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 24시 - 상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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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역의 위협에 대비해 조직된 특수기관 정안사. 그 정안사의 수장인 이필은 장안을 불바다로 만들려는 돌궐의 테러 계획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돌궐의 정예병에 대응하기 위해 전직 수사관이자 현재는 사형수인 장소경을 석방합니다. 젊지만 두뇌가 명석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형수조차 기용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필과, 거칠고 막무가내에 잔혹한 성정을 지닌 것처럼 보이나 그 누구보다 장안의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고 장안 108경을 훤히 뚫고 있는 장소경의 협조 아래 테러의 배후 세력이 점점 드러나고, 그 거대한 세력 앞에 선 두 남자의 목숨을 건 추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장안 24]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이필과 장소경입니다. 사형수의 신분인 장소경은 얼핏 무례하고 인정사정없는 인물로 보이는데요, 소설을 따라가다보면 그가 사형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 그 어떤 달콤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을 것 같던 그가 이필을 돕는 이유 등이 밝혀지면서 사실은 장안에 있는 누구보다도 정의롭고 신의를 중시하며 속마음은 따뜻한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칠고 무뚝뚝하지만 장소경이 보여주는 희생정신이나 빠른 상황파악, 정확한 판단력은 그를 다른 등장인물에 비해 한층 매력적으로 비추는 요소이기도 하고요. 다만,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 부드럽게 바꿀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정안사의 수장인 이필은 엘리트 관료로서 매우 스마트한 인물입니다. 초반에는 거만한 지략가인 줄로만 알았는데 젊은 나이에 갖추기 어려운 카리스마와 천재적인 두뇌, 다루기 어려워보이는 사형수인 장소경마저 이용하는 과감함 등이 돋보여요. 장소경에 비해 노련함은 다소 부족해보이지만 장소경과 마찬가지로 장안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목숨과 자존심마저 내던질 정도로 열정적인 남자입니다. 집안의 하녀인 단기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를 단순한 하녀로만 취급하지 않는, 급진적인 성향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장소경과 이필, 두 남자의 매력을 앞세워 작품은 생각보다 빠르게 전개됩니다. 이미 상권에서 장안을 위협하는 세력이 어느 정도 드러난 데다 장소경의 능력으로 테러 집단에 대한 단서를 거머쥐고 추격이 시작되었죠. 하지만 그 때마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 이 벽을 이번에는 어떻게 돌파하려나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바빠졌습니다. 사실 그 동안은 중국 문학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고, 때문에 책을 읽기 전에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이 소설은 한 번 읽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어요. 정말 재미있는 책은 책을 읽지 않는 순간에도 머릿속에 계속 소설 내용이 맴도는데 이 작품이 그랬습니다. 어째서 작가인 마보융을 문학 귀재라 표현했는지 알 것 같아요.

 

장소경과 이필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주변 인물들도 입체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으로서의 매력과 명석한 두뇌를 모두 갖춘 단기, 처음에는 장소경을 위험인물로 간주하지만 어느 덧 그의 깊은 성정을 알아보는 요여능도 작품에 재미를 더해줍니다. 분량이 꽤 많다보니 등장인물들도 많고 용어가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풍부한,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하권도 상권과 같은 분량이라면 작가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뒤에 준비해두고 있을지 무척 기대됩니다. 과연 사형수였던 장소경은 장안을 지키고 사형수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미묘한 감정선을 보이는 단기와 인연이 닿을지, 요여능은 어떤 인물로 성장할지 어서 읽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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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토끼 식당 차림표 : 6시 20분의 고기감자조림 눈토끼 식당 차림표
고미나토 유우키 지음, 박유미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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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작은, 귀엽고 깜찍한, 제가 좋아하는 분홍색과 보라색이 어우러진 표지였습니다. 책을 고르는 데 있어 취향을 저격하는 표지 또한 무시할 수 없죠. 낯선 작가, 식당을 주제로 하는 소설은 평소 아주 끌렸던 소재는 아니었지만 이 무시할 수 없는 매력적인 표지에 그만 흠뻑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토끼라는 동물을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표지보다 더 매력적인 건 바로 이야기였습니다. 기대하지 않고 읽어내려갔는데 어느새 온 마음을 다해 읽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둘째 곰돌군이 태어난 이후 책을 읽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저로서는 무척 기쁜 일이었어요. 덕분에 모유를 유축하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새벽에 일어나기도 수월했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눈토끼 식당을 이어받은 유키무라 다이키. 다시 문을 여는 날부터 찾아온 시크한 고양이에, 고양이에게 이끌리듯 식당을 찾은 사람들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어느 날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식욕을 잃은 아오이가 눈토끼 식당에 찾아오고, 다이키의 요리와 그의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에 매료된 아오이는 눈토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돼요. 그 곳에서 만난 식당의 단골손님들과 건너편 양과자점 남매, 그리고 시크한 고양이 무사시로 인해 아오이의 생활은 다시 풍성해집니다.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에피소드들로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요리가 서투릅니다. 먹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딱히 반찬투정이 심한 편도 아니고, 짝꿍은 아침만 집에서 먹기 때문에 많은 반찬이 필요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두 명의 곰돌군들을 돌보다보니 많은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할 수도 없을뿐더러 양가 어머님들의 지원이 빵빵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유식이나 곰돌군 반찬 외에 가끔 짝꿍이 먹고싶어하는 메뉴를 만들기도 하지만요. 요리를 정말 좋아하고 잘 하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저는 제 자신 스스로가 요리에 흥미도 없고 재능도 없다 여기고 있었어요. 때때로 만드는 요리에 짝꿍이 맛있다고는 하지만 격려차원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무언가를 자꾸 만들고 싶어져요. 서툴더라도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먹이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 솟아납니다. 음식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사랑과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들이,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 계절을 따뜻하게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에요.

 

일본 소설은 일상생활 속 장소들을 소재로 따스한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요, 제가 읽은 작품들만 해도 그 무대가 이발소, 카페, 우체국, 식당 등 다양합니다. 특별한 장소나 시간이 아닌, 우리가 항상 함께 하는 장소들을 통해 일상의 소소함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고 할까요. 그래서 더 무게를 갖는 그런 장소들이요. 다른 작품들을 읽을 때는 그런 감상을 그저 마음에 간직하기만 했었는데, [눈토끼 식당 차림표]를 읽다보니 갑자기 저도 식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창하지 않게, 눈토끼 식당처럼 단골손님 위주로, 맛있는 음식을 통해 마음을 나누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요. 정말 할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고요. 히히.

이 작품은 각각의 소제목들이 무척 귀여워요. <23시에 만든 애정어린 냄비요리>같은. 제목에 냄비요리가 들어가서인지는 몰라도 읽다보니 뜨거운 냄비 요리가 먹고 싶어지는 작품이었어요. 마침 그런 요리가 어울리는 계절이 돌아왔네요. 모두 따끈한, [눈토끼 식당 차림표] 한권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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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런치의 앗코짱 앗코짱 시리즈 1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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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 중 <파견의 품격>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장의 신>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었었는데요, 파견직이지만 모든 일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처리하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그녀와 관계된 회사 내 에피소드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보다보면 통쾌함이랄까 카타르시스라고 할까 그런 시원한 기분이 느껴져 무척 재미있게 봤었어요. 맡은 일은 100% 완수해내고 당당하면서 할 말 다하는 여주인공을 보면서 , 나도 저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드라마지만 그 때의 저는 직장의 신으로 불리던 그 여성보다는, 그녀와 같은 회사를 다니며 그녀를 동경하는 다른 여성 캐릭터에 더 가까웠거든요. 지금의 저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알 수 없지만, 한 번씩 책이나 드라마를 통해 앗코같은 여성을 만나면 또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나도 이런 멋진 여성이 되고 싶다고.

 

[나는 매일 직장 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를 처음에는 오해했었어요. 사전연재로 만난 이 작품의 제목만 얼핏 보고 으아니! 직장 상사의 도시락을 매일 싸다니, 직장 내 괴롭힘인가!-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웬걸요. 읽다보니 저절로 빠져들게 되는, 도시락과 관련된 무척 따뜻한 이야기인겁니다. 비정규직에 실연까지 당한, 절대로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성격의 미치코는 어느 날 자신의 도시락을 한 번 먹어본 직장 상사인 앗코짱으로부터-물론 그녀 앞에서 대놓고 앗코짱이라고 말하지는 못합니다-일주일간 점심식사를 바꾸자는 제안을 받습니다. 미치코는 앗코짱에게 일주일간 도시락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앗코짱은 자신이 가던 음식점과 점심값을 제공하는 형식인 거죠. 각각의 장소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과 맛있는 음식들. 단 일주일의 경험이었지만 그 시간들은 미치코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앗코짱은 겉보기에는 냉정하고 빈틈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에요. 하지만 침울한 미치코를 알게 모르게 위로해주기도 하고, 자신에게 관심 있다는 남자의 연락처를 받고선 수줍게(?) 미소를 띠기도 하죠. 겉은 차가워보이지만 속은 따뜻한 츤데레같은 캐릭터라고 할까요. 읽는 내내 미치코가 성장해가는 과정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오면서 나도 앗코같은 여성이 되고 싶다, 혹은 앗코 같은 여성이 주위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부럽기도 했습니다. 책 중간중간에 음식 삽화가 들어가 있는데요, 무척 따뜻한 색감에 마음까지 부드러워지는 그림들이었어요. 앞의 두 편은 미치코와 앗코의 이야기, 뒤의 두 편은 그들과는 상관없지만 역시 성장해가는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앗코 같은 완성형(?) 캐릭터도 멋지지만 미치코처럼 실수하고 방황하면서도 결국에는 길을 찾아내 성장해같은 캐릭터도 멋지다고요. 앗코와는 달리 미치코는 요리도 잘하고 순수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가지고 있거든요. 우리 모두 어쩌면 앗코보다는 미치코라는 여성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앗코를 보며 부러워하면서도 미치코를 생각하면서는 더 힘을 내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먹는 것은 살아가는 것, 이라는 문장이 마음에 박힌 즐거운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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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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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폴과 마흔 여덟 수전의 아찔하고도 위험한 사랑이 시작됩니다. 아직 그 무엇도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가진 폴에 비해, 수전은 남편과 두 딸과 안정된 생활을 소유하고 있죠. 테니스 클럽에서 만나고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결국 그의 부모님과 그녀의 남편, 주변에도 알려지지만 폴과 수전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듯합니다. 마침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함께 살게 된 두 사람. 영원히 계속될 거라 믿었던 사랑, 두 사람 사이는 수전의 알콜중독 증상으로 균열을 맞이하고 그들의 사랑 또한 시간 속으로 사라져 폴의 기억 안에서만 살아있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로 저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작가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입니다. 단 하나의 작품으로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 후 출간되는 작품 모두 관심있게 지켜보았지만 이번만큼 크게 기대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제목만으로도 얼마나 설레이나요. 연애라니, 그것도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작가가 쓴 연애소설이라니, 제목만으로도 가슴 속 어딘가가 간지럽고도 안타까운 느낌이 들어 보라색 표지의 책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습니다. . 그런데 이 러브, 무척이나 파격적입니다. 열아홉 남자와 마흔 여덟의 여자. 무려 30년 정도의 나이 차. 서로 상대의 무엇에 그렇게 끌린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커플이었어요.

 

저는 특히 연애를 다룬 작품을 읽을 때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의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난데없이 다짜고짜 너를 사랑해가 아닌, 둘 사이의 감정의 교류가 전해주는 그 독특한 분위기를 즐깁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제목 자체가 연애의 기억이기 때문인지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는 데 있어 특징지을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어요. 그저 테니스 클럽에서 만난 그들이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만의 과정을 거쳐 결국 파국을 맞이한 기억이 서술의 중심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솔직히 폴과 수전의 사랑에 빠져들기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곰돌군 두 명을 키우는 엄마이다보니 과연 아들뻘 되는 남자와 러브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 곰돌군 중 한 명이 30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겠다며 수전같은 여성과 결혼하겠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연애소설을 읽기에는 이미 너무나 현실적인 사람이 된 것일까요. 러브에는 약간이라도 환상이 필요하다고 여기니까요.

 

게다가 오랜만에 만난 작가의 문장은 이리저리 미로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에 혼란스러웠습니다. 옛 기억을, 추억을 더듬는 과정이었기 때문인지 이야기가 이리 저리 흔들리며 진행되는 느낌이었어요. 사랑했던 시간으로부터 이미 50년이 지난 폴의 모습을 대변하는 문장들이었던가요. 무척 사색적이고 숨은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며 읽어야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수전이 그렇게 된 상황에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비록 30년의 나이 차이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선택했으니 행복했다면 어땠을까, 현실이 녹록치 않음을 그려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 이번 작품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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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머더 레이코 형사 시리즈 6
혼다 데쓰야 지음, 이로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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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데쓰야 작가의 [스트로베리 나이트]를 저는 드라마로 먼저 접했습니다. 좋아하는 배우 다케우치 유코와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출연한 작품으로, 아주 오래 전 드라마이지만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의 걸크러쉬 매력을 내뿜었던 상처 입은 형사 히메카와 레이코의 캐릭터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상사와 부하 관계지만 남녀사이로 둘 사이에 오고갔던 묘한 감정의 기운들도 마음을 설레이게 했었는데요, 극장판에서는 히메카와가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연기한 기쿠타가 아닌 다른 남성을 마음에 두는 설정인 듯 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답니다. 소녀시절 폭행을 당한 아픔을 차마 기쿠타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좋아하면서도 좋아한다 말할 수 없었던 히메카와와 그런 그녀를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던 기쿠타였는데 이번 [블루 머더]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마주하게 되네요.

 

 

 

한동안 출간되지 않아 포기하고 있던 히메카와 시리즈가, 기존 [스트로베리 나이트]부터 [소울 케이지], [시머트리], [인비저블 레인], [감염유희]까지 개정판에 [블루 머더][인덱스] 까지 더해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전작에서 조폭인 마키타와의 관계로 인해 히메카와 반은 해체,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히메카와는 현재 이케부쿠로 서 형사과 강력계에 배속되어 있는 상태. 그런 그녀 앞에 온몸을 구타당해 살해된 조직폭력단 니와타 조직의 가와무라 조지 살해사건이 발생합니다. 무기도 특정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동일범의 짓으로 보이는 시신이 계속 발견되고, 히메카와와 기쿠타는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하나의 사건으로 모아지는 접점에서 조우해요. 사건을 해결하는 시선과는 달리 범행을 저지르는 이들의 이야기도 같이 서술되는 가운데, 이 범행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예측할 수 없었던 진실이 밝혀집니다.



더 이상은 갇히고 얻어맞고 협박당하고 노예처럼 살기 싫어

그렇게 살 바엔 철창이나 무덤 속이나 똑같아

 

이케부쿠로 일대의 암흑가를 뒤흔든 블루 머더

악당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없애는 괴물

이렇게 서슬 퍼런 살인자는 다시 없을지 모른다

인상적인 문구가 뒷표지를 장식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 문구들로 범인이 뭔가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단순히 조폭이나 그와 비슷한 무리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고, 뭔가 복수라거나 더 처참한 사정이 숨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결국 밝혀진 범인은 잔인한 살인행각과는 별개로 굉장히 강한, 자신만의 철통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할까요. 그 신념이 사회통념상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으로 남지만, 히메카와는 그런 그를 이해하고 분석합니다. 악당들을 가차없이 처단하면서도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쯤은 슬프게 보여졌던 것은, 과거 배신당했던 이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범행 장면이 굉장히 잔인한데다, 히메카와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은 뒷부분부터인지라 사건을 따라가다보면 취향에 맞지 않는다 여기는 분들도 계실 듯 합니다. 저는 사실 소설보다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팬이기는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좋아했던 캐릭터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빠져 읽어나갔던 것 같아요. 호불호가 나뉠 만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저처럼 드라마나 기존 시리즈 작품들의 골수팬이라면 반갑고 즐거워할만한 만남임에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히메카와와 기쿠타의 관계는 이제 그 상태로 돌이킬 수 없는 걸까요. 소설을 읽어보시면 다들 아시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미련을 버릴 수가 없네요. 혹시 다음 이야기에서는 뭔가 변화가 없을지,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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