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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자
막심 샤탕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8월
평점 :
<악!> 시리즈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이 작가의 이름을 그냥 지나치실 수는 없을 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악!> 시리즈의, 이름만 달콤한 샤탕 아저씨의 [약탈자] 입니다. 모르는 분들은 <악!> 이 비명을 지를 때의 '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잔혹하고 소름끼치는 묘사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라 그 '악!'도 잘 어울리지만, 여기서는 그의 작품 [악의 영혼] [악의 심연] [악의 주술] [악의 유희] 를 일컫는 말이랍니다. '악'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릴 정도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범인들과 잔혹한 묘사로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은 들어보시지 않았을까 해요. <악!> 시리즈 이후, 샤탕 아저씨의 작품을 접해본 적은 없지만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라는 문구와 양의 탈을 쓴 사람이 서 있는 표지에 끌린 소설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작품의 배경은 '전쟁터'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한 번도 본 적 없고 원한을 가진 적조차 없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색의 군복을 입었다고 해서 타인을 죽이는 것이 통용되는 또 다른 세상이죠. 아무리 적군이라고 해도 눈 앞에서 한 생명이 꺼져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없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많은 세월을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워하는 게 아니겠어요? 갑자기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이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한 소설의 문장이 생각나네요. 그런 전쟁터에서 단순히 쾌락을 위해 병사들을 죽이는 살인마가 나타납니다. 그를 잡기 위해 현대의 프로파일러 같은 헌병들이 등장하죠. (전 잘 모르겠는데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하는 헌병들이 있는 지 궁금하네요)
이 작품의 매력은 단연 헌병대의 크레이그 프레윈 중위입니다. 과거 한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심연에 자리잡은 어둠에 대해 익숙한 프레윈 중위는 그 동안 접한 여러 사건을 통해 자신만의 이론을 가지고 있죠. 범인이 남긴 시체, 현장에 남긴 증거, 범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 등을 통해 범인이 누구인가를 추리합니다. 마치 제가 좋아하는 미드 <크리미널 마인드>를 보는 것 같았어요. 한 단계 한 단계 범인에게 근접하는 프레윈 중위. 그런 그에게 사건 초반부터 범죄수사에 가담하게 요청한 간호사 앤 또한 수수께끼의 인물입니다. 범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 앤이 이번 범죄를 통해 자신에게서 발견하고자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요. 사건 수사와 함께 인물들이 간직한 어둠에 대한 의문까지 의혹으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제가 간격을 두고 읽어서일까요? 이번 작품은 조금 지나치게 템포가 느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범인에게 다가가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느낌. 범죄수사로 유명한 프레윈 중위가 유독 이 사건에서만 헛다리를 짚는 것 같은, 그런 계산된(?) 설정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속도감 있게 슉슉 넘어가는 그런 이야기를 원했는데 말이죠. 다만 누가 범인인지에 대해 자꾸 머리를 굴리게 된다는 점은 좋았습니다. 전쟁터를 배경으로 한 만큼 그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을 해하게 되는 고통에 대해 조금 더 설명되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