들에 무수히 많은 밤과 새벽이 쌓여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성의있는 글이라면, 단순히 SNS만 뒤져도 나올법한 글이 아니라면 앞으로는 최대한의 경의를 가지고 모든 책들을 대하리.

시와 에세이는 가장 사적인 영역의 글이다. 그러니 모든 글에 작가와 같은 감정으로 공감하기는 어렵다. 작가도 그 점은 분명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눈에 띄는 시와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에세이였지만 나에게 최고는 이 <벚꽃>. 사실 이 한 편의 시로 인해 다른 글들을 읽다가도 다시 앞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나의 추억과 그의 추억이 만나 전해지는 각자의 특별한 감정들. 시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이 한 편에 이리 감흥을 받았으니 이만하면 성공적인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이것으로 되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그의 감성이 더욱 풍부해지기를. 그의 감각이 더욱 날카로워지기를. 담대한 마음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가기를. 다음 책에서는 '시 쓰는 배우'가 아니라 '시 쓰는' 조종하님이 되기를. 어쩐지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그의 시작을 작게나마 응원한다.

** <이상공작소>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