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지금 이 순간도 삶이다
이영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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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에게는 한 가지, 커다란 고민이 있습니다. 이제 발령받은 지 한 달 남짓,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저는 엄청난 시행착오와 실망감, 두려움을 느껴야 했어요. 제가 공부하면서 그렸던 맑고 밝은 예쁜 아이들의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달은 한 달이었거든요. 예쁜 아이들도 많습니다. 복도에서 만나면 '안녕하세요!' 를 크게 외치는 아이들, 그래도 시험 기간이라며 연필 꼭 쥐고 공부하는 아이들, 시험 너무 어려웠다고 어리광부리는 아이들을 보면 다 제 동생 같아서 볼을 쥐고 장난을 치고 싶어진답니다. 그럴 때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초임인데다 2학기에 발령을 받아서인지 아이들과의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밝고 활달한 정도가 살짝 지나치는 바람에 수업은 늘 '앉아' '조용히해'로 시작하기 마련이고, 종이 쳐도 어슬렁어슬렁 들어오는 아이들 때문에 속이 탈 때도 있어요.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생각도 못했던 수업 시간 핸드폰 사용은 기본이고, 점심시간 전 4교시 수업은 밥 냄새를 맡은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답니다. 요즘은 또 선생님에게 꾸중듣거나 교무실로 내려오는 것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과의 나이 차이는 10년, 사회에서는 아직 젊디 젊은 나이인데 아이들 앞에만 서면 꼭 제가 중늙은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제가 가진 생각이, 제가 하는 행동이 아이들이 고수하고 있는 생활과 무척 차이가 있다는 걸 느껴요. 선배 선생님들 말씀은, 그냥 포기할 건 포기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 다 그렇다고요. 우리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아이들의 사고방식이 이제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고. 교직에 있는 친구나 선배들의 말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웃음과 다정한 말로는 아이들을 이끌 수 없고, 그것만으로는 힘이 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뭘 포기하고 뭘 인정해야 하는 걸까요? 

요즘 제 마음은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이해되기도 하다가 또 때로는 아이들이 미워지기도 해요. 아프고 힘든 마음을 붙잡고 고민하던 차에 이영미 선생님의 [십대, 지금 이 순간도 삶이다]와 만났습니다.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눈물의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 자신이 아주 많이 부끄러웠답니다. 나는 아이들을 잡으려고만 했구나, 이해하려고는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차갑고 편향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나는 아직 교사가 아니구나..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이제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시작하는 사람인걸요. 

책은 이영미 선생님의 편지와 많은 아이들의 경험이 진솔하게 담겨 있습니다. 몸이 아픈 친구를 둘러싼 아이들의 우정, 처음으로 2등을 한 후 아버지에게 맞고 자살하려고 한 아이, 늘 엄마의 계획대로 살아가는 아이, 재혼한 엄마에게 편지 쓰는 아이, 이성 문제로 고민하는 아이 등 제가 직접 겪어보지 못했으나 분명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제 가슴을 울렸습니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선생님의 편지는 내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게 해주었고, 1999년부터 중간고사의 첫날에 항상 빵을 구워가신다는 선생님의 열정은 제 가슴도 따뜻하게 해주었어요. 좋은 책과 영화 소개로 생각할거리를 주셨답니다. 나도 과연 이 분같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두근거림과 두려움을 모두 느꼈지요. 

저의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때때로 아이들과 소통되지 않는 순간이 있을 것이고 그 때문에 낙담하고 실망하는 일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에서 보여준 선생님의 자세와 말씀들을 잊지 않고 싶어요. 더 나은 삶을 위해 준비하는 십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소중한 삶이라는 말씀,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와 선생님의 진솔한 편지로 인해 제 자신이 위로받고 앞으로 나갈 힘을 얻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청소년, 아이가 있는 부모님, 그리고 교직에 계신 선생님들이 읽어보면 아마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 한 권 더 사서 교직에 있는 제 친구에게 선물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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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3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3 2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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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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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008년이 3개월 정도 남았지만 생각해보면 올해는 특히 앞만 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잊고 싶은 일도 있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끝없이 미래에 관한 설계를 계속해야만 했다. 어떤 한 조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나의 능력을 보여주고 인정받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현실은 나의 이상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 한 해였다고 할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든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그러했으니 올해의 끝에서 뒤돌아본 후 드는 생각에도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숨가쁘게 달려왔고, 크고 작은 긴장 속에서 허우적대야 했던 일상 속에서 [똥친막대기]와 만났다. 똥친막대기는 처음부터 똥친막대기가 아니었다. 백양나무 어머니로부터 자양분을 받고 곁가지로서 살아가는 아주 작은 생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사짓던 박씨의 손에 의해 꺾어져 소몰이용으로 쓰인다. 크나큰 아픔을 느꼈고, 매우 두려웠지만 똥친막대기는 박씨의 딸 재희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소몰이용으로 쓰이던 똥친막대기는 그날 밤 재희의 종아리를 때리는 회초리용으로 변신했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변소에서 드디어(?) 똥친막대기로 쓰였다. 절망과 고통 속에서 다시 낚시대가 되기도 하고 물에 휩쓸려 떠내려 가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뿌릴 내릴 곳을 찾게 된다.
 
이 작품의 화자는 똥친막대기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의 곁가지. 흔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지 않았던 똥친막대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가 겪은 고통과 두려움에 비하면 의외로 푸근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에서조차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세상에 대한, 인간소녀 재희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해맑으면서도 순수하게 다가왔다. 책 중간중간에 그려진 정감가는 삽화들이 책의 분위기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순수하게 '우연'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일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에는 아무것도 생각했던 일들이 후에 돌이켜보면 중요한 의미가 있었음을,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건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똥친막대기가 겪었던 수많은 우연, 고통과 좌절은 그가 뿌리내리는 데에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똥친막대기의 인생은 우리의 인생과 비슷한 것 같다.
 
오랜만에 책을 보면서 크게 숨을 쉬어본다. 그동안 글자로만 이루어진 책만 보다가 푸근하고 정감가고 비료 냄새가 날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 책을 읽었더니 가슴이 따뜻하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어떻게 빛나는 생활로 나아가는지, 한 글자 한 글자가 어떻게 가슴을 울리는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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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라이프 2
김태양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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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들어 직업상 학교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고 있는 편이다.  젊은 교사들에게 보내는 글귀, 교사와 제자들이 주고받은 편지모음집, 우리의 교육현실을 비판하는 책까지 내 모든 정신이 온통 '학교'에 쏠려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들의 생활모습과 사랑을 그려냈다는 이 책 또한 나의 그런 레이더망을 피해갈 수 없었다. 가뜩이나 두 살 어린 남동생도 나와 세대차이를 느낀다는데 학생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이해받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요즘 고딩들의 사랑도 우습게 봐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리다고 해서 사랑을 모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린 그들의 사랑을 별 일 아니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람은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 같은 작품에서 감동을 느낄 수 없으리라. 문학작품에서 어린 그들의 사랑이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어린 학생들의 사랑 또한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이 어떤 점을 걱정하는지, 학생들을 둘러싼 환경이 어떤지 잘 알지만 사랑은 나이의 많고 적음, 성장의 발달 단계에 상관없이 언제나 우리 생활의 중심을 차지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밝힌다면 나는 이 책을 읽고 약간 실망스러웠다. 책을 펼치기 전에 내가 이 책에 가지고 있었던 바람은 이랬다. '그래, 띠지에 고딩들의 사랑법 훔쳐보기라고 적혀있지만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상 그 외의 이야기들도 있겠지. 사랑과 함께 전개되는 그들의 학업에 대한 고민, 어른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분명 있을 거야' 그러나 이 책은 시종일관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부모님의 재혼으로 인해 형성된 가족, 그 안에서 일어나는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 간의 사랑, 학생들끼리 서로 불러대는 이상한 별명, 변태스러움을 자처하는 주인공의 친구까지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흡사 일본만화의 한 장면 같았다. 

톡톡 튀는 고딩들의 특징들을 잘 표현했다는 점까지 부정하지는 않겠다. 요즘 학생들의 개방적이고 발랄한 모습은 잘 나타나있지만, 거기까지다. 시간 때우기용으로 읽기에는 적합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계속 기분이 이상했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학교라는 공간이 침해당한 느낌이었다. 동화같고 밝은 학교의 분위기는 좋았지만 청소년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오락성을 중시한 책을 읽고 이리 분석하고 따지려 하다니. 하지만 그만큼 내가 이 책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뜻도 되겠다. 재미와 허구, 분명 소설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의 현실을 반영하고 학생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고민을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이야 말로 진정한 [스쿨라이프]라고 칭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기에 무척 아쉬웠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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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라이프 1
김태양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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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들어 직업상 학교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고 있는 편이다.  젊은 교사들에게 보내는 글귀, 교사와 제자들이 주고받은 편지모음집, 우리의 교육현실을 비판하는 책까지 내 모든 정신이 온통 '학교'에 쏠려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들의 생활모습과 사랑을 그려냈다는 이 책 또한 나의 그런 레이더망을 피해갈 수 없었다. 가뜩이나 두 살 어린 남동생도 나와 세대차이를 느낀다는데 학생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이해받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요즘 고딩들의 사랑도 우습게 봐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리다고 해서 사랑을 모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린 그들의 사랑을 별 일 아니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람은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 같은 작품에서 감동을 느낄 수 없으리라. 문학작품에서 어린 그들의 사랑이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어린 학생들의 사랑 또한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이 어떤 점을 걱정하는지, 학생들을 둘러싼 환경이 어떤지 잘 알지만 사랑은 나이의 많고 적음, 성장의 발달 단계에 상관없이 언제나 우리 생활의 중심을 차지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밝힌다면 나는 이 책을 읽고 약간 실망스러웠다. 책을 펼치기 전에 내가 이 책에 가지고 있었던 바람은 이랬다. '그래, 띠지에 고딩들의 사랑법 훔쳐보기라고 적혀있지만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상 그 외의 이야기들도 있겠지. 사랑과 함께 전개되는 그들의 학업에 대한 고민, 어른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분명 있을 거야' 그러나 이 책은 시종일관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부모님의 재혼으로 인해 형성된 가족, 그 안에서 일어나는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 간의 사랑, 학생들끼리 서로 불러대는 이상한 별명, 변태스러움을 자처하는 주인공의 친구까지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흡사 일본만화의 한 장면 같았다. 

톡톡 튀는 고딩들의 특징들을 잘 표현했다는 점까지 부정하지는 않겠다. 요즘 학생들의 개방적이고 발랄한 모습은 잘 나타나있지만, 거기까지다. 시간 때우기용으로 읽기에는 적합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계속 기분이 이상했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학교라는 공간이 침해당한 느낌이었다. 동화같고 밝은 학교의 분위기는 좋았지만 청소년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오락성을 중시한 책을 읽고 이리 분석하고 따지려 하다니. 하지만 그만큼 내가 이 책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뜻도 되겠다. 재미와 허구, 분명 소설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의 현실을 반영하고 학생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고민을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이야 말로 진정한 [스쿨라이프]라고 칭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기에 무척 아쉬웠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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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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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에키
행방불명된 여아 사이토 나오미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그 전에도 똑같은 수법의 유괴가 있었고 이 사건이 전의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고 느낀 경시청의 수사1과장 사에키는 합동본부를 차려 수사를 지휘한다. 많은 인력이 동원되고 모든 국민의 관심이 사건에 집중되지만 사건에 대한 실마리는 전혀 잡히지 않은 채, 또 다른 아이가 행방불명된다. 

*마쓰모토
그의 가슴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얼마 전 딸을 잃은 그에게 남은 것은 두통 뿐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의 구멍을 메워달라고 소리없이 절규하는 그의 앞에 신흥종파의 신도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공허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마쓰모토는 '당신의 행복을 기도하게 해주세요'라며 나타난 여성에게서 한 줄기 빛을 느끼고 그녀가 속한 종파에 가입한다. 마쓰모토는 가슴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더욱 종교에 매달리게 되고 딸을 만나고 싶다는 일념하에 흑마술을 시행한다. 

*사에키의 구멍 VS 마쓰모토의 구멍
사에키는 사회적으로 매우 성공한 인물이다. 전 법무대신 오시카와 히데요시의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경찰 내부에서도 알아주는 캐리어에다 경찰청 장관의 사위이며 그가 갖춘 능력 또한 출중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 뚫린 구멍 또한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아내와의 불화, 경찰 내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딸인 에리코에게마저 외면당하는 아빠. 그의 가슴 속에 자리한 구멍은 딸을 잃고 방황하는 마쓰모토의 구멍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행복이란 다른 사람에게만 내려진 신의 축복이므로.

이 작품은 그런 사에키와 마쓰모토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되는데 홀수장은 마쓰모토의 이야기가, 짝수장은 사에키가 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이 전개된다. 미스터리 하면 '반전'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트릭으로 나를 놀라게 할 것인가, 과연 그 트릭을 내가 눈치챌 수 있을 것인가를 따져보며 읽는 재미에 미스터리 소설에 빠지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예상대로 흘러가는 내용들을 보며 나는 그리 굉장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의 결말을 밝히지 마라'라고 적힌 문구가 괜히 쓰여진 것이 아님을 결말 부분을 읽고서야 절감했다. 그렇다. 나는 마치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고, 그 다음 순간에는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앞장부터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유아 네 명을 참혹하게 살해한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도저히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여겨지지 않을만큼 굉장하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 신흥종파에라도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마쓰모토의 심리와 철저하게 고독한 사에키의 마음,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잔인한 인간들의 모습을 안타깝지만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통곡보다 이 책이 담아내는 통곡은 훨씬 더 가슴 아팠다.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 그것을 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럼에도 이 책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내 등에 얹어버렸다. 표지에 그려진 장미의 색이 점점 붉은 눈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 걸까. 마지막 한 문장까지 가슴 속을 깊이 후벼파는, 목 안쪽이 따가워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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