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아직 2008년이 3개월 정도 남았지만 생각해보면 올해는 특히 앞만 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잊고 싶은 일도 있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끝없이 미래에 관한 설계를 계속해야만 했다. 어떤 한 조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나의 능력을 보여주고 인정받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현실은 나의 이상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 한 해였다고 할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든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그러했으니 올해의 끝에서 뒤돌아본 후 드는 생각에도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숨가쁘게 달려왔고, 크고 작은 긴장 속에서 허우적대야 했던 일상 속에서 [똥친막대기]와 만났다. 똥친막대기는 처음부터 똥친막대기가 아니었다. 백양나무 어머니로부터 자양분을 받고 곁가지로서 살아가는 아주 작은 생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사짓던 박씨의 손에 의해 꺾어져 소몰이용으로 쓰인다. 크나큰 아픔을 느꼈고, 매우 두려웠지만 똥친막대기는 박씨의 딸 재희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소몰이용으로 쓰이던 똥친막대기는 그날 밤 재희의 종아리를 때리는 회초리용으로 변신했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변소에서 드디어(?) 똥친막대기로 쓰였다. 절망과 고통 속에서 다시 낚시대가 되기도 하고 물에 휩쓸려 떠내려 가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뿌릴 내릴 곳을 찾게 된다.
 
이 작품의 화자는 똥친막대기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의 곁가지. 흔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지 않았던 똥친막대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가 겪은 고통과 두려움에 비하면 의외로 푸근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에서조차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세상에 대한, 인간소녀 재희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해맑으면서도 순수하게 다가왔다. 책 중간중간에 그려진 정감가는 삽화들이 책의 분위기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순수하게 '우연'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일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에는 아무것도 생각했던 일들이 후에 돌이켜보면 중요한 의미가 있었음을,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건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똥친막대기가 겪었던 수많은 우연, 고통과 좌절은 그가 뿌리내리는 데에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똥친막대기의 인생은 우리의 인생과 비슷한 것 같다.
 
오랜만에 책을 보면서 크게 숨을 쉬어본다. 그동안 글자로만 이루어진 책만 보다가 푸근하고 정감가고 비료 냄새가 날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 책을 읽었더니 가슴이 따뜻하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어떻게 빛나는 생활로 나아가는지, 한 글자 한 글자가 어떻게 가슴을 울리는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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