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자
막심 샤탕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 시리즈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이 작가의 이름을 그냥 지나치실 수는 없을 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악!> 시리즈의, 이름만 달콤한 샤탕 아저씨의 [약탈자] 입니다. 모르는 분들은 <악!> 이 비명을 지를 때의 '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잔혹하고 소름끼치는 묘사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라 그 '악!'도 잘 어울리지만, 여기서는 그의 작품 [악의 영혼] [악의 심연] [악의 주술] [악의 유희] 를 일컫는 말이랍니다. '악'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릴 정도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범인들과 잔혹한 묘사로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은 들어보시지 않았을까 해요. <악!> 시리즈 이후, 샤탕 아저씨의 작품을 접해본 적은 없지만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라는 문구와 양의 탈을 쓴 사람이 서 있는 표지에 끌린 소설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작품의 배경은 '전쟁터'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한 번도 본 적 없고 원한을 가진 적조차 없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색의 군복을 입었다고 해서 타인을 죽이는 것이 통용되는 또 다른 세상이죠. 아무리 적군이라고 해도 눈 앞에서 한 생명이 꺼져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없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많은 세월을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워하는 게 아니겠어요? 갑자기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이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한 소설의 문장이 생각나네요. 그런 전쟁터에서 단순히 쾌락을 위해 병사들을 죽이는 살인마가 나타납니다. 그를 잡기 위해 현대의 프로파일러 같은 헌병들이 등장하죠. (전 잘 모르겠는데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하는 헌병들이 있는 지 궁금하네요) 

이 작품의 매력은 단연 헌병대의  크레이그 프레윈 중위입니다. 과거 한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심연에 자리잡은 어둠에 대해 익숙한 프레윈 중위는 그 동안 접한 여러 사건을 통해 자신만의 이론을 가지고 있죠. 범인이 남긴 시체, 현장에 남긴 증거, 범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 등을 통해 범인이 누구인가를 추리합니다. 마치 제가 좋아하는 미드 <크리미널 마인드>를 보는 것 같았어요. 한 단계 한 단계 범인에게 근접하는 프레윈 중위. 그런 그에게 사건 초반부터 범죄수사에 가담하게 요청한 간호사 앤 또한 수수께끼의 인물입니다. 범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 앤이 이번 범죄를 통해 자신에게서 발견하고자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요. 사건 수사와 함께 인물들이 간직한 어둠에 대한 의문까지 의혹으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제가 간격을 두고 읽어서일까요? 이번 작품은 조금 지나치게 템포가 느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범인에게 다가가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느낌. 범죄수사로 유명한 프레윈 중위가 유독 이 사건에서만 헛다리를 짚는 것 같은, 그런 계산된(?) 설정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속도감 있게 슉슉 넘어가는 그런 이야기를 원했는데 말이죠. 다만 누가 범인인지에 대해 자꾸 머리를 굴리게 된다는 점은 좋았습니다. 전쟁터를 배경으로 한 만큼 그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을 해하게 되는 고통에 대해 조금 더 설명되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4시간 7일 모중석 스릴러 클럽 25
짐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저는 요즘 케이블에서 방송되는 <수파스타 K> 시즌2에 푹 빠져있습니다. <수파스타 K>가 방송되는 금요일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을 정도로요. 호홋. 그렇다고 사전 인터넷투표와 대국민문자투표에까지 참여할 정도는 아니구요, 그저 그들의 열정을 함께 즐기는 거죠. 자신들이 발견한 꿈을 좇아 앞만보고 열심히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이 참 좋아요.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2억이라는 상금과 앨범발매도 그들의 열정을 변질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중간에 탈락한 참가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요. 금요일밤 <수파스타 K>를 보고 나면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기도 합니다. 으헥. 

장안의 화제인 <수파스타 K>인만큼 여러 가지 논란도 많았습니다. 심사위원들의 독설과 매주 탈락자를 선정하는 방식, 리얼리티 쇼인만큼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라고 해도 보는 이로 하여금 '잔인함'을 느끼게 한 탈락자 발표 등이 그것입니다. 여기에 대국민문자투표 또한 참가자들의 실력이냐 스타성이냐를 판가름한다는 점에서 꽤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들썩들썩하게 했습니다. 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참가자가 8일 탈락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전 개인적으로 8일 탈락한 K군의 목소리, 좋아합니데이.  누나의 팬심이라고 할까요. 크하핫. 요렇게 누군가에게는 탈락의 눈물을, 누군가에게는 승자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인터넷과 문자투표 등이 참가자들의 생사를 결정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24시간 7일] 의 소재는 '리얼리티 쇼'입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수잔 콜린스의 <헝거게임> 시리즈, 기시 유스케의 [크림슨의 미궁], 영화 <10억>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소재죠. 근육퇴행위축증을 앓고 있는 딸 제나를 위해 쇼에 참가한 다나, 조종사였던 저스틴, 수의사 네리네, 용접공 버튼, 도축업자 브렌다, 과거에는 수녀였지만 현재는 교사인 노라, 영매 패도라와 시스템관리자 코리, 의사 듀테트레와 어부인 포스터, 회계사 찰스, 중개소를 운영하는 르네. 이렇게 12명은 쇼에 참가하기 위해 바사 섬으로 향합니다. 2백만 달러의 상금과 재미를 위해 참가한 쇼는 '컨트롤'이라는 범인에 의해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로 다가오고 참가자들은 하루에 한 명씩 죽음을 맞게 됩니다. 다름아닌 시청자들의 '인터넷 투표'를 통해서요. 

생존자들의 몸 속에 투여된 에볼라 바이러스만으로는 긴장감을 극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는 지, 작가는 외부적으로도 이들을 공격합니다. 바사 섬에 갇힌 참가자들이 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섬을 봉쇄하는 한편, 배를 타고 섬에서 나온 참가자들 중 일부를 무참히 죽이기도 하죠. 게다가 참가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지닌 상처, 약점과 싸워 이겨서 인터넷 투표수를 50% 차감시킬 수 있는 안전석까지 얻어내야 합니다. 대체 '컨트롤'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는 지, 참가자 중 섞여 있는 공범은 누구인지, 엘리엇 케이 사이먼이라는 정신이상자가 원하는 '신'이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갖가지 의혹 속에서 전개되는 이 작품은, 그러나 전혀 혼란스럽지 않고 매끄럽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갑니다. 긴장과 스릴, 엄청난 속도감은 마치 눈 앞에서 영상이 흘러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이 쇼에 열광합니다. 참가자들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표의 수는 한정없이 올라가죠. 참가자들에게는 '현실'이지만 시청자들에게는 단순히 '쇼'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앞에서 아무리 시청자들에게 살인자라고 외쳐본들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겁니다. 우리는 과연 어떨까요. 만약 실제로 저런 일이 벌어진다면 정말 투표를 하지 않게 될까요?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일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불가사의한 인간의 심리니까요. 발전된 기술로 생활의 편리함을 얻게 된 우리지만, 그 기술의 어두운 부분도 살펴볼 때인 듯 합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상황에서조차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버리기도 합니다. 잔인한 리얼리티 스릴러이지만 이 작품이 그리 무섭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래도 인간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작가가 은연 중에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기술이, 문명의 발달이 도저히 파괴시킬 수 없는 인간의 소중한 무엇. 그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슴 한 쪽에서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서정적인 표지가 무척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 '슬프고 애틋한 이야기'라는 작가의 소개말과는 달리, 햇빛이 따사로운 창가에라도 앉아있는 양 동그랗게 몸을 말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마치 '이대로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듯 해요. 커다란 그림이 있다면 액자에 끼워서 두고두고 보고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나니 혼자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이 못내 가슴에 남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오랜만입니다. 마지막으로 읽은 그녀의 작품은 [왕국]. 사실 저는 바나나 언니의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저에게 전달되는 감성이 부족하다고 해야할 지, 분명 바나나 언니가 전하고 싶은 것은 많았을텐데 그것이 저를 그대로 투과해서 제 마음 속에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로 작품들과의 만남이 끝났다고 해야할 지.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던 [티티새] 에서도 저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었답니다. 당시 저보다 세 살 많은 사촌언니가 좋다고 권해주었었는데 말이죠. 어쩌면 시간이 흘러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 증거(?)로 저는 [왕국]을 참 좋아하게 됐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다소 어두운 내용에 슬프고 애틋한 이야기라는 입소문에도 과감히 이 책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소재면에서는 확실히, 밝은 내용은 아니에요. 마녀 학교를 다녔던 엄마와 쌍둥이 이모에 강령회에 깊이 빠져버린 엄마가 영혼을 불러내던 중 이상한 것에 씌어 아빠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소재는 흔히 볼 수 없는 것이죠. 주인공인 '그녀'는 엄청난 사건을 겪은 이후 그 때의 기억은 안개 속에 묻어둔 채 이리저리 살아왔습니다. 어느 날 이모의 아들, 즉 사촌 쇼이치가 찾아와 그녀를 보살펴주겠다고 해요. 그녀를 찾아 도와주는 것이 엄마의 유언이었다면서요. 어린 시절의 따뜻한 추억을 공유한 두 사람은, 그녀의 기억을 더듬고 사건을 더듬어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상처를 치료하기로 합니다. 그 와중에 쇼이치 또한 사랑하는 엄마를 떠나보내고 대신 사촌인 그녀를 다시 찾았다는 안도감을 느끼죠. 결국 이 책은 그녀와 쇼이치의 '일종의' 성장소설입니다. 제가 어째서 '일종'이라는 말을 썼는 지, 이 작품을 읽어보면 아마 알게 되실 겁니다. 

밝지 않은 소재를 가볍고 경쾌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톡톡 튀는 매력의 '그녀' 덕분입니다. 어두운 기억과 아픈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왔지만 현재만을 생각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무척 좋았어요. 문제는, 작가가 전하고자 한 좋은 말들이 저의 마음에 깊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점이랄까요. 과거의 흔적을 더듬어 나가면서 그녀와 쇼이치가 나눈 말들에는 인상깊은 것들이 많아요. 하지만 어쩐지 제 가슴 속 깊은 곳의 무엇을 건드리지는 못했습니다. 문체 자체가 '슬프고 애틋한' 느낌을 자아내기에는 부족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리고 왜인지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읽어나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왜였을까요.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리라 생각해요. 

마지막 부분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쿵!하고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어요. 결말이 제가 생각했던 그대로는 아니어서 조금 서운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는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그녀'에 대한 이야기, 그녀의 모든 것을 전하는 이야기이니까요. 이 짧은 여행에 그녀와 동참해주시면, 그녀에게 큰 위로가 될 거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도착의 론도]를 읽은 이후 오리하라 이치의 마법에 '기꺼이' 빠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한밤, 그의 서술트릭에 뒷통수를 맞은 나는 멍~하게 다시 책장을 뒤적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 후로 '오리하라 이치=서술트릭의 대가'라는 공식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도착의 론도]를 읽은 후  '○○자' 시리즈 중 [행방불명자]를 덥석 읽었지만, 너무 크게 기대를 해서인지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계속 출간되는 [원죄자]와 이 [실종자]도 읽고 나서 실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살짝 망설였던 것은 사실. [도착의 론도]에서 받은 충격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행방불명자]보다는 한결 나은 작품인 듯 하다. 
 
사회파 미스터리 중에서는 소년법을 다룬 작품에 좀 더 관심이 간다. 가해자가 미성년자라고 해서 그를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하지 못한다면 가해자는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남은 인생을 어두운 그림자 밑에서 살아야 하나, 용서해야 한다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응어리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미성년자들의 범죄가 성인의 그것을 넘어선 경우가 많다. '재미로 그랬다, 단지 놀려준 것 뿐이다' 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는 매스컴을 접하면 더욱 오싹하다. [실종자] 역시 그런 소년법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이타마 현 구키 시. 한 달 전 실종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백골의 시체 한 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각각 '유다의 아들'과 '유다'라는 쪽지가 남겨진 채. 백골은 15년 전 실종된 여중생으로 밝혀지고 그 후 두 구의 백골이 더 발견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그런 와중에 두 명의 여성이 더 실종되고, 과거의 실종 사건에서 범인으로 의심받았던 용의자가 시체로 발견되기에 이른다. 그 마을에서 상해 사건을 일으키고 소년원에 수감되었던 '소년 A'. 범인을 밝히기 위해 르포라이터 다카미네 류이치로와 칸자키 유미코가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에 뛰어든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년 A'는 우리가 방송에서 접하는 바로 그 'A'다. 누군가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우리 사회는 가해자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다. 그 엄격함은 성인보다 미성년자의 경우 더 두드러지는데, 미성년자의 경우 잘못을 뉘우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미성년자인 가해자에게 터무니없는 환상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어리니까, 아직 뭘 모르니까' 라는 인식으로 소년법은 그들에게 너그럽다. 물론 그 중에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느끼고 평생을 속죄하며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접하는 미성년자 범죄의 양상을 보면, 그들이 과연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일 뿐'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들이 타인에게 입힌 상처는 어떻게 치료받아야 할까. 

소년법을 다룬 작품인만큼 역시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지만,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긴장감은 떨어지는 편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트릭으로 설정한 '소년 A'와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부분에 속아넘어가지 않고 범인을 알아챌 수 있다. 이야기가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드는 바람에 범인을 쉽게 추측하게 된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 내가 원하는 '뒷통수 얻어맞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 다소 아쉬운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들어 무척 인기를 얻고 있는 무라카미 선생의 단편집입니다. (작가마다 어울리는 호칭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미야베 미유키는 미미 여사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을 무라카미 선생으로 부르니 색다르군요 ^.^) 일본문학을 좋아하고 즐기는 분들이라면 확실히, 이 작가는 무시할 수 없죠. 교원 임용고시에서도 한자로 이 작가의 이름을 쓰라는 문제가 나올 정도로 일본 현대문학에 한 획을 그은 작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상실의 시대]를 접한 이후, 그 기묘한 분위기에 매혹당했답니다. 맨 처음 읽은 작품이라 그런지 저는 아직도 [상실의 시대]를 가장 좋아해요. 요즘 출간된 [1Q84]도 평이 좋던데 어쩐지 아까운 마음에 아직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집 역시 한 마디로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이에요.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모든 이야기가 간단한 듯 하면서도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은, 그런 소설들입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어디서 무엇을 보고 상상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묘사도 재미있고 푹 빠지게 되는 다채로움을 자랑합니다. 무라카미 선생의 작품은 (무라카미 선생 뿐만 아니라 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작품 또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적용해서 해석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저는 그런 쪽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작품의 분위기에 푹 빠지는 것만으로 만족했습니다. 문학작품을 읽는 데 꼭 정해진 틀 안에서 해석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수능시험도 아니고. 

앞서 다채로움을 자랑한다고 말씀드렸지만, 그것은 이야기의 소재와 분위기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작품 안에서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주제는 아마도 '상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표제작인 <빵가게 재습격>에서 주인공은 과거 동료와 빵가게를 습격한 적이 있습니다. 큰 가게를 덮칠 필요도 없이 그저 자신들의 굶주림만을 채워줄 만큼의 빵만 훔쳤던 그들의 관계는, 그 일이 있는 후 단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틀어지게 되죠. 옛날 빵가게를 습격했을 때 주인은 그들에게 바그너의 음악을 다 들어줄 것을 부탁했었고, 주인공은 그것이 어떤 저주가 되어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굶주림을, 어쩌면 그 때보다 더한 공복감을 주인공은 지금 아내와 다시 겪고 있는 겁니다. 아내는 이제 자신이 주인공의 파트너가 되었으니 그 저주에 자신도 걸렸다면서 그 저주를 풀 유일한 방법은 다시 한 번 빵가게를 습격하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주인공의 '빵가게 재습격'은 시작되는 거죠.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상실감과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쩌면 주인공은 자신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언가가 변해가고 바뀌어가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을 다쳤던 것이 아니었을까, 인정하지 않았지만 친구와의 관계가 끊어지게 된 것에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공복감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가 해요. 제가 예전에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그랬거든요. 무엇이든 양껏, 한국에 있을 때 먹던 양보다 배를 먹어도 계속 배가 고픈 거에요.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서 병원에 가봐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생활에 적응하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면서 그런 증상도 사라졌습니다. 주인공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어느 밤 갑자기 공복감을 느꼈고, 아내와 예전 벌였던 범죄(?)를 (범죄가 맞긴 한데, 어쩐지 안 어울리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요;;) 되풀이함으로써 가슴 속에 응어리졌던 무언가가 풀어졌던 게 아닐까요? 이 아내라는 사람, 평범한 시각으로 보면 참 신비한데(과연 인간이 맞긴 할까 라는) 주인공에게 있어 치료제나 다름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각각의 작품이 다른 분위기를 취하고 있지만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코끼리의 소멸>도 그렇고, <패밀리 어페어>에 등장하는 방황하는 주인공도요. 그런 상실감은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쌍둥이들이 어떤 존재였는 지 모르지만 그들을 잃고 상실감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섬을 연상하게 했어요. <로마제국의 붕괴*1881년의 인디언 봉기*히틀러의 폴란드 침입*그리고 강풍세계>와 <태엽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은 약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결국은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량이 매우 적은 단편들의 모음이지만 잘 찾아보면 동일인물로 생각되는 사람이 등장해요. 그 이름은 비밀로 해두겠습니다. 그래야 찾아보는 재미가 생길테니까요. 호홋. 찬바람이 불길래 거기에 어울리는 분위기의 책이 읽고 싶었는데, 역시 무라카미 선생의 분위기는 좋군요. 책을 읽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아~좋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 오랜만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